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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비리·폭행도 사면 추진 '발각'…홀로 궁지 몰린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KFA)의 '기습 사면' 대상자였던 100명의 징계 사유와 수위가 모두 공개됐다. 알려진 대로 48명은 승부조작이었고, 52명 중에는 금전 비리·폭력으로 인한 영구 제명자가 상당수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축구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사면 대상자 목록'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지난달 28일 KFA가 사면하기로 발표했던 100명 전원의 징계 내용이 담겨져 있다. 당초 KFA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및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사회 참석자들도 종이 자료가 아닌 태블릿 PC를 통해서만 간단하게 확인하는데 그치는 등 KFA는 명단 외부 유출을 극도로 꺼렸다. 사면자 100명의 명단 안에 KFA가 이번 사면을 추진한 ‘진짜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5일 공개된 목록에 사면 대상자에 관한 정보가 100% 드러나있지는 않다. 징계 사유와 징계 내용, 해당 징계를 받은 연도와 징계받은 사람의 성만 공개됐다. 승부조작 영구제명 48명 외에도 무려 17명이 영구제명자였다. 이들은 금전 비리(8명) 선수·심판에 대한 폭력(5명) 실기테스트 부정행위(4명) 등으로 영구제명 징계를 받았다. 이들 외에 또다른 14명은 금전 비리 행위 등으로 무기한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KFA가 내·외부에서 발생했던 초대형 비리 사건이나 전·현직 임직원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뇌물 심판 비리 사건 등에 연루됐던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려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또 자격정지 5~7년을 받을 정도의 폭행 사범들이나 부정선수, 무자격 지도자 등으로 징계를 받았던 이들에게 KFA가 먼저 사면을 추진하고, 불과 지난해 징계를 받았던 9명이 사면 대상에 오르는 등 사면 대상을 두고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 축구를 뒤흔든 이번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하고 책임을 지는 건 오롯이 정몽규 회장의 몫이다. 지난달 31일 임시 이사회에서 사면 결정이 전면 철회된데 이어 지난 4일에는 KFA 부회장단과 이사진 전원이 일괄 사퇴했다. 지도부 사퇴로 이번 사면 논란이 끝날 거라 예상했다면 KFA의 큰 오산이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남은 가운데, 사면 대상자의 징계 사유가 모두 공개되면서 논란의 불씨는 오히려 더 커졌다. 이번 '기습 사면'을 누가 주도했는지는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사면을 주도했던 인물이 이번 지도부 사퇴 때 슬그머니 함께 물러나며 '꼬리 자르기'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대중 앞에 나서는 게 모든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달 31일 사면 철회 결정 후 사과문만 낭독하고 추가 커뮤니케이션 없이 퇴장했다. KFA 정관에 따르면 부회장과 이사는 정몽규 회장이 직접 추천해 대의원총회에서 선임해야 한다. 사면 논란이 수습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뜩이나 KFA 조직은 최근 인사이동과 조직개편 등으로 어수선하다. 행정마비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몽규 회장의 빠른 결단과 수습이 필요한 시점이다.김명석 기자 2023.04.06 06:01
국가대표

사면 대상자 100인 ‘징계사유’ 공개...제명, 무기한 자격정지 31명 있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기습적으로 사면을 추진했던 축구인 100인(팀 3개 포함)에 대한 징계 사유 등이 공개됐다. 그동안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이들에 가려졌던 52명이 언제, 무슨 이유로 어떤 징계를 받았는지에 대해 윤곽이 드러났다.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KFA로부터 승부조작 관련자 48명 외에 금전 비리 행위 등 나머지 52인의 축구인들이 받았던 징계 사유, 징계 내용 등이 담긴 ‘사면 대상자 목록’을 공개했다.하 의원실에 따르면 ‘제명’ 징계를 받고도 사면 대상자에 오른 이들은 모두 65명이다. 이들 가운데 48명은 2011년 승부조작 사건, 8명은 2009·2010·2012년 금전 비리 행위 등, 5명은 2009·2013년 선수·심판에 대한 폭력, 4명은 2015년 실기테스트 부정행위로 제명 징계를 받고도 이번 사면 대상자에 올랐다.