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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피플] ‘장미 세례’ 헐크가 대구 찾을 라이언킹에게…"마음이 새롭고, 복잡하겠죠”

선수 시절 '국민 타자'라 불렸던 이승엽(47) 두산 베어스 감독은 KBO리그 최고의 레전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이었다. 대구 토박이로 자란 이 감독은 일본프로야구(NPB) 커리어를 빼면 오직 삼성에서만 뛰었다. '순혈' 냄새가 짙은 '라이언킹'이라는 별명도 있었다.그 이승엽 감독이 마침내 대구를 찾는다. 두산은 오는 25일 대구 원정 3연전을 치른다. 은퇴 후 해설위원과 KBO 홍보대사로 일했던 이 감독이 유니폼을 입고 대구를 찾는 건 2017년 은퇴식 후 처음이다.이승엽 감독은 지난 22일 경기 전 인터뷰에서 "(대구를 처음 찾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지금 입고 있는 건 두산 유니폼이고, 우리 팀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만 본다"면서도 "지인들에게는 연락이 많이 왔다. (나를 보러) 야구장을 찾으시겠다고 하더라. 경기에 들어가면 냉정해져야 하지만, 감회가 새롭긴 새로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엽 감독과 똑같은 길을 걸었던 선배가 있다. 이 감독의 대구 중앙초 선배이자 그보다 10여 년 먼저 삼성의 간판스타로 활약했던 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다. 그는 KBO리그 역대 1호 안타·타점·홈런, 100호·200호 홈런, 최초의 타격 트리플 크라운까지 기록했던 원조 스타였다. 이승엽 감독은 학창 시절 이만수 이사장을 보고 자랐고, 1995년 삼성에 입단해 3년간 당시 최선참과 막내로 함께하기도 했다.동남아시아 야구 보급에 힘쓰는 중인 이 이사장은 최근 라오스 대표팀과 함께 한국을 방문 중이다. 22일에는 두산의 초청을 받고 시구를 위해 서울 잠실구장을 방문, 이승엽 감독과 해후를 즐겼다. 이승엽 감독은 "이 이사장님은 선수 시절 눈도 못 쳐다볼 정도인 대선배님이셨고, 어릴 때부터 우상으로 삼던 분이셨다. 뵐 때마다 항상 반갑고 즐겁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주시는 분"이라고 했다.이승엽 감독이 지도자로 삼성에 있지 않았듯 이만수 이사장도 타향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쌓았다. 은퇴 후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건너가 불펜포수코치를 역임했다. 2007년부터는 SK 와이번스에서 수석 코치와 퓨처스(2군)리그 감독을 거쳐 감독대행과 1군 감독까지 맡았다.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7년에 이르는 지도자 경력 중 삼성은 없었다. '삼성맨'은 아니었지만, 1980년대 '만수 아재'를 외치던 삼성 팬들은 돌아온 이만수 이사장을 열렬히 환영했다. 2007년 5월 22일 삼성-SK전 클리닝 타임이 되자 대구 팬들은 SK 수석 코치로 돌아온 이 이사장에게 22송이의 장미꽃을 던졌다. 삼성의 영구결번으로 남은 이 이사장의 선수 시절 등번호(22)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16년이 지나 후배 이승엽 감독도 똑같이 대구를 찾게 됐다. 이만수 이사장은 "이승엽 감독이 대구 방문에 대해 (의미 있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걸 보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라며 웃으며 "나도 그랬다. 겉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복잡한 생각이 들 거다. (익숙한 곳인데도) 다른 구장을 가는 것보다 더 새롭다. 이 감독은 대구하면 상징적인 선수 아닌가. 너무 잘해줬던 선수였으니 대구 팬들의 반응도 굉장히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만수 이사장은 "나도 대구를 찾았을 때가 은퇴 후 10년 만에 간 것이었다. '백만 송이 장미' 노래 제목처럼 엄청나게 많은 장미 송이를 팬들로부터 받았다"며 "이승엽 감독도 많은 분이 호응해 주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2023.04.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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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주유소에서 붉은 비룡까지, 와이번스가 남긴 순간들

신세계그룹 이마트가 SK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 전망이다. 지난 2000년 3월, 인천에서 태어난 비룡이 남긴 21년의 역사를 사진으로 되돌아봤다. ▶'푸른색'의 비룡군단 2000년 쌍방울 레이더스 인수 후 재창단한 SK는 지금의 붉은색보다는 짙은 푸른색 유니폼이 더 눈에 띄었다. 일각에선 주유소와 같다는 얘기도 있었다. 초대 감독인 강병철 감독 이후 2003년 조범현 감독이 부임, 이어 FA로 박경완이 입단하면서 돌풍을 예고한 SK. 시즌 막판 접전 끝에 4위를 차지하며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강호 삼성과 KIA를 물리치며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는다. 