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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신' 노무라의 일대기…'이기는 법' 출간

강한 사람을 이기고 싶은 약자의 노력과 의지를 담은 신간〈이기는 법〉이 출간됐다. 지난 2월 숨을 거둔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 1935~2020)의 일대기를 담은 책이다. 일본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이자 감독으로 꼽히는 노무라는 야구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리더였다. 1990년대 일본 신문에는 ‘노무라 어록’이라는 고정란이 있을 정도로 그의 말과 행동은 묵직한 울림을 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연습생으로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노무라는 평생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을 연구했다. 그의 고민과 노력은 선수(플레이어)에서 감독(리더)으로 역할이 바뀐 뒤에도 계속됐다.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해졌지만 노무라의 발상 전환은 현대 야구를 크게 변화시켰다. 포수를 단지 공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으로, 개인의 능력이나 감각에 의존하는 야구가 아닌 데이터 야구로 변경시킨 사람이 노무라였다. 그의 전략은 곧 약자병법(弱者兵法)이었다. 노무라는 감독으로서 통산 1565승 76무 1563패를 기록했다. 3204경기를 지휘하면서 고작 두 번 더 이겼을 뿐이다. 그의 승률은 50.03%. 승리만큼 많은 패배를 당했지만 노무라는 ‘위대한 실패자’로 기억되고 있다. 약팀을 강팀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단지 ‘야구 기술자’나 ‘야구 전문가’에 그쳤다면 만들지 못했을 성과였다. 평생 책과 함께한 그는 야구에 인문학, 심리학, 전술학 등을 담았다. 이 책은 노무라가 남긴 100여 권의 저서 중 핵심을 추려 김식 중앙일보 야구담당 기자가 작성했다. 김우중 기자 2020.05.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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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굿바이 홈런왕

이건 옛날이야기다. 병든 홀어머니를 둔 형제가 있었다. 동생인 열 살 소년은 신문 배달로 중학생 형의 학비를 벌었다. 형은 소년이 고등학교도 가지 못할 것 같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소년은 고등학교를 어렵게 마친 뒤,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입단 테스트에 참여했다. 불펜 포수(투수 공을 받아주는 훈련 보조선수)로 입단한 소년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 선수가 됐다. 일본 야구의 전설적인 포수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1935~2020) 이야기다. 많은 책을 읽고 쓴 것으로도 유명한 노무라의 대표적 저서는『약자병법(弱者の兵法)』이다. 책 제목만 봐도 그의 야구 인생을 가늠할 수 있다. 노무라는 그리 재능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입단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구단 직원들에게 애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해고하면 난카이 전철에 뛰어들겠습니다.” 노무라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개념이 없던 시절, 빈 병에 모래를 담아 역기처럼 들면서 근육을 단련했다. 노무라는 당시 다른 포수들이 게을리했던 타격 훈련에도 집중했다. 타격이 향상되자 구단은 그를 1루수로 옮기려 했다. 포수를 하기에 노무라의 어깨가 너무 약했다. 그러나 노무라는 죽으라고 공을 던지며 어깨를 단련했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포지션에서 버텨야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다. 노무라는 입단 3년 만에 1군 선수가 됐고, 곧바로 홈런왕(30개)에 올랐다. 성공가도 위에서도 그는 참 별났다. 경기 중 손가락이 부러져도 이를 숨긴 채 시즌을 마쳤다. 부상이 커지는 것보다 후배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게 두려웠다. 젊은 시절 노무라는 처절하게 처절했다. 그냥 열심히만 한 게 아니다. 그는 “틀린 자세와 방법으로 훈련하면 나중에 교정하기가 두 배로 힘들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향을 정한 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라는 1980년 45세 나이로 선수를 그만둘 때까지 9차례 홈런왕(통산 657개·역대 2위)에 올랐다. 리그 최우수선수도 5번 뽑혔다. 키(1m75㎝)도 크지 않고 힘도 세지 않았던 노무라는 쉬지 않고 화면과 데이터를 분석했다. 노무라는 당대 최고 투수 이나오 가즈히사(1937~2007)를 공략하기 위해 밤새워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봤다. 투구 폼에서 미세한 버릇을 찾아낸 노무라는 이나오의 공을 때려내기 시작했다. 훗날 널리 유행한 일본식 분석 야구의 시작이었다. 