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던 14명도 사면 대상에 올랐다. 이들은 2007년과 2009, 2010, 2011, 2017년 금전 비리 행위 등으로 징계를 받았다. 이밖에 선수·심판에 대한 폭력으로 2019년 자격정지 7년, 심판에 대한 폭력·폭언으로 2019년 자격정지 5년을 받았던 이들도 이름을 올렸다.징계 사유별로는 ▲승부조작 48명 ▲금전 비리 행위 등 24명 ▲선수·심판에 대한 폭력 6명 ▲실기테스트 부정 행위 4명 ▲심판에 대한 폭력·폭언 3명 ▲기타규정 및 지시사항 위반 3명 ▲선수에 대한 폭력 2명 ▲부정선수 출전(AD카드 도용) 2명이다.여기에 ▲폭언·시설 및 기물파괴 ▲부정선수의 대회참가(팀) ▲무자격 지도자의 지도행위, 대회 또는 경기 출전 포기(팀) ▲고의적 경기지연 및 폭력 ▲ 대회 또는 경기출전 포기 ▲경기장 난입, 과도한 판정 항의 ▲등록증 위변조, 무단대여 등(팀) ▲폭언·모욕·위협행위도 포함됐다.하태경 의원실은 특히 “2017년 전·현직 임직원 12명이 부정한 법인카드 사용으로 형사 고발됐는데, 이들 중 4명이 사면 대상자에 오른 것으로 의심된다”며 “2010년에 제명된 사면 대상자 10명도 당시 큰 논란이 됐던 뇌물 심판 비리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또 100인 가운데 선수에 대한 폭력 등으로 자격정지 1년을 받은 6명을 포함해 8명과 한 팀은 불과 지난해 징계를 받고도 곧바로 사면 대상자에 올랐다.하 의원은 "이번 ‘기습 사면 사태’를 통해 축협이 얼마나 폐쇄적인 환경에서 방만한 운영을 해왔는지 명백하게 드러났다"며 "앞으로 KFA는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앞서 KFA는 지난달 28일 이사회를 열고 카타르 월드컵 16강 자축 및 축구계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던 전·현직 선수와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 축구인 100인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고 기습 발표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결국 사흘 만에 전면 철회했고, 4일엔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부회장단·이사진이 일괄 사퇴했다.김명석 기자 2023.04.05 10:29
프로축구

[프로축구 40년 베스트11] ⑨최강희-'찰거머리 수비'로 늦깎이 성공시대 드라마

최강희(64) 전 전북 현대 감독은 요즘 축구팬 대부분에게 ‘봉동 이장’ ‘강희대제’ 같은 수식어를 달고 다닌 K리그 명지도자로 각인돼 있다. 그 이전에 그는 대기만성의 아이콘이자 프로축구를 대표하는 수비수였다. 선수 시절 최강희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앞세워 성실하고 단단한 플레이를 하는 오른쪽 측면 수비수였다. 그의 수비는 강인했고, 찰거머리처럼 상대 공격수에게 달라붙어 지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우악스러운 수비가 아니었다. 플레이는 영리했다. 최강희는 동시대 스타 플레이어들과 비교하면 커리어가 좀 독특했다. 선수 시절 그의 축구 인생 이야기만으로도 어떤 명승부 못지않은 재미를 줄 정도다. 최강희는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축구하는 걸 좋아하고 만화를 잘 그리는 재주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형의 학업 성적이 워낙 좋아 집에서는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 셋째 아들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최강희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이때 최강희의 본격적인 축구 인생이 시작됐다. 용두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선수를 시작했지만, 이어 진학한 대광중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사실상 중학교 시절 3년은 공백이었다. 가족은 축구 선수의 길을 크게 반대했지만, 최강희는 결국 자신의 고집대로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로 진학했다보통 성공한 축구 선수들은 고등학교 시절 성장의 계기를 거쳐 큰 무대로 도약하거나 하는 스토리가 있지만, 최강희는 반대였다. 그는 고교 시절에도 굴곡을 겪었다.최강희는 한양공고 축구부에서 주전 자리를 잡기가 힘들게 되자 우신고 창단 멤버로 옮겼다. 하지만 주전이 되고도 그는 성실한 축구 선수가 아니라 불량 학생 쪽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과거 인터뷰에서 최강희는 “고등학교 때 학교보다 당구장에서 더 많이 머물렀다.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싸움도 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여기에 불운까지 겹쳐 학교가 부정선수 문제에 휘말리면서 최강희는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그리고 1979년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하게 된다. 