고(故) 최불암의 67년 연기 인생에는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56년간 부부의 연을 이어온 배우 김민자와 22년간 안방극장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혜자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이름은 모두 ‘자’로 끝난다. 한 사람은 무명 연극배우였던 최불암이 방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그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부부’의 모습을 완성했다.
◇ 톱스타 김민자와 무명 배우 최불암… 56년을 함께한 인연
사진=유튜브 채널 ‘옛날티비 : KBS Archive’ 캡처
최불암과 김민자의 인연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민자는 1963년 KBS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해 인기를 누리던 스타였다. 반면 1959년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최불암은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가던 시기였다.
두 사람의 만남은 최불암의 적극적인 구애에서 시작됐다. TV에 출연한 김민자의 모습에 반한 최불암은 그에게 마음을 전했고, 약 4년간의 열애 끝에 1970년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결혼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민자는 지난 2019년 SBS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 출연해 당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최불암 역시 “내가 조건이 안 좋았다. 외아들에 홀어머니에 수입이 없었다. 남편감으로 0점이었다”고 회상했다. 김민자는 주변의 반대에도 최불암과의 결혼을 선택했고, 두 사람은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부부로 함께했다.
지금은 김민자를 ‘최불암의 아내’로 기억하는 대중이 많지만, 김민자는 최불암보다 먼저 방송계에서 이름을 알린 배우였다. 1980년 제16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과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으며, ‘보통 사람들’, ‘젊은이의 양지’, ‘보고 또 보고’ 등 다수의 작품에서 활약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한국맛집K’ 캡처 김민자는 배우 활동뿐 아니라 청각장애인의 인공와우 수술과 재활을 돕는 사회공헌에도 힘써왔다. 청각장애 아동 등을 지원하는 단체 ‘사랑의달팽이’ 회장을 맡아 활동했으며, 최불암 역시 1985년부터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나눔 활동을 이어왔다.
세월이 흘러도 최불암의 아내를 향한 애정은 변함없었다. 지난 2020년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결혼 50주년을 맞은 최불암 부부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당시 최불암은 촬영 중에도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볼 만큼 애정을 드러냈으며, 결혼 50년이 지나도 아내의 얼굴을 보면 여전히 설렌다고 밝혔다.
김민자는 최불암의 무명 시절부터 전성기, 말년까지 함께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지난해 3월 최불암이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악화돼 14년간 진행한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 하차했을 때도 곁을 지켰다. 지난 5월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에서는 두 사람의 오랜 결혼생활과 러브스토리가 다시 조명되기도 했다.
◇ 22년간 부부로 산 김혜자… ‘국민 아버지·어머니’의 탄생
사진=MBC 제공 현실에 김민자가 있었다면, 브라운관에는 김혜자가 있었다. 최불암과 김혜자는 1980년 첫 방송된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각각 양촌리 김 회장과 그의 아내 이은심 역을 맡았다. 2002년 종영까지 22년 2개월 동안 총 1088회에 걸쳐 부부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한국 방송사에 길이 남을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다.
‘전원일기’는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농촌 공동체의 일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최불암은 대가족의 중심을 잡는 김 회장으로, 김혜자는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면서도 가족 구성원들을 따뜻하게 품는 어머니로 활약했다.두 사람의 연기는 특별한 사건보다 평범한 일상에서 더욱 빛났다. 자식들을 걱정하고, 때로는 부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리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부모의 얼굴로 다가왔다.
‘전원일기’가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졌다. 2004년 SBS 특집극 ‘홍소장의 가을’에서 다시 부부로 만났으며, 2006년 MBC 드라마 ‘궁’에서도 황실의 부부로 호흡을 맞췄다. 농촌의 평범한 부부에서 황실의 부부까지, 두 사람은 여러 작품에서 부부로 만나 오랜 연기 호흡을 이어갔다.
한편 최불암은 지난달 29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2일 오전 7시 40분 비공개로 엄수된다. 이후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진행하고, 고인이 생전 45년간 인연을 이어온 초록우산 본부를 거쳐 장지인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으로 향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