노무라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다른 팀 선수들과 술자리 도중 한 후배가 벌떡 일어났다. 후배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야간 훈련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노무라는 “저 친구가 내 기록을 다 바꾸겠군”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배가 통산 868홈런의 오 사다하루(王貞治·80)다. 훗날 노무라는 “내가 그의 후배였으면 그를 넘어서기 위해 더 노력했을 것”이라며 말했다. 선수 겸 감독 시절을 포함해 노무라는 24년 동안 프로야구 사령탑을 맡았다. 야쿠르트 감독으로 일본시리즈에서 세 차례 우승했다. 그러나 그는 꼴찌 난카이와 라쿠텐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은 것으로 더 유명했다. 노무라는 선수들의 작은 재능을 발견해 큰 변화를 만들 줄 알았다. 정면승부를 피하되 긴 레이스를 이기는 법을 알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노무라의 데이터 해석이 굳이 필요 없을 만큼 기록이 구체적이다. 그가 했던 ‘노오력’을 지금의 선수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다만, 노무라의 야구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현대 야구는 그 기반 위에서 발전하고 있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노무라는 85세를 일기로 11일 세상을 떠났다. 가난이 싫어 야구를 시작한 소년은 많은 돈을 벌었어도 야구를 떠나지 못했다. 2002년에는 사회인 야구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나는 평생 포수”라던 그는 어디선가 누군가의 공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굿바이, 올드보이. 야구가 있는 다른 세상에서, 씨 유 어게인.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2020.02.1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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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야큐]NPB 58번째 노히트노런 투수, "무볼넷 경기가 더 가치있다"

유후네 도시로(41).한국 야구팬들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투수다. 일본 야구팬 사이에서도 1990년대 한신의 '암흑기'에 활약했던 투수 정도의 인지도다. 1991년 프로에 데뷔해 통산 60승 79패 평균자책점 3.99에 그쳤다. 하지만 이런 투수라면 오히려 ‘일본 야구’를 편견 없이 들려 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 26일 일본 오사카 고시엔 구장에서 그를 만났다.꼭 묻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기도 했다. 노히트노런이다. 유후네는 한신 입단 2년째던 1992년 6월 14일 히로시마전에서 삼진 11개와 볼넷 2개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야구 사상 58번째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장소는 인터뷰를 진행한 고시엔 구장이었다. 고시엔구장 10번째이자 마지막 프로야구 노히트 노런이기도 했다. 노히트노런의 기분은 어땠을까. - 막무가내지만, 노히트노런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노히트노런을 한 투수가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언제부터 기록을 의식했냐'이다. 그 경기 5회인가 6회인가가 지났을 때였다. 코치가 불러서 ‘너 오늘 피안타 없어’라고 했다. ‘아 그런가요?’라고 무심한 척을 했지만 던지는 사람이 더 잘 아는 법이다.(웃음) 이후 그 코치는 매 이닝 벤치에 올 때마다 내게 다가와 ‘아직도 맞지 않았어’라고 계속 말했다. 당시 포수는 팀 선배였던 기도 가쓰히코. 평소 후배 투수들을 굉장히 예민하게 다루는 포수였다. 늘 ‘차라리 맞아라. 볼넷은 죽어도 싫다’고 했다. 그런 선배가 ‘2-0 상황에 '볼넷을 줘도 좋으니까 편하게 던지라’고 했다. '노히트노런이란 이런 건가' 싶었다." - 그 코치는 누구였나. 보통 투수가 기록을 앞두고 있으면 말도 잘 안 건다고 하던데.“오카다 아키노부(웃음). 오카다 코치는 한신 스타 출신으로 2004~2008년엔 감독을 지냈다. 코치 이전에 대선배 아닌가. 우승 멤버이기도 했고, 그런 대단한 사람이 격려해주는 것에 나도 마음을 편하게 가졌다. 운도 따랐다” - 노히트노런에는 '기운'이 따라야 한다고 들었다. 등판을 앞두고 평소 루틴과 다른 점이 있었나.“보통 연습 투구 20개 정도를 하고 등판한다. 그 날은 이상하게 공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41구까지 던졌다. 원래는 20구를 던진 뒤 20구만 더 던지려 했다. 그런데 불펜 포수가 1구만 더 가자고 했고, 그렇게 41구가 완성됐다. 노히트노런 경기 뒤 은퇴할 때까지 내 경기 전 연습투구 횟수는 41개로 정해졌다. 그런데 내게는 노히트노런보다 더 중요한 피칭이 있었다.” - 뭔가.“무볼넷 완봉승이다. 1992년 9월 15일 히로시마전이었다. 투수는 안타를 맞으면 '어쩔 수 없지'라고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볼넷을 많이 내준다는 건 자멸이다. 무안타 경기는 야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볼넷 경기는 내 어깨와 팔, 손가락의 감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팀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뿌듯함이 있다. 