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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SMSA] ‘야구’를 ‘도구’로…스포츠 크리에이터가 유튜브에서 살아남는 법

“길고 짧고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크리에이터에겐 수명이 있고, 그 사실을 빨리 인정하기로 했다”구독자 약 29만 명, 총 4억 조회수를 돌파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톰톰’ 김남현 프로동네야구(PDB) 대표의 말이다.김남현 대표는 지난 11일 서울 중구 순화동 KG타워 지하 1층 하모니홀에서 열린 ‘2023 IS 스포츠 마케팅 써밋 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서 “스포츠 크리에이티브 유튜브 전략의 성공 사례”라는 주제로 기획자가 살아남는 법을 소개했다.김남현 대표는 지난 2014년부터 동네 야구를 소재로 유튜브 채널 PDB를 개설했다. 초창기 구독자 3000명으로 시작한 채널은 4년 사이 1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인기를 누렸다. 특히 지금까지도 화제 된 ‘독특한 공 던져보기’ ‘스피드 킹 컨테스트’ ‘실밥 5배로 늘린 야구공 던지기’ 등 이색적인 콘텐츠는 팬들 사이 큰 인기를 끌었다.그는 “당시 유튜브에 ‘야구’라는 생태계가 구축되는 시기였다”면서 “기세를 몰아 광고 대행사도 해보고, 다수 기업과 협업 콘텐츠를 기획하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 채널의 상승세는 코로나19로 인해 꺾였다. 수익이 크게 나지 않아 벽을 느꼈다는 후문을 전했다. 그는 특히 “유튜브에서 야구 콘텐츠를 소비하는 인구가 최대 50만~100만 명이었다. 이를 넘기 위한 방법이 필요했다”면서 “내가 가진 강점에 더 투자할 시기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남현 대표는 자체 중계 시스템을 구축해 사업 모델을 확장했다. 야구를 넘어 모터 바이크·힙합·소프트볼 등 다양한 종목의 중계도 맡았다.동시에 김남현 대표는 “30대 내내 야구 채널을 어떻게 더 키워야 할지 고민했다. 생활 체육에서의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인기가 낮았다”고 돌아보며 “결국 야구 채널이 갖는 콘텐츠의 소비 범위를 확장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김 대표가 주목한 키워드는 ‘재미’와 ‘호기심’이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야구와 멀어질수록 조회수가 나온다”면서 그동안 제작한 기발한 콘텐츠들을 소개했다. ‘양준혁이 크리켓 배트를 잡는다면’ ‘이대형에게 회전 배트를 쥐어 준다면’ 등이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모두 실제 야구와는 상관이 없는 콘텐츠다. 즉, 야구를 도구로 사용해 호기심을 해결하는 콘텐츠가 만들어진 셈이다.단순히 동네 야구 콘텐츠 제작에서 시작한 PDB는 이색 콘텐츠·중계·대행을 거쳐 이커머스 진입까지 노린다. 김남현 대표는 “크리에이터에겐 수명이 있다. 이를 빨리 인정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기로 결론지었다”면서 “앞으로 크리에이터와 셀러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이제는 이커머스를 준비해야 할 시기”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같은 날 열린 21강에선 한영철 CJ 스포츠 마케팅 포트폴리오 플래닝 팀장이 기업의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사례를 소개했다. 특히 CJ의 전략 브랜드인 ‘비비고’ 인지도 강화라는 숙제를 받은 이들이 미국프로농구(NBA) 로스앤젤레스(LA) 레이커스와의 파트너십을 맺은 과정과, B2B(Business to Business)·파트너십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소개했다. 이어 미국프로골프(PGA) 더CJ컵 10년 스폰서십 계약을 한 배경과 전략을 공유했다. 김우중 기자 2023.07.13 07:46
프로농구

우리은행 간 김단비, “KB 우승컵 뺏어와야죠. 그거 재미있잖아요”

2022~23시즌 여자프로농구(WKBL) ‘연봉 퀸’은 아산 우리은행의 김단비(32·1m80㎝)다. 지난 5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인천 신한은행에서 우리은행으로 전격 이적하면서 총액 4억5000만원(연봉 3억원+수당 1억5000만원)을 받게 됐다. 김단비의 이적은 WKBL 판도를 흔들었다. 지난 시즌 2위 우리은행은 챔피언결정전에서 박지수가 버틴 청주 KB국민은행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김단비가 가세하면서 다음 시즌 KB와 우리은행의 우승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20일 서울 성북구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김단비는 마치 신인 시절로 돌아간 듯 훈련하고 있었다. 꼼꼼하기로 소문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 김단비의 슛 동작을 보며 잔소리를 했다. 그런데 김단비 표정이 밝았다. 