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6건
영화

‘악에 바쳐’ 이진리 “‘연참’ 재연배우 알아봐 이런게 인지도구나”[일문일답]

배우 박유천의 영화로 유명세를 탄 ‘악에 바쳐’는 극장 개봉을 추진하다 무산됐다. 다행히 IPTV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 이 영화에서 눈에 띈 인물은 박유천과 호흡을 맞춘 이진리였다. 영화는 박유천이 맡은 태홍과 새터민 출신의 홍단(이진리 분)은 서로를 위로하고 구원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진정으로 마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진리는 말 많고 탈 많았던 박유천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발산하며 캐릭터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영화를 대중에 공개한 소감은. “지난해 개봉을 하려다 무산이 됐는데, 이전에 코로나 팬데믹 시기여서 촬영이 딜레이도 됐고 로케이션 장소도 구하기 어려웠다. 촬영 일정이 워낙 타이트해 개봉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극장 개봉은 못 했지만 IPTV를 통해 오픈하게 됐다. 그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역 박유천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외적인 부담은 없었다. 여자 주인공이 먼저 캐스팅된 상태였다.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상대가 누가 됐든 홍단 역할을 잘 해내 작품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박유천 선배의 각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부담이었던 점은 무엇이었나. “준비를 열심히 해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오히려 연기가 잘 안 나온다 느껴져 아쉬웠다. 3~6개월가량 준비를 했는데 촬영 시간이 많지 않아 내 노력을 작품에 녹이기까지 어려웠다.” -박유천에 대해 느낀 점은 무엇인가. “배우로서 존경하게 됐다. 신인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게 껄끄러울 수 있는데 나를 존중해주는 게 느껴졌다.” -새터민에 아이가 있는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나. “나와 비슷한 부분이 아예 없었다. 새터민인데 어릴 때 낳은 아이가 불치병이라 한국에서 병원비를 보태려 사채를 이용했다 사기를 당해 돈을 강탈당한 상황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업소에서 일하는데 일하는 곳도 서울이 아닌 차이나타운이라는 설정. 그야말로 생계와 딸을 위해 사는 사람이었다.” -캐릭터에 공감이 간 지점은. “홍단이를 오래 준비하다 보니 애착이 많다.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감독님의 홍단이로 보이고 싶었는데 준비를 하면서 내가 홍단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받았다. 홍단이가 극 중 송금 브로커에게 돈을 뺏기고 주저앉아 우는 장면을 찍었을 때 감독님이 컷을 한 뒤 꼭 안아줬다. 드디어 홍단이가 됐구나 하는 마음에 뿌듯했다.” -새터민 연기는 어떻게 소화했나. “탈북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정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또 예능 ‘지금 만나러 갑니다’도 많이 봤다. 아름답고 예쁜 분들의 탈북 이야기를 들으며 연기에 도움을 받았다. 새터민 유튜버와 연락이 닿아 전화 통화를 하면서 도움을 구했다.” -서울말, 북한말, 중국어까지 극 중 다양한 말씨를 구사했는데. “촬영을 준비하는 3개월 동안 언어도 배웠다. 사실 제일 연기하며 가장 아쉬웠던 것이 언어적인 부분이었다. 짧은 대사이긴 해도 아쉬웠다. 제작진 중에 중국인 스태프가 있어 틈틈이 지도를 받았다. 그럼에도 한계는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강남역 한복판서 촬영한 점이 눈에 띄었는데. “다행히 코로나 시국이라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역에서 촬영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알아보는 분들이 적어 길거리를 활보했다.” -이진리라는 이름이 인상적인데. “예명이다. 진리라는 이름은 어느 날 반신욕을 하며 책을 읽는데 진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예명으로 하면 어떨까 가족들과 상의해 결정한 이름이다. 영화 활동을 하면서 진리로 부르고 있는데 아직도 어색하다. 할아버지가 지어준 본명은 선주인데 개명을 준비 중이다.” -예능 ‘연애의 참견’ 재연배우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연참’ 활동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임팩트 있는 캐릭터 덕분에 많이 알아봐 준다. 공연 쪽으로 오래 일했는데 ‘연참’으로 알아보는 일이 많았다. ‘이런 게 인지도구나’하고 TV의 힘을 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배우 이진리로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인지도 경험은 있었나. “식당에 갔는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면서 사인을 요청하더라. 사인이 없을 때라 이름 석 자를 적었다. 사인을 만들어 나중에 바꿔드리겠다고 했다.” -원로배우 이순재가 스승인데.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1기다. 석좌교수님과 학생으로 직접 연기를 배우고 공연도 함께 만들었다. 1기에 대해 애착이 있어 많이 예뻐한다. 나에게 은사님이자 정신적 지주다.” -올해 결산을 하자면. “작품 복이 있기보다 인복을 받았다. 주변에서 도와주려는 분들이 많았다. 회사도 들어갔다. 이제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 더 분방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 이현아 기자 lalalast@edaily.co.kr 2022.12.08 08:50
연예

