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이상서의 스윙맨]연봉전쟁의 전설, 정민태vs이승엽을 아시나요
“프로야구선수에게 연봉이란 곧 자존심에 다름 아니다.”스토브리그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다. 그러나 그 자존심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인지 모른다. 해를 넘겨서도 여전히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못한 김광현(SK)과 양현종(KIA)만 본다면 그렇다. 류현진이 떠난 2012년 이후 KBO리그의 최고 투수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이들은 연봉 협상에서도 양보가 없었다. 대부분 연봉 계약을 마친 상태에서 눈치싸움은 더 치열하다. 김광현은 6억 원, 양현종을 4억 원을 받고 있다. 이들 가운데 최소 한 명은 작년 김현수(당시 두산)가 세운 비(非) FA 최고액인 7억 5000만원을 경신할 것이 가능해 보인다.‘88 둥이’, 왼손 투수, 팀의 에이스 등 교집합이 많던 양 선수이기에 경쟁 의식은 한층 더 짙어졌을 터. 라이벌이란 그런 것. 이들 이전에 최고 연봉자의 자리를 두고 팽팽한 경합을 벌이던 두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이승엽(삼성)과 정민태(당시 현대)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KBO리그 최고 투수와 타자 자리를 독점했던 이들은 21세기에 나타난 지금의 라이벌보다 더 치열했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 50홈런 돌파, 정규시즌 MVP,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수상, 타점-득점-장타율- 출루율 등 4관왕 달성. 1999년 이승엽이 세운 업적이다. 그야말로 우승 빼고 다 이뤘던 시즌이었다. 이런 그에게 최고 대우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삼성 구단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연봉 3억 원이라는 명예를 안겨줬다. 이전 해 받은 1억 1000만원보다 두 배가 넘게 뛴 금액이다. 그러나 그 영광은 잠시 뿐이었다. 이승엽의 사인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현대 측이 곧바로 정민태에게 3억 1000만원을 준 것이다. 생애 최초로 연봉왕을 노리던 이승엽은 다시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정민태가 거품이 낀 선수라고 보는 것은 곤란하다. 이승엽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민태 역시 투수 부문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기 때문이다. 20승을 달성하며 평균자책점 2.54의 역대급 시즌을 보냈다. 정민태의 전성기는 ‘순간’이 아니다. 1996년부터 5년 연속 200이닝을 소화했으며, 6년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했다. 특히 정민태가 그 해 세운 230.2이닝이란 기록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 시즌 최다 소화 이닝 5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두 선수의 자존심은 구단의 대리전으로 비화됐다. 삼성과 현대라는 한국 최고의 기업답게(?) 손도 컸다. 현대는 2000년 스토브리그 당시 일찌감치 “이승엽보다 연봉을 많이 주겠다”고 공언했다. 일본 진출이 좌절된 정민태의 마음도 달래고, 자존심을 세워주겠다는 의중이다. 그러나 삼성도 지지 않았다. 현대의 우승과 함께 연봉킹의 등극을 지켜보고 있던 삼성이 반격에 나선 건 그로부터 3년 뒤였다. 삼성은 “이승엽의 공헌을 감안해 최고대우를 했다”고 밝혔다. 이승엽이 연봉킹에 등극한 건 프로 9년차가 되던 2003년이다. 이전 해 4억 1000만원을 받던 그는 타자 부문 4관왕에 오르며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게다가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결국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인 6억 3000만원을 안겨줬다. 이는 불과 4일 전 연봉 1위 자리를 점령한 이상훈(당시 LG)을 끌어내리는 금액이기도 했다. 정민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왕관을 쓴 이승엽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승엽이 6억 원의 벽을 깼다면 7억 원은 당연히 그의 몫이겠다. 2004년, 정민태는 한국으로 돌아왔고(2003년 5억 원 연봉으로 복귀), 이승엽은 일본으로 떠났다. 정민태는 구단과 오랜 줄다리기 끝에 그 해 2월 4일 7억 4000만원에 재계약했다. 이승엽이 세운 금액보다 1억 원 이상 많은 액수다. 팀의 세 번째 우승과 본인의 한국 시리즈 MVP 수상, 다승왕 등의 업적이 반영된 금액이기도 하다. 두 선수의 한계를 모를 연봉 전쟁은 '절대자'의 등장으로 일단락 됐다. 2003년 말, 삼성은 현대에서 활약하던 심정수를 당시 FA 최고액인 4년 60억 원(2005년 7억 5000만원으로 당시 연봉 1위)을 주며 모셔왔다. 물론 이승엽의 오랜 일본 생활과 뚜렷이 기량 저하를 보인 정민태 등 당사자의 일이 컸지만 말이다. 21세기 연봉 전쟁은 어떤 결말을 보일까. 온라인팀=이상서 기자 coda@joongang.co.kr
2016.01.1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