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는 올해 말 대의원 선거를 비롯해 내년 초 이사 대부분을 새로 뽑는 선거를 치른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의원과 이사들은 총회와 이사회를 구성하고, 협회에 산적한 각종 사안들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다. 일간스포츠는 KLPGA 기획 진단, 권력화로 얼룩진 KLPGA 대의원과 이사들의 백태를 들여다본다.
일부 대의원들의 반발과 소동이 있었던 KLPGA 정관 개정안은 협회 고민을 그대로 함축한다. '스폰서'에 가까운 협회장을 영입하고 추대한 뒤 실제 협회를 암약하며 좌지우지하던 실세 이사진과 대의원의 전횡을 막아 내겠다는 김상열 협회장의 고민이 담긴 개혁안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 반대로 이사진 대신 회장 독재가 우려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KLPGA는 3월 말 정기총회를 열고 ‘임원 선출 방식 및 단임제’를 골자로 한 정관을 개정했다. 기존 정관(제3장 제12조)은 이사회의 임원(수석 부회장·부회장·이사·감사)을 대의원들이 총회에서 선출하는 구조다. 그러나 3월 중순 이사회에서 협회 집행임원인 수석 부회장과 부회장·전무이사를 기존 대의원 투표 선출 방식에서 회장이 지명해 선임하고 그 임기를 보장하는 것으로 결의했다. 이사회는 이와 함께 수석 부회장·부회장·전무이사는 각 1회만 선임 가능하되, 타 직위 간에는 각 1회를 선임할 수 있다는 정관을 추가시켰다.
이사회를 통해 정관 개정안이 발의되자 일부 대의원과 이사들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현직 이사인 A프로가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임원의 회장 선임제’에 대한 문제점을 두 차례에 걸쳐 문자로 알리는 상황이 이어졌다. 해당 이사는 “정관 개정이 총회에서 통과된다면 회장이 지명한 임원이 6명(사외 이사 3명·집행임원 3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회장을 포함하면 이사회 의결권 수 15명의 과반수에 가깝기 때문에 이사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고 주장했다.
반대 목소리가 이어지자 김상열 회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현재 명예직이나 다름없는 회장의 권한을 넓혀 적극적으로 협회 운영에 힘을 쏟겠다. KLPGA 회원이 약 3000명인데, 한 사람이 16년씩 임원을 하면 아무리 유능해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고, 독재하면 교만해진다. 선출직일 때는 수석 부회장 선거 때마다 대인 관계가 좋고 밥 잘 사 주는 사람을 뽑는 등 소위 힘의 논리가 지배했다. 이런 부작용과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정관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김 회장이 직접 밝힌 멘트 중 "현재 명예직이나 다름없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약 3년간 수장을 맡으면서 회장 자신도 어쩌지 못한, 묘하게 돌아간 협회의 역학 관계를 더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수장조차 스스럼없이 이렇게 밝힌 대목에서 그간 이사진과 대의원의 선출 구조를 통한 파벌 다툼 그리고 제 밥그릇 챙기기의 폐단이 통렬하게 읽힌다.
그러나 정관 개정에 반대했던 이사와 대의원들의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A이사는 “독재를 막으려면 정관상에 임원(수석 부회장·부회장·전무이사) 임기를 통틀어 4년만 하게 하면 된다. 수석 부회장·부회장·전무이사를 각 1회 선임할 수 있도록 정관을 바꿔 최대 12년까지 임원을 할 수 있도록 해 놓고 독재를 막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관 개정안 투표는 결국 김 회장의 사퇴 불사 발언과 거수 찬반 투표라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 진행됐다. 출석 대의원 45명 중 41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총회장에서는 일부 대의원과 회원들이 거수 찬반 투표와 함께 찬성표와 반대표를 사진 찍으라는 김 회장의 주문을 두고 “공산당이냐”라며 소리치는 상황도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통과된 개정안은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기다린다. 처음엔 극렬히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던 대의원들이 회장의 읍소 반, 일갈 반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90% 지지로 개정안이 통과된 셈이다.
정관 개정안은 통과됐지만 향후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개정 정관을 검토한 법무법인 시선의 모 변호사는 “개정하기로 한 정관 내용을 보면 수석 부회장·부회장·전무이사를 회장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뽑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뽑은 사람이 이사회 과반 가까이 되면 의사 결정도, 집행도 회장이 진행할 수 있는 구조가 될 소지가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