[종합IS] '사랑을 싣고' 하리수, "고교 은사님 덕분에 내 인생 살았다"

방송인 하리수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응원해준 고등학교 은사님을 만나 울컥했다. 남고를 다녔던 그는 졸업앨범도 공개하고 "은사님 덕분에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지난 29일 방송된 KBS1 예능 'TV는 사랑을 싣고' 77회에는 하리수가 출연해 분당 낙생고등학교 학생주임 전창익 선생님을 찾아 나섰다. 하리수가 재학시절 남고였는데, 전 선생님에 대해 그는 "고등학교 들어가선 좀 더 예쁘게 하고 싶지 않냐. 그 시기 제 자존감이 형성되도록, 하리수가 세상 앞에 설 수 있도록 해주신 선생님"이라고 소개했다. 전 선생님은 하리수의 소지품인 화장품 등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다고. 당시를 회상한 하리수는 "학생주임 선생님이니까 반에 와서 소지품 검사도 하고 용모 체크도 하시지 않냐. 아무래도 저는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가방 속에 화장품이 있고, 손톱고 길고, 머리도 제일 길었다. 저를 놀리거나 하신 게 아니라 아이들한테서 저를 보호해 주셨다. 저를 저로 인정해준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 당시 다른 친구들하고 다르다는 걸 알고 계셨는지 여쭤보고 싶다"고 궁금해 했다. 또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시간 동안 전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다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삶을 택하고 살아가며 삶의 원동력이 됐다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은퇴 후 캄보디아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봉사중이었다. 학창시절의 하리수를 "조용하면서도 자기 의지를 갖고 있었다. 남학생이 여성적이라는 생각은 안 했고, 그냥 단지 경엽이 다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게 하리수다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라고 떠올렸다. 또 소지품에 대해선 "당황을 했다. 보는 순간 '이걸 어쩌니' 했는데 옆에 아무도 없더라. 그래서 남이 볼까 봐 덜덜덜 하면서 얼른 숨겼다. 자기 존재를 나타내는 게 지적을 받을 일인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해 하리수를 눈물짓게 했다. 하리수는 "선생님 덕분에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를 방황하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 사실 저는 졸업하고 나서 이렇게 학교를 찾아오는 걸 꿈꿔보지 못했다. 인생이 좀 남다르잖냐. 남다르다는 것을 이해해보려고 얘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없다"면서 감사인사를 전했다. 선생님은 "본인은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준 것도 사실이다. 나도 교직을 끝내고 꿈도 없는 나이가 됐잖냐. 선생님도 너로 인해 다시 꿈 꿀수가 있는 거 같다. 네가 너무 자랑스럽고 선생님이었다는 게 행복하다"라고 눈물을 흘리는 하리수를 다독였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20.05.30 08:26
야구