최강희는 입단 1년 만에 군 복무를 선택했다. 제대 후 한일은행에 돌아온 그는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인생 지도자’ 김호 감독을 만났다. 김호 감독은 최강희의 포지션을 바꿔 수비수로 만들었다. 이전까지 미드필더 혹은 공격수로도 뛰었던 최강희의 스타일을 정확히 파악해서 측면 수비수를 맡긴 것이다. 그리고 이후 최강희는 1983년 팀을 실업 최강 자리에 올려놓고 드디어 프로팀인 현대로 이적한다. 최강희는 실업팀과 프로팀이 분위기부터 완전히 달랐다고 회상했다. 당시 실업팀 선수들은 짧은 선수 생활을 하고 해당 회사에 일반 사원으로 입사해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팀 분위기는 축구 선수로서 자신을 단련하기보다 선수 생활을 즐기자며 잦은 회식과 술자리가 이어지는 쪽이었다. 그러나 현대 입단 후 팀 성적과 개인 기량 향상을 우선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강희도 달라졌다. 그의 축구인생 또 한번의 결정적인 ‘각성’ 계기는 결혼, 그리고 아이가 생기면서였다. 최강희는 1986년 결혼했다. 이듬해 딸이 태어난 후 담배를 완전히 끊었다. 그는 2007년 대한축구협회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처음 프로에 갔을 때는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도 하고, 담배도 피웠다. 하지만 결혼하고, 또 딸이 태어난 후 완전히 바뀌었다. 매일 운동했다. 훈련이 즐겁고 경기가 즐거웠다. 휴가를 받아도 이틀 이상 쉬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스물여덟 살 이전의 나를 알던 사람과 그 이후에 나를 알게 된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후 최강희는 프로축구의 초기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꼼꼼하게 남겼다. 1986년 현대가 프로축구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최강희는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1985년, 86년, 88년까지 세 차례 베스트11 수비수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1985년과 88년에는 모범상을 수상했다. 그는 1987년 28세의 나이에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서른살 즈음이면 대부분 은퇴를 고민했던 시절에 늦깎이 성공시대를 열었다. 최강희는 다른 선수들이 은퇴할 나이에 기량을 꽃피워 대표 선수로 자리를 잡아 올림픽, 월드컵에 출전했다. 자기관리를 잘하면 몸이 달라지고, 오래 선수로 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걸 직접 체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자신감에 가득 차있을 때 나이 많은 선수는 전력 외 취급하는 팀 분위기에 밀려 1992년 은퇴했다. 최강희의 이러한 독특한 선수 이력은 그가 감독이 된 후 제자가 뒤늦게 다시 꽃을 피우는데 기여한 원인일지 모른다. 그는 전북 현대 감독 시절 이동국, 최태욱, 조재진, 김상식 등 한때 스타 플레이어로 이름을 날렸지만 잦은 부상 등으로 기량이 떨어진 선수들을 영입해 전성기 기량을 다시 보여주게 만드는 ‘재활 공장장’이었다. 그 비결에 대해 최강희는 “선수를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했다. 그 자신이 선수 시절 누구보다 굴곡이 많은 커리어를 걸었고,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지만 늦게 꽃을 피웠다. 그가 “팀에서는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주전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가 있던 선수들을 부활시키는 능력을 보여줬다. 명감독 최강희의 비밀은 선수 최강희가 걸어왔던 입지전적인 과정을 보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이은경 기자 2023.04.03 07:24
해외축구

FIFA 재심에도 "에콰도르, 부정선수 기용 안했다"...칠레는 또 불복 예정

국제축구연맹(FIFA)이 에콰도르의 올해 카타르 월드컵 출전에 문제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의를 제기했던 칠레축구협회는 승복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 AP통신은 17일(한국시간) "FIFA가 에콰도르의 올해 월드컵 출전 자격에 대한 칠레의 이의 제기를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칠레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에콰도르가 지역 예선 경기에 부정 선수를 내보냈다는 의혹 때문이다. 칠레는 "에콰도르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바이런 카스티요가 실제로는 콜롬비아에서 태어났다. 