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③] 박희순 "사업·주식 절대 관심없어, 연기만 할게요"

무려 9년만에 수상내역이 업데이트 됐다.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조연상에 빛나는 박희순(48)은 30대의 마지막과 40대의 마지막을 트로피로 채우며 반짝반짝 빛나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다. "백상은 진짜 예상도, 상상도 못했어요. 계속 '나 맞아?' 했다니까요.(웃음) 시상식 끝나고 아내 박예진과 통화를 했는데 울었대요. 유머코드가 굉장히 잘 맞는 친구인데 울먹거리니까 저도 울컥 하더라고요." '1987' 박희순의 이름이 각인 된 트로피를 바라보는 박희순의 눈빛과 미소는 트로피를 건넨 이들에게도 꽤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2008년 '세븐데이즈'로 남우조연상을 휩쓴 후 박희순은 '그 잘난' 연기에도 매 해 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 그 때도 백상은 못 받았어요. 하하. 주연급이 되면서 상 욕심은 더욱 버렸고요. 대부분 3~4명이 돌아가면서 받잖아요?(웃음) 진짜 고맙게 간직할게요."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를 졸업한 후 1990년 연극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로 데뷔한 박희순은 어느 새 데뷔 28년차의 중견 배우가 됐다.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에 다가선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깊어짐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캐릭터와 분량보다 '좋은 작품'을 1순위로 생각하게 됐다고. '밀정' '남한산성' '1987' 등 굵직한 영화들은 이러한 박희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다. 

물론 고민은 그 주제만 다를 뿐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코믹하고 가벼운 연기를 많이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박희순의 이미지는 다소 어렵고 무거운 것이 사실. 센 캐릭터가 남긴 잔상은 역할의 성격만큼 강하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과 이미지 쇄신을 위한 예능 출연을 살짝 고심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는 수준이지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기는 해요. 예능도 스타일이 많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나영석 PD의 예능이 보기 좋고 그 중에서도 '알쓸신잡'이 제 취향이더라고요. 어때요? 저 예능 해봐도 괜찮을까요?"

홀짝 홀짝 마신 맥주에 어느 새 취기가 오른 박희순은 "기분이다!"며 박예진과의 미공개 웨딩사진 한 장을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박희순과 박예진은 오랜 열애 끝 2015년 혼인신고를 진행, 1년 후 스몰웨딩으로 결혼식을 치러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내가 술만 마시면 흥이 올라요. 이래서 취중 인터뷰는 피하고 싶었다니까~. 나 진짜 혼날지도 몰라."라고 말하면서도 기분좋은 속내를 숨기지 않은 박희순은 4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자리를 지키며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작품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옛날에는 가리는 것이 많았는데, 요즘엔 열어놓게 됐어요. 예를 들면, 과거엔 작품보다 캐릭터를 더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제는 거꾸로죠. 작품을 먼저 봐요. 좋은 작품에 출연하고픈 욕심이 더 생겼어요."
 
-욕심나는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도 하나요.
"글쎄요. 그냥 친한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정도예요. 제가 찾아가서 손 비비고 그런 걸 잘 못 하거든요.(웃음) 그건 서로의 자존심이에요. 친구 사이라도 그가 감독이고 난 배우지만, '나 좋은 배역 하나 줘'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어요. 친구도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저에게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요. 원신연 감독, 장준환 감독 이런 친구들과 친한데 확실하지 않으면 서로 이야기 안 해요. 그래서 만나면 작품 이야기 빼고 다 해요. 서로에게 부담 주기 싫고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욕심나는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요.
"배우로서라기보다는 제작자 같은 마음에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나 '언더그라운드' 같은 영화들을 한국 정서로 바꾸면 잘 될 것 같아요. 리얼리즘 영화는 많이 있지만, 드라마에서도 하는 거잖아요. 전 영화는 영화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극은 연극다워야 하고, 드라마는 드라마다웠으면 좋겠어요."
 
-'영화다움'은 무엇일까요.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 있잖아요. 히어로물도 여기에 포함되는 거죠.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이요. 상상력이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도 있지만, 꿈의 세계 판타지를 그린다는 의미도 있죠. 그런데 또 SF는 개인적으로 싫어요. 현실과 맞닿아있는 상상력을 좋아해요."
 
-연출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요.
"뮤지컬을 한편 연출해본 적 있어요. 와, 근데 정말 할 게 못 되더군요. 울화통이 터져서.(웃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연출이 되면 지시를 내리는 보스가 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배우의 마음을 잘 아니까 배우들에게 맞춰주려고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한 배우가 '이 역할에 서사가 없다. 왜 이런 연기를 해야 하나'고 질문하면 집에 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고치는 거예요. 배우들이 좋아하면 다행인데, '이것도 좀' 이런 반응이 나오면 울화통 터지는 거죠. 하하하. 예전에 연극을 할 때 밤새 아이디어를 짜서 연습할 때 보여주고 연출가가 증폭시켜주면 그게 재밌었거든요. 그래서 '이건 어떨까, 저건 어떨까'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연출가 처지에서 보니까 '내가 배우였을 때 연출가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의 마음을 알게 됐어요. 그냥 연기만 열심히 하려고요. 이제 현장에서 감독님들에게 '예 예. 그렇게 합죠. 그렇게 합죠'라고 해요. 하하."
 