그는 “기분 나쁘냐고요? 전혀요”라며 웃었다. 김단비는 “감독님이 훈련 때마다 기본을 엄청나게 중시하고 강조한다. 오히려 ‘내가 이런 걸 잊고 살았네’라고 생각하게 되더라. 오늘은 ‘레이업 슛을 할 때 림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맞다. 어릴 때 배운 건데 잊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단비는 2007~08시즌 데뷔해 15시즌간 신한은행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김단비는 데뷔 시즌부터 팀의 5시즌 연속 우승을 경험했다. 김단비는 2014~15시즌부터 득점왕 3번, 리바운드왕 2번, 스틸왕 2번, 블록왕 1번을 기록했다. 총 네 차례 베스트5에 올랐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는 다재다능한 플레이로 ‘여자 르브론’이라 불린다. 최고의 자리에만 있었던 것 같은 김단비는 왜 이적을 선택했을까. 그는 “정체되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답했다. 김단비의 커리어를 보면, 팀 기록과 개인 기록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데뷔 이후 3시즌 정도는 출전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리고 팀이 우승과 멀어지면서부터 개인 기록이 크게 좋아졌다. 2020~21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코로나19 대유행 등의 영향으로 WKBL은 외국인 선수를 쓰지 않았다. 이 기간 김단비의 개인 기록은 폭발적으로 향상됐고, 신한은행에는 ‘김단비가 전력의 50%’, ‘단비은행’ 같은 수식어가 따라왔다. 김단비는 “내가 공을 잡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득점부터 어시스트까지 모든 걸 다 해야 했다. ‘내가 최고다’라는 자부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뭔가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는 것에 한계가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에 합류해 훈련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그는 “신한은행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팀이 돌아간다고들 했는데, 사실 내 마음은 좀 달랐다. 내 득점이 늘어나는 게 신경 쓰여서 득점 기회가 나도 일부러 어시스트를 했다. 새 감독님이 오시면 늘 선수들에게 ‘왜 단비만 쳐다보냐’고 말하는데, 그것도 부담이었다. 반면 우리은행에 오니까 감독님이 나에게 ‘더 공격적으로 해라. 주변에 주려고 하지 말고 네가 득점을 마무리해라’는 말을 해주시더라. 그게 편하고 좋았다”고 했다. 우리은행에는 베테랑 슈터 김정은(35)과 박혜진(32)이 있다. 젊은 가드 박지현(22)도 있다. 김단비는 “외곽에서 득점할 선수가 많기 때문에 내가 포스트 플레이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이 강조하는 수비도 팀에 잘 맞춰갈 것”이라고 했다. 프로 16년 차 김단비에게 ‘발전’에 관해 물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뛰어드는 WKBL 선수들은 대부분 '미완성' 상태로 입단하기 때문에 프로 초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곤 한다. 프로 초창기에 김단비를 혹독하게 훈련 시켰던 지도자가 현재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둘은 2012년까지 신한은행 코치였다)였다. 김단비는 “진짜 징글징글하게 훈련했다. 그런데 나는 프로에서 처음 언니들과 부딪혔을 때 느낀 게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다. 체력과 피지컬이 있어야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더라”면서 “프로 첫 3년간은 ‘완전한 성인의 몸’을 만드는 시기였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인데, 나는 프로에 데뷔했을 때 체력도 약하고 체격도 호리호리한, 힘없는 스타일이었다. 그냥 좀 빠르고 탄력 좋은 선수에 불과했다. 후배들에게도 꼭 이야기해주고 싶다. 첫 5년간 혹독하게 견딘 훈련, 그렇게 만든 체력 덕분에 지금 먹고사는 거”라고 했다. 그러더니 “아, 이렇게 말하면 좀 꼰대인가”라며 웃었다. 김단비는 다가오는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언니, 박혜진, 나까지 다들 30대다. 우리 이렇게 어렵게 만났는데 훈련이 힘들어도 얼굴 찌푸리지 말고 웃으면서 하자고 했다”면서 “아무래도 최고의 센터인 박지수가 있는 KB를 넘어야 우승이 가능하다. 과거 신한은행이 우승하던 시절, 상대가 지레 포기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은행은 KB를 상대하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다. 계속 부딪히면 승산이 보일 것이다. 강팀을 넘고 우승해야 더 짜릿하다. KB가 가져간 우승컵을 꼭 뺏어오겠다. 실력으로 뺏어오는 거, 정말 재미있지 않나”라며 자신 있게 웃었다. 이은경 기자 2022.07.22 07:45
