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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뜨강' 김소현-나인우, 고구려 왕실 본격 입성 '진짜 전쟁 시작'

'달이 뜨는 강' 북주와의 전쟁에서 이긴 김소현, 나인우가 고구려 왕실까지 잠식할 수 있을까. 30일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9일 방송된 KBS 2TV 월화극 '달이 뜨는 강' 13회는 전국 기준 8.7%(2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 시간대 및 월화극 1위 자리를 지켰다. 이날 방송에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나인우(온달) 장군의 첫 전쟁인 북주와의 전투가 그려졌다. 역사서를 찢고 나온 듯 생생하고 역동적인 전쟁신이 드라마에서 펼쳐지며 안방극장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먼저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덧입혀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만든 한지훈 작가의 필력이 돋보였다. 김소현(평강)과 혼인한 뒤, 바보에서 북주를 무찌른 장군이 된 나인우의 성장사를 탄탄하게 그려낸 것. 또한 나인우의 북주 전투 활약 이면에 투항하는 척 적을 안심시켰던 김소현의 지략이 있었다는 설정은 김소현과 나인우의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지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대본 속 고구려를 완벽하게 그려낸 배우들의 열연도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액션부터, 섬세한 감정 표현까지 주어진 장면을 120%로 소화해내는 이들의 연기력에 시청자들이 몰입도를 높였다. 특히 백마 탄 공주님이 되어 전장을 누비는 평강의 활약이 김소현이라는 배우가 지닌 카리스마와 맞물리며 더욱 빛을 발했다. 이와 함께 나인우는 "가진이 네가 내 고구려, 나의 나라니까"라는 대사에 온달의 절절한 사랑을 담아내며 큰 여운을 남겼다. 무엇보다 이를 생동감있게 담아낸 윤상호 감독의 연출력이 길이 남을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안방극장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스케일이 큰 전쟁신이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전쟁에서 이긴 고구려 병사들의 함성과 전쟁에서 가족 류의현(타라진)을 잃은 김희정(타라산)의 울음이 동시에 터져나오며 카타르시스와 전쟁의 참혹함을 동시에 전달해 강렬한 임팩트를 선사했다. 북주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소현과 나인우는 김법래(평원왕)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고 공주와 부마로서 입궁했다. 그러나 방송 말미 김법래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한재영(두중서)이 그의 앞에서 태자 박상훈(원)을 죽이려는 계략을 펼쳐 긴장감을 더했다. 외부의 적은 막았지만, 고구려 내부의 본격적인 전쟁은 지금부터다. 김소현과 나인우가 사방의 적이 가득한 고구려 왕궁에서 잘 버틸 수 있을지, 이 과정에서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주목된다. '달이 뜨는 강' 14회는 오늘(30일) 오후 9시 30분에 방송된다. 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tbc.co.kr 2021.03.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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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삼국지] 관구검, 고구려 침공으로 떴다가 반란으로 멸망하다

관구검은 사마씨의 권력독점에 대항해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고평릉의 난 이후 사마씨에 대항해 왕릉의 난, 이풍의 난 등 반란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이 중 관구검의 난은 위나라를 송두리째 흔들 정도로 큰 반란이었다. ‘삼국지연의’는 관구검을 충의의 인물로 묘사하고 있지만 과연 그런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관구검은 성이 관구이고 이름이 검이다. 그의 부친 관구흥은 조비의 즉위 초 무위태수가 되어 옹주자사 장기와 함께 서량의 반란을 진압한 공신이다. 관구검은 공신의 아들답게 젊은 시절부터 매우 잘 나갔다. 부친의 작위를 세습했고 태자 조예의 막료가 됐다. 조예의 신임을 받은 그는 조예가 제위에 오르자마자 고속으로 출세했다. 관구검은 유주자사가 되어 요동을 공격했으나 공손연의 방어에 막혀 실패했다. 사마의가 요동정벌에 나섰을 때 조예는 그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위신을 만회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 후 관구검은 고구려를 정벌해 위명을 크게 떨칠 수 있었다. 