물론 동료들도 도왔다. 지금도 노히트노런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경기가 무볼넷 완봉이다. 그 경기도 물론 연습 투구는 41개였다.” - 기록을 찾아보니 그 경기 마지막 타자가 지금 KBO 리그 KIA의 쇼다 고조 코치다.“2001년 긴테쓰로 이적했을 때, 그 분이 코치로 오셨다. 따로 불러서 긴테쓰 팀에 대해 설명을 했다. 그날 경기를 쇼다 코치도 기억하더라. ‘나에게 감사해라’라고 말했다. 쇼다 코치는 새 선수가 오면 긴장을 풀어주려 미리 신상정보를 파악했다. 일본 프로야구 12개 구단에 얼마나 많은 선수가 있겠나. 기억해주고 농을 던져줘서 긴장감이 풀렸다. 한국에서도 좋은 코치로 인정받길 바란다.” - 한신 시절 여러 감독들을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은.“역시나 노무라 가쓰야 감독(1999~2001년). 어느 원정 경기에서 늦잠 때문에 지각을 했다. 노무라 감독은 구장에 늦게 나오는 편인데 그날 따라 일찍 나왔다. 더그아웃에 들어가니 남은 자리라곤 감독 옆밖에 없었다. 다음날 선발 등판이라 쫓겨나지는 않겠다 싶었다. 감독이 갑자기 '내일 이기면 벌금은 반이다. 하지만 원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경기를 잘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선수가 성장할 수 없다는 걸 배웠다. 물론 벌금은 반값이 됐다." - 센트럴리그에선 투수도 타석에 선다. 투수 입장에서 프로 첫 타석은 어떤 기억일까.“'이것이 프로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보통 투수들은 ‘나도 고등학교때 타격 좀 했지’라는 자세로 첫 타석을 맞이한다. 내가 첫 타석에서 만난 상대 투수는 요미우리의 고다 이사오였다. 공의 궤적이 정말 처음 보는 것이었다. 타이밍만 맞춰서 휘둘렀는데, 파울이 된지도 모르고 1루로 전력질주 했다. 만원 관중이 보는 앞에서 창피했다. 그 시절에 가장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공을 던졌던 투수는 구와타 마스미였다.” ▲유후네 도시로 '노히트노런' 경기영상- 한신에서 10년을 뛰었다. 한신에선 OB들이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한다. 한신 OB회는 어떤 곳인가.“한신에서 어느 정도 활약한 선수 출신들의 모임?(웃음) 대부분 은퇴 이후에도 구단에서 일한 사람들이 많다. 동창회 같은 느낌으로 모인다. OB회의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신이라는 팀 자체가 영웅들이 만들어지는 곳 아닌가. 그들이 곧 OB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다. 과거 대선배들부터 지켜본 바론, 누가 언젠가는 감독이 될 것이라는 예상 정도는 된다. OB회는 구단이 감독 및 코치 인선, 스카우트 등 부문에서 자문을 구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랜기간 동안 협조적인 관계였다.” - 센트럴리그는 퍼시픽리그보다 팬은 많지만 홍보나 운영에서 뒤진다는 평가도 있다.“확실히 그런 이미지는 있다. 센트럴이 전통을 중시한다면, 퍼시픽에는 젊은 감각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기 보다는, 센트럴리그 구단은 요코하마 정도를 제외하면 옛날 방식을 고수할만한 기업들이 운영한다. 의사 결정 방식도 내 현역 때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실질적인 운영과 관리는 구단 고위층이 지시하고, 감독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집중할 수 있는 야구를 펼치는 그림이다. 퍼시픽리그에서 구단, 감독, 선수들가 함께 그림을 그린다면, 센트럴리그는 감독에게 붓과 물감을 마련해주고 ‘당신이 현역 때 잘 했으니까 한번 해보시오’라는 느낌이다. 그래서 잘못하면 냉정해지는 분위기는 센트럴리그 쪽이 더 강하다” - 국적을 떠나 야구가 재밌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야구는 '납득이 돼야 하는 경기'가 아닌가 싶다. 화려한 장면도 있지만, 후회가 가장 많이 되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후회되지 않기 위해서는 팬, 구단, 선수 모두 납득할 수 있게 이기고, 져야 한다. 한 시즌에 100경기가 넘는다. '오늘 이겼지만 내일은 질 거야', '오늘 졌는데 내일은 이길 수 있을까' 같은 부정적인 마음가짐이 생기게 된다. 부정적인 마음을 없애긴 위해선 납득이 가는 경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납득'이 어렵다. 내가 생각하는 '재미있는 야구'는 '납득이 되는 내용과 결과'다” 서영원(프리랜서 라이터) [야구와 야큐]일본 야구계와 선거 출마 [야구와 야큐]일본야구계가 기억하는 이승엽 “‘야큐’에 한국 야구 무서움 전해”[야구와 야큐]일본 정치인들은 언제 야구 유니폼을 입을까[야구와 야큐]2016년 세이부 감독 다나베, 올해 한화를 말하다 2017.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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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국가대표팀에 일본의 WBC가 던지는 교훈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에 여러 과제를 남겼다.