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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세계 최고의 팬들에게 'K-볼'을 묻다⑦] 최양락 "한화는 다이너마이트인데 요샌 물총을 쏘네? 그래도 괜찮아유~"

2024년 KBO리그는 새 역사를 쓰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1000만 관중을 돌파한 것이다. 경기장에 가지 않더라도 TV와 모바일로 야구를 즐기는 팬들은 그 몇 배다.프로야구는 지난 40여 년 동안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올해는 스포츠를 뛰어넘어 한국 최고의 콘텐츠로 도약하고 있다. 1000만 명은 단지 관객이 아니다. 야구장에서 응원가를 만들어 부르는 가수이며, 함께 춤추는 댄서다. 그리고 기발한 응원문구를 쉴 새 없이 생산하는 카피라이터다. 불같은 열정을 내뿜으면서도 매너는 쿨하다. 야구 종주국 미국과 야구가 국기(國技)로 여기는 일본에서도 깜짝 놀라는 응원 문화다. 일간스포츠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팬으로 불러도 좋을 이들을 만나 'K-볼'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개그맨 최양락은 ‘원조 보살팬’이다. 충남 아산 출신인 그는 1986년 빙그레(한화) 이글스 창단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심하지 않았다. 방송에선 ‘깐족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야구팬으로서는 지고지순 그 자체다.최양락은 40년 가까이 한화의 흥망성쇠를 목격했다. 이는 곧 그의 희로애락이었다. 최양락으로부터 젊은 야구팬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개인 사무실에서 만난 최양락은 한 시간 넘도록 한화와 야구에 얽힌 추억을 들려줬다. 승리보다 패배가 많은 팀을 응원하면서도 늘 행복해 보였다. 그의 유행어처럼 한화라면 뭐든지 ‘괜찮아유~’다. - 언제부터 야구팬이셨나요?“초등학생 때. 그러니까 1970년대부터였죠. 당시에 아마추어 야구 인기가 워낙 좋았으니까요. 대구상고(상원고) 장효조 선수, 한국화장품 김재박 선수 등이 정말 대단했죠. 그때 TV 중계는 거의 없었고, 주로 라디오로 들었죠. 눈에 보이지 않는 야구를 귀로 듣고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드라마를 좋아했던 누나도 중계를 듣다가 어느새 야구팬이 될 정도였지.”최양락은 소년 시절을 회상하면서 라디오에서 들었던 캐스터 목소리를 재연했다. “넘어가느냐, 넘어가느냐. 간다, 간다. 홈런!” 반세기 전에 지었을 법한 표정으로 그는 추억 여행을 떠났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엔 어느 팀을 응원했나요.“프로 원년에 대전 연고 팀은 OB(두산) 베어스였죠.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했잖아요. 그땐 ‘우승이 제일 쉬웠어요’라고 했지. 내 또래 충청도 팬들이 아직도 한화를 응원하는 이유는 그 감동과 전율이 남아서일 거예요. 너무 고마웠고, 좋았으니까. 고등학생 아이가 공부 못하면 부모들이 그러잖아요. ‘우리 애가 초등학교 땐 잘했는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라고. 내가 딱 그런 마음이에요. 마음 잡고 노력하면 야구 잘할 거라고 믿는 거죠.”- 개그맨이 된 후에도 야구를 좋아하셨나요.“서울예전 연극과 1학년이었던 1981년 제1회 MBC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어요. MBC 청룡을 응원하러 이봉원과 서울 잠실야구장에 자주 갔지. 얼마 전 제가 운영하는 유튜브 ‘괜찮아유’에 출연한 남희석이 저더러 그러더라고요. ‘이 형은 배신자다. 한화만 응원한 팬이 아니다’라고요. 그때 난 MBC 소속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 일장기를 달고 뛴 손기정 선수(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같은 심정이었다고.”- 빙그레 창단 후 마음을 다잡으셨나요.“진짜 충청도 팀이 생겼으니 다른 팀들은 다 정리했죠. 빙그레가 참 잘했어요. 정규시즌 1위도 두 번(89·92년) 했죠. 이상군, 한희민, 한용덕,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등 대단한 투수가 많았지. 홈런왕 장종훈, 악바리 이정훈도 대단했죠. 이정훈은 선동열에게 홈런을 친 뒤 ‘선동열 투수한테는 죽어도 본전이니까 죽어라 (공을) 쳤다’라고 했다잖아요. 아유, 근성이 어마어마했지. 한화 하면 다이너마이트 타선이잖여. 그런데 요새 류현진은 물총을 찍찍 쏘며 놀던데….”2013년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했다가 올 시즌 한화로 복귀한 류현진은 득점한 주자들에게 앙증맞은 물총을 쏘며 더그아웃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다이너마이트(강팀)와 물총(약팀)을 대비시킨, 최양락 특유의 유머였다. - 한화가 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죠.“90년대 야구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경기장에 자주 응원하러 갔는데 어느 날 엉뚱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더그아웃에서 선수들과 함께 야구를 보고 싶었던 거죠. 언젠가 야구 관계자를 통해 잠실구장 3루 더그아웃에 들어갔어요. 감독님과 멀리 떨어진 곳(주로 투수들이 모인) 의자에 한화 선수들과 같이 앉았어요. 그땐 평일 경기는 TV 중계도 안 됐으니 그냥 들어간 거지. 눈치 보면서 야구를 보는데 장종훈이 홈런을 날린 거예요. 어라? 선수들이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서 하이 파이브를 하네? 나도 뛰어 나가서 같이 했지, 뭐. 손뼉을 마주친 장종훈이 내 얼굴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더라고. 요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옛날이니까 뭐.”- 2010년대 이후 한화가 참 부진했습니다.“꼴찌도 참 많이 했죠. 지는 것도 서러운데 연패 중인 팀이 한화를 상대로 3연승 하고 돌아가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어요. 부진했던 투수도 우리만 만나면 기적처럼 부활해. 야구를 끊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더 떨어질 데가 없으니 올라가겠지’라며 마음을 다잡는 거죠. 미우나 고우나 기다리는 거예요.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오기도 했고. 김태균, 류현진 같은 선수는 얼마나 대단해요? 강팀에 있었다면 두 선수 개인 기록이 더 좋았을 거예요. 연봉과 인기도 더 높았겠지. 마치 임진왜란 끝난 뒤 태어난 이순신 장군이랄까. 안타까운 마음이 커서 더 응원했어요.”- 그래도 한화 팬들은 정말 열성적입니다.“충청도 사람이 그렇잖아요. 느긋하고, 낙천적이고. 점심 잘 먹고 아무런 말도 안 하다가 다음날 ‘어제 참 맛있었어. 그 집 장사 잘되겄어’ 하거든. 우리 사위도 한화 팬이래요. 그렇다면 인내심은 믿을 만하지.”- 요즘 야구팬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정말 멋지게 응원하죠. 스케치북에 응원 문구 쓰는 거 있잖아요? 그거 예전에 방송 작가들이 출연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한 방식이거든. 그걸 야구장에서 보니 정말 재밌어요. 90년대에 대구구장에 간 적이 있는데. 장종훈이 홈런을 때린 거야. 벌떡 일어나서 환호했더니 만 명 넘는 관중이 동시에 날 노려보는 거예요. 몇 대 맞을 거 같은 분위기였지. 요샌 원정팀 응원 존이 정해져 있잖아요. 