프로농구

'52연승 신화 동기' 김선형·오세근 "우승은 우리가"

세월이 흘렀어도 노련미를 앞세운 베테랑들의 활약이 남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의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 정규리그 1위 서울 SK와 ‘디펜딩 챔피언’ 안양 KGC가 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2021~22시즌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을 치른다. 역대로 챔피언결정 1차전을 잡은 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확률은 70.8%(24회 중 17회)였다. 올 시즌 정규리그 1위(40승 14패)에 오른 SK가 KGC(3위·32승 22패)에 앞섰지만, 상대전적에서는 KGC가 5승 1패로 우위다. ‘중앙대 07학번 동기’ 김선형(34·1m87㎝)과 오세근(35·2m)의 대결이 가장 관심을 끈다. 중앙대 농구부가 2006~2008년 세운 52연승에 일조했던 두 선수는 졸업을 앞둔 2010년에는 25전 전승을 이끌었을 정도로 호흡이 잘 맞았다. 프로에서는 다른 유니폼을 입었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오세근이 전체 1순위로 KGC, 김선형이 전체 2순위로 SK의 지명을 받았다. SK 가드 김선형은 예전처럼 폭발적으로 뛰지 못한다. 젊은 시절 그는 전광석화 같은 돌파와 호쾌한 덩크까지 선보였지만, 지금은 자신의 득점보다 동료의 득점을 돕는 데 비중을 둔다. SK가 2017~18시즌 플레이오프(PO) 우승을 달성할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김선형은 이번 시즌에는 자밀 워니와 최준용 등을 돕는 역할을 했다. 대신 김선형은 노련함을 더했다. 레이업 득점을 시도하는 과정에선 몸을 유연하게 비틀면서 능구렁이같이 득점에 성공한다. 그는 올 시즌 정규리그 44경기에 출전해 평균 28분 29초를 뛰며 13.3득점 2.5리바운드 5.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시즌 막바지 손가락 부상으로 잠시 전열에서 이탈했다 돌아온 그는 고양 오리온과 4강 PO 3경기에서는 평균 17.7점을 올렸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KGC에는 센터 겸 파워포워드 오세근이 있다. 그는 데뷔 초창기부터 국내 최고의 스크린(상대 수비수의 동선을 가로막는 것)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았다. 젊은 시절 파워와 탄력을앞세워 상대를 골 밑에서 압도했던 그가 올 시즌 중거리 슛을 장착했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에서 데뷔 후 최다인 59개의 3점 슛을 시도(성공 19개)했다. 대구 한국가스공사, 수원 KT와 맞붙은 이번 PO 7경기에 모두 나선 오세근은 평균 27분 58초 동안 18.7점 6리바운드로 건재함을 알렸다. KT와 4강 PO 3차전에선 28점 9리바운드로 맹활약하며 팀의 83-77 승리를 이끌었다. 운동 능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노련함을 더한 그는 통산 네 번째 챔피언 반지 획득을 목표로 내걸었다. 오랜 친구와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루게 됐다. 김선형과 오세근은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하지만 승부 앞에서는 우정보다 경쟁이 먼저였다. 오세근은 “승부는 승부다. 선형이가 잘하되, 우승 반지는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선포했다. 김선형은 “내가 잘하면 우리 팀은 이긴다. (우승) 반지도 챙기고, 나도 잘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영서 기자 kim.youngseo@joongang.co.kr 2022.05.02 05:59
야구

[창간특집] 치어리더의 역사③ 치어리더 3대장을 아십니까

한국 치어리더의 역사는 프로야구 역사보다 더 길다.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츠가 1975년 창단할 당시 응원단 '롯데 엔젤스'를 만든 게 최초의 치어리더 팀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롯데 엔젤스는 현재의 치어리더와 달리 '고적대'와 비슷한 구성이었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도 '치어 걸'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 응원단 출신이나 춤을 잘 추는 그룹사 직원들이 파트타임으로 참여하는 수준이었다. 치어리더들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다. 야구장에서 팀을 상징하는 유니폼을 갖춰 입은 치어리더들이 응원단장과 함께 관중 응원을 이끌었다. 19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한 뒤엔 실내 코트에서 미국프로농구(NBA)처럼 화려한 율동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998년 프로농구 오리온스에서 치어리더를 시작한 노숙희 팀장은 "프로농구 출범 이후 치어리더들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유명 치어리더'도 등장했다. 