에콰도르는 지역 예선에 부정 선수를 출전시킨 것"이라며 에콰도르가 본선에 나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는 남미 지역 예선에서 4위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반면 이의를 제기한 칠레는 7위로 탈락했다. 몰수 경기 여부에 따라 칠레의 순위는 크게 바뀔 수 있다. 에콰도르는 총 18경기의 지역 예선 가운데 8경기에 카스티요를 내보냈다. 만일 카스티요가 부정 선수로 인정된다면 이 8경기는 몰수 경기로 처리된다. 이 경우 칠레가 4위가 되면서 월드컵 본선에 나갈 수 있다. 그러나 FIFA는 "제출된 문서를 근거로 판단한 결과 해당 선수의 국적은 에콰도르인 것으로 판단한다"고 칠레의 이의 제기를 기각했다. FIFA는 올해 6월에도 에콰도르의 부적격 선수에 대한 조사를 한 차례 마쳤고, 칠레가 이에 불복해 이날 재심이 이뤄졌다. 그러나 칠레는 FIFA 이번 결정에도 불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AP통신은 "칠레 협회가 이번 결정에 대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호르헤 융에 칠레축구협회 사무총장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축구의 암흑기가 왔다"며 "명백한 증거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CAS에 제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콰도르는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A조에 속해 대회 첫날인 11월 20일 개최국 카타르와 개막전을 치른다. 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2.09.17 10:30
축구

[허정무 사담기] "결혼한 지 5일 만에 아인트호벤 초청장 들고 유럽행"

"나는 '축구 천재'가 아닙니다. 발톱이 곪아서 빠질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했던 선수일 뿐이죠."이영표·박지성보다 먼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PSV 아인트호벤 유니폼을 입었던 선수.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의 역사를 일군 감독. 축구인 허정무(63)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는 법. 유니폼은 한참 전에 벗었고 지휘봉마저 내려놓은 지금은 '그때 그 시절의 허정무'보단 한 명의 축구인이자 행정가인 허정무로 더 익숙하다.기억은 희미해지더라도 사진은 남는다. 케케묵은 사진첩 속에서 꺼낸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이 오랜만에 감독 허정무, 행정가 허정무가 아닌 '선수' 허정무를 다시 불러냈다. JTBC3 FOX Sports의 2018년 신규 프로그램 (매주 월요일 오후 11시)가 옛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함께 1980년대 한국 축구의 중심이었던 '허정무 선수'와 만났다. '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라는 뜻의 는 사진관 컨셉트의 스튜디오에 스포츠 스타가 출연해 소장하고 있던 '인생사진'들을 보며 자신의 삶을 더듬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시간이다. 허 부총재는 12일 오후 11시에 방송될 에서 선수 시절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놓는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진도 허가 7남매 중 넷째 "축구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뭐하는 운동인지도 몰랐어요. 그저 공 차는 놀이인 줄만 알았지." 관사 앞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온 가족이 찍은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며 허 부총재는 그렇게 읊조렸다. "처음에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축구를 시작했다. 중학교까지 공부하다 1년을 쉬었는데 그때 진도군에서 하는 체육대회에 중학교 축구선수로 나갔다. 지금 말하는 소위 '부정선수'였다(웃음)"고 말문을 연 허 부총재는 "체육대회에서 축구하던 날 발견한 게 바로 허윤정 삼촌"이라고 덧붙였다. 1960년대 홍콩 세미프로에 진출했던 허윤정씨가 한눈에 허 부총재의 재능을 알아본 것. "너 축구 한번 해 보지 않겠냐"라는 허씨의 제안에 우연찮게 시작한 축구가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바늘구멍'이 됐다. 어지간한 수재가 아니면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못 꾸던 시절, "축구를 잘하면 장학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말은 어린 허 부총재의 마음을 흔들었다. 장학생으로 뛸 수 있다는 말에 한달음에 서울까지 갔지만 일은 호락호락하게 풀리지 않았다. 허 부총재는 입학이 어렵다는 말에 그대로 돌아가자는 아버지를 "6개월만 시간을 달라"고 설득해 서울에 남았다. 아직도 기억에 선연한 그날이 바로 1969년 1월 17일이다. 