상대는 90년대 후반부터 최강팀으로 자리 잡았던 현대 유니콘스. '인천'이라는 연고지를 쓴 두 팀의 매치업으로 팬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SK는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공의 적' 김성근 감독의 SK SK는 2006년 그룹의 CI를 붉은색으로 바꾸며 변화를 맞이한다. 특히 구단은 조범현 감독과 결별 후 김성근 전 LG 감독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하며 KBO리그에 신흥 강호로 자리 잡게 된다. 2007년 창단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한국시리즈 3회 우승, 1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2000년대 후반 최강팀임을 입증했다. 특히 국가대표 에이스 김광현을 시작으로 최정, 정근우, 박경완 등 맹활약했다. '가을야구'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조동화, 박정권 등 선수들의 활약 역시 우승의 원동력 중 하나였다. ▶김성근 감독 그 이후 영원할 것 같았던 SK와 김성근 감독은 2011년 초부터 금이 가기 시작한다. 구단과 재계약 문제로 갈등이 이어지다 김성근 감독은 8월 "시즌이 끝나면 떠나겠다"고 선언했고, 구단은 다음날 김 감독을 경질했다. 후임은 이만수 감독 대행이 맡았는데, 당시 일부 SK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대해 항의하며 구단과 이 감독 대행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1년 이만수 감독대행 체제로 다시 한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SK는 KIA와 롯데를 꺾고 5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다. 하지만 삼성에 패배하며 준우승을 거둔다. 다음 해인 2012년에는 이만수 정식감독과 함께 시작한 SK.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롯데를 꺾고 6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으나, 이번에도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삼성을 넘지 못했다. ▶다시 등장한 '가을'의 SK, V4 SK는 이만수 감독이 2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탈락한 뒤 김용희 감독을 선임한다. 하지만 부임 첫해 와일드카드에서 1패 하며 탈락, 이듬해에는 6위로 가을야구에 참석하지 못한다. 이후 구단은 김용희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고,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게 된다. MLB 출신 트레이 힐만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SK는 첫해 다시 한번 와일드카드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이듬해 강력한 홈런군단을 앞세워 정규시즌 2위를 거둔다. 플레이오프에선 극적인 끝내기 홈런 끝에 넥센(현 키움)을 꺾고 201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는다. 상대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던 두산. 하지만 SK는 팀컬러인 '홈런'을 앞세워 6차전 접전 끝에 V4를 달성한다. 김우중 기자 사진=IS포토 2021.02.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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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스토리] SK의 지난 20년 그리고 새로운 20년의 출발

SK가 올해 창단 21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2000년 후발 주자로 프로야구에 발을 내디딘 SK 구단이 벌써 스무 번의 시즌을 무사히 치렀다는 의미다. 기념비적인 변화도 꾀했다. 창단 이래 두 번째이자 무려 15년 만에 구단 CI(Corporate Identity)를 바꿨다. 창단 당시 화이트-블루 CI로 출발한 뒤 2006년 모기업 CI 변경에 발맞춰 레드-오렌지 CI를 사용하기 시작한 SK다. 올해 바뀐 세 번째 CI에는 '스무 살의 와이번스'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구단은 "와이번스의 비상과 역동적인 이미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겠다는 의지를 고루 표현했다"고 자신했다. SK는 지난 20년간 빠른 속도로 명문 구단의 기틀을 다져왔다. 초대 감독은 롯데 사령탑을 역임했던 강병철 감독. 이후 조범현 감독이 제2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팀 전력이 짜임새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조 감독 부임 첫 해인 2003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2005년에도 역시 준플레이오프 무대에 나섰다. 2007년부터는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다섯 시즌 동안 팀을 이끌었다. 이때가 SK의 전성기였다. 