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영화 한 편의 위력은 대단하다. 영화 '실미도(강우석 감독·2003) 이후 약 14년간 스무 편의 영화가 1000만 돌파 달성에 성공했고, 이전보다 빠르게, 그 빈도 역시 잦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치까지 상실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1000만은 많은 영화인들의 꿈이고, 몇 년, 몇 십년이 지나도 회자될 기록의 산물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의 흐름에 따라 '무조건 1000만', '벌써 1000만'이라 쉽게 표현되지만 여전히 아무나 할 수 있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타이틀은 아니다. 관객들의 신뢰를 담보로 해야 얻을 수 있는 꿈의 숫자다. '하늘이 점지해 주는 1000만'이라는 수식어도 유효하다.
올해 그 복을 한 몸에 받은 작품은 바로 '택시운전사(장훈 감독)'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아닌 이를 바라보는 제 3자의 시각으로 색다르게 풀어내며 관객들과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관객들이 원한 1000만이다. 1000만이라는 결과만큼 기억될 과정이다.
이에 따라 2017년 영화계는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를 빼놓고는 말 할 수 없다. 박은경 대표는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출신으로 제일기획, IBM을 거쳐 2003년부터 쇼박스에서 일하며 본격적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마케팅팀장과 투자팀장을 지낸 그는 2012년 독립해 제작사 더 램프를 차렸고, '동창생(2013)'을 시작으로 '쓰리썸머나잇(2014)', '해어화(2015)'에 이어 '택시운전사'를 제작, 4년 만에 1000만 영화를 탄생시킨 능력자가 됐다.
"1년쯤 지나면 좀 실감이 날까요?"라며 '1000만'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직까지는 체감되지 않는다고 고백한 박은경 대표는 "이번 영화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좋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영화인으로서 관객들의 마음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며 "무엇보다 함께 한 수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서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고 진심을 표했다.
결국 기승전'사람'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에, 그리고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있기에 공감과 소통의 최고치를 찍은 영화 '택시운전사'를 만들 수 있었다. 관객들의 애정에 보답할 길은 다시 돌아 영화다. 박은경 대표는 쉴틈없이 차기작 '말모이(가제)'에 돌입할 전망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 올해 첫 1000만 돌파작에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10에 오른 작품이 됐다. "점점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영화인 것 같다. 기록이든 영상이든 무엇으로든 남게되지 않나. 호응을 받을 때와 못 받을 때 상관없이 일단 잘 만들어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 제작사 '더 램프'를 차린 후 네 번째 작품만에 터졌다. "개인적으로 좋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같이 한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니까 좋다.(웃음) 물론 앞서 제작한 '동창생(2013)' '쓰리썸머나잇(2014)' 해어화(2015)' 모두 나에게는 똑같이 애정어린 작품들이다."
- 쉽지 않은 소재로 소통까지 성공했다. 신파와 감동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을텐데. "분명한 호감도는 있지만 그 만큼 어렵게 바라볼 수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조금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 노력이 지금의 영화를 탄생하게 만든 것 아닐까 생각한다."
- 과정부터 결과까지 되돌아보면 어떤가. "정말 아주 처음으로 되돌아가면 기사 한 페이지, 한 줄로 시작했다. 거기에 작가가 트리트먼트 15장~20장을 썼고 80장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그 때까진 그래도 책상위의 페이퍼다. 그게 연출자가 확정되고 배우가 붙고 또 팀이 꾸려지면서 점점 넓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가 와서 하나 하나씩 다 얹어주는 기분이었다."