그리고 새벽잠까지 포기하며 발톱이 곪아 빠질 정도로 노력한 끝에 3개월 만에 주전으로 올라섰고, 축구를 시작한 지 6년 만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고대 차범근-연대 허정무, 우리 사이는? 허 부총재 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이름이 바로 차범근(65) 전 감독이다. '고려대의 차범근, 연세대의 허정무'에서 시작한 둘의 관계는 해외 진출 뒤 각각 독일-네덜란드에서 뛰면서 '유럽파 라이벌'로 조명받았다. 하지만 허 부총재는 "선수로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라며 '라이벌' 얘기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축구선수답게 승부욕까지 없었던 건 아니다. 허 부총재는 "대표 생활을 같이하면서 세밀한 플레이 등에서 지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차범근 선배가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것이 (네덜란드행에) 영향을 줬다"고 털어놨다. "유럽은 한국 선수를 전혀 모를 때고, 막연하게 초청장을 들고 테스트를 받으면서 돌아다니던 시대다. 구단들이 교민들을 상대로 '누가 축구를 잘하냐'고 물어서 제의가 오고 그랬다"고 얘기한 허 부총재는 "결혼한 지 5일 만에 아인트호벤, 빌레펠트 두 군데 초청장을 들고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막상 독일에 도착한 허 부총재는 빌레펠트에 가지 못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던 교민들이 그의 손을 끌고 독일 보훔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테스트에 통과한 허 부총재는 보훔에서 계약 제의를 받았다. 허 부총재는 "그래도 이왕 온 거니 아인트호벤도 가 보겠다고 해서 네덜란드로 갔고, 거기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해 계약했다"며 아인트호벤 진출 에피소드도 귀띔했다. 김희선 기자 2018.02.12 06:00
축구

대한축구협회, 생활축구팀 등록 접수…2월에만 1만6000명 등록

대한축구협회가 생활축구 동호인 팀과 선수의 정식 등록 접수를 시작했다. 지난해 생활축구연합회와 외형적인 통합을 마무리한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생활축구팀과 선수의 등록을 받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통합 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1일부터 정식으로 등록을 받기 시작한 가운데, 지난 22일까지 등록한 생활축구 팀은 800여팀이고, 선수 숫자는 약 1만6000명이다. 현재는 부산, 전북, 광주 지역팀의 등록이 많아, 이 세 지역의 숫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에 앞서 협회는 지난 1월부터 기존 엘리트축구(1종)와 생활축구(2종)를 분리한 등록규정을 공표하고, 시도별 생활축구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통합 등록규정과 온라인 등록시스템을 소개하는 설명회를 가졌다. 규정에 따라 등록은 시·군·구 축구협회를 통해 연중 어느 때나 신청이 가능하다. 정식 등록을 마친 팀과 선수에 한해 대한축구협회와 각 지역에서 주최하는 생활축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생활축구 개막 대회로 열리는 오는 4월의 대한축구협회장기 전국생활축구대회를 비롯해 각 시도 대회부터 적용된다. 협회 생활축구본부 김효중 사무국장은 “3월 이후 올해 대회 일정이 확정 발표되면 등록 인원이 크게 늘어날 것 같다”며 “그동안 생활축구의 문제점이었던 중복 등록과 부정 선수 출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호인이 새로운 등록 제도를 반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등록제도 개편으로 본인 인증과 1인 1클럽 등록 시스템이 의무적으로 적용되면서 과거처럼 한 선수가 여러 생활축구팀에 중복해서 뛰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 또한 대한축구협회에서 관리해온 선수 데이터와 연동되기 때문에 엘리트팀 출신 선수가 경력을 속이고 생활축구 대회에 출전하면서 발생했던 부정선수 시비도 사라지게 됐다. 팀 등록비는 시도 또는 시군구별로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으며, 선수 등록비는 1인당 1만원으로 엘리트 선수와 같다. 협회 이정섭 마케팅 팀장은 “후원사 제품 할인, A매치와 FA컵 입장료 할인 등 등록비 이상의 혜택을 생활축구 동호인에게 드리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는 등록과정을 간소화하고 마케팅 혜택을 효과적으로 볼 수 있도록 스마트폰 등록 어플리케이션도 2018년까지 개발할 계획이다. 최용재 기자 2017.02.23 10:07
축구