2007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2008년 한국시리즈 2연패,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각각 해냈다. 2009년에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각각 차지하면서 새로운 '왕조'를 일궜다. 2011시즌 도중 김 감독이 물러나고 이만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그해 무사히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고, 이 코치가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2012년 역시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했다. 하지만 2013년과 2014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해 이만수 감독이 물러났고, 이후 2년간 팀을 지휘한 김용희 감독 역시 2015년을 정규시즌 5위로 마쳐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선 게 가을야구의 전부였다. 이후 맞아들인 사령탑이 구단 사상 처음이자 KBO 리그 역대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이다. 2017년을 정규시즌 5위로 마친 힐만 감독은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정규시즌 우승팀 두산을 꺾고 8년 만의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영광을 안았다. 힐만 감독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면서 명예로운 퇴진을 한 뒤에는 2년간 프런트의 수장을 맡고 있던 염경엽 단장이 제7대 사령탑에 올랐다. 염 감독과 처음으로 함께한 지난해 SK는 정규시즌을 게임차 없는 2위로 마쳐 저력을 입증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3위 키움에 져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 모두 아랫순위였던 팀에 역전을 당하면서 마친 터라 좋은 성적을 내고도 마음껏 웃지 못했다. 이제 SK는 지난해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각오로 2020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그라운드 밖에서 극찬을 받아 온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과 사회 공헌 활동, 팬 서비스를 더 강화하는 것이 첫 번째다. 야구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지역 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겠다는 게 목표다. 그동안 SK가 모토로 삼았던 '스포테인먼트'와 '희망 더하기' 캠페인 등은 성적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타 구단의 귀감이 됐다. 무엇보다 SK 구단과 선수단에게는 '20년'이라는 귀중한 시간과 기록이 쌓였다. 삼성, LG, KIA, 롯데, 두산을 비롯한 프로야구 원년 구단들보다 18년 늦게 스타트를 끊은 약점이 서서히 상쇄되고 있다. 첫 20년을 성공적으로 보낸 SK에게 남은 20년은 역사와 전통까지 갖춘 명문 구단으로 확실히 자리를 굳힐 시간이 될 듯하다. 2020시즌이 바로 그 '새로운 20년'의 출발점이다. 배영은 기자 2020.01.22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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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화보스토리]이만수 감독, 한국프로야구 1호 홈런왕, 타점왕, 타격왕 최초 타이틀 석권

한국프로야구 1호 홈런왕, 타점왕, 타격왕 최초 타이틀을 석권한 이만수 감독.이만수 감독 인생 속으로 들어간 JTBC3FOX스포츠 사진에 담긴 숨은 이야기(사담기)출연.1958년 9월9일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부터 야구 시작."안되면 되게 하라,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해라.""안타 못 치면 도끼로 야구 방망이 부셨다"는 호랑이 상사 아버지.매일 고기와 사골국을 먹어 야구 인생 평생 밑천이 됐다고."직구 한 번 던지고 투수상도 탔는데 팔이 아파서 투수하기 싫다고 포수 시켜 달라고.""그때는 등치 좋으면 포수를 시켰어요."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삼성라이온즈 창단멤버로 입단.웬 작은 사람이 괴성을 지르니 "저 아저씨 헐크다"라는 초등학생 야구 팬 덕분에 별명 '헐크' 탄생.1983부터 1987년까지 5년동안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상 수상.1997년 최고의 타자로 선수생활 마감.2005년 시카고 화이트 삭스 코치로 팀을 월드 시리즈 우승 이끌어.2007년 SK와이번스 수석 코치로 미국생활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2011년 감독대행 신분으로 팀을 한국시리즈로 끌어 올려.2012년 감독 역임해 2014년 프로야구 감독 생활을 마쳐."미국에서 선진 야구 배운 거 한국에서 새로운 야구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이만수 수석코치 "문학구장 만원 되면 팬티만 입고 한 바뀌 뛰겠다" 며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팬들을 위해 뛰었다."2007년 5월 26일 토요일 KIA 타이거즈 전.약속한 팬티 퍼포먼스 실행.