고지선(SK), 송주현(LG), 박채경(삼성) 치어리더는 수천명이 넘는 팬카페 회원이 생겼다. 치어리더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건 2010년대부터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프로야구 인기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치어리더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2세대 치어리더 대표 주자는 단연 박기량(30)과 김연정(31)이다. 2007년 치어리더를 시작한 박기량은 큰 키와 춤 실력, 높은 인지도를 얻어 '스타 치어리더'로 떠올랐다. 현재 소속사 RS ENT 팀장인 그는 무려 13년째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치어리더를 시작한 '경성대 전지현'으로 유명해진 김연정이 롯데에 합류한 2012년부터는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팬들은 2013년 데뷔한 이수진 치어리더까지 세 사람을 묶어 '야구장 3대 여신' 혹은 '치어리대 3대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야구장 밖으로 나가 방송 출연, 광고 모델 등 연예계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최근엔 '신(新) 3대 여신'도 등장했다. 안지현(롯데), 서현숙(두산), 김진아(KT)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사진 기사'와 '직캠(직접 촬영한 영상)'이 인기를 누리면서 지명도가 높아진 케이스다. 세 사람 외에도 이나경, 김한나, 박현영 등 유명 치어리더들이 등장했다. 김효경 기자 2021.09.24 06:32
스포츠일반

[IS 인터뷰] 공수 겸장 최고의 멀티…KBL 첫 ‘고졸 MVP 신화’ 꿈 꾸는 송교창

2020~21 프로농구 1위를 달리고 있는 전주 KCC에서 올 시즌 가장 많은 득점을 책임진 선수는 누구일까. 정답은 포워드 송교창(25·200㎝)이다. KCC는 라건아(평균 14.0점), 이정현(12.4점) 등 쟁쟁한 국내 선수 멤버가 있다. 또한 최근 부상으로 팀을 떠나긴 했지만 득점에서 큰 역할을 했던 타일러 데이비스(14.2점)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보다도 많은 득점을 책임진 건 평균 15.3점의 송교창이다. 그는 올 시즌 국내 선수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송교창이 공격만 잘하는 게 아니라 수비에서도 스페셜리스트라 불릴 만큼 좋은 활약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 팀 에이스인 외국 선수를 내가 수비해서 득점이 절반으로 줄었을 때, 상대 선수가 페이스를 잃은 게 보일 때 짜릿하다”고 했다. 송교창은 올 시즌 공수 양면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KCC는 정규리그 자력 우승까지 2승을 남겨뒀다. 팀도, 개인 성적도 모두 최고의 기록을 세우고 있는 송교창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가장 강력한 후보다. 전창진 KCC 감독은 “팀에 가장 필요한 4번 역할(파워 포워드)을 포지션을 바꾸면서까지 잘 해낸 송교창이야말로 MVP 감이다”라고 했다. ━ KBL 최초의 ‘고졸 MVP’를 꿈 꾸다 만일 송교창이 정규리그 MVP에 오른다면, 한국프로농구(KBL) 역사상 첫 고졸 MVP라는 새 기록을 쓴다. 송교창은 지난 201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지명돼 KCC 유니폼을 입었다. 삼일상고 3학년이던 그는 프로농구 역사상 첫 고졸 출신 1라운드 지명자로 기록에 남았다. 프로농구에서 ‘고졸’이라는 단어는 ‘대학 농구팀을 거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통용된다. 굳이 따지면 2008~09시즌 MVP 주희정(은퇴)이 과거 고려대에 입학했다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팀에 연습생으로 입단한 경력이 있어 고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농구는 대다수의 선수가 대학을 거쳐 프로에 입단하는데, 송교창처럼 아예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프로에 직행하는 선수는 드물고 이런 경우를 '고졸 선수'로 부른다. 열 아홉 살의 ‘소년 송교창’은 왜 그런 과감한 결정을 했을까. 24일 만난 송교창은 당시에 대해 “고등학교 3학년 때 19세 이하 세계청소년대회에 나갔다. 거기서 세르비아와 경기를 했는데(송교창은 이 경기에서 40득점을 했다) 나보다 피지컬도 좋고 기술도 좋은 외국 선수들과 부딪혀 보니 프로에서 더 높은 수준의 경기를 꼭 경험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송교창에게는 ‘명문대’라는 타이틀보다도 ‘더 좋은 환경에서 농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필 스타 군단이라 할 만큼 화려한 멤버를 자랑하는 KCC에 지명됐지만, 송교창은 ‘내 자리가 없겠다’는 조급함보다도 ‘더 배우자’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 프로 무대에서 더 성장…의미 있는 고졸 스타 송교창은 프로에서 빨리 자리를 잡은 이유에 대해 “내가 정말 운이 좋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KCC는 송교창을 선발한 뒤 여름마다 미국에 보내 별도의 트레이닝 캠프를 소화하게 했다. 