-배우 활동하며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젠가요.
"거의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정말 신나서 연기했어요. 현장이 제일 신났어요. 이런 놀이터가 없는 거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어렵고 힘들고 긴장돼요. 민폐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나이 먹으면 오히려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요."

-흥행에 대한 부담이 다들 크다더라고요.
"주인공일 때와 조연일 때는 좀 다르겠죠.(웃음) 내가 선택한 작품이 흥행은 조금 안 되더라도 작품성을 인정받으면 한이 없어요. 내가 그 작품에 일조했고, 흥행에 관해서는 제 소관이 아니니까요."
 

-'브이아이피'를 함께 한 박훈정 감독과 '마녀'로 다시 만났어요.
"'마녀'는 박훈정 감독이 '대호'보다 먼저 준비한 작품이에요. 박훈정 감독은 이미 영화 몇 편의 시놉시스를 갖고 있어요. 그걸 꺼내다가 시나리오로 쓰는 거죠. 정말 빨리 써요. '마녀'를 만들기로 했다가 '대호'가 먼저 나오게 됐고, 이후 투자사가 '브이아이피'를 먼저 하자고 해서 순서가 그렇게 된 거예요. '마녀'는 박훈정 감독이 내놓은 영화 중 가장 대중적이에요. 초반에는 재밌고 후반에는 미스터리가 있어요."
 
-'마녀'에서는 어떤 재미를 기대하면 될까요.
"음… 사실 전 별로 안 나와요.(웃음) 신인 여자 배우 3인방이 기대할 만해요. 연기도 잘하고 액션도 잘해요. 걔네는 술도 잘 먹어요. 남자들 다 집에 갈 때까지 마셔요. 하하하. 주인공 김다미는 책임감도 강해요. 작품을 찍을 때나 모든 일상에서 다 책임감이 강하더라고요."
 
 -오디션을 통해 '마녀' 주인공으로 뽑힌 김다미 씨에 대한 기대가 높아요.
"연기를 참 잘해요. 액션을 배운 적이 없다는데 이미지가 맘에 들어 캐스팅한 거예요. 근데 이 아이가 겁이 없어요. 액션 연기는 겁이 없어야 하거든요. 뒤돌아서 발차기를 하면 대역 연기자는 움찔하는데, 김다미는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안 하냐'고 했더니 '제가 겁이 좀 없어서'라고 하더라고요. 김다미가 충무로를 휩쓸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마녀'에서 최우식이 섹시하게 나와요. 적역을 만났어요. 제가 예뻐하는 몇 명의 후배 중 하나가 최우식이에요."
 
-후배를 많이 예뻐하는 선배네요.
"예쁜 후배는 당연히 예뻐해야죠. 예쁘지 않은 후배도 있고요. 그냥 저랑 잘 통하면 좋아요.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지만, 저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후배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물괴'를 함께한 혜리와는 정말 잘 맞아요. 참 밝고 좋아요. 최우식과 혜리가 밝은 성격이라 좋아요. 저는 막 대해주는 후배가 좋아요.(웃음) 격식을 차리고 대하는 후배는 부담스러워요." 
 

-일상이 아내와 연기 말고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맞아요. 박예진과 술 먹는 게 제일 재밌을 정도니까요. 둘이 유머코드가 통하니까. 이런 인터뷰가 나가면 혼날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상 받았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박예진도 상 받는 거 보고 좋아했으니까요. 하하하."
 
 -쉴 때는 주로 뭘 하나요.
"간단한 운동을 하고, 아내와 술을 마시고요. 지난해 바쁘다가 올해 여유가 생기니까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배우는 계속 연기해야 하나 봐요." 

-연기 이외에 재테크 같은 것엔 관심 없나요.
"사업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숫자에 약하니까요. 다들 그냥 아지트 만드는 겸 가게를 내곤 하는데, 그냥 남들이 만든 아지트에 놀러 가면 되잖아요. 제가 주식 영화를 찍었잖아요. 주식은 하면 안 돼요. 지금 쓸 돈도 없는데 재테크를 어떻게 해요.(웃음)"

 -평소 고민 없이 살 것 같은데요.
"고민 많아요.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그래서 술을 좋아해요. 취하면 행복해져요. 하하하."

조연경·박정선 기자
사진=박세완 기자
영상=이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