국제 대회 패배는 언제나 실망스럽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교훈을 얻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번 대회 4강전에서 미국에 패한 일본의 움직임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일본 언론에선 '소통'을 대표팀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 2월 1일 오타니 쇼헤이의 대표팀 사퇴로 불거진 문제가 지적됐다. 당시 고쿠보 히로키 대표팀 감독은 오타니의 부상 상태, 컨디션을 전혀 알지 못했다. 정보 전달 체계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포츠호치는 "선수 선발에서 구단과 대표팀의 소통이 깔끔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선수, 구단, 대표팀 간 3자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실제 빨리 움직이고 있다. 라쿠텐 골든이글스 관계자는 "현재 대표팀은 12개 구단을 대상으로 대표팀에 대한 설문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선수 선발에 대한 방침, 대회 기용, 보상금, 이익금 분배 등이 포함돼 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 노조와 대화 때도 활용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표팀 운영에 대해 일본프로야구기구(NPB), 구단, 노조가 함께 의논하는 모습이다.일본 대표팀은 WBC를 앞두고 12개 구단과 선발 기용, 투수 등판 횟수와 이닝 등을 협의했고, 대체로 지켜졌다는 평이다. 대표팀을 운영하는 NPB 엔터프라이즈 관계자는 “오히려 결승전을 위해 등판 횟수를 남겨 둔 선수가 있었다. 다들 잘 활용됐다”며 만족해했다. 선발투수인 스가노 도모유키와 이시카와 아유무는 라운드별 1경기씩 등판이 내정돼 있었고, 실제로 지켜졌다. 불펜 투수 역시 최소 4경기에서 7경기 등판이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한신의 강속구 투수 후지나미 신타로는 이번 대회 1경기 등판에 그쳤다. 이 관계자는 “코칭스태프가 한국, 대만이 2라운드에 올라올 경우 후지나미를 롱 릴리버로 기용해 힘으로 찍어 누르는 그림을 구상했다”며 1경기 등판에 그친 이유를 설명했다. 또 “후지나미는 제구력이 나쁠 때가 있기 때문에 중남미를 상대로는 나쁘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주니치 드래건스 소속 좌완 불펜 오카다 도시야도 2라운드 한국전 좌타자 상대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후문이다.대회가 끝나자 고쿠보 감독이 사퇴했다. 3년 반 이상 진행된 '사무라이 재팬' 1기 프로젝트가 막을 내린 것이다. NPB 엔터프라이즈 관계자에게 차기 대표팀 감독 조건에 대해 물으니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조건은 현직 프로 감독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임 감독제로 프로야구에 부담을 줄이기로 내부 합의를 해 놓은 상태다. 다양한 선수들에게 선망받는 위상, 해외 야구에 대한 지식 혹은 경험이 다음 조건이었다.현재 일본 언론은 마쓰이 히데키의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설을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NPB 엔터프라이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 가지 조건이 모두 들어맞는다. 현역 프로 감독이 아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뉴욕 양키스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한 마쓰이다.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도요우라 쇼타로는 “감독은 나를 알고 적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까지 감독들은 내수용이었다. 이젠 국제용 감독으로 더 큰 경쟁력을 가지려 한다는 것”이라며 새 감독에 대한 조건들을 해석했다.마쓰이 외에 요미우리 출신 하라 타츠노리, 소프트뱅크 전 감독 아키야마 고지, 요코하마 전 감독 나카하타 기요시 등도 물망에 오른다. 하라 전 감독은 2009 WBC에서 우승했고, 아키야마는 신인 시절 세 차례 미국 교육 리그에서 뛰었다.쓴소리를 하는 인물도 있다. 일본 야구 풍토에 비판을 아끼지 않는 전 요미우리 투수 구와타 마스미다. 그는 준결승전 3루수 마쓰다 노부히로의 결정적인 실수에 대해 "일본 야구 환경이 나은 결과”라고 일갈했다. 이어 “일본 구장 중에 메이저리그에 흡사한 구장이 없다”며 “선수들은 적응만 하다 대회가 끝나 버릴 수 있다”고 했다. 마운드·내야·외야 그라운드 상태를 선진국과 비슷하게 하는 게 일본 야구의 과제하는 지적이다. 그는 “일본 야구장 환경은 선수들이 수비하기에 너무 쉽다"고 했다.구와타는 데이터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메이저리그의 버스터 포지, 야디에르 몰리나 같은 포수는 데이터를 활용할 줄 안다. 일본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소 의외다. 한국에서 일본 야구는 흔히 '데이터 야구' ' 현미경 야구'로 불린다. 구와타는 “고바야시 세이지는 훌륭했지만 세계 정상 포수와 경쟁할 순 없었다. '프레이밍(존 경계선 볼을 스트라이크로 잡아내는 능력)이라 불리는 포수 데이터를 일본도 공부하고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야구의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일본은 4회 대회 연속으로 4강 이상 성적을 냈다. 1·2차라운드 합계 41만5606명이 입장해 대회 전체 관중(108만 6720명)의 3분의 1 이상을 기록했다. 