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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기자의 리얼 리뷰] ‘러브 픽션’, 하정우-공효진의 논픽션같은 멜로
이 영화는 영화화되기까지 무려 4년이 걸린 역작입니다. 영화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게 2007년이고 하정우에게 시나리오가 전달된 게 2008년이라네요. 순 제작비 18억원 정도의 중·소규모 영화인데 마치 100억원이 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처럼 오랜 시간을 준비하고 기다려야했습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투자가 안됐던 거죠. 로맨틱 코미디임에도 이런 괴상한 설정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노련한 투자자들이 로맨틱 코미디 한 두 편 해본 것도 아닐테고 몸을 사렸던 겁니다.그러나 '도가니'를 뚝심있게 성공시킨 제작사인 삼거리 픽쳐스와 2006년 '삼거리극장'이라는 문제작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던 전계수 감독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에 없었던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보자는 처음의 뜻을 관철시켜 관객 앞에 내놓았습니다.줄거리는 대체로 평이합니다. 구주월(하정우)이라는 소심한 성격의 무명 소설가가 있습니다. 떠나간 연인과 창작에 목말라하던 중 꿈에 그리던 여자 희진(공효진)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희진은 모든 게 완벽해보입니다. 예쁘고 늘씬하고 능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설레고 설레던 그들의 첫날밤, 구주월은 그녀의 겨드랑이에 수북히 난 털을 발견하고 정신이 번쩍 듭니다. 과연 나는 이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구주월은 억지로 '털이 좋다'고 마인드 콘트롤을 해가며 그녀와 깊은 사랑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여느 커플이 그렇듯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이 점차 식어가면서 갈등이 생깁니다.언뜻보면 평범하죠. 커플간에 만나고 헤어지는 이야기는 흔하니까요. 그런데 공효진이 '겨털녀'(겨드랑이에 털난 여자)라는 치명적인 설정이 이 영화를 아주 독특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겨털녀'? 도대체 상상은 해보셨나요? 좀 웃기기도 하고, 거북하기도 하네요. 만약 내 여자친구가 '거기에 그게 있다면 어떨까' 하는 쓸데없는 공상도 해보게 합니다.당연히 하정우와 공효진이 '합방'하는 베드신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박' 폭소의 원천입니다. '겨털'을 발견한 하정우가 "이거 뭐야"하는 대사에선 정말 '빵' 터집니다. 그 이후로 쏟아지는 황당한 대사의 향연과 두 배우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며 기자도 1분간 배꼽을 잡았습니다.하지만 총 121분의 러닝타임은 상당히 부담스럽네요. 그 베드신 말고는 사실 웃을 만한 포인트가 그리 많지 않은 느낌입니다. 구주월의 고풍스런 구애편지, 그녀의 약점을 알고난 후의 치졸한 대응, 극중에서 쓰는 액자 소설 '액모부인'의 과장된 연기 등을 코믹 포인트로 추가할 수 있을 정도이고 나머지는 상당부분 조용히 흘러갑니다. 소위 '대사빨'도 장면마다 편차가 심해서 영화에 완전히 빠져들기엔 좀 무리같아 보이네요.그래도 하정우·공효진의 능청스런 연기엔 박수를 보냅니다. 하정우는 '범죄와의 전쟁'이후 제대로 물이 오른 느낌이고요. 공효진은 '최고의 사랑' '공블리'에서 또 한번 변형된 캐릭터로 안정감을 더합니다. 하정우의 형으로 우정출연한 지진희가 백수처럼 매일 집에서 라면먹는 장면도 은근 '존재감' 있었습니다. 프린트·광고비까지 더해 총제작비가 38억원쯤 되어서 손익분기점은 120~130만명으로 예상되는데요. 조금 지루한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정우·공효진의 찰떡같은 앙상블을 보는 재미만으로도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사랑과 연애감정이 세월 속에 메말라버린 관객분들이라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29일 개봉. 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IS 시네마 지수▲작품성 ★★▲흥행성 ★★☆(별 다섯개 만점, ☆는 0.5점)
2012.02.17 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