현재 야구 재능기부로 새 야구 삶을 살고 있는 프로야구 레전드 스타."야구와 교육을 통해 국내 및 라오스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사단법인을 운영중."미국 메이저리그 코치로 있을 때 선수들의 재능 기부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래서 야구를 모르는 동남아 라오스에서 '라오스의 야구 전도사'로 재능 기부 시작.라오스에 야구장 지어서 국제대회 여는 꿈 있다. "그동안 야구로 받은 사랑, 신세 진 것 갚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양광삼 기자yang.gwangsam@jtbc.co.kr/2018.05./ 2018.05.0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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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HR 도전 ②] 이만수 전 감독, "최정 하체, 콘크리트처럼 단단해"

최정(SK·30)의 50홈런 도전을 눈여겨보는 야구인이 있다. 바로 '원조 홈런왕' 이만수(59) 전 SK 감독이다.이 전 감독은 누구보다 최정을 잘 안다. 2012시즌부터 3년 동안 SK 감독을 역임하면서 최정을 가까이서 지도했다. 수석 코치와 감독대행 시절까지 포함할 경우 약 8년 동안 최정의 성장을 지켜본 셈이다. 이 전 감독이 수석 코치로 SK 유니폼을 처음 입었던 2007년 최정은 데뷔 3년 차 내야수였다. 그해 122경기를 뛰면서 처음으로 주전으로 발돋움했다.이 전 감독은 "최정은 성실하게 운동하는 스타일이다. 젊을 때부터 대형 선수가 될 것이라고 느꼈다"고 돌아봤다. 이어 "(최)정이는 타석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다. 왼발을 오픈해서 치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선수가 많은데 최정은 달랐다. 그게 장점이다"며 "한동민과 비슷한 스타일인데, 그래서 타격 스타일상 굴곡이 별로 없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이 전 감독은 '홈런' 하면 떠오르는 몇 안 되는 타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82년 KBO 리그 역대 첫 번째 홈런을 때려 냈고, 1991년에는 200홈런을 달성한 첫 번째 선수로 기록됐다. 1983년부터 3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거포 출신이다.이 전 감독은 "홈런을 한 해 50개 정도 칠 수 있다면 장거리 타자로 당연히 인정을 해 줘야 한다"며 "최정은 하체 중심이 정말 좋다. 대부분의 선수를 보면 상체나 팔로 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정이는 하체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고정돼 있다. 홈런을 많이 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그가 가장 의미를 찾는 기록은 몸에 맞는 공이다. 최정은 통산 202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고 있다. 169개인 박석민(NC)을 크게 앞선 역대 1위다. 아직 30대 초반 선수인데도 은퇴한 대선배들의 통산 기록까지 훌쩍 뛰어넘었다. 올 시즌에도 18개로 리그 4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이 전 감독은 "몸에 맞는 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이 두려우면 타석에서 바짝 붙지 못하고, 몸 쪽으로 오는 공을 피하게 된다"며 "최정은 공격적인 스타일이라 몸에 많이 맞는다. 그리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타구를 당겨서 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년에 40홈런을 때려 내면서 홈런과 타격에 눈을 떴다. 그 자신감이 올 시즌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고 최정의 홈런 퍼레이드를 흐뭇해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7.09.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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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김시진·양준혁, 12~13일 '클래식 씨리즈'서 팬서비스

이만수·김시진·양준혁 등 삼성 출신 레전드가 오는 12~13일 롯데와의 '클래식 씨리즈 & 7080 Retro' 행사에서 사인회와 시구·시타 등을 맡는다. 삼성은 8월12일과 13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열리는 롯데와의 홈게임에서 ‘클래식 씨리즈 & 7080 Retro’ 행사를 진행한다.삼성과 롯데는 프로야구 원년팀으로 팀 명칭이 바뀌지 않은 유이한 팀이다. 양팀은 지난해에 이어 두 시즌 연속 클래식 씨리즈를 진행한다.삼성이 주관하는 이번 클래식 씨리즈에서는 레전드 사인회를 포함, 다채로운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12일 경기 전에는 삼성 출신의 이만수 전 SK 감독과 김용철 전 경찰청 감독(전 롯데 감독대행)이 합동 사인회를 갖는다. 각 선착순 100명의 팬들이 사인을 받을 수 있다. 