[가자 리우로]한국축구 올림픽 도전史 5대 명승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이 8일(한국시간) 결전지 카타르 도하에 입성했다.목표는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다. C조에 속한 한국은 14일 우즈베키스탄, 16일 예멘, 20일 이라크와 차례로 맞붙는다. 조 2위 안에 들어야 8강에 오를 수 있고 최종성적 3위까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티켓이 주어진다.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신태용팀의 항해가 본격 시작된 지금 아픔과 환희로 점철된 과거 한국축구의 올림픽 도전사를 조망해 본다.한국축구가 처음 올림픽 무대를 밟은 건 1948년 런던올림픽이었다. 한국은 1차전에서 멕시코를 5-3으로 눌렀지만 2차전에서 스웨덴에 0-12로 대패해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두 번째로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조별리그에서 3연패했다.이후 한국축구는 암흑기였다.1968년 멕시코 대회부터 1984년 LA올림픽까지 5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무려 24년 만에 본선에 나갈 수 있었다.한국축구의 올림픽 예선 5대 명승부를 소개한다. 대한축구협회가 펴낸 를 참조했다. ◇1968년 도쿄-통한의 무승부'아! 김기복의 그 슈팅이 골대만 맞지 않았더라면'1968년 멕시코올림픽 예선에서 일본과 통한의 무승부를 기억하는 올드 팬들이 많을 것이다. 이 경기는 1967년 9월 도쿄에서 열렸다. 한국은 자유중국, 레바논, 베트남을 연파하며 기세를 올렸다. 일본 역시 3전 전승이었다. 10월 7일 사실상의 결승전인 한일전이 벌어졌다. 혈투 끝에 결과는 3-3. 한국의 마지막 상대는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을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골득실이었다. 그 전에 일본은 이미 필리핀을 15-0으로 대파해 골득실이 +21, 한국은 +7이었다. 일본이 마지막 경기에서 베트남을 꺾는다는 가정 하에 한국은 필리핀을 최소 15점 차 이상으로 이겨야 했다.그러나 한국은 5골 밖에 넣지 못하고 일본이 베트남을 1-0으로 잡으며 티켓은 일본 품으로 돌아갔다.결과론이지만 한일전 무승부가 본선 탈락의 결정타였다. 특히 일본과 경기에서 종료직전 김기복이 날린 회심의 중거리슛이 골대를 맞고 나온 것이 두고 두고 뼈아팠다.일본은 이듬해 멕시코올림픽에 출전해 '전설적인 골잡이' 가마모토 구니시게를 앞세워 기적의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 축구 관계자와 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1984년 LA-혈전 끝 패배한국은 야심차게 1984년 LA올림픽 출전에 도전했다.1988년 서울올림픽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땄기에 LA올림픽에 나가면 2회 연속 출전이 보장되는 상황이었다.한국은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뉴질랜드와 A조에 속했고 B조는 태국, 일본, 카타르, 말레이시아, 이라크였다. 각 조 1위가 자동으로 티켓을 따고 2위끼리 다시 겨뤄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이었다. 1차전에서 쿠웨이트와 득점없이 비긴 한국은 2·3차전에서 바레인과 뉴질랜드를 각각 1-0, 2-0으로 눌렀다.4차전에서 사우디와 1위 자리를 놓고 운명의 한 판 승부를 펼쳤다. 말 그대로 혈전이었다. 전종선과 정해원의 골로 앞서갔지만 개인기가 뛰어난 사우디의 맹반격에 5골을 허용해 4-5로 무릎을 꿇었다. 마지막 남은 1장을 놓고 이라크와 3·4위전에서 붙었지만 또 0-1로 져 20년 만의 올림픽 진출은 물거품이 됐다. ◇1992년 바르셀로나-김병수의 발리슛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은 6팀이 풀리그를 펼쳐 2위까지 본선에 나가는 방식이었다.한국을 비롯해 쿠웨이트, 바레인, 카타르, 중국, 일본이 올라왔다. 공교롭게 중동 3팀, 극동 3팀이었다. 극동과 중동이 워낙 서로를 견제해 최종예선 장소는 중동도 극동도 아닌 말레이시아로 결정됐다.최고의 명승부는 일본전이었다. 0-0으로 팽팽하던 상황에서 종료 직전 김병수의 발리슛이 터지며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최종성적 3승1무1패로 2위를 차지해 2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1996년 애틀랜타-붕대투혼과 독수리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최종예선의 최고 명승부 역시 한일전이었다.한국은 조별리그와 준결승을 차례로 통과해 결승에서 숙적 일본과 만났다.이번 한일전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상헌과 최용수였다. 이상헌은 상대 선수와 이마를 다쳐 붕대를 감고도 후반 34분 헤딩 선제골을 터뜨리는 투혼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어 '독수리' 최용수의 페널티킥 결승골이 터지며 한국이 2-1로 승리하고 3회 연속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다. ◇2012년 런던-히든카드 남태희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 신화를 쓴 홍명보호도 예선 통과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런던올림픽 최종예선은 12팀이 나섰다.4팀이 3개 조로 나뉘어 홈 앤드 어웨이로 풀리그를 벌여 각 조 1위만 본선에 나가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와 한 조였다. 