이범호가 떠올린 '나의 은인 셋' 그리고 김태균

"저를 만들어 주신 분이라면, 어린 시절 은사님부터 포함해야겠네요." KIA 이범호는 은퇴 인터뷰 도중 '선수 이범호를 만든 은인 세 명을 꼽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이범호를 '만든' 분이라고 하면 프로 입단 전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다"며 세 은사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박태호 영남대 감독이다. 박 감독은 이범호가 대구고에 다니던 3년간 코치로 일하면서 건실한 내야수 제자의 기틀을 다졌다. 이범호는 "대구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다들 알지 않느냐. 기온이 섭씨 40도 가까이 올라가던 시기였는데, 오후 2시 대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코치님이 쳐 주시는 펑고를 받았다"며 "어린 시절 나는 그저 그런 선수였는데, 감독님은 그 훈련을 3년 동안 하면서 나를 단련시켜 주신 분"이라고 했다.이범호가 고3이던 시절 대구고는 전국 대회를 '무승'으로 끝냈다. 이범호는 "1년간 2무13패를 기록했다. 나의 졸업과 동시에 대구고 원래 감독님께서 물러나시고 박 코치님이 대구고 감독으로 올라가셨다"며 "당시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아 나는 프로에서 주목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정영기 전 한화 스카우트팀장이 2000년 신인 2차 지명 1라운드에서 대구고 내야수 이범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범호는 "그때 정영기 스카우트께서 '내 목을 내놓더라도 이 선수는 뽑아야 한다'고 외치셨다고 들었다"며 "1승도 못 한 팀에서 뛰던 나를 한화로 데려가셨다. 그분 덕분에 내가 프로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프로 선수가 된 이범호는 4년 뒤 한화 감독으로 부임한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과 인연을 맺게 됐다. 이범호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 본 김 감독은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두 차례나 이범호를 국가대표 내야수로 선발했다. 한국 야구가 각각 WBC 4강과 준우승 신화를 쓰면서 르네상스를 열었던 시기다. 이범호는 "김 감독님은 내가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다.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WBC도 못 나갔을 것"이라고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KIA로 팀을 옮긴 뒤에는 김기태 전 감독님을 만나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었다"며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다른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인사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화와 KIA에서 프로 생활의 절반씩을 보낸 이범호는 다음달 13일 광주 KIA-한화전에서 은퇴식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범호는 "한화전에서 은퇴하고 싶어 날짜를 신중하게 조율했다. 전반기가 끝나기 전 주말 경기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때로 정하게 됐다"며 "최대한 팀에 폐를 끼치지 않고 마지막까지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김)태균이는 꼭 한 번 안아 주고 떠나고 싶다"며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광주=배영은 기자 2019.06.20 11:20
스포츠일반

[창간 단독 인터뷰] 윤성빈 “아이언맨 헬멧…국내 스켈레톤 알리는 데 큰 역할”

