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현영민 JTBC 해설위원, "배우(선수)·감독·관객이 있는 2019 K리그, '극한직업' 같은 흥행 영화 되길"
지난 12일 열린 대구와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중계를 맡은 현영민 JTBC 해설위원105mx70m의 푹신푹신한 그라운드에 비하면 세상은 넓고 딱딱하다. 뭍으로 나온 물고기는 숨쉬기조차 어렵다. 그런데 현영민(40) JTBC 해설위원은 종횡무진이다. 방송중계석으로 무대가 바뀌었고, 발로 공을 차는 대신 손에 마이크를 들었다. 지난 12일 프로축구 K리그1 대구 FC와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중계를 맡은 현영민 해설위원을 대구행 기차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자마자 "올 시즌 K리그 판도를 어떻게 보냐"고 물었더니, 물 만난 고기처럼 조곤조곤 새 시즌 전망을 내놨다. "K리그는 배우(선수)와 감독 그리고 관객이 함께 만드는 한 편의 영화입니다. 올해 K리그는 '극한직업' 같은 흥행작이 됐으면 해요.(웃음)" 2002년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현영민은 2017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할 때까지 16년간 측면 수비수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K리그 기록은 437경기 출전에 9골 55도움. 우승(2005년)도 한 차례 했다. 그는 한국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한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다. 2006년에는 제니트로 이적하며 한국인 최초로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 제니트에서 1년간 활약하면서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의 전신인 UEFA컵에도 출전했다. 그는 풍부한 활동량과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과감한 돌파를 즐기고, 한때 팀의 전담 키커로 활약할 만큼 킥 능력까지 탁월했다. K리그에서 코너킥으로 골을 넣는 진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그중 롱 스로인이 전매특허. 공을 정확하게 멀리 던지는 것으로 워낙 유명해 'K리그의 로리 델랍' '인간 투석기'로 불렸다. 현 해설위원은 선수 시절 쌓은 다양한 경험이 좋은 해설을 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한 덕분에 월드컵·챔피언스리그·유럽리그 등 다양한 환경과 상황을 경험했어요. 지금은 팀 경기력만 봐도 현재 그라운드 내 선수들의 상태와 심리 등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은퇴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제가 같이 뛰어 본 선수들이 많아서 경기 전 직접 컨디션을 체크하려고 그라운드에서 만날 수 있거든요. 친분이 있는 선수들에게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신인 선수들의 장점을 자세히 물어보기도 하고요. 제가 선수들만 잘 아는 게 아닙니다. FC 서울 최용수 감독님이 대표적인데요. 저와 선수 생활을 같이 했으니까, 용수 형에서 최용수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 변하는 과정을 곁에서 다 지켜봤죠.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님도 마찬가지고요. 덕분에 감독들에게도 일반적인 질문 대신 경기 운영과 선수 기용처럼 민감한 질문도 과감하게 묻고 얘기를 끌어내려고 해요."달변가로 알려진 그는 날카로운 분석은 물론이고 선수들과 인연을 해설로 풀어 내는 편안한 해설로 축구팬들에게 호평받는다. 업데이트되는 자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일 2~3시간 축구 공부에 할애한 덕분이다. 그가 한 번의 해설을 위해 들고 다니는 자료는 보통 A4 용지 100여 장. 이 중 인터넷에서 긁어 와 프린트한 자료는 한 장도 없다. 대부분 볼펜으로 직접 꾹꾹 눌러쓴 자료다. 서재 책상 위에는 이런 식으로 준비한 자료 수천 장이 수북히 쌓여 있다고 한다. 대구로 향하는 2시간 내내 손에 든 데이터와 경기 영상을 교대로 힐끔거렸다. 현영민 해설위원은 해설을 위해 매일 축구 공부에 시간을 할애한다. 대구로 향하는 2시간 내내 데이터와 경기 영상에 눈을 떼지 않았다."선수 시절에 직접 경기를 준비하는 습관이 들었어요. 전력분석관에게 부탁해서 제가 마크해야 할 선수와 상대팀 경기를 찾아봤어요. 자료를 준비할 때도 선수들의 출전과 득점을 비롯해 작은 습관까지 일일이 손으로 써서 기록해 두면 훨씬 머릿속에 잘 남아요." 현 해설위원은 축구선수에서 해설자로 진화하는 중이다. 경기를 보는 마음가짐도 다를 수밖에 없다. "선수 시절에는 경기 전까지 어떤 플레이를 할지 고민했고, 고민이 깊어지면 예민해져서 잠을 이루지 못했죠. 그런데 지금은 여행 가듯, 설레는 마음을 갖고 축구장으로 향하죠. 물론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습니다. 선수로 뛸 때는 나만 잘하고 팀이 잘하면 됐죠. 그런데 지금은 중립적인 시각으로 경기를 봐야 하잖아요. 말실수를 해서도 안 되고요. 선수의 실수를 질타하고 잘하는 부분을 부각하고 싶어요. 팬들이 골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어느 팀이 이기든 제가 해설하는 경기는 득점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골이 터졌을 때 후배들이 평범한 세리머니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자신을 어필하고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한 편의 영화처럼 K리그가 너무 재밌어서 남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현 해설위원은 올 시즌 우승 경쟁은 예년보다 더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강팀 전북 외에도 폭풍 영입을 한 울산이 도전장을 냈어요. 빠른 공격 축구로 돌풍을 일으키는 대구를 비롯해 착실하게 선수를 보강한 인천·경남 같은 팀들도 무시할 수 없고요. 어떤 팀이 어느 시점에서 선두로 올라설지 모르니, 한 경기도 놓칠 수 없겠어요.(웃음) 게다가 올 시즌은 득점왕 경쟁도 주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말컹이 떠났지만, 주니오를 비롯해 데얀·제리치·페시치 등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이 가세해 골 전쟁을 벌일 겁니다."1979년생인 그는 동갑내기 전북 공격수 이동국에게 많은 응원을 보내 달라고 당부했다. "동국이를 보고 있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흔은 뛰고 싶다고 뛸 수 있는 나이가 아니잖아요. 경기력과 몸 상태가 모두 받쳐 줘야 하는데, 자기 관리를 정말 철저하게 했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한계를 정해 두지 않고 컨디션이 될 때까지 그라운드를 누볐으면 좋겠어요." 대구역에 내리면서 별명을 물었더니, 요즘 팬들이 랩퍼 비와이와 외모가 비슷해 '현와이(현영민+비와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현 해설위원은 "마이크를 들고 라임에 맞춰 랩을 하는 래퍼처럼 저도 말로 축구를 재치 있고 박진감 넘치게 풀겠다. K리그와 현와이를 많이 사랑해 달라"며 껄껄 웃었다. 대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19.03.29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