관구검은 이 공으로 정남(征南)장군이 되어 예주의 여러 군대를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사마씨가 집권한 이후에도 관구검의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관구검은 동흥의 싸움에서 무너진 위군을 구원한 공로로 패전 책임을 진 제갈탄과 자리를 바꾸어 정동장군이 됐다. 정동장군은 동오와 경계를 맞댄 양주를 책임졌으므로 비중이 높았다. 제갈탄은 자신의 임지를 빼앗기게 된 것을 두고두고 한스러워했다. 제갈각이 대대적인 북벌에 나섰을 때 관구검은 다시 합비 신성에서 동오군을 격퇴하는 공을 세웠다.잘 나가던 관구검에게 어둠이 드리워진 것은 이풍의 반란이 실패하고 조방이 폐위되면서부터였다. 관구검은 이풍의 난의 주모자인 이풍·하후현과는 절친한 관계였다. 관구검은 잔혹한 사마사가 자신을 이풍의 일파로 의심할까 두려웠다. 가뜩이나 외방에서 강대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그를 사마사가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참이었다. 관구검은 조상의 일파로 비슷한 처지였던 양주자사 문흠과 손잡고 임지인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관구검과 문흠은 대병을 이끌고 중원의 한복판인 예주 여남군 항성까지 진격했다. 사마사와 일전을 겨뤄 일거에 패권의 향방을 결정지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사마사는 이에 말려들지 않고 지구전을 펼쳤다. 대치상태가 길어지자 대부분 북방에 가족을 두고 있던 관구검과 문흠의 병사들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악가의 싸움에서 문흠이 패하자 관구검의 군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와해됐다. 관구검은 항성을 버리고 몇 사람의 측근만을 데리고 신현으로 달아났다가 강가에 이르러 일개 촌부에게 살해됐다. 결국 관구검의 반란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마씨의 권력만 더욱 공고하게 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로써 위나라의 멸망아 재촉됐다. 이를 보면 관구검의 반란이 위나라 조정에 대한 충의보다는 사적인 이해관계로 인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마씨가 집권하게 된 계기는 조예의 방탕과 조방의 무능으로 위나라가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위나라가 중심을 잃자 국내의 여러 세력들은 치열한 권력투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갔고 사마씨나 왕릉·이풍·관구검도 이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결국 사마씨가 가장 유능했기에 최후의 승자가 됐고, 정권을 계승하게 된 것이다.[영웅의 이면] 관구검·제갈탄·곽회 세 사령관의 행보 삼정은 위나라의 국경 방위를 책임지는 정동장군·정남장군·정서장군을 지칭하는 말이다. 삼정은 각각 동오의 양주방면, 동오의 형주방면, 서촉의 옹량주방면의 방위를 책임졌다. 이들은 국경을 방위하는 최전선의 병력들을 모두 지휘하고 있었으므로 매우 군사력이 강했다. 삼정이 힘을 합쳤더라면 중앙의 사마씨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 힘을 합치지 못했다. 관구검(?~A.D 255년)의 난 당시 삼정은 정동장군 관구검, 정남장군 제갈탄, 정서장군 곽회였다. 관구검은 문흠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면서 제갈탄과 곽회에게 함께 호응할 것을 촉구했다. 이 중 곽회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난이 진압될 때까지도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제는 제갈탄이었다. 제갈탄이 관구검에 호응했더라면 위나라의 정세는 어떻게 돌아갈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제갈탄은 관구검이 보낸 사자의 목을 베고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저 자신도 불과 2년 후에 사마씨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킬 것이었으면서도 말이다. 결국 관구검과 제갈탄은 각개격파되고 말았다. 제갈탄이 관구검에게 협력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개인감정 때문이었다. 제갈탄과 관구검은 비슷한 연배였지만 서로 정파가 달랐다. 관구검은 조예의 측근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제갈탄은 조예의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가 젊은 시절 하후현·이풍·등양 등과 함께 집단을 이루어 명성을 날렸는데 조예가 이들의 행태를 몹시 못마땅해 했기 때문이었다. 제갈탄에게는 사마사에게 반대해 관구검의 편에 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사마사의 의심과 경계를 받았던 것은 관구검만이 아니었다. 제갈탄 역시 외방에서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중앙에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무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사람이었다. 