심지어 상대 팀 응원석에서 혼자 응원도 하고. 문화가 많이 달라졌죠.”- 올해 한화 야구를 보면 어떤 느낌인가요?“솔직히 가을 야구는 힘들 거 같았어요. 그래도 괜찮아유. 여름에 야구 많이 했잖여. 선수층이 과거에 비하면 두꺼워졌고, (늦여름까지) 6~7위는 했잖아요. 내년에 5강 가고, 다음에 우승하면 돼요. 우린 기다릴 수 있지.”- 창간 55주년을 맞이한 일간스포츠와 어떤 추억이 있나요?“80~90년대 방송국 개그맨 실에 가면 일간스포츠가 늘 비치돼 있었어요. 동료들과 인사하면서 ‘연예면에 네 기사 나왔더라’ ‘너 결혼한다며?’라고 안부를 주고받았죠. 스포츠지 1면에 자주 나오는 야구 기사도 열심히 봤어요. 홈런 친 타자가 아니라 ‘선동열이 홈런 맞았다’는 기사를 보고 얼마나 웃었던지. 오랜 시간 함께해줘서 독자들이 고마워할 거예요.” - 일간스포츠 못지않게 긴 역사를 가진 방송인이자, 야구팬이시네요.“예전엔 참 재미있는 일이 많았어요. 대신 그 시절 개그맨이 큰돈은 못 벌었죠. 방송 출연해야 몇만 원 받던 시절이었으니까. 스포츠 스타도 마찬가지였죠. 장종훈 같은 타자가 지금 뛰었다면 돈을 엄청나게 벌겠지. 어쩌겠어요? 시대가 달라진 걸. 그래도 저는 여전히 방송을 하고 유튜브도 하잖아요. 팬들의 사랑을 받는 덕분이죠. 한화 응원가 제목처럼 ‘나는 행복합니다!’”김식 기자 2024.09.27 08:00
뮤직

[빌드업 코리아] 구준엽 “원대한 꿈보다 즐거움, 행복 찾아 보내온 시간들” [창간55]

“제가 1969년 9월에 태어났거든요. 일간스포츠와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난 동갑내기 친구죠.”가수, DJ, 화가 등 다방면에서 활약해온 구준엽이 창간 55주년을 맞은 일간스포츠와 ‘각별한 인연’을 밝혔다. 구준엽은 지난 2022년 대만 배우 서희원과 결혼한 뒤 대만에 거주하고 있다. 국제전화를 통해 일간스포츠의 창간 55주년을 축하해준 구준엽은 강원래와 불세출의 듀오 클론으로 한창 활동하던 전성기, 스포츠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요즘 친구들은 앨범 내면 쇼케이스를 하는데, 우리 땐 무조건 첫 스케줄이 일간스포츠를 비롯한 신문사를 돌고 인사하며 대면 인터뷰 하던 거였다”고 말했다. “클론이 대만에서 처음 성공했을 때였어요. 우리 매니저가 기쁜 마음에 신문사를 돌아다니면서 ‘대만서 대박났다’고 이야기했는데, 당시엔 인터넷도 없던 때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기자들이 아무도 안 믿었어요. ‘아 성공했어? 그래 수고했다’ 하고 끝이었죠. 당시 H.O.T.가 핫했을 때였는데 SM(엔터테인먼트)이 대만 공연에 기자들과 함께 갔어요. 그 때 우리가 마지막 무대에 올라 객석 반응이 터지니까, (기자들이)뒤집어진 거죠. 뭐랄까, 뭔가 증명해 낸 느낌이랄까? 뿌듯하고, 인정받아 기분 좋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2024년 현재는 지구촌 어디서 일어나는 일이라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이니, 강산이 무려 세 번은 바뀌었을 27~28년 전 미디어 환경을 떠올리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기’라 일컬어지던 90년대의 한복판인 1996년 5월 데뷔한 클론은 ‘꿍따리 샤바라’, ‘도시탈출’, ‘사랑과 영혼’, ‘초련’ 등 다수의 곡으로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다. 데뷔 첫 해부터 당시 일간스포츠가 주최했던 제11회 골든디스크 어워즈 본상,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당대 가요계에 파란을 일으킨 이들은 90년대 후반 대만 발(發)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서서 중화권 한류 1세대로 상징되기도 한다. 당시의 인기에 대해 구준엽은 “클론의 인기는 우리(멤버)가 아닌 음악의 인기였다. 우린 음악으로 좌지우지되는 팀이었다. 음악을 잘 해야만 했다. 음악이 좋을 땐 인기가 좋았다가 그렇지 않을 땐 떨어지고 그랬다”고 겸손하면서도 냉정하게 자평했다. “당시 가요계는 변해가는 시대의 시작이었어요. 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어쿠스틱 음악이 사랑받았는데, 프로그래밍된 음악이 들어오면서 사운드도 팝에 가까워졌고, 팝 사운드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런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사실 춤으로 노래를 커버해줘야 했어요. 자학이 아니라, 맞는 말이에요. 노래만 잘 한다고 가수가 되는 시대가 간 거였죠. 우리가 데뷔 때 김건모를 이겼는데, 현란하고 획기적인 퍼포먼스 하는 애들이 가창으로 1등 하던 사람을 이겼다는 게, 시대 흐름의, 문화의 변화였다고 생각해요.” 중학교 1학년 때 TV에서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 무대를 보고 단번에 댄스에 매료됐다는 구준엽은 부모의 이혼으로 불안정했던 가정 환경의 어려움을 춤으로 극복했다. “부잣집 애들은 AFKN 방송을 녹화해서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저는 그러질 못해서 눈으로 한 번 보고 동작을 외워야 했어요. 그래도 했죠. 너무 하고 싶으니까. 꿈에서도 춤을 추곤 했으니까요.”그는 고교 시절 절친 강원래와 함께 현진영과 와와 1기 댄서로 활동하는 등 댄스 장르가 대한민국에 본격 태동하기 전부터 댄서로 이름을 떨쳤다. 클론 이후 클럽 음악이 국내에 완전히 유행하기 전에 일찌감치 디제잉에 눈을 떠 DJ KOO로 엔터테이너 인생 2막도 잘 살아왔다. 2000년대 중·후반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테크토닉을 국내에 처음 도입한 것도 구준엽이었으니, 가히 문화계의 ‘트렌드 셰터’라 할 만하다. 이처럼 트렌드에 민감한, 그의 ‘얼리 어답터’적인 기질은 온전히 현재 그의 커리어를 이끈 동력이 됐다. “새로운 걸 좋아하고, 궁금해하고, 해보려 하고, 남들보다 다른 걸 먼저 알고 싶어하는 성격이긴 해요. 저는 미술학도고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인데, 그 분도 화가이기 이전에 그 시대의 얼리어답터였어요. 그런 점이, 창의적인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좋다고 생각해요. 뒤처지지 않을 수 있죠.”디제잉에 도전하게 된 데 대해서도 소개했다. “퍼포먼스를 위해 해외 공연에 갈 때마다 현지 클럽에 갔어요. 우리 음악에도 EDM 음악이 있기도 하고요. 제 친구(강원래)가 사고가 나면서 가수를 못 하게 돼 처음엔 다른 걸 해볼까도 싶었는데, 음악이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가수는 혼자 하긴 싫고, 다른 형태의 음악이 없을까 하다가 생각해낸 게 디제잉이었어요.” 화려하게 빛나는 커리어와 별개로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한, 인생의 위너 구준엽. 그 시절 혹은 왕년이 아닌 ‘현재진행형’ 아티스트로 건재할 수 있는 비결은, 어쩌면 여전히 청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열정과 에너지 덕분이 아닐까. 결코 “잔소리하는 아저씨처럼 되고 싶진 않다”는 구준엽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K’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후배 아티스트들을 향한 잔소리 아닌 ‘조언’을 부탁하자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저는 솔직히 꿈이 크지 않았어요. 그렇게까지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죠. 누군가는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데, 저는 반대의 생각이에요. ‘지금 주어진 일을 잘 하자’ 주의죠. 꿈을 크게 가지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잖아요. 대신 한 걸음씩, 조그마한 꿈을 이뤄나가면서 스스로의 원동력을 키우고 성취감을 이룬다면 계속 행복하게 활력을 이어나가면서, 끝까지 할 수 있지 않을까, 뭔가 끝에 가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터뷰 말미 구준엽은 “내 목표는 오버하지 않고, 유치하지 않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뭐랄까? 멋있다거나 핫하다 말고, 근사하고 무게감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바람을 남겼다. 하지만 이를 어쩌나. 구준엽씨, 아무래도 다른 목표를 세우는 게 좋겠어요. 이미 당신은 누구보다 근사한 사람이니 말이에요.박세연 기자 psyon@edaily.co.kr 2024.09.26 06:05