이를 바탕으로 닛칸겐다이는 "이제는 준결승전도 일본에서 치르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관중뿐 아니라, 노무라증권, 일본통운 등 일본 대기업들이 대회 스폰서에 대거 참여했다.일본 내 WBC 주관방송국 도쿄텔레비전의 이번 대회 평균 시청률은 25.2%였다. 그러나 비일본 경기 시청률은 결승전(2.9%)을 제외하면 1%를 오갔다. 중계권사인 제이스포츠(J sports) 관계자는 "다른 나라 경기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방법을 회의 안건으로 올린 적이 있다. 다른 나라 야구를 어떻게 재밌게 보여 줄까가 포인트”라고 말했다.일본 야구계는 2018년 11월 미·일 올스타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9 프리미어12, 2020 도쿄올림픽, 2021 WBC까지 준비하고 있다. 다가올 대회들을 새로운 플랜으로 접근하려 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단어는 '소통'이다. 어쩌면 한국 국가대표팀엔 기대와 부담, 책임과 의무 등만 너무 강했던 것 아닐까.도쿄=서영원(프리랜서 라이터) 2017.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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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홈런' 美日 도합 10명 밖에 넘지 못한 대기록

600홈런은 거포들을 위한 숫자다. 한국 프로야구보다 역사가 길고, 시즌 경기 수가 많은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그렇다.14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600홈런을 넘긴 타자는 배리 본즈(전 샌프란시스코·762개)를 비롯해 8명 밖에 없다. 현역 선수론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가 589홈런 으로 600홈런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수많은 슬러거들이 도전에 실패했다.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데이비드 오티스(보스턴)의 통산 홈런은 534개다. 추신수(추신수)의 팀동료 아드리안 벨트레의 개인 통산 홈런은 440개. 벨트레는 메이저리그 통산 19년 중 17시즌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꾸준함의 대명사다. 하지만 500홈런도 넘어서지 못했다. 1998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첫 시즌 70홈런을 넘어섰던 마크 맥과이어(당시 세인트루이스)도 통산 홈런 583개에서 유니폼을 벗었다. 사상 최고의 스위치히터로 불리는 뉴욕 양키스의 슈퍼스타 미키 맨틀의 통산 홈런은 536개다.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홈런왕 오 사다하루는 개인 통산 868홈런을 때려냈다. 그 다음으론 포수 출신 노무라 가츠야가 657홈런으로 뒤를 잇는다. 이 두 명 뿐이다. 통산 홈런 3위인 가도타 히로미쓰의 기록은 23시즌에 걸쳐 567개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1990년대 이후 최고 일본인 거포인 마쓰이 히데키는 미일 통산 홈런 507개를 기록하고 은퇴했다. 현역 시절 홈런왕만 다섯 차례 수상한 오치아이 히로미츠(전 니혼햄)도 20년 통산 510홈런으로 600홈런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이승엽은 11일까지 한·일 통산 2549경기에서 599홈런을 때렸다. 4.26경기당 한 개 꼴로 홈런을 쏟아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의 600홈런 타자 10명 중 이 수치가 이승엽보다 뛰어난 선수는 일곱 명이다. 하지만 이 중 세 명(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새미 소사)는 금지약물을 복용했던 선수다. 이승엽보다 더 높은 빈도로 아치를 그렸던 600홈런 타자는 오 사다하루(3.26경기), 베이브 루스(3.51경기), 짐 토미(4.16경기), 켄 그리피 주니어(4.24경기) 등 네 명 뿐이다. 이승엽은 위대한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ins.com 2016.09.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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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명문 도쿄대에 에이스 투수가 나타났다

전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일본인 투수는 시속 162km 강속구를 던지는 오타니 쇼헤이(니혼햄)다. 그러나 적어도 5월 7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투수는 따로 있었다.왼손 투수 미야다이 고헤이(21).그는 현재 도쿄대 법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이다.이날 열린 도쿄6대학리그 릿쿄대전에서 미야다이는 9이닝 5피안타 볼넷 세 개로 완봉승을 따냈다. 도쿄대 투수의 완봉승은 2005년 가을시즌 마쓰오카 유스케의 와세다대전 1-0 승리에 이어 11년 만이다. 이 날 승리로 도쿄대는 2008년 이후 8년만에 한 시즌 2승을 거두는 기쁨도 함께 누렸다.도쿄대 야구부는 한국의 서울대 야구부와 비슷하다. 특기생 출신이 아닌 일반 학생들로 구성된다. 