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영화를 볼 땐 잘 몰랐다. 그저 '비주얼 좋다' 감탄만 했을 뿐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래서 김우진이 할 줄 아는게 뭐야?'라는 단순한 생각만 맴돌았다. 기억에 남지 않을 줄 알았다. 근데 이상하게도 자꾸 어딘가에 잔상이 남아있다. 잠들기 전 생각나는 얼굴은 독방에 똑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누워 아주 미세하게 미소짓던 공유더라.
먹먹하고 여운이 남는다. 영웅이 아니라 더 그렇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의열단, 그 중에서도 리더라고 하면 왠지 천하무적 히어로일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도 사람이다. 함께 움직일 단원들이 필요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다만 도움 요청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 위험 속에 기꺼이 온 몸을 던질 각오가 돼 있다는 '용기'가 그렇지 못한 이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공유는 극중 살벌한 기싸움을 하면서도 이를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두려움을 숨기지 못하는 마음을 전해야 하는 이중 연기를 공유만의 스타일로 결국 소화해 냈다.
송강호와 시종일관 붙지만 보여지는 화려함 보다는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부분이 많았다. 차라리 총을 쏘고 뛰어 다니는 것이 관객들에게 의사 전달을 할 때에는 더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밀정'의 정서는 다르다. 그래서 공유에게는 또 한 번의 도전이자 모험이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그 과정 속에는 '성장'이 있었다. 공유에게 김우진은 "송강호를 코 앞에 볼 수 있어 너무 좋았던 캐릭터"가 맞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김우진이라는 존재가 '밀정'에 왜 필요한지, 자신이 서야 하는 롤이 어디인지 무섭도록 명확하게 파악하고 이해하고 분석했다. 자꾸 눈에 밟히는 김우진은 그렇게 탄생했다. 공유는 "내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밀정'은 송강호의 영화다. 상대적으로 그렇다. 이정출과 김우진을 놓고 비교했을 때, 솔직히 김우진도 힘들긴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조금은 덜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역할이 아닌가 싶다. '밀정'을 선택하고 임했던 자세는 '내 롤을 분명히 해서 이정출이라는 인물이 갈등하는 이유가 되어 주자'는 것이었다. 끝까지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수트 패션은 큰 스크린 화면으로 볼 때 시원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수트 패션보다 말 못할 감정을 품고 카메라 너머 한지민(연계순)을 바라보는 눈빛, 송강호(이정출)에게 땡깡을 부리듯 자신을 도와달라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말투, 죄수복을 입은 채 대사 한 마디 없이 표현해 낸 감정의 분위기가 더 생각난다.
고음을 잘 내지른다고 무조건 노래를 잘 내지른다고 말 할 수 없 듯이, 연기 역시 마찬가지다. 시원하게 박장대소를 하거나, 애처롭게 울분을 토해내는 연기만 명연기는 아니다. 무슨 일이든 그렇다. 내가 몫을 완벽하게 해내면 칭찬은 당연히 뒤따른다.
'밀정' 김지운 감독은 공유 캐스팅에 대해 '신선함'이 좋았다고 말했다. 멀티캐스팅이 빛나는 떼주물 영화에 출연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멜로에 강한 배우라 생각되던 공유이기에 공유의 '밀정' 합류는 대중에게도 다소 의아하게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바로 그 지점을 노렸다. 공유의 연기에 "흡족하다"고 여러 번 강조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의 부집행위원장 마이크 호스텐쉬(Mike Hostench)는 '밀정'을 호평하며 "송강호와 공유는 스크린 속 거물들의 격돌을 보장한다"고 전했다. 공유는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송강호, 이병헌과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