"내가 잊히지 않기 위해선 스켈레톤이 잊히지 않도록 해야겠죠." 아시아 '최초'의 썰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24·강원도청)의 이름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윤성빈은 썰매 종목 역사에 한국 최초자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로 영원히 기록될 선수다. 그러나 윤성빈은 '최초'라는 이름 앞에 한없이 겸손했다. "최초라는 단어, 굉장히 좋은 단어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은 그는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에 영원히 내 이름이 남게 된 건 좋다. 그러나 어떤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고, 잊히지 않기 위해선 스켈레톤이라는 종목 자체가 계속 기억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최초의 메달리스트로서 느끼는 책임감을 전했다.한국 최초의 스포츠신문으로 1969년 창간된 일간스포츠가 창간 49주년을 맞아 한국 최초, 더 나아가 아시아 최초의 썰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을 만났다. 새 시즌 준비를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윤성빈은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무실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나 찬란했던 2018 평창겨울올림픽의 기억과 스켈레톤에 대한 얘기를 풀어놓았다. - 평창올림픽이 끝나고 약 반년이 지났다. 어떻게 지냈나?"올림픽에 대한 것들은 잊고 원래 했던 것처럼 운동하고 있다. 올림픽을 잘 치르긴 했지만 그 전후에 뭐가 달라졌다라는 차이점을 두진 않는다. 올림픽이 선수로서 내 마지막 목표인 것은 아니지 않나.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시긴 한데 그건 좋은 거니까, 그런가 보다 한다. 지금은 다시 시즌을 준비 중이다. 올림픽 챔피언이 되고 나서 치르는 첫 시즌이지만, 부담을 갖기보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똑같이 할 생각이다. 성적에 대한 부담? 그건 크게 없다. 해 왔던 대로 하면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 2018년의 윤성빈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우선 윤성빈에게 평창이란?"늘 했던 대답인데.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알리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더 큰 목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고,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적을 계속 유지하고 싶다. 항상 최고를 유지했던 선수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나도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 앞에 내가 나타났듯이, 언젠가 내게도 라이벌이 나타날 거다. 가급적이면 우리나라에서 나를 위협하는 선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고, 그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한다.(웃음)" - 평창은 윤성빈의 인생을 어떻게 바꿔 놓았나?"인생에 있어 달라진 점은 크게 없다. 대신 마음의 짐을 덜어 놓은 것 같다. 정말 모든 걸 걸고 준비했던 대회니까.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 나 스스로 많이 실망했을 것 같다. 책임감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지만 도와줬다고 무조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스스로에게 그런 압박감을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대신 내가 할 것만 하자 싶었다. 다행히 올림픽이 열리는 경기장이 홈 트랙이었고, 항상 훈련해 온 장소다 보니 집보다 더 편해서 멘틀적으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 평창에서 메달을 따던 그 순간의 감격, 아직도 생생한가?"1차부터 4차 시기까지 모든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좋았던 것보다 아쉬웠던 게 많이 기억에 남는데 1차 시기 때 보신 분들은 잘 모르셨을 수도 있지만 실수가 많았다. 그때 나를 시작으로 해서 강한 선수들이 뒤따라 내려오는 순서였는데, 끝나고 '이렇게 하면 (금메달은)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실수를 안 하는 곳에서 실수했기 때문에, 반대로 실수를 안 하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 두 번째 키워드라면 역시 '아이언맨'이다. 윤성빈에게 아이언맨이란?"아무래도 아이언맨이 국내에 스켈레톤을 알리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일반 헬멧을 썼다고 하면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한편으론 아이언맨 헬멧을 올림픽 때만 쓴 게 아니라 거의 대부분 사용했는데, 올림픽이 돼서야 알려진 걸 보고 확실히 대회 전엔 관심을 얻기가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많이 바뀌었다는 게 실감 나고, 올림픽이 끝난 뒤 많은 힘을 얻었다." - 영화 '아이언맨' 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성덕(성공한 덕후의 줄임말)'이 된 기분은?"같이 있는 공간에 들어설 때부터 조금 현실감이 없었다. TV로만 보던 국내 스타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와 또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아무래도 히어로물 영화 주인공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살면서 긴장이라는 걸 해 본 기억이 없는데, 선수들이 큰 대회에 나갔을 때 머리가 하얘지고 눈앞이 안 보인다는 얘기를 그때 이해하게 됐다. 질문도 많이 준비했는데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겠고, 지금도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인터뷰한 동영상은 딱 한 번 봤는데 그 이후 못 보겠더라(웃음)." - 세 번째 키워드는 '스승'이다. 스켈레톤 인생에서 윤성빈을 이끌어 준 스승을 소개해 달라."첫손에 꼽힐 분은 역시 지금 감독님이신 이용(40) 감독님이다. 팀 전체가 하나가 돼 다 같이 똑같은 마음으로 노력하는 데 있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서로를 믿고 의존하면서 신뢰를 쌓아 갈 수 있도록 체계를 만드신 분이다. 또 고등학교 때 은사님(김영태 당시 신림고등학교 체육교사) 덕분에 스켈레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체육 쪽에서 재능을 보여 드릴 만한 걸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웃음),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나를 잘 봐 주셔서 추천해 주신 덕분에 선수를 하게 됐다. 그리고 내가 선수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게끔 해 주신 리처드 브롬리(42) 코치. 선수를 하면서도 몰랐던 부분이 많았는데 스켈레톤이라는 종목을 더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쉽게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다. 외국인 코치지만 서로 많은 대화를 하고, 믿음과 신뢰를 통해 최적의 것을 만들어 가고 있다." - 네 번째 키워드는 소속사 선배기도 한 '피겨 여왕' 김연아다. 똑같이 비인기 동계 종목에서 한국 최초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고, 여러모로 많은 부분을 배웠을 것 같은데 어떤가."내가 선수 생활을 하기 전부터 정상에 계셨던 분이다. 선수 생활 전후에 봤던 느낌이 많이 달랐다. 선수 생활을 하기 전에 봤을 땐 '와, 정말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선수가 된 뒤, 내가 그 입장에 서 보게 되니까 단순히 '와, 대단하다'는 감상 그 이상이다. 대단한 걸 넘어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본보기 같은 선배다." - 지금의 윤성빈을 만든 마지막 키워드는 스켈레톤이다. 스켈레톤을 하지 않았다면 뭘 하고 있었을 것 같나."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으니 체육이나 스포츠 관련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들과 축구하고 농구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다른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하진 않았을까?) 그건 모르겠다. 다른 종목을 했을 만한 계기가 없었을 것 같다.(웃음)" - 윤성빈을 보고 스켈레톤선수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한마디 해 준다면?"스켈레톤은 접하기도 힘들지만 일단 시작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부터 힘든 종목이다. 그러나 시작하려는 어린 선수들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망설일 필요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다." 김희선 기자 2018.09.21 06:00
연예