송교창은 “그때 미국에서 만난 버논 해밀턴 코치(이후 한국으로 와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KCC 육성 코치를 맡음)에게 ‘운동 선수의 몸을 만드는 것’부터 배웠다. 처음에는 근력, 민첩성을 키우는데 주력했고, 해밀턴 코치와 스킬 트레이닝을 추가로 했다”고 설명했다. 송교창의 장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멀티 능력’이다. 그는 돌파와 장거리 슈팅 능력을 모두 갖춰 스몰 포워드 역할에 적합하지만 올 시즌에는 상대 외국인 선수를 수비하고 골 밑에서 버티는 파워 포워드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지난 시즌 팀의 포인트가드가 다쳤을 때 직접 볼을 운반하는 포인트가드 역할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멀티 능력을 갖추게 됐는지에 대답은 “해밀턴 코치와 했던 훈련 덕분”이었다. 송교창은 “프로에 와서 스킬 트레이닝을 계속하면서 드리블이나 콘트롤 기술이 좋아진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송교창은 프로 초창기 약점으로 지적됐던 외곽슛 능력도 스스로 업그레이드시켰다. 3점 슛 성공이 루키 시즌 ‘0’이었지만 3년 차에 ‘경기당 평균 0.3개’, 그리고 지난 시즌 ‘1.4개’까지 늘렸다. 지난 시즌 3점 슛 성공률은 38%였다. 그는 “슛은 타고난 재능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훈련하면 누구나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요즘도 외곽 슛이 좀 안 좋아지면 ‘아, 내가 훈련이 부족했구나’ 싶어서 더 연습하려 한다”고 답했다. 2015년 그를 지명했던 추승균 전 KCC 감독이 송교창의 어마어마한 훈련량을 보고 놀라서 “훈련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묻자 송교창은 웃으면서 “그건 아니다. 내가 다른 선수보다 특별히 훈련을 더 많이 하지는 않는다”면서 “내가 운동량이 많아지면 체중이 빨리 줄어드는데, 아마도 그것 때문에 감독님이 덜 하라고 하신 게 와전된 것 같다”고 했다. 스스로를 ‘멀티 플레이어’라고 자랑하진 않았지만, 송교창에게 가장 편안하고 자신 있는 포지션이 무엇인지 묻자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는 “진짜로 잘 모르겠다”고 했다. ━ 리그 최고 선수 인증, 그보다 우승 송교창은 MVP 욕심에 대해 “그보다 팀이 통합우승을 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그에게는 지난 시즌이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송교창은 2019~20시즌 국내 선수 득점 1위(15.0점)에 오르고도 MVP 주요 후보에서도 밀려났다. 지난 시즌 프로농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플레이오프 없이 리그가 조기 종료됐다. KCC는 4위에 머물렀다. 송교창은 “지난 시즌에 좋은 멤버가 모였기 때문에 정규리그에서 최고 성적은 아니었어도 단기전에 가면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시즌이 끝나버려서 정말 아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신인이었던 2015~16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 챔피언결정전에서 고양 오리온에 밀려 준우승에 그쳤던 아쉬움이 있다. 아직 챔프전 우승 경험이 없다는 점에 대해 그는 “2018~19시즌 4강에서 탈락했는데, 먼저 4강을 넘어 챔프전에 가는 게 1차 목표다. 그리고 꼭 통합 우승을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용인=이은경 기자 2021.03.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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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세운 명문 클럽, 셀틱 FC

유럽인들 중에서 한국인과 유사한 민족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와 한국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같은 반도 국가에, 날씨도 비슷한 편이고, 흥분 잘하는 국민성을 예로 든다. 하지만 아일랜드인이 한국인과 공통점이 더 많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두 나라 국민은 자기 민족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애국심을 가지고 있다. 강대국에 끊임없이 시달려온 역사로 인해 두 민족에게는 한(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두 민족은 뛰어난 문화를 발전시켰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국민성도 비슷하다. 