영화

[단독] 정우성 “54주년 일간스포츠, 긴 시간 함께한 추억 있죠” [창간 54]

“일간스포츠 같은 스포츠지 1면에 실리는 게 스타 인증의 척도일 때가 있었어요. 저 역시 오래 활동을 해온 만큼 일간스포츠와 함께한 시간들이 많이 떠오릅니다.”배우이자 최근 영화 ‘보호자’를 통해 연출가로 변신한 정우성을 일간스포츠가 만났다. 정우성은 54번째 일간스포츠의 생일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좋은 기사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펼쳐 줄 것을 부탁했다.“54주년이 짧은 시간이 아니잖아요. 일간스포츠는 긴 시간 저를 비롯해서 대중과 오래 호흡해온 언론사예요. 그만큼 추억도, 세상에 남은 기록도 많죠. 여태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추억과 기록을 세상에 남기고 전하며 공유하는 그런 매체가 됐으면 해요.” 일간스포츠는 1969년 9월 26일 창간됐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연예스포츠 전문지로 K콘텐츠와 함께 성장해왔다. 그런 일간스포츠에게 정우성이 바라는 건, 진지함이 사라져가고 있는 시대에 진정성 있는 글로 세상에 지금까지처럼 선한 영향력을 주는 것이다. 정우성은 “최근에는 진지함을 스스로 검열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친구들끼리는 물론 직장 내에서도 복잡하고 진지한 사고를 검열하며, 그것을 이야기하면 마치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하는 경우도 보인다”면서 “그러다 보면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진정한 소통이 없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요즘 보면 ‘이런 이야기까지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기사들도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정보화 시대가 되고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정보과잉은 심해지고,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진짜 공유돼야 하고 가치 있게 남아야 하는 기사들이 오히려 묻힐 수 있어 안타깝죠.”정우성은 이런 현상을 언론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독자들에게 알려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정보, 언론이 가져야 할, 혹은 가지고 있는 의무와 사명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뤄 달라”며 일간스포츠에 대한 바람을 드러냈다. 언론이 가져야 할 의무와 사명감이 있다면 배우 역시 마찬가지일 터. 올해 영화 ‘웅남이’ 특별출연, ‘보호자’로의 장편영화 감독 데뷔 등 신선한 도전을 많이 이룬 정우성은 여전히 배우로서 소임을 다하기 위해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최근엔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를 촬영하고 있어요. 아마 하반기에는 촬영을 마무리하고 방송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또 촬영을 이미 마친 영화 ‘서울의 봄’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어요. ‘서울의 봄’이 개봉하면 ‘보호자’에 이어 또 새로운 영화로 관객 분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정우성이 출연하는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1995년 일본 TBS에서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다. 청각장애인과 배우 지망생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정우성의 약 10년만 드라마 복귀작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우성은 이 드라마에서 30대 청각장애인이자 화가 차진우를 연기한다. 내년 상반기 방송을 목표로 한창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서울의 봄’은 10.26 이후 이듬해 전두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짧았던 민주주의의 봄을 일컫던 시기를 담는다. ‘아수라’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정우성을 비롯해 황정민 이성민 등이 출연한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9.27 06:05
축구

[생애 첫 1면 at IS]⑮기성용, '소서노의 남자' 사랑법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3년 3월 핑크빛 사랑이 큰 관심을 받았다. 주인공은 기성용과 한혜진이었다. 한국 최고의 축구스타와 미녀 배우의 만남. 둘의 열애설로 뜨거웠다. 이 뜨거움은 3월 25일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했다. 한국의 간판 미드필더이자 축구의 대륙 유럽에서 활약하는 기성용은 일간스포츠 1면에 자주 등장한 바 있다. 하지만 한혜진과 함께 1면에 등장한 건 최초였다. 2013년 3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2014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카타르와 경기가 열렸다. 이 대표팀 A매치를 위해 영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한 기성용. 경기를 준비하던 훈련장에서 기성용이 신은 축구화가 이슈의 중심에 섰다. 'HJSY24'가 새겨진 축구화. SY는 기성용의 이니셜이고 24는 소속팀 스완지 시티에서의 등번호다. 그렇다면 HJ는 누구의 이니셜일까. 많은 이들이 HJ의 주인공으로 한혜진을 주목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끝난 뒤 한혜진이 MC로 있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기성용은 "이런 여자만 있다면 당장 결혼하고 싶다"며 한혜진을 이상형으로 꼽았다. 이후 둘의 열애설이 등장했다. 'HJSY24'가 새겨진 축구화로 인해 둘의 열애설은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한 축구 관계자가 "기성용이 대표팀 동료들에게 카타르전에 HJ라고 새겨진 축구화를 신고 나가겠다고 공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기성용과 한혜진 모두 열애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기성용 측은 "이야기할 가치조차 없다"는 입장을 드러냈고, 한혜진 측 역시 "뜬금없는 열애설이라 황당하다. 