이어 13일 경기 전에는 김시진 전 롯데 감독과 레전드 양준혁 해설위원이 각 선착순 100명에게 사인을 할 예정이다.12일 경기의 시포를 이만수 전 감독이 맡을 계획이며, 같은 경기에서 김용철 전 감독이 시타자로 나서고 김시진 전 감독이 시구를 한다. 13일 경기에선 양준혁 해설위원이 시타를 한다.지난해와 마찬가지로 12일 경기에서 삼성과 롯데 모두 올드 유니폼을 착용한다. 13일 경기에선 양팀이 각자의 선데이유니폼을 입게 된다.아울러 이틀간 경기에서 야구장을 찾은 48개월 이상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팬에게 마스코트 ‘레니’ 피규어가 선물로 증정된다. 기존의 블루스타즈빙고카드 역시 1인 1매씩 주어진다.또한 삼성은 추억의 마스코트인 ‘사돌이’와 ‘사순이’를 이번 이벤트에 호출할 예정이며, 롯데 응원단과의 합동 공연도 마련했다.12일 경기 후 열리는 ‘금토는 블루다’는 ‘7080 Retro’ 풍의 음악과 춤으로 진행될 예정이다.이형석 기자 2017.08.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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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모아보기] ‘잘해야 본전’ 야구 감독대행의 역사

'감독 대행.'말 그대로 '감독'의 임무를 대신 수행하는 자리다. 감독이 임기 도중 자리를 비우거나 팀을 떠났을 때, 차기 감독이 부임할 때까지 대신 팀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지난 23일 KBO 리그 역사에는 감독 대행이 또 한 명 추가됐다. 김성근 한화 감독이 중도 퇴진하면서 이상군 투수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다. 이 대행은 KBO리그 역대 55번째 감독 대행이다. 감독의 해임 혹은 사퇴로 대행을 맡게 된 사례로만 따지면 역대 38번째다. 김 감독이 갑자기 떠난 23일 경기부터 곧바로 대전구장 더그아웃 감독석에 앉았다.사실 감독 대행만큼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도 없다. 잘해야 본전. 성공 확률도 높지 않다. 대부분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팀을 떠난 뒤 지휘봉을 이어 받는 게 일반적이라서다.물론 예외도 있다. 2004년 7월 김성한 감독의 대행으로 나선 KIA 유남호 감독 대행은 후반기 26승 18패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하위권에 처졌던 KIA를 준플레이오프까지 이끌었다.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2001년 5월 이광은 감독의 바통을 이어 받았던 김성근 감독 대행도 그랬다. 잔여 경기 49승 42패로 승률 5할을 넘기면서 LG에 다음 시즌을 향한 희망을 안겼다. 역시 정식 감독이 돼 이듬해 LG를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드문 사례일 뿐이다. 분명한 한계가 있다. 감독이 시즌 도중 물러날 정도로 바닥으로 처진 팀이다. 정식 감독도 아닌 감독 대행의 지휘 아래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기란 쉽지 않다. 감독 대행이 자신의 역량을 펼칠 만한 환경과 권한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한 전임 감독은 "감독 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이전보다 상승한다고 해서 감독 대행의 역량으로 갑자기 팀이 달라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전임 감독이 떠나면서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효과가 오히려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실제로 역대 감독대행을 거친 38명 인사 가운데 '대행' 꼬리표를 떼고 감독으로 정식 계약한 인물은 총 14명밖에 없었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김준환(쌍방울)이 전부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전 감독을 대행해 잔여 시즌을 치른 뒤 2012년 롯데에서 프로야구 감독이 된 케이스다. 그 가운데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던 인물은 강병철 감독(1984년)과 이희수 감독(1999년)밖에 없다.김준환 감독은 1999년 감독 대행을 거쳐 그해 말 사령탑으로 선임됐지만, 이듬해 초 팀이 해체돼 정작 감독으로는 한 경기도 지휘하지 못하는 불운도 겪었다. 그동안 역대 가장 많은 감독대행이 거쳐간 팀은 LG(전신 MBC 포함)와 롯데, 현대(전신 삼미-청보-태평양 포함)다. 총 여덟 차례나 감독대행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그 다음이 감독대행 7명을 뒀던 두산(전신 OB 포함)과 해태. 그 뒤로는 삼성(5회)-한화·쌍방울(4회)-SK(3회)-넥센(1회) 순으로 이어진다. 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독 대행을 두지 않았던 팀은 2010년 이후 출범한 두 구단밖에 없다. NC는 초대 김경문 감독이 6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kt는 1대 조범현 감독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난 뒤 2대 김진욱 감독이 부임했다. 김경문·조범현·김진욱 감독 모두 임기 내 전 경기를 무탈하게 지휘했다.사실 55차례에 달하는 감독 대행 사례 가운데 약 30%(17회)는 감독의 개인 사정에 따른 '한시적 대행'이었다. 