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의 양우석도, '사도'의 영조도 그랬다.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 생각하는 우직하고 묵직한 성격이 매력적인 캐릭터. 그 중심을 배우 송강호가 잡아내면서 안정감을 더했고 송강호에게 최적화 된 역할들이라 호평 받았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무려 '가벼움'을 담당했다. 아니, 가벼움을 넘어 '간사함'을 뽐냈다. 휘몰아치는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뚝심이 영화 '밀정'(김지운 감독)에는 없다. 센 캐릭터들 사이에서 이리 붙을까 저리 붙을까 갈대처럼 왔다 갔다하는 이정출의 모습은 실로 오랜 만에 보는 송강호의 친근함이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밀정'을 통해 김지운 감독과 네 번째 호흡을 맞춘 송강호다. 김지운 감독 최고의 상업 영화라 꼽히는 '놈놈놈'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신바람나게 달리는 송강호의 신은 여전히 회자되며 잊을만 하면 한 번씩 온라인 커뮤니티에 등판한다. 천진난만한 송강호의 표정이 압권.
그랬던 송강호를 알기에 김지운 감독은 '밀정'에서도 송강호에게 때때로 '유모어'를 담당케 했다. 의열단 공유(김우진)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툴툴거리면서 해내는 츤데레 매력은 실제 송강호와도 상당 부분 닮아 있다는 후문이다.
공유는 "나에게 해맑다고 하시는데 선배님도 해맑은 부분이 있다. 장난을 꽤 많이 치신다. 그게 참 좋다. 별 것 아닌 것에도 크게 웃으시는 것도 좋고. 후배들과 섞여서 농담하는 것 좋아하시더라. 나에게 선배님은 너무 높았기 때문에 그런 모습 하나 하나가 의외였다. 소년미도 있으시다"고 밝혔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작전에 목숨 걸고 투입되는 의열단, 그리고 그런 의열단을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일본 경찰 사이에서 이정출 송강호는 '정의'를 버렸다. 올 블랙, 올 화이트도 아닌 '회색빛'의 캐릭터는 송강호를 만나 그 자체로도 색이 있음을 보여준다.
애처로운 눈물도 보인다.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을 넘어 '사도'까지, 매 작품마다 스스로를 뛰어 넘으며 한계없는 연기를 펼쳤던 송강호는 어깨의 힘을 살짝 빼고 무게감도 내려놨다. 그렇다고 깊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이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송강호의 울음소리는 현실적이라 소름이 돋는다.
송강호 역시 "이런 캐릭터는 처음 연기한다"고 말할 정도로 평면적이지만 평면적이지 않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캐릭터를 송강호는 또 해냈다.
김지운 감독은 "늘 최정상에 있으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계속 깨고 나간다는 것이 놀랍더라. 그게 송강호다"며 "'밀정'을 함께 하면서 내 한계가 느껴져 참담한 심정이 있을 때, 송강호의 또 다른 모습들을 보면서 '저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절실하게 느꼈다. 나에게 큰 힘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