제갈탄은 사마씨에 의해 주멸된 조상의 일파와도 매우 가까운 관계였고, 이풍의 음모에 연좌되어 주살된 하후현과도 절친했다. 제갈탄이 좀더 현명했었더라면 감정을 떨쳐버리고 관구검 지원에 나섰어야 한다. 그는 어리석게도 이해관계를 버리고 개인감정에 매달림으로써 제 묘혈을 파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사람들이 제갈탄을 집안 형뻘인 제갈량, 제갈근에 빗대어 말하길 ‘서촉은 용을, 동오는 호랑이를 가졌으나 위나라는 개를 가졌다’ 한 까닭이다. 제갈탄의 어리석은 행보는 옹골찬 대응으로 천수를 다한 정서장군 곽회와 무척이나 대조된다. 곽회의 부인은 왕릉의 누이동생이었다. 왕릉의 반란 모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사마의가 곽회에게 그의 부인을 붙잡아 보내라고 명했다. 곽회는 심사숙고한 끝에 부인을 보내지 않기로 결심하고 사마의에게는 편지를 보내 계속 강요하면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했다. “어미가 없었으면 다섯 아들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섯 아들이 없으면 곽회도 역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오히려 깜짝 놀란 것은 사마의였다. 곽회가 반란을 일으켜 촉과 연합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었다. 아무리 모진 사마의였지만 그깟 부녀자 하나 때문에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그는 특별히 조서를 써 곽회와 그의 부인을 사면했다. 곽회는 4년 후 천수를 다하고 죽었는데, 그때까지 사마씨 부자는 그에게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거짓말 벗겨보기] 관구검이 한나라를 지키려 했다고?관구검과 제갈탄에 대한 ‘삼국지연의’의 기술은 그들이 마치 나라를 찬탈하려는 역적의 무리에 대항해 의롭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것을 무척 아쉬워하는 논조이다. 이들이 지키려했던 왕조가 정통인 한나라의 역적인 조씨가 세운 위나라였는데도 말이다. 이는 촉한정통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실 ‘연의’가 옹호하려는 것은 유교적 정통론일 뿐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어떠한 왕조라 할지라도 그 왕조를 지키려는 자는 충신이고, 그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자는 역적이 된다. ‘삼국지연의’는 무조건 기존의 왕조에 충성해야 한다고 백성들을 세뇌시키기 위해 쓴 정치 교화서이다. 풀이 *고평릉의 난=사마의가 249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조상과 그 일당을 처형한 사건. 이로써 위나라의 권력은 조씨에게서 사마씨로 넘어간다. 2013.12.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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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소설가 “불황엔 역사물이 최고”

만화·소설 분야에서 중견 작가들의 역사물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출판시장이 불황일수록 역사물의 가치는 빛난다. 여러 권의 큰 프로젝트로 안정적이고 영화·드라마 등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 최문희의 '허난설헌', 김별아의 '채홍', 김진명의 '고구려', 김훈의 '흑산', 김정명의 '뿌리 깊은 나무' 등이 역사물로서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대발해'가 만화로 요즘 소설가 김홍신은 남모를 재미를 느끼고 있다. 지난 2007년 펴낸 대하소설 '대발해'의 만화 원고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대발해'는 만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박흥용이 작화를 맡아 단행본 2권 분량까지 완성됐고,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소설로는 10권이었지만 만화로는 20권까지 제작될 예정이다. 그는 한 장의 큰 그림에 수백 명의 병사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 연이어지자 입이 벌어졌다. 김홍신은 "무심코 첫 장을 보고 '억' 소리를 냈다. 다음장 넘어가선 '악' 소리가 났다"면서 "역사 소설을 만화로 보니 기분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이렇게 큰 스케일의 대하소설을 만화로 작화하기는 박흥용으로서도 처음이다. 박흥용은 "소설의 핵심은 발해가 우리나라의 역사라는 것이다. 김홍신 작가의 주장을 담으면서 만화적 재미를 살리려 했다"면서 "힘들기는 하지만 고구려·발해에 대한 고증을 한 조각씩 찾아모으는 재미가 있다. 지금 시대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역사물에 담아내겠다"고 밝혔다. 만화가 하승남의 대작 '삼국지'도 이 달 한국에서 단행본(형설Life 간)으로 선보였다. 일본의 메이저 출판사 중 하나인 다케쇼보가 2016년까지 단행본 30권으로 출간하는 프로젝트로 그림의 높은 완성도가 특징이다. 