다시 열애설이 불거져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감출 수 없었다. 가려지지도 않았다. 기성용은 카타르전이 끝난 다음날 개인 SNS를 통해 열애설을 쿨하게 인정했다.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한 뒤 이틀 만이다. 기성용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잘 만나고 있다는 거 알려드립니다. 교제 기간이 얼마되지 않아 조심스러웠지만 저희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서로 큰 힘이 되기에 사실 당당하게 만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밝힐 날을 고민했는데 고맙네요. 긴말은 필요 없을 거 같고 행복하게 잘 만날게요!"라고 열애 사실을 털어놨다. 열애 일정 후 약 세 달 만에 둘은 결혼에 골인했다. 2013년 7월 1일 기성용과 한혜진은 비공개 결혼식을 치렀다. 이후 이 부부는 한국의 스포츠계와 연예계를 대표하는 잉꼬부부로 이름을 날렸다. 2015년 2월에는 기성용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6라운드에서 골을 넣은 뒤 '젖병 세리머니'를 펼치며 한혜진의 임신 소식을 알렸다. 지금 부부와 함께 딸 기시온 양이 함께 있다. 기성용은 '딸바보'로 유명하다. 2016년 10월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원정에서 기성용은 아내 덕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한국 축구 스타 기성용에 대한 관심이 아니었다. '소서노의 남편'에 대한 관심이었다. 이란에서는 주몽이 '국민 드라마'다. 주몽이 이란 국영방송을 통해 방송돼 엄청난 국민적 인기를 모았다. 시청률이 무려 80%가 나왔다고 한다. 주몽의 여주인공이 바로 소서노, 한혜진이다. 이란 언론들은 '소서노의 남자'가 왔다고 반겼고, 이란 취재진과 이란 팬들도 기성용 주변에 몰려 들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하는 등 좋은 일에 앞장서며 따뜻함을 전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⑧권창훈, 올림픽 예선 최초의 '해트트릭' ⑨이정협, 동화 '군데렐라' ⑪임상협, "똥배 나온 선수는 축구장에 설 수 없다" ⑫백승호, U-20 월드컵에 미친 축구천재 ⑬황희찬, 한국판 '루니'는 훗날 반 다이크를 제치고 ⑭남태희, '카타르 메시'라 불린 사나이 2020.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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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⑭남태희, '카타르 메시'라 불린 사나이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전 세계에는 수많은 '메시'가 존재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의 이름을 붙여 그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최소 축구를 하는 국가라면 한명씩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시라도 다 같은 메시가 아니다. 수많은 메시 중 금세 사라지는 메시가 있는 반면 꾸준히 메시의 이름을 품으며 경쟁력을 인정받는 선수도 있다. 후자의 대표적인 이가 '카타르 메시' 남태희다. 남태희는 한국 축구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였다. 2009년 18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 1부리그 발랑시엔에서 뛰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 남태희는 2011년 파격적인 선택을 하는데, 한국 축구팬들에게는 생소했던 카타르 프로축구 스타스리그에 진출한다. 스타스리그 '명가' 중 하나인 레퀴야(현 알 두하일)에 입단한 남태희.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174cm의 크지 않은 키에 빠르고 화려한 드리블과 골결정력까지 선보인 남태희. 그의 앞에 '카타르 메시'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닉네임에 어울릴 만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남태희는 레퀴야에서 8시즌 동안 총 255경기를 뛰었고, 100골 70도움을 기록했다. 리그만 따지면 160경기 출전에 73골 49도움이다. '카타르 메시'라 불릴 만한 수치다. 남태희를 앞세운 레퀴야는 리그 최강으로 군림했고, 리그 우승 5회, 카타르컵 우승 3회 등 총 12개의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오일 머니'로 무장한 카타르가 어마어마한 돈을 부어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불러모았지만 남태희의 위상은 줄어들지 않았다. 2017년에 남태희는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남태희는 2019년 레퀴야를 떠나 또 다른 '명가' 알 사드로 이적하며 위용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남태희를 한국 축구대표팀이 가만 놔둘 리 없었다. 그는 2011년 터키와 친선전을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항상 축구 대표팀 감독의 신뢰를 받으며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 주역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남태희가 일간스포츠 1면에 등장한 것도 대표팀에서의 맹활약, 그것도 메이저대회에서의 맹활약 덕분이었다. 2015 호주 아시안컵이 한창인 2015년 1월 14일. 남태희가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했다. 하루 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호주 캔버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안컵 A조 2차전 쿠웨이트와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2연승을 달렸다. 주인공은 남태희였다. 전반 36분 멋진 헤딩골을 넣었고, 이 골이 결승골이 됐다. 헤딩골이 익숙하지 않은 남태희. 국제무대에서 첫 헤딩골을 넣은 뒤 그는 "(차)두리 형이 크로스를 올릴 때 문전으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헤딩으로 골을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현실이 돼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당시 아버지가 호주까지 날아와 관중석에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기쁨은 크기는 배가됐다. A조 1차전 오만전에 뛰지 못한 한이 서려있는 골이기도 했다. 남태희는 오만전 출전이 유력했으나 끝내 불발됐다. 쿠웨이트전을 그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던 남태희였다. 그는 "선수라면 뛰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모든 선택은 감독님의 몫이다. 기회가 오면 적극적으로 돌파하고 슛을 때리겠다"고 다짐했고, 그의 말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남태희는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을 이어갔다. 호주 아시안컵은 한국 축구의 큰 감동이었다. 