지난해 5월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게 돼 김광수 수석 코치가 15일간 지휘봉을 잡은 것과 같은 선상이다. 최초 사례는 다름 아닌 김성근 감독이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8월 김영덕 OB 감독이 보름 동안 자리를 비웠을 때 투수 코치에서 감독 대행이 됐다. 대행으로서 성적은 5승2패였다. LG 역시 초창기 고 김동엽 감독의 영향으로 감독 대행 체제가 잦았다. 해태 초대 사령탑이었던 김 감독은 1983년 MBC 지휘봉을 잡고 팀을 한국시리즈로 진출시켰다. 그러나 구단이나 선수단과의 불화로 세 차례나 팀을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유백만 코치와 한동화 코치가 전임 백인천 감독 시절부터 김동엽 감독 시절 사이에 각각 세 차례와 두 차례씩 감독대행을 맡아야 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래도 가장 여러 차례 감독 대행으로 이름을 올린 인물은 역시 유남호 대행이다. 다섯 번이나 감독 대행을 맡아 역대 최다 기록을 남겼다. 주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대신해 감독석을 지키곤 했다. 다혈질인 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 당하면,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998년 9월 4일, 1999년 5월 1일, 2000년 9월 1~3일, 2000년 10월 5일처럼 '하루 천하' 혹은 '사흘 천하'로 기록된 날이 많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배영은 기자 2017.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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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용희 감독- 박경완 수석’ 실험 나설까

SK가 이만수(56)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가운데, 야구계에서는 김용희(59·현 SK 육성총괄, 사진 왼쪽) 감독-박경완(42·현 SK 2군감독) 수석코치’ 설이 돌고 있다. IS포토 SK가 이만수(56)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신임 감독으로는 김용희(59) SK 육성총괄이 물망에 오른 가운데, 8년 전처럼 후계를 염두에 둔 '감독-수석코치' 임명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SK 구단은 새로운 수장 선임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돌입했다. 2011년 8월 감독대행을 거쳐 2012년부터 3년간 정식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은 올 정규시즌 마지막 날까지 4위 싸움을 벌였으나 결국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이만수 감독은 최근 "감독으로서 올 시즌이 마지막일지 모르지만…"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새 감독으로는 김용희 육성총괄이 강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김 총괄은 2012년부터 SK의 2군 감독과 육성총괄 등을 두루 거쳐 구단 내부 사정를 잘 파악하고 있다. 특히 구단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SK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 "감독 선임은 최대한 빠를수록 좋다.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다"고 얘기했다.야구계 안팎에선 '김용희 감독-박경완(42) 수석코치' 체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선수 은퇴와 함께 2군 지휘봉을 잡은 박경완 SK 퓨처스리그 감독은 이번 시즌 훈련량을 크게 늘이며 선수 육성에 힘썼다. 미래의 감독 후보군인 박경완 퓨처스 감독은 1군 수석코치로 지도자 경험을 쌓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대개 감독은 수석코치로 가까운 사람을 옆에 둔다. 감독을 대신해 선수 및 코칭스태프와 소통하며 가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독이 새롭게 계약할 때 기존 코칭스태프는 유지하더라도 수석코치는 외부에서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SK는 8년 전에도 감독과 수석코치를 동시에 영입한 사례가 있다. 김성근(72) 감독-이만수 수석코치 체제였다. 김성근 감독이 2006년 말 SK 지휘봉을 잡을 때 구단에선 "야구계 어른으로서 선수들뿐 아니라 코치도 키워주시면 좋겠다"며 이만수 감독을 수석코치로 강력 추천했다. 이후 김성근 감독과 이만수 감독 사이에 서로 불편한 관계가 드러나기도 를 보이기도 했으나, SK는 2007년부터 6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 3차례 우승하며 프로야구판의 강자로 자리매김했다. 김성근 감독에 이어 이만수 감독이 1군 감독에 취임하면서, 당초 구상대로 사령탑 교체가 이뤄졌다. 2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한 SK가 재도약을 위해 또 한 번의 도전과 실험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형석 기자 2014.10.21 07:00