엘리트 선수가 즐비한 타 대학 야구부와 겨뤄야 한다. 현재 서울대 야구부는 대학야구 2부리그에 속해 있고, 공식전 승리는 단 한 번이다. 도쿄대 역시 특기생은 단 한 명도 없다. 훈련 시간을 최대한 내기 위해 부원들은 수강 신청 때 오전 시간을 꽊꽉 채운다. 출석 대신 리포트 위주, 상의 평가보다 시험으로 학점을 주는 강의로 시간표를 짠다.도쿄대는 약체다. 하지만 '승점자판기' 수준의 팀은 아니다. 도쿄대 선수들은 중,고교 시절부터 틈틈이 야구부원으로 경기를 뛰면서 학업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의 학생 스포츠의 가장 큰 차이다. 2011~15년 도쿄대는 94연패라는 기록을 세웠다. 일각에선 6대학 리그에서 퇴출시키자는 주장도 나왔다.당시 리그 사무국은 "고교야구 현 예선에서도 20점 차 이상 경기가 나온다. 도쿄대는 특기생이 아닌 학생들로 팀을 이뤄 다른 5개 팀과 동등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도쿄대 야구부를 '문무양도'로 표현했다.미야다이는 가나가와현 쇼난 고교을 졸업하고 2014년 도쿄대에 입학했다. 고교 시절엔 모교를 고시엔대회 현 예상 8강까지 끌어올렸다. 전교 10등 안에 드는 수재기도 했다. 도쿄대 야구부원으로 2014년 가을리그부터 6대학리그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 어깨 부상으로 한동안 재활을 했고, 2015년 가을시즌에 5경기에 등판했다.성적은 1승 1패 평균자책점 2.17.도쿄대 투수가 이 순위 5위 안에 이름을 올린 건 21세기 들어 처음이다. 이때부터 미야다이는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도쿄 6대학리그에는 각 대학마다 굵직굵직한 에이스가 나타났다. 호세이의 모리타 슌야(2학년), 와세다의 오타케 고타로(3학년), 게이오의 가토 다쿠야(4학년), 메이지의 야나기 유야(4학년), 릿쿄의 사와다 게이스케(4학년) 등이다. 당장 프로에서 통한다는 평가다.하지만 일본 미디어가 가장 주목하는 투수는 도쿄대의 미야다이다.올해 4월 9일 춘계리그 개막전에서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지난해 우승팀 와세다대를 상대로 8⅔이닝 4피안타 1실점으로 놀라운 투구를 했다. 삼진은 13개를 잡아냈다. 팀은 0-1로 패했지만 개막전 최대 화제의 주인공은 미야다이였다. 1주일 뒤엔 우승 후보로 꼽히는 메이지대를 상대로 8회까지 무실점 역투를 했다. 역시 팀은 0-1 패배. 스토리도 절묘했다. 두 경기 모두 완투를 했지만 각각 끝내기 안타, 끝내기 스퀴즈 번트로 졌다.2경기 연속 완투패로 미야다이는 단숨에 야구계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미야다이가 등판하는 날에 가장 많은 독자들이 본 기사 주인공은 미야다이였다. 몇몇스포츠 언론 홈페이지는 미야다이 등판 경기를 문자 중계했다.이틀을 쉬고 나온 메이지대전에서는 3이닝 6피안타 3실점으로 무너졌다. 메이지대와 더불어 올시즌 2강으로 꼽히는 게이오대를 상대로도 6이닝 12피안타 4실점했다. 미야다이 돌풍은 사그라지는 듯 했다. 그러나 5월 7일 릿쿄대를 상대로 완봉승을 따내며 일본 열도를 놀라게 했다. 미야다이의 6대학리그 첫 승이기도 했다.키 178cm, 몸무게 79kg의 단단한 체격이다.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45km, 평균 구속은 130km대 후반이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고 제구력은 평범한 수준에서 약간 낫다는 평가. 그러나 직구의 회전이 워낙 좋아 타자가 히팅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 스트라이크존 위 아래를 활용하는 투구도 호평받는다.일본 야구 원로인 장훈은 "특이한 투구 폼"이라고 평가했다. 명포수 출신인 노무라 가츠야는 "두뇌 피칭이 뛰어나다. '칠테면 쳐봐라'는 기백이 있고, 실수를 수정하는 능력이 있다"고 절찬했다. 오오지미 이사오 휴스턴 애스트로스 아태지역 스카우트 담당부장은 "역대 도쿄대 넘버원 투수"라고 단언했다.미야다이 이전 도쿄대 사상 최고 투수로 꼽히는 엔도 료헤이 니혼햄 단장 보좌는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이끌어내는 왼손 투수는 드물다. 내 현역 시절에도 저런 멋진 승리는 없었다"고 후배를 칭찬했다.지금 미야다이는 일본의 모든 스포츠 매체가 가장 주목하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다. '도쿄대 투수의 돌풍'으로 보는 건 미야다이에 대한 폄하다. 도쿄6대학리그는 일본에서 가장 수준 높은 대학리그로 꼽힌다. 미야다이는 2학년 때부터 쟁쟁한 에이스들과 어깨를 겨루고 있다. 그의 실력은 프로에서도 탐을 내고 있다.정작 미야다이는 프로야구 선수보다는 재무성 공무원에 더 뜻을 두고 있다.미야다이 돌풍은 그저 하나의 이슈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학생 야구가 학업과 운동을 모두 충실히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점엔 주목해야 한다. 그저 '똑똑한 친구가 야구도 잘한다'라고 봐선 안 된다. 미야다이는 일본의 학원 스포츠가 만들어낸 훌륭한 결과물이다. 도쿄대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 교토대는 2014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지명 선수(다나카 에이스케·지바 롯데)를 배출하기도 했다.박명표(프리랜서·한국야구학회 회원) 2016.05.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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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오타니, 새로운 투법 공개…170km 가능?