이후 한국은 호주·우즈베키스탄·이라크 등을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호주에 1-2로 안타깝게 패배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준우승 여정을 선보였다. '카타르 메시'도 이 여정에 큰 힘을 보탰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⑧권창훈, 올림픽 예선 최초의 '해트트릭' ⑨이정협, 동화 '군데렐라' ⑪임상협, "똥배 나온 선수는 축구장에 설 수 없다" ⑫백승호, U-20 월드컵에 미친 축구천재 ⑬황희찬, 한국판 '루니'는 훗날 반 다이크를 제치고 2020.04.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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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⑬황희찬, 한국판 '루니'는 훗날 반 다이크를 제치고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한국 축구에 없었던 '유니크(Unique)'한 유형의 공격수가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황소' 황희찬이었다. 황희찬이 선보인 저돌적이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는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적 공격수 웨인 루니를 닮았다는 평을 받았다. 황희찬이 한국 축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시작한 시점은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이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한 대회였다. 당시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 연령대보다 3살이나 어린 막내 황희찬을 올림픽대표팀에 처음 불러들이면서 확신을 표현했다. 신 감독은 "황희찬의 저돌적인 모습, 수비까지 가담하는 활동량 등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스타일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격수 루니와 비슷한 플레이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황희찬은 신 감독의 확신에 보답했다. U-23 챔피언십 최대 승부처였던 카타르와 4강에서 70m 폭풍 드리블을 선보이는 등 강렬한 모습을 드러내며 한국의 올림픽 본선행을 이끌었다. 이후 황희찬은 2016 리우올림픽 본선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황희찬의 유니크한 스타일에 많은 전문가들이 찬사를 던졌다. 안정환 해설위원은 "리우 올림픽 최고의 수확은 황희찬이다. 그의 스타일은 저돌적이다. 한국에 새로운 유형의 골잡이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황희찬은 매우 훌륭한 선수다. 지금 한국의 모든 선수를 통틀어 스타일이 가장 유니크한 선수다. 빠른 스피드와 기술력, 그리고 저돌적 몸싸움으로 수비를 뚫고 골 라인으로 전진하는 모습은 이전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다"고 극찬했다. 이런 황희찬이 A대표팀에 선발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16년 9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 중국과 경기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꾸준히 A대표팀에 발탁됐고, 축구 선수로서 최고의 대회인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초대받았다.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1차전 스웨덴전을 일주일 앞둔 6월 12일, 황희찬이 일간스포츠 1면에 등장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의 모든 이슈는 '에이스' 손흥민에게 쏠렸다. 상대 팀들도, 외신들도 세계적 선수로 올라선 손흥민을 주목했다. 하지만 월드컵대표팀은 손흥민 혼자의 팀이 아니었다. 손흥민을 도울 조력자, 미지의 공격수 황희찬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황희찬은 에이스 손흥민의 의존도를 줄여줄 공격수로 기대감을 모았다. 잘츠부르크 소속으로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연패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한 황희찬. 외국에서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폭스스포츠'는 황희찬을 한국 대표팀 핵심 선수로 꼽으며 "황희찬은 3년 동안 잘츠부르크에서 활약했고, 한국의 핵심 선수로 성장했다. 한국의 선발로 나설 선수다. 임팩트가 강하다. 수비수 앞에서 저돌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이 움직임은 한국의 상대국 수비수들이 걱정해야 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모두 뛰며 큰 경험을 쌓은 황희찬은 계속 성장했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경험한 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에도 출전했다. 어린 나이에 월드컵, 아시안컵 등 메이저대회를 비롯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거의 모든 주요 대회를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까지 받았다. 이 나이에 이런 풍부한 경험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만큼 황희찬의 경쟁력이 한국 축구에 필요했다는 뜻이다. 그의 유니크한 스타일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비난과 비판도 많이 받았지만 쓰러지지 않은 황희찬. 그는 지금 한국 대표팀 중심 선수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황희찬은 지난해 10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소속 세계 최고의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를 제치고 골을 넣으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국판 '루니'는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⑧권창훈, 올림픽 예선 최초의 '해트트릭' ⑨이정협, 동화 '군데렐라' ⑪임상협, "똥배 나온 선수는 축구장에 설 수 없다" ⑫백승호, U-20 월드컵에 미친 축구천재 2020.04.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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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⑫백승호, U-20 월드컵에 미친 축구천재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7년 한국 축구는 역대 최고의 재능에 대한 기대감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그 기대감의 중심에 자리잡은 선수, '축구천재' 백승호였다. 그는 세계 최고의 '명가' 바르셀로나B팀(2군)에 입성하며 엄청난 기대를 받았다. 바르셀로나의 '신' 리오넬 메시 등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는 장면도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다. 