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현숙은 이날 “시골에서 상경해 가수 지망생이던 10대 후반부터 아빠를 알고 지냈다”며 “어린 시절부터 버팀목이 돼주셨기에 늘 보호자처럼 생각하며 의지했다”고 말했다.
현숙은 “연예계 대선배로서도 멘토 같은 분이었다”며 “모두에게 희망이 돼주셨다. 대중에게도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는 부모님 같은 역할을 해주신 것 같다”고 했다. 현숙은 송해가 몸이 불편한 곳이 있을 때마다 병원을 알아보고 입·퇴원까지 챙겼다. 송해도 1996년과 2007년 잇달아 떠난 현숙 부모의 빈소를 지키고 현숙의 효열비 제막식에 참석하는 등 그를 평소 딸처럼 챙겼다.
현숙은 “최근까지도 아빠가 말씀도 또렷하시고, 청각도 좋으셨다”며 “하지만 1시간 이상 무대에 서 계신 걸 좀 힘들어하셨다. 제작진이나 후배들에게 민폐가 될까 봐 많이 신경 쓰셨다”고 말했다.
그는 “고령이셔서 늘 마음의 준비를 했다”면서도 송해 별세 소식에 상실감을 감추지 못했다.
송해는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1951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 대열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1955년 창공 악극단을 통해 데뷔했고,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