일본프로야구 '괴물투수' 오타니 쇼헤이(니혼햄)가 올 시즌 시속 170km를 뿌릴 수 있는 새로운 투구법을 공개했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산케이스포츠는 "오타니가 8일 2군 구장에서 프로 입단 후 봉인하고 있던 와인드업 투법을 공개하고 38개의 공을 던졌다"면서 "국내 투수 중 가장 빠른 162km의 공을 던진 에이스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아롤디스 채프먼(시속 169km 신시내티 레즈)을 넘어서는 진화의 결의를 선보였다"고 9일 보도했다. 이날 오타니의 공을 잡은 불펜 포수 와타나베는 "공이 몹시 빨랐다"며 놀라움을 전했다. 오타니는 지난해까지 세트 포지션 상태에서 공을 던졌다. 오타니는 "와인드업으로 구속을 더 늘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와인드업은 세트포지션에 비해 큰 동작으로 더 많은 힘을 실어 공을 던질 수 있다. 구속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다만 투구 동작이 커 누상에 주자를 견제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에 주자가 없거나, 2·3루 혹은 만루 때처럼 주자의 도루 확률이 적을때 활용한다. 올해로 프로 3년차가 된 그는 지난해(1월7일)와 비교해 하루 늦게 불펜 피칭을 소화했지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빠른 페이스 인 것은 분명하다. 와인드업을 통한 구속 증가의 기대감은 크다. 오타니는 지난해 10월5일 라쿠텐전에 선발 등판해 1회 선두타자 아카미나이 긴지 상대로 던진 2구째가 스피드건에 162km로 찍혔다. 이후 연속해서 3번이나 162km의 강속구를 뿌리면서 오타니는 일본 역대 최고 구속 타이 기록을 수립했다. 일본인 투수로는 최초다. 종전에는 지난 2008년 6월1일 당시 요미우리 소속의 투수 마크 크룬이 소프트뱅크전서 기록한 162km다. 이제 그는 170km를 목표로 두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75km를 던지면 어깨가 위험한가'라는 질문에 "불가능하지 않다"고 단언했다. 일본 프로야구 명장 노무라 가쓰야는 "세트 포지션에 비해 와인드업은 팔을 높이 들어야한다. 자신이 모르는 버릇이 나올 수도 있다. 주의해야 한다"면서도 "오타니의 몸은 앞으로 더욱 성장 가능성이 있다. 구속 2~3km는 기본적으로 오를 것이다. 165km는 당장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김유정 기자 사진=산케이스포츠 캡처 2015.01.0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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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다니시게 포수 겸 감독 “후배들이 어서 나를 앞지르길”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의 포수 겸 사령탑 다니시게 모토노부(44)가 27년차 베테랑으로서의 부활과 팀 성적 부진 쇄신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일본 스포츠전문지 닛칸스포츠는 7일 "다니시게 겸임 감독이 개인 훈련 중이다. 2년 연속 팀이 B클래스에 머물렀기 때문에 선수로서의 다니시게 활용법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주니치는 2014년 요미우리와 한신, 히로시마에 이어 센트럴리그 4위에 그쳤다. 2013년 12시즌 만의 B클래스(6개 팀 중 4~6위)로 떨어진데 이어 2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다. 때문에 다니시게 감독은 2015시즌을 위해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다니시게 감독은 2013년 시즌이 끝난 뒤 구단과 4년간 감독 계약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직까지 현역의 끈을 내려놓지 않고 있다. 그는 2014시즌 91경기에 출장해 1홈런 23타점·타율 0.195를 기록했다. 기록만 보면 은퇴를 생각해야 하지만, 아직 주니치에서는 다니시게 감독만큼 경험 많고 안정적인 포수가 없다. 그는 "40세가 돼서도 훈련량을 바꾸지 않고 있다. 스피드는 떨어지지만 여전히 야심차게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즌 개막 후 6개월 대장정을 대비해 체력을 비축할 계획인 것이다. 앞으로 다니시게는 27경기만 더 출전하면 노무라 카츠야(79) 전 라쿠텐 감독이 갖고 있는 일본 최다 경기 출전 기록인 3017경기를 넘어서게 된다. 그는 "기록 달성에 대해서는 그저 순리에 맡기자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에게 또 다른 과제도 있다. 바로 팀 내 포수 육성이다. 다니시게 감독은 "어서 후배들이 나를 앞질러 줬으면 좋겠다. 빨리 나를 포수 자리에서 끌어내려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닛칸스포츠는 "(다니시게가) 2년 연속 B클래스에 빠진 팀을 생각해 중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겸임 감독 2년차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지만,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질주해 나간다"고 전했다.김유정 기자 사진=닛칸스포츠 출처 2015.01.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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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프로야구 '80년 베스트나인' 장훈,왕정치 포함