백승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지는 계기가 있었다. 2017년 한국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이 열렸기 때문이다. 최고의 재능을 가진 최고의 유망주가, 스타의 산실인 U-20 월드컵을 앞두고 있었고, 그것도 홈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다. 2017년 5월에 열리는 U-20 월드컵을 4개월 앞둔 1월 6일, 백승호가 일간스포츠 1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승호는 자신만만하게 2017년 각오를 드러냈다. 백승호는 먼저 바르셀로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바르셀로나B에서 뛰는 선수라면 누구나 메시와 함께 뛰는 순간을 그린다. 1군에서 훈련할 때는 최대한 배우자는 생각으로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볼터치부터 다르다. 메시는 아우라가 있다. 수아레스, 네이마르 등 1군 핵심 선수들에게 어린 선수들이 말을 걸기 쉽지 않다. 가끔 메시가 '승호, 잘 하고 있어. 1군에서 꼭 같이 뛰자'고 한 마디 툭 던져주는데 별거 아니지만 정말 큰 힘이 된다"고 웃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성장도 중요했지만 2017년 백승호 최고의 목표는 U-20 월드컵이었다. 그는 "오직 축구에만 미칠 것"이라며 "U-20 월드컵을 뛰늰 게 꿈이다. 전 세계에 '이런 선수가 있다'고 알리고 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또 백승호는 "간절한 마음으로 전지훈련과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대표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준비한 것들을 그라운드에서 펼치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그의 의지는 현실로 나타났다. 백승호는 한국 U-20 대표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A조 조별리그 1차전 기니전에 1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고, 아르헨티나와 2차전에서도 1골을 추가하며 2-1 승리를 책임졌다.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끈 '에이스'가 백승호였다. 당시 백승호는 또 하나의 목표를 밝혔다. A대표팀 입성이었다. 백승호는 "손흥민, 기성용, 황희찬 등 대표팀 형들을 보며 꿈을 키운다. 희찬이 형은 나보다 할 살 많은데 벌써 대표팀에서 뛰고 있어 동기부여가 된다. 희찬이 형이 '너도 빨리 대표팀에 오라'고 말했다"며 A대표팀 꿈을 꿨다. 이 목표도 현실이 되는데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울루 벤투 한국 A대표팀 감독은 성장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백승호를 A대표팀에 불러들였다. 지난해 6월 이란과 친선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9월 조지아전에 이어 10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2차전 스리랑카전에도 출전했다. A대표팀에서도 강렬했고,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은 백승호는 한국 A대표팀의 미래로 꼽혔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기성용의 대체자로 평가를 받았고, 이미 대표팀 핵심 자원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독일 분데스리가 2부리그 다름슈타트에서도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고 있어, 앞으로 꾸준히 A대표팀에 이름을 올릴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금 백승호는 올림픽을 기다리고 있다. 도쿄올림픽 예선에 참가하려 했고,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도 원했지만 소속팀의 거부로 무산됐다. 하지만 올림픽 본선은 기대하고 있다.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강렬함을 꿈꾸는 백승호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⑧권창훈, 올림픽 예선 최초의 '해트트릭' ⑨이정협, 동화 '군데렐라' ⑪임상협, "똥배 나온 선수는 축구장에 설 수 없다" 2020.04.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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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⑧권창훈, 올림픽 예선 최초의 '해트트릭'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6년 1월 17일. 권창훈이 한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작성했다. 한국 올림픽 남자축구대표팀은 카타르 도하의 카타르SC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C조 2차전 예멘과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의 주인공은 '빵훈이' 권창훈. 그는 전반 14분, 31분 그리고 41분 연속골을 터뜨리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권창훈이 한국 축구 최초의 일을 해낸 것이다. 이 대회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겸한 대회. 23세 이하로 출전 연령이 제한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최종예선이 시작된 이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한 첫 번째 주인공 탄생을 알렸다. 이 기쁜 날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경기 다음 날인 1월 18일 일간스포츠 1면에 권창훈의 스토리를 소개하며 역사적인 날을 기념했다. 올림픽 최종예선 최초의 해트트릭이자 권창훈에게는 부담의 짐을 털어낼 수 있는 3골이었다. 당시 수원 삼성 소속이었던 그는 2015년 11월 29일 K리그1(1부리그) 최종전 전북 현대와 경기가 끝난 뒤 왼쪽 무릎 염좌 부상 진단을 받았다. 2015년 그는 수원의 핵심 미드필더이자 A매치를 뛰는 국가대표였고, 올림픽대표팀의 에이스였다. 필요한 곳이 많은 권창훈. 살인일정으로 결국 탈이 났다. K리그(35경기)를 비롯 AFC 챔피언스리그(8경기) A매치(7경기) 올림픽대표팀(4경기) FA컵(1경기) 등 공식경기를 무려 55경기를 소화했고,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당한 부상이라 걱정이 더욱 컸다. 권창훈의 이탈은 올림픽대표팀 전력에 큰 차질을 줄 수 밖에 없었다. 권창훈은 오직 재활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올림픽대표팀의 평가전에 나섰지만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축구 팬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그렇지만 권창훈은 긍정마인드를 가진 채 버티고 또 한 발 전진했다. 예멘전이 부상 복귀 후 첫 선발 경기, 첫 풀타임 경기였다. 해트트릭으로 자신에게 향하던 비난의 화살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솔직히 골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3골이나 넣었다. 