발전 과정은 다르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 한 점도 두나라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우리 조상 중 상당수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국으로 이주했듯이, 아일랜드도 뿌리 깊은 이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난 칼럼에서는 스코틀랜드로 이민 간 아일랜드인들이 설립한 하이버니안 FC에 대해 알아보았다. 라틴어로 아일랜드 섬을 의미하는 하이버니아(Hibernia) 말고도,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연관된 대표적인 이름이 바로 셀틱(Celtic)이다. 켈트족(Celts)과 관련된 유물은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기원전 3세기에 아일랜드와 영국을 포함해 알프스 산맥 북쪽의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다. 멀리는 동쪽의 터키 지역까지 진출했다. 기원전 1세기 줄리어스 시저의 로마 군대는 켈트족과 대대적인 전쟁을 벌여, 이들을 격파했다. 로마와의 전쟁에 패한 켈트족들은 영국 쪽 섬지방으로 이동했다. 기원전 55년부터 로마 제국의 라틴족은 여러 번 영국을 침공해 켈트족과 전쟁을 벌였고, 현재의 잉글랜드와 웨일즈 지역을 점령했다. 전쟁에 패한 켈트족은 북쪽이나 주변 섬 등의 오지로 피할 수밖에 없었다. 로마 제국은 결국 5세기 초반까지 약 400년 동안 스코틀랜드 지역을 제외한 브리튼(Britain) 섬을 다스렸다. 라틴족이 철수한 이후, 독일에서 건너온 게르만족의 한 파인 앵글로 색슨(Anglo-Saxon)이 브리튼 섬을 침공하면서 잉글랜드가 형성되었다. 그에 반해 켈트족은 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지역에 자리 잡은 변방 종족이 되었다. Celt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가 Celtic이다. 오늘날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이 포함된 셀틱 국가들의 언어와 문화를 의미한다. Celtic이라는 단어가 셀틱(Seltic)혹은 켈틱(Keltic)으로도 발음되기에, 도대체 어느 발음이 맞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맞다. S로 시작하는 발음은 불어 Celte에서 유래했다. 또한 영어의 발음 규칙에 의하면 알파벳 c 다음에 e 혹은 i가 오면 S로 발음한다. 영어 단어 cell, cereal, circus를 발음해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18세기에 들어 언어 역사학자들은 K 발음이 단어의 어원인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더 잘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대 영어에서는 K 발음이 좀 더 널리 쓰인다. 단 미국프로농구(NBA)의 보스턴 셀틱스 등 스포츠팀에 한해서는 S 발음으로 사용된다. 1840년대 대기근의 영향으로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로 이주한 이민자들의 상당수는 글래스고우에 정착했다. 1875년 에든버러에서 설립된 하이버니안 FC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1887년 이민자들의 빈곤을 돋기 위한 기금 모금 수단으로 축구팀을 설립한다. 이 팀은 셀틱 FC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뿌리인 켈트족의 이름을 딴 것이다. 셀틱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명문 클럽으로 자리 잡았다. 셀틱은 1965년부터 1974년까지 9시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했고, 또한 영국 클럽으로는 최초로 1967년 유로피언 컵(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에서 우승하는 영광을 누렸다. 단일 시즌에 자국의 1부 리그 우승, FA 컵과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면 트레블(Treble)이라고 말하는데, 셀틱은 유럽 클럽 최초로 1966~67시즌에 이를 달성했다. 셀틱을 이야기할 때 ‘아덴라이 평원(The Fields of Athenry)’이라는 현대 민요를 빠뜨릴 수 없다. 대기근을 배경으로 한 이 노래의 가사는 마이클과 메리 부부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마이클은 굶주린 가족을 위해 옥수수를 훔치다 감옥에 갇힌다. 호주로 유배 가기 전날 마이클은 메리를 위로하면서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 달라고 부탁한다. 