日프로야구 '80년 베스트나인'에 장훈 왕정치 등 11명일본야구기구(NPB)가 올해 프로야구 80주년을 기념해 26일 발표한 "NPB 80주년 베스트나인'에 재일 한국인 출신의 안타제조기 장훈(1940~)이 뽑혔다고 뉴스1이 보도했다.외야수 부문에서 뽑힌 장훈(張本?·하리모토 이사오)은 23년 활약하며 3085개의 안타를 때렸다. 수위타자상은 7회, 최우수선수상(MVP)은 1962년 1차례 받았다. 1959년 신인왕 타이틀도 받았다. 장훈이 베스트나인에 뽑힌 것은 올해까지 총 16차례이다.1루수 부문에선 왕정치로 잘 알려진 오사다하루(王貞治, 1940~)가 뽑혔다. 현역 시절에 '세계의 홈런왕'으로 불렸다. 타격부문 3관왕을 두차례 했고, 수위타자에는 5회 올랐다. 홈런왕은 15차례, 타점왕은 13회 기록했다. 통산 2831경기에 출전해 868개의 홈런을 때려낼 정도로 홈런의 달인이었다.투수에선 벳쇼 다케히코(別所毅彦 1922~1999)가 선정됐다. 다승왕 3회에 평균 자책점 1위에 한차례 올랐으며, 최우수선수와 사와무라 에이지상을 2번씩 받았다. 올스타전에는 6번 출전했다. 17년 프로생활에 310승, 178패를 기록했으며 평균자책점은 2.18였다. 포수 부문에선 노무라 카츠야(野村克也, 1935~)가 뽑혔다. 26년 선수생활에 3017경기를 뛰면서 홈런 657개, 안타 2901개를 쳤으며 타점은 1988점을 기록했다. 거포로 활약하며 21년 연속 두자릿수 홈런과 4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 끝내기 홈런만 11개이다.2루수에선 지바 시게루(千葉茂 1919~2002)가 선정됐다. 15년 동안 활동하며 1512경기 출전했으며 수비 범위가 넓고 화려한 것으로 유명했다. 같은 포지션에서 선정된 다카기 모리미치(高木守道, 1941~)는 21년 동안 활약하며 통산 세차례 도루왕을 차지했으며 2282경기에 출전했다.3루수에선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 1932~)가 뽑혔다. 195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투지가 넘치는 플레이로 요미우리의 V9시대에 팀 동료였던 오사다하루와 함께 중심 타자로 맹활약했다. 17년 동안 2186경기에 출전해 2471안타, 444홈런, 1522타점, 타율 3할 5리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유격수에서 선정된 요시다 요시오(吉田義男, 1933~)는 수비의 달인으로 불렸다. 도루왕 2회를 차지했고 수위타자상은 한번 받았다. 올스타전에는 13회 출장했다.이외에 외야수 부문에는 야마우치 가즈히로(山?一弘, 1932~2009), 야마모토 코지(山本浩二, 1946~), 후쿠모토 유타카 (福本豊, 1947~)가 선정됐다. 야마모토는 히로시마 출신으로 홈런왕 4회에 타점왕 2회, 수위타자 1회를 기록한 강타자이며, 후쿠모토는 통산 1065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온라인 일간스포츠 2014.11.27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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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야구] MVP 역사 또 다른 진기록, 다나카-발렌틴

다나카 마사히로(25·라쿠텐)와 블라디미르 발렌틴(29·야쿠르트)이 MVP를 수상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지난 26일 다나카(퍼시픽리그), 발렌틴(센트럴리그)을 각각 MVP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다나카는 1위표 233장을 모두 가져가며 1165점을 기록, 만장일치 MVP를 차지했고, 발렌틴은 200표를 얻어 총 1135점으로 이번시즌 센트럴리그 최하위 팀에서 최초로 MVP 수상했다. 두 선수에게는 트로피와 상금 300만엔이 수여된다. '24연승의 사나이' 다나카는 올해 28경기에서 212이닝을 던지며 24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1.27 탈삼진 183개를 기록했다. 1959년 투수 스기우라 다다시, 1965년 포수 노무라 가쓰야 이후 48년 만에 사상 3번째로 만장일치로 MVP를 받았다. 발렌틴은 이번시즌 타율 0.330, 60홈런 131타점을 올렸다. 특히 홈런은 지난 1964년 오 사다하루(55개) 이후 세워진 신기록이다. 다나카는 수상 후 "MVP는 우승팀 선수들이 많이 받는다. 우승하고 나서 받은 상이라 더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에이스 다나카의 활약에 힘입어 요미우리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J베이스볼팀 2013.11.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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