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국의 눈이 반짝였다. '2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은 어떨 것 같은가'라는 질문을 받은 직후였다. 축구 선수 대부분이 꿈꾸는 지도자나 최근 들어 인기가 있다는 축구해설가와 같은 무난한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정조국은 "축구 행정가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지도자도 좋지만 그보다는 축구를 움직이는 행정에 관심이 더 많다"고 또박또박 말했다.
정조국이 행정가를 꿈꾸는 것은 조광래(62) 대구 FC 사장의 영향이 컸다. 그는 "조광래 감독님은 FC 서울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나의 은사다. 감독님이 대구 FC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현장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분을 보면서 행정가의 꿈을 갖게 됐고 조심스럽게 준비를 고민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스타 선수 출신들이 행정가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하다. 프로팀 지도자와 국가대표팀 코칭스태프 등을 거친 뒤 행정가로 접어든다.
조 사장을 비롯한 허정무(61)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 차범근(63)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현역 생활은 물론이고 지도자로서 일가를 이루고 인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행정가 자격을 얻는다고도 볼 수 있다. 축구선수 출신이 은퇴한 뒤 행정가의 길로 곧바로 접어드는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
이에 정조국은 "아무래도 운동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박지성(35)의 행보가 변화의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박지성은 현역에서 물러난 뒤 지도자 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축구행정가를 준비했다. 박지성은 현재 영국의 한 대학에서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마스터 코스를 이수하고 있다. 박지성은 은퇴하기 전 행정가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고 은퇴 뒤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정조국은 "(박)지성이 형을 보면서 은퇴 뒤 바로 행정가 공부를 시작하는 사례를 알게 됐다"며 박지성을 롤 모델로 꼽았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에 자신이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는 축복받은 사람 중 하나"라면서 "나는 프로다. 행정가로서도 프로페셔널하게 살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족을 위해서도 행정가가 낫다는 판단을 했다. 정조국은 2009년 결혼 뒤 프랑스 리그에 진출했고 귀국 뒤 군에 입대했다. 결혼 8년 차 부부지만 둘이 함께한 시간은 그 반절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정조국은 "지도자를 하면 다시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을 것 같다. 앞으로 여러모로 고민하겠지만 가족을 생각할 때도 행정가가 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년 뒤가 아닌 지금 정조국의 꿈은 뭘까. 그는 주저 없이 이동국(36·전북 현대)의 이름부터 꺼냈다.
"(이)동국이 형을 보면서 '내가 저 나이에 저렇게 축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내도 '멋있게 축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동국이 형의 삶이 딱 그렇다. 그러려면 나를 더 닦아 세워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