- 영화의 의미도 그 만큼 깊어졌을 것이다. "맞다. 애초 가졌던 의미보다 관객들이 더해주는 느낌이다. 주변에서 '박 대표님이 이런 의미로 이렇게 만들어 주신거죠?'라고 묻는데 영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그 이상의 가치로 만들어 주는 것은 100% 관객 분들의 힘이라 생각한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 어떤 평이 가장 좋았나. "부모님 혹은 아이들과 함께 봤는데 세대가 소통하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제일 기분 좋더라.(웃음) 사실 나에게는 이 영화가 자식이나 다름없다. 자식처럼 낳은 작품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길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송 선배님(송강호)이 '따뜻하게 안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이 정답이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나. '꽃길을 걷는다'는 말도 그런 느낌이었다."
- 1000만 돌파는 실감하나. "1년 쯤 지나면 좀 와 닿을까?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축하 메시지만 열심히 받고 있다.(웃음)"
- 이 소재를 찾아낸 처음은 어땠나. "이 아이템과 기사를 내가 찾은 것은 아니다. 같이 일하는 PD가 전화로 '이런 기사를 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거기를 걷고 있었는데 곧바로 '알았어. 내가 할게'라고 답했다. 즉시 기사를 검색했고 관련 이야기들을 추가로 접하면서 점점 마음이 단단해졌다."
- 제작사 대표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나에겐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개인적 에피소드가 있다. 해외에 나가서 위험한 순간에 처한 적이 있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1등으로 도망쳤다. 그런 나를 보면서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위험을 뚫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나에게는 '유턴 라인'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쨌든 '택시운전사'는 김사복이 중심 아닌가. 그가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는 그 순간이 꼭 필요했다."
- '택시운전사'는 준비부터 개봉까지 엘리트 코스를 걸었다. "'택시운전사'는 초고가 나왔을 때 연출자·투자·배우 캐스팅까지 굉장히 유연하게 결정된 해피한 케이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가 나오기까지 1년~1년6개월 정도 시간이 소요됐고, 촬영하고 후반작업하고 개봉를 하니 3년이 훌쩍 지나가더라. 아주 일반적인 경우이기는 하다. 중간에 뭔가 틀어지면 엎어지는 경우도 많고 10년이나 걸리는 경우도 많지 않나. 만들어 놨는데 모니터링 했더니 반응이 안 좋으면 또 난리가 난다. 제작자는 그런 과정을 버티는 힘이 필요한 것 같다. 애정과 초심은 잃을래야 잃을 수 없다."
- 1000만 돌파도 '하늘이 돕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맞다. 그 말엔 모든 과정도 포함되는 것 같다. 작가님이 입봉인데 너무 잘 써줬고, 감독님을 만난 것도, 송강호 선배가 '하겠다'고 해주신 것도 모두 하늘이 도왔다. 배급·홍보팀에 촬영장에서 수박을 주셨던 주민들까지 내가 복을 많이 받았다. 노력만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 광주 시사회는 남달랐을 것 같다. "다른 시사회도 좋았지만 광주는 영화관에 들어갔더니 파란색 택시 정복을 입은 기사 분들이 앞에 세 줄 정도 앉아 계셨다. 그 분들이 오신 줄 몰랐다. 딱 들어갔는데 계시니까 확 울컥하더라. 실제로 눈물을 훔치시는 분들도 계셨고. '웰컴!' '어서와' 해주시는 느낌이었다."
- 개봉 후 택시 기사들과 관련된 후기들도 화제를 모았다. "자녀 분들에게 문자를 받았다고 하는 이야기에 미소지었던 기억이 난다. 자식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다 알아주는 느낌을 받았다고.(웃음) 시립 도서관에 민주화운동 관련 도사가 싹 다 대출되고 없다는 것도 소소하지만 따뜻했다."
- 스핀오프를 바라는 관객들도 있더라. "가능하다 싶을 정도로 엄청난 일을 하셨다. 민주화운동 하면 대학생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들을 돕고 함께 싸우고 애써 주셨던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이 만들어 주신 민주주의라는 것이 있다. 우리 아버지, 지나가는 아저씨, 내가 탔던 택시의 운전사가 지금의 나를 살게 만든 영웅일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진심이 특별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할리우드 히어로와는 또 다른 한국의 히어로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