야구

이만수 감독 “트레이드 합의 안해”

이만수(56) SK 감독이 조인성(한화)의 트레이드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이만수 감독은 4일 문학 두산전을 앞두고 취재진과 만나 "구단이 일방적으로 트레이드를 진행한 상황이기 때문에 야구를 하면서 제일 기분이 안 좋다"라고 했다. 이어 "야구인으로서, 감독으로서 '소통하자'고 말했는데…(지켜지지 않았다). 감독대행 시절부터 지금까지 좋은 야구를 하기 위해 인내를 가졌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믿음으로 인내했다"며 "그런데 이런 게 좋은 야구는 아니다. 현장과 구단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하는 건 치명적이다. 프로야구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대수의 복귀를 환영하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마음이 굉장히 아프다"고 말했다. SK는 지난 3일 포수 조인성(39)을 한화로 보내고, 내야수 이대수(33)와 외야수 김강석(29)을 받아들이는 1대2 트레이드에 합의했다. 지난 주말 대전 3연전에서 양측 관계자가 만나 트레이드를 논의했고 3일 양측 단장이 만나 합의를 이뤘다. 이만수 감독은 "무조건 안 된다고 했는데 벌써 결정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트레이드 논의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가 무시됐다는 얘기다. 그는 "2년 동안 포수 3명을 로테이션으로 돌렸다. 조인성이 부상에서 복귀하면 이재원과 정상호 등을 지명타자로 돌려 기용하려 했다"며 "포수는 다칠 위험이 많은 포지션이다. 야구에서 키는 투수가 아니고 캐처(포수)다. 제일 중요한 포지션이다. 조인성이 트레이드된 건 우리 팀의 모든 살림을 가져간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SK 구단은 적극 해명에 나섰다. SK 관계자는 "지난 월요일(2일)에 구단 사장, 단장이 감독과 상의를 했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당시 감독님이 1대1 트레이드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셨다. 다만 1대2 트레이드에 대해선 공감대가 형성돼 이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에서 1대1 트레이드를 고집했지만, 3일 양팀 단장이 2대1 트레이드에 합의해 성사됐는데, 이 감독이 갑자기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SK 관계자는 "트레이드가 된 상황을 말씀드리니 감독님이 갑자기 반대 의사를 밝히더라. 그 동안의 진행과정을 말씀드리자 '구단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난 끝까지 반대'라고 하셨다"라고 말했다.양측은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이야기가 서로 다르다. 이번 일로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됐다. SK 민경삼 단장과 이만수 감독은 4일 경기가 끝난 뒤 만나 이번 일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이형석 기자 ops5@joongang.co.kr 2014.06.05 07:00
야구

조계현 감독대행 “선수들 동요하지 않았으면…”

LG는 조계현(50) 수석코치의 감독대행 체제로 당분간 운영된다. 조계현 대행은 24일 대구 삼성전을 앞두고 김 감독을 대신해 취재진과 만났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감독대행은 총 37번(감독의 일시적인 사정으로 인한 2~3일간 대행은 제외) 있었다. 그중 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 감독이 된 사례는 14번(38%)이다. 2006년 이후로는 6명 중 감독 지휘봉을 잡은 이가 단 한 명, 이만수 SK 감독뿐이다. -잠은 잘 잤나."잤는지 말았는지…."-김기태 감독과 통화는 했나."네.(고개를 끄덕이며) '선수들이 분위기 좀 탔으면 좋겠다'고 하셨다."-이럴 때 보면 야구 감독은 참 힘든 것같다."매력은 있는데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감독대행으로 선수들에게 이야기한 게 있다면."미팅은 어제 (경기 전에) 했다. 감독님과 똑같은 얘기를 했는데 선수들이 으샤으샤해서 경기에 임했으면 좋겠다."-정신이 없을 것도 같은데."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갑작스런 일이라 안타깝다. 나도 멍한 상태이다. 나도 생각을 정리해야한다. 선수들 분위기가 빨리 올라와야 하는데, 그게 가장 걱정이다."-당분간 감독대행을 맡게 됐는데."(내가) 긍정적으로 경기하는 사람이니까…. 이긴다는 생각으로 하겠다."-직함이 바뀌었다. 감독대행이라는 어려운 자리를 맡게 됐다."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다. (감독대행을 맡아)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으니까…. 코치들이 '(직함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해 수석코치로 통일하라고 얘기했다."대구=이형석 기자 ops5@joongang.co.kr 2014.04.2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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