창훈이가 심리적인 부담을 훌훌 털어냈을 것"이라고 밝혔다. 권창훈은 "부상당하고 첫 풀타임이었는데 체력적으로 크게 무리가 안 와 다행이다. 앞으로 더 좋은 경기력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신 감독의 말은 맞아떨어졌고, 권창훈의 약속은 지켜졌다. 이후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난 권창훈은 훨훨 날아올랐다. 또 경기가 진행될 수록 권창훈의 영향력은 커졌다. 명실공히 올림픽대표팀의 에이스는 권창훈이었다. 권창훈은 올림픽 본선 진출의 최대 승부처였던 카타르와 4강에서 결승골을 터뜨렸다. 후반 44분 카타르 골망을 가르며 한국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한국의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된 순간이다. 또 일본과 결승에서도 선제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이어갔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준우승을 거뒀고, 권창훈은 총 5골을 넣으며 팀 내 득점 1위를 차지했다. 카타르 아흐마드 알라엔딘의 6골에 이어 대회 득점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권창훈의 이런 기세는 올림픽 본선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리우 올림픽 남자축구 C조 1차전 피지와 경기(8-0승)에서 멀티골을 작렬시켰고, 3차전 멕시코와 경기(1-0)에서 선제 결승골을 터뜨렸다. 독일과 2차전 3-3 무승부를 거둔 한국. 독일과 같은 조에서 놀랍게도 조 1위를 차지한 국가는 한국이었다. 한국이 독일을 조 2위로 따돌리고 조 1위로 8강에 올라섰다. 8강에서 온두라스에 패배하며 아쉽게 탈락했지만, 권창훈이 앞으로 한국 축구를 이끌 재목이라는 것을 증명한 대회였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2020.04.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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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⑦세계가 주목한 소녀, 지메시의 등장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지소연(29·첼시 레이디스)은 올해 2월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 베트남과 경기에서 후반 38분, 3-0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이자 자신의 A매치 통산 58호골을 터뜨렸다. A매치 58골은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한 역대 남자 대표팀 A매치 최다 득점 기록과 타이로, 2006년 만 15세의 역대 최연소 나이로 A매치에 데뷔한 뒤 123경기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지소연이 걸어온 길을 증명하는 건 그 스스로 써내려간 성적과 기록들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에이스', '지메시'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한국 여자축구 최근 10년을 관통하는 이름이 바로 지소연이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되고, A매치 최연소 데뷔 기록까지 세우면서 꾸준히 주목받았던 '지메시' 지소연의 진가가 확연히 드러난 건 2010년 여름이었다. 독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지소연은 스위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폭발시켰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에서 나온 해트트릭 기록이었다. 연령별 대회라곤 해도 월드컵 무대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해트트릭을 터뜨린 지소연은 이어진 2차전 가나와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터뜨렸다. 지소연의 이 골들은 한국을 조별리그 성적 2승1패, 8강 진출로 이끄는 발판이 됐다. 지소연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멕시코와 8강전에 이어 1-5로 완패한 독일과 4강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콜롬비아와 치른 3·4위전에서도 지소연의 결승골이 터지며 한국 여자축구는 U-20 여자월드컵을 3위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2010년은 같은 해 U-17 여자 월드컵 우승과 함께 한국 여자축구 '최고의 해'로 기록됐고, 6경기 8골을 터뜨린 지소연은 대회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지소연은 2010년 FIFA 발롱도르 여자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1면에 지소연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인 2010년 7월 30일이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무대에서 맹활약한 지소연은 여러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는데, 당시 기준으로 독일과 미국 프로축구팀이 지소연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기사였다. 국내 실업축구리그인 WK리그 관계자들도 "지소연을 잡을 방법이 없냐"고 애를 태운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지소연은 미국 진출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으나, 공교롭게도 미국 여자프로축구의 재정난이 심화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지소연은 일본행을 선택했고, 고베 아이낙에서 활약하다 2014년 잉글랜드 여자프로축구 첼시 레이디스로 이적했다. 예정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구단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해외 무대에 진출한 지소연은 매 시즌 맹활약을 펼치며 최근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지소연의 유럽행은 한국 여자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소연 이후 조소현(32)이 2018년 노르웨이 아발드네스IL를 거쳐 2019년 지소연과 같은 잉글랜드 여자프로축구 웨스트햄으로 이적하고, 같은 해 이금민(26)이 맨체스터 시티, 장슬기(26)가 스페인 마드리드CFF 유니폼을 입는 등 여자축구선수들의 유럽 이적이 활발해졌다. 결과적으로 지소연을 기점으로, 젊은 선수들이 더 넓은 무대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10년 전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소녀는 어느덧 한국 여자축구의 '큰 언니' 대열에 합류했다. 윤영글(33·한국수력원자력) 심서연(31·인천 현대제철) 김혜리(30·인천 현대제철) 등 몇몇을 제외하면 '최고참' 반열에 든다. 자신을 보고 대표팀의 꿈을 키운 후배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지소연은 또 한 번, 한국 여자축구의 새 역사를 쓰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플레이오프가 바로 그 무대다. 