무조건 1위를 차지해야 하는 상황이라 부담이 컸다.한국은 2012년 2월 22일 열린 오만과 5차전 원정에서 본선행을 결정지었다. 원래 이 경기 전까지 한국은 선두로 2위 오만에 다소 여유있게 앞서 있었다. 하지만 카타르 때문에 악재를 맞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11년 11월 카타르-오만전에서 부정선수를 출전시켰다는 이유로 카타르를 징계했다. 1-1 무승부였던 경기 결과가 오만의 3-0 승리로 바뀌었고 한국은 오만에 간발의 차로 쫓기게 됐다.홍명보 감독은 "오만전에 무조건 승부를 걸겠다"고 다짐했다. 히든 카드는 남태희였다.그 전까지 한 번도 올림픽팀 경기를 치르지 않았던 남태희는 이날 전격 선발 출전했고 전반 시작과 함께 벼락같은 선제 결승골을 작렬했다. 이어 후반에 김현성, 백성동의 득점으로 한국은 오만을 'KO'시키며 카타르와 최종전에 관계 없이 본선행을 확정했다. 윤태석 기자 yoon.taeseok@joins.com 2016.01.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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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변방’ 카보베르데의 꿈, 부정선수 파문에 와르르

'청상아리 군단' 카보 베르데의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은 한나절의 백일몽이었다. 화려한 미래를 꿈꿨지만 스스로 만든 덫에 발목이 잡혀 주저앉았다.국제축구연맹(FIFA)은 12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지난달 23일 열린 카보 베르데와 튀니지가 맞붙은 2014브라질월드컵 아프리카 2차 예선 B조 최종전 전적(카보 베르데 2-0승)를 무효화하고 튀니지의 3-0 승리로 결과를 수정했다.부정 선수 출전이 문제가 됐다. 이 경기에 선발로 나선 카보 베르데 수비수 페르난도 바레라는 3월 월드컵 예선 경기 도중 심각한 파울을 받고 퇴장당해 FIFA로부터 4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튀니지전 선발 명단에 이름이 올랐고, 실제로 그라운드에 올랐다. 고의성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부분이 뒤늦게 문제가 되자 FIFA가 칼을 빼들었다. 결과의 번복은 물론, 카보 베르데 축구협회에 6000스위스프랑(700만 원)의 벌금을 물렸다.이 한 경기의 후폭풍은 거셌다. 당초 결과대로라면 카보 베르데가 브라질월드컵 아프리카 최종예선에 진출해 본선행의 꿈에 도전할 수 있었다. 승점 12점으로 B조 1위에 올라 튀니지를 누르고 각 조 선두가 나서는 최종예선 출전권을 거머쥘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FIFA의 결정과 함께 순위도 뒤집혔다. 당초 11점이던 튀니지가 3점을 받아 14점으로 조 선두를 지켰다. FIFA랭킹 44위로 우리나라보다 높은 순위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카보 베르데의 비극은 당분간 계속 이어지게 됐다. FIFA의 뒤늦은 결정은 랭킹에도 혼란을 가져왔다. FIFA가 12일 오후 발표한 9월 랭킹에 카보베르데-튀니지전 수정데이터를 입력하지 않아 몇 시간 뒤 다시 고치는 해프닝이 있었다. 44위인 카보 베르데 주변에 있던 나라들의 순위가 요동쳤다. 주로 아시아 국가들이 해프닝의 희생양이 됐다. 일본이 43위에서 42위로 한 단계 올라갔고, 호주는 52위에서 53위로 내려갔다. 한국은 58위 그대로였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13.09.13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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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오만 맞서 ‘저격’ 준비하는 한국

올림픽축구대표팀의 다음 상대인 오만이 한껏 달아올랐다. '한국을 잡고 런던 올림픽 본선에 가자'며 신바람을 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은 조용하다. 직접적인 대응을 자제하는 대신 '일격필살'을 준비 중이다. 한국과 오만의 경기는 한국시간으로 22일 오후 11시30분에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다.오만전은 런던 올림픽 본선행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은 현재 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두 경기를 남겨둔 상태다. 한국이 승점 8점(2승2무)으로 A조 1위, 오만은 7점(2승1무1패)으로 2위에 올라 있다. 오만과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기면 본선 진출을 확정짓지만, 비기거나 지면 3월14일에 열리는 최종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오만의 키워드는 '열정'이다. 