[리뷰IS] '골목식당' 황치열X남보라, 웃음+눈물 오가는 '치보당' 오픈기

황치열 남보라의 '치열한 보라식당'이 정식 오픈했다.18일 방송된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 신흥시장 편에서는 지난 주 가오픈에 이어 정식 오픈한 '치열한 보라식당'의 모습이 그려졌다.본격적인 오픈 전 백종원은 가오픈에서 문제가 됐던 미숙한 손님 응대 등에 대해 꼬집었다. 특히 탄 음식을 서비스라며 손님에게 준 것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는 남보라는 주방을, 황치열은 홀을 담당할 것을 당부했다. 백종원은 "처음치고는 잘했지만 장사는 실전이다"고 조언했다.이윽고 '치열한 보라식당'이 본격 오픈했다. 떨린다던 두 사람은 서로를 다독이며 차분히 식당을 운영했다. '첫째병'이 있다는 남보라는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 쓰며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황치열은 남보라의 보조를 맞춰가며 균형을 잡았다. 백종원에게 배운 대로 손님은 한 팀씩 받았고, 덕분에 남보라는 한층 수월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이때 한 손님이 남보라에게 "나 기억하니?"라고 물어 남보라를 놀라게 했다. 알고 보니 남보라의 중학교 은사님이었던 것.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는 선생님을 보며 남보라는 반가움을 표했다. 뜻밖의 만남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뿐만 아니라 남보라의 가족이 총출동해 남보라를 지원사격했다.차츰 긴장이 풀려가자 위기가 따라왔다. 물병에 물을 채우던 남보라가 잠시 한눈을 팔며 바닥에 물이 넘쳐 물바다가 된 것. 이를 발견한 남보라는 당황해 허둥지둥 바닥을 닦기 시작했고, 남보라의 오빠까지 합세해 뒤처리를 도왔다. 이어진 예고편에서는 남보라가 눈물을 보이기도 해 그 사연을 궁금케 했다. 황치열과 남보라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까 주목된다.정여진 기자 jeong.yeojin@jtbc.co.kr 2018.05.19 10:12
연예

[현장IS] '졸업' 워너원 박지훈·박우진 "더 멋있어질게요" [종합]

워너원 박지훈과 박우진이 같은 날 졸업하고 '분쏘단'의 20대를 열었다.박지훈과 박우진은 각각 8일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와 한국예술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3년간의 고교생활을 함께한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다.박지훈은 일간스포츠에 "이렇게 벌써 졸업을 한다는게 정말 너무 기쁘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자리잡는 거 같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게된 이유는 정말 저희, 그리고 저를 좋아해주시는 여러분들 덕분에 이렇게 영광스럽게 졸업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라고 졸업소감을 밝혔다. 또 "항상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고요, 앞으로도 항상 여러분들께 빛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다짐했다.박우진 또한 "졸업을 축하해주신 모든분들 정말감사드립니다! 졸업을 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학교가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라며 학교에 아쉬운 마음도 내비쳤다. "정말 잘 챙겨주신 담임선생님 감사합니다! 졸업한 뒤에 더 멋있는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부모님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라며 은사님과 부모님께 인사했다.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워너원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특히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 식장 내외부로 팬들이 몰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박지훈 외에도 NCT 마크, 온앤오프 라운('믹스나인' 김민석), SF9 찬희, 골든차일드 동현, 위키미키 김도연, 구구단 강미나, 프리스틴 예하나, 에이프릴 나은, 오마이걸 아린, 우주소녀 여름·다영 등이 같은 학교에서 졸업을 맞이해 취재진도, 팬들도 많았다. 워너원은 3월 컴백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박지훈과 박우진은 성인이 된 만큼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활동에 임할 예정이다.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사진=박찬우 기자 2018.02.08 10:42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