첫 권에 드러난 캐릭터로는 유비가 기존의 '삼국지'에 비해 무예가 출중하고, 관우가 지성미보다는 무장으로서 더 강조되고 있다. 만화가 이현세도 차기작으로 '삼국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삼국지를 읽을 때면 항상 궁금했던 게 있다. 등장하는 하고 많은 영웅 중 왜 유비가 주인공인지, 또 왜 가장 먼저 멸망한 촉나라가 주인공인지 궁금했다"며 "새로운 스타일로 '이현세의 삼국지'를 그려나가겠다"고 전했다. ▶어려운 시기엔 역사 돌아봐 '허난설헌' '채홍' '흑산' 등은 더욱 역사소설의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독자들이 역사의 단면을 새롭게 엿보면서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시대 속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 셈이다. 배울 것이 있다는 부분이 역사물이란 장르가 갖고 있는 장점이기도 하다. '뿌리 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은 과거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드라마화되면서 다시 부활한 작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각광을 받은 팩션은 자유로운 해석 때문에 드라마·영화에서도 선호된다. 이재익의 소설 '아버지의 길'은 영화 '마이웨이'와 같은 소재로 다르게 쓴 근대 역사물이다. '아버지의 길'을 출간한 허윤형 대표는 "미국은 역사가 짧아 SF가 발달했다는 분석이 있다. 한국은 역사물이 앞으로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2.01.15 20:02
생활/문화

[승마] 역사속의 명마·기마대 15. 고구려의 혼 ‘개마대’

고구려 광개토태왕이 정복사업을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당대 세계 최강의 기마대인 개마대에서 비롯됐다 한민족의 역사 속에 나타난 개마대는 개마무사로 구성된 최고의 기마대였다. 개마무사는 철로 온몸을 감싼 무사라는 뜻이다. 이들의 갑옷은 가죽에 철을 덧댄 판갑을 사용 중량을 최소화해 기동성을 유지했다. 사람은 물론 말도 함께 철갑을 입고 전투에 임했는데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전차 군단이나 마찬가지다. 개마대는 기동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최신무기였는데 이들은 전쟁이 시작되면 최 일선에서 전투에 임했던 주력부대다. 개마대의 첫 번째 임무는 돌파를 통해 적의 진용을 무너뜨리고 적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또 돌파후 적의 기마대 말을 죽이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초원에서 이들이 돌파작전을 감행하면 당시로서는 효과적으로 이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개마대는 정복왕인 광개토대왕의 주력 부대였다. 당시 광개토대왕 휘하의 개마무사는 무려 5만에 이르렀다. 경기병을 포함하고 고구려에 복속된 말갈 등 주변 부족의 무력을 합하면 20만이 넘는 기병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개마대가 동시대 세계 최고의 무력 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최소한 세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뛰어난 강철 제련술이다. 1500년 전 고구려인이 만든 철기는 현대의 강철과 강도가 비슷하다. 또 경량화된 판갑이 핵심이다. 강도는 높지만 중량이 최소화돼 기동력과 민첩성을 잃지 않았다. 또 뛰어난 말이다. 완전무장한 개마무사와 장비·마구에 철갑옷까지 입고도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강하고 지구력 좋은 말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무사들의 능력·지휘관의 능력이 더해지면서 최강의 무력 집단이 될 수 있었다. 특히 무사들은 몽고의 유목민들처럼 말을 잘 다룰 수 있다. 또 무를 숭상했던 만큼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혀 병사들의 개인 무력이 앞섰다. 게다가 유럽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파르티안(배사법, 상체를 돌려 등 뒤쪽으로 쏘는 활쏘기)도 가능했다. 개마대는 한마디로 당대 최고의 신형무기와 최고 무사가 결합한 형태다. 광개토태왕은 개마대를 십분 활용해 아시아를 뒤흔든 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한편 개마대가 사용한 말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 그러나 개마무사와 무장을 감안하면 최소한 80~90㎏의 중량을 가볍게 이겨낼 수 있어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몽골말 이상의 덩치와 힘, 뛰어난 지구력을 보유한 말 품종일 가능성이 크다. 채준 기자 [doorian@joongang.co.kr] 2011.06.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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