메리는 남편을 실은 배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노래는 1990년대 들어 아일랜드 축구대표팀과 셀틱 FC의 응원가로 채택되어 현재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UEFA 유로 2012에서 당시 최강 스페인과 붙은 아일랜드는 실력 차를 실감하며 0-4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팬들은 자국의 예선탈락이 확정적인 후반 38분부터 종료 휘슬이 울린 후까지 '아덴라이 평원'을 열창해 전 세계 많은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당시 경기를 중계하던 독일 방송국의 해설진은 '아덴라이 평원'이 울려 퍼지는 동안 현장의 감동적인 모습을 시청자에게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다. 독일 축구 중계팀과 아일랜드 팬들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수준 높은 장면은 시청자와 현장을 하나로 묶는 품격 있는 방송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중계는 단순히 방송 기술의 향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축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이러한 중계를 국내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초창기 셀틱의 팬들은 스코틀랜드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민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하지만 셀틱의 성장과 더불어 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등에 사는 아일랜드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팬으로 가세한다. 아울러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팬들까지 등장한다. 현재 셀틱은 전 세계에 걸쳐 200개가 넘는 서포터스 클럽을 거느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1.27 06:00
스포츠일반

농구영신 상표권 등록, 프로농구가 가치를 찾아가는 법

"송구영신 오타 아니에요?" 한국프로농구연맹(KBL)이 처음으로 '농구영신'을 기획했을 때 농담처럼 했던 말이다. 물론 '농구'와 '송구영신'을 더해 만든 '농구영신'은 직관적이면서도 센스있는 작명이었지만, 한 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시작을 농구장에서 맞이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을 지우기 어려웠다. 그러나 '농구영신'이 첫 뚜껑을 연 2016년 12월 31일 밤, 6083명이 모인 고양체육관의 풍경과 함께 이 의문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 4년, 해를 거듭할 수록 더욱 무르익은 '농구영신'은 어느덧 KBL을 대표하는 히트상품이 됐다. 수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표권 등록까지 마친 진짜 '히트상품'이다. 국내 프로스포츠 중 유일하게, 가는 해와 오는 해에 걸쳐 치러지는 남자 프로농구의 '농구영신'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KBL은 지난 8일, 2016~2017시즌부터 매년 12월 31일에 개최해온 '농구영신' 매치에 대한 상표권 등록을 마쳤음을 알렸다. 지난해 12월 특허청에 '농구영신' 상표 출원 신청을 한 지 약 5개월 만에 상표 등록이 완료돼, KBL이 '농구영신' 상표에 대한 독점권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스포츠의 특정 이벤트 브랜드가 상표권까지 획득한 경우는 이번 '농구영신'이 국내 최초다. 이제 겨우 4번을 치른 농구영신이지만, 올스타전과 함께 KBL의 흥행 보장 카드로 자리매김한 이 특별한 이벤트는 프로농구의 장점과 매력을 극대화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추춘제 시즌 스포츠이자 실내 스포츠인 프로농구의 특성을 십분 활용해 다른 종목에선 시도할 수조차 없었던 전혀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외 스포츠인 축구나 야구, 골프는 시즌도 맞지 않고, 같은 겨울 스포츠이자 실내 스포츠인 배구의 경우엔 점수제 경기로 시간을 예측하기 어려워 농구영신과 같은 이벤트를 시도하기 어렵다. '쿼터제로 시간제한이 있는 겨울철 실내 스포츠'라는 프로농구가 가진 기본적인 특성에 팬들이 원하는 특별함을 더하고, 대중이 원하는 이색적인 송년 이벤트로 포지셔닝한 것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농구영신'의 성공과 상표권 등록이라는 결과물은 프로농구에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 초창기까지, 농구는 팬들의 뜨거운 사랑 속에 겨울 스포츠의 꽃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매 시즌 관중 수가 줄어들고, 화제성 역시 동반 하락하면서 프로농구계는 절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각 구단들과 KBL은 팬들의 관심을 끌고 사랑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그 부단한 노력 끝에 '농구영신'이라는 성공 사례가 등장한 셈이다. '농구영신'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농구영신'은 팬들이 농구장에서 어떻게 즐기고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하고 제공하려고 노력한 결과다. 