플레이오프에서 골을 넣으면 차범근 전 감독을 넘어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그러나 지소연은 자신의 기록보다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더 큰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올림픽 나갈 때까지 절대 은퇴하지 않겠다"며 간절함을 내비친 지소연이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본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2020.04.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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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1면 at IS]⑥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의 두 충신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3년 K리그1(1부리그)에는 한 명의 '왕'이 등장했다. 이름은 황선대원군. 그가 선보인 K리판 '쇄국정책'은 K리그 팬들을 뜨겁게 열광시켰다. 조선 말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이름을 따온 황선대원군.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황 감독의 쇄국정책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구단의 사정이 좋지 않아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구단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려면 국내 선수를 내보내라 했고, 황 감독은 자신의 제자들을 팔 수 없어 외국인 선수를 포기했다. 황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작된 계기다. 2013시즌 K리그1에는 역대급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FC 서울에는 '데몰리션'이라 불리는 데얀과 몰리나가 있었고, 전북 현대에는 최고의 날개 레오나르도가 존재했다. 울산 현대의 하피냐, 수원 삼성의 산토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최전방을 책임질 때, 포항은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었다. 외국인 선수 0명으로 시작한 2013시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외국인 선수들이 사라지자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성향을 완전히 버리게 됐고,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끈끈한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포항은 최강의 팀으로 거듭났다. 국내 선수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호흡. '스틸타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스틸타카'는 세계 축구를 평정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의 포항 버전이다. 포항이 시도한 짧은 패스에 의한 공격축구는 그동안 K리그에서 보지 못한, 신선하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3시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포항은 강렬했다. 시즌 초 쇄국정책으로 7경기 연속 무패 행진(4승3무)을 달렸다. K리그1에서는 3승1무로 단독 1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1승2무를 기록했다. 외국인 공격수가 없지만 7경기에서 12골을 폭발시킨 포항이었다. 이런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던 시기, 2013년 4월 5일 일간스포츠가 황선대원군을 만났고, 이 만남은 1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가장 궁금한 점.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이 잘나가는 비결이다. 이에 황 감독은 포항의 '든든한 허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두 명의 미드필더 이름을 거론했다. '명신 듀오'라 불린 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을 보필한 두 '충신'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왕과 함께 1면에 얼굴을 올렸다. 외국인 없는 포항을 최강으로 만든 공이 컸다. 황 감독은 "기성용과 구자철에 비해 화려함이 떨어진다. 그러나 내실이 튼튼하다"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신진호에 대해서는 "골키퍼를 빼고 다 뛸 수 있다. 머리가 좋아 어디에 세워도 금방 적응한다"고, 이명주에 대해서는 "패스 축구는 자칫 속도가 느려지면 지루할 수 있다. 시야가 좋은 명주가 중앙에서 템포 조절을 한다. 긴 패스도 정확해 빠른 축구도 가능하다"며 두 충신을 극찬했다. 처음부터 충신은 아니었다. 황 감독은 "팀에 처음 왔을 때 두 선수 모두 쓸데없는 동작이 많았다. 대학시절 자신들 중심으로 팀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습관을 버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즌 초반 상승세. 황 감독은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초반일 뿐이다. 축구를 잘 한다는 칭찬에 취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생각하는 순간 죽음"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황 감독의 의지는 시즌 끝까지 이어졌고, 큰 결실을 일궈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충신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신진호는 2013시즌을 다 채우지 못한 채 그해 여름 카타르 SC로 임대를 떠났다. 이명주는 끝까지 황선대원군에 충성했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포항의 '에이스'는 단연 이명주였다. 그는 7골4도움을 기록했고, 경기 MVP를 6회, 베스트 11에 8회 선정됐다. 신진호가 떠난 자리에는 다른 충신들이 줄을 섰다. 황진성·김승대·고무열·박성호·조찬호 등이 맹활약을 펼치자, 황선대원군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절대권력을 자랑한 황선대원군은 결국 2013시즌 K리그1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포항은 최종전에서 울산 현대에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포항의 6년 만의 우승 그리고 포항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K리그 역사에서 쇄국정책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관련기사 ①손흥민, '함부르크의 신'이라 불린 사나이 ②이승우, 최연소 A매치 데뷔 기록은 못 깼지만… ③이강인, 한국 역대 최고의 '왼발' 등장 ④이재성, 최강희와 슈틸리케의 '신데렐라' ⑤황의조, '인맥왕'에서 '갓의조'로 2020.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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