지금 오만은 축구 열기로 뜨겁다. 올림픽팀이 아시아 최강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하며 본선행 가능성을 밝혔기 때문이다. 오만은 지난해 11월 카타르와의 대결에서 1-1로 비겼지만, 카타르가 부정선수를 내보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3-0 몰수승을 거뒀다. 승점 2점과 골득실 +3을 덤으로 얻었다. 6일 열린 카타르와의 리턴매치에서는 시종일관 우세한 경기를 펼친 끝에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자신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하자 알 사디 오만축구협회장은 13일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월은 오만축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 언급하며 한국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홍명보(43)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은 냉정으로 맞선다. 상대적으로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차분히 오만전 준비를 시작했다. 태국 킹스컵 우승 직후 한동안 들떠 있었지만, 6일 열린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5차전(1-1무)에서 예상 밖으로 고전한 탓에 기세가 한풀 꺾인 분위기다. 홍 감독은 14일 일간스포츠와의 전화통화에서 "상대팀 분위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준비해온 것들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가 상승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 본선행 여부가 가려질 수 있는 만큼, 초반 기싸움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여 오만전 관련 고민의 일단을 드러냈다.14일 전지훈련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출국한 올림픽팀은 19일 경기가 열리는 오만의 무스카트로 건너가 마지막 담금질에 돌입한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12.02.1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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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팀 악재, 오만 카타르전 몰수승으로 턱밑까지 추격

2012 런던 올림픽 진출을 꿈꾸는 홍명보팀에 반갑지 않은 소식이 날아들었다.아시아축구연맹은 1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카타르가 지난해 11월 오만 무스카트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오만 전에서 부정선수를 출전시켰다. 이날 경기에서 출전한 미드필더 압델라지즈 하팀은 2차 예선 인도 전과 한국 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출장금지 징계를 받은 선수였다"며 "AFC는 부정선수를 출전시킨 카타르 축구협회(QFA)에 7600달러(약 850만 원)의 벌금과 오만 전을 몰수패(0-3패)로 처리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전했다. 한국 올림픽팀에는 반갑지 않은 일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대표팀은 A조에서 2승 1무로 승점 7점을 기록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오만은 지난해 11월 카타르와 홈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쳐 1승 1무 1패(승점 4점)로 한국을 추격할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1일 AFC의 결정으로 오만은 승점 2점을 추가해 승점 6점으로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몰수승은 3-0 승리로 인정하게 돼 오만은 골득실에서도 +3(5득점·2실점)이 됐다. 4골을 넣고 1점을 내준 한국과 득실차는 같지만 다득점에서 앞선다. 한편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은 6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린스 모하메드 빈파하드 스타디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A조 4차전을 갖는다. 오만은 같은 날 카타르 알 사드 스타디움에서 원정 경기를 치른다. 김민규 기자 gangaeto@joongang.co.kr 2012.02.01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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