한밤에 치르는 경기인 만큼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기 힘들고, 이 때문에 경기력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런 부담마저도 팬을 위해 기꺼이 짊어지는 게 '농구영신'이 보여준 프로농구의 자세다. '팬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심야 경기 쯤이야' 불사할 수 있다는 각오가 프로스포츠로서, 프로농구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농구영신'을 자산화 하는데 성공한 KBL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팬들을 농구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흥행 카드를 손에 쥐게 됐다. '농구영신'은 한 시즌에 한 번 뿐이지만, 이 특별한 이벤트를 시작으로 한국 프로농구에 대한 기대감 역시 더 커질 수 있다. KBL도 이번 '농구영신'의 상표권 등록을 계기로 팬들과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기획할 계획이다. 다가올 2020~2021시즌, 올해 12월 31일 경기도 안양체육관에서 열릴 안양 KGC-원주 DB의 대결로 치러질 다섯 번째 '농구영신'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6.11 06:01
연예

[취중토크②] ‘아는형님’ 민경훈 “10년째 별명 ‘쌈자’, 이젠 제발 그만~”

'예능 늦둥이'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늦바람이 무섭다더니, 거침없는 입담과 통통 튀는 매력으로 안방극장을 수놓고 있다. 이들과 예능의 인연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한 사람은 예능을 기피했고 다른 한 사람은 예능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예능을 통해 그간 몰랐던 자신의 끼를 발산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7cm의 어마어마한 신장을 자랑하는 전 프로농구 선수 서장훈(41)은 큰 덩치와 180도 다른 '조심성'으로 웃음을 만들어냈다. '그게 아니고~'란 유행어를 탄생시킨 그는 지난해 SBS '연예대상' 버라이어티 부문 신인상을 수상, 이젠 누가 뭐래도 위풍당당한 예능인으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버즈의 보컬 민경훈(31)은 데뷔 14년 만에 처음으로 JTBC '아는 형님'에 고정 출연하며 예능감을 발산 중이다. 민경훈의 개그 본능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서장훈은 "'아는 형님'은 경훈이의 숨겨졌던 끼를 끄집어내 준 프로그램이에요. 가끔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좋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개그 코드거든요"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민경훈은 서장훈의 말에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유쾌한 분위기 속 술잔을 기울이며 취중 토크를 이어 나갔다.-민경훈 씨는 '아는 형님'을 통해 '민또', '몸개그 유망주', '민달팽이' 등 별명 부자가 됐어요.(민) "새로운 별명이 계속 생겼으면 좋겠어요. 가사 한 번 틀린 걸로 10년째 '쌈자'로 불리고 있거든요. 그리고 다양한 별명을 통해 제작진이 얼마나 많이 신경 써주는지를 느끼고 있어요. 별거 아닌 거로 넘어갈 수 있는데 캐릭터를 잡아주려고 하는 제작진의 배려에서 고마움이 느껴져요."-서장훈 씨는 과감한 여장을 시도해 큰 웃음을 줬어요.(서) "절대 애정이 없었으면 안 했을 거에요. 방송을 많이 해서 그냥 내려놓은 게 아니라 '아는 형님'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거에요. 그래서 더 많은 분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뭘 하든 간에 많은 분이 봐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요. 예능을 한지 햇수로 3년이 됐어요. 그간 잘 안돼서 없어진 프로그램도 꽤 있는데 그럴 땐 그때마다 분명한 이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아는 형님'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우리 역시 즐겁고 시청자 입장에서 보기에도 웃음이 빵빵 터지는 예능이에요."-'아는 형님'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민) "이거밖에 안 해봐서 모르겠어요. 비교 대상이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건 편하게 절 표현할 수 있는 프로로 최적화가 된 것 같아요. 별로 안 꾸미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게 제일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해요."(서) "보통의 예능은 정해진 상황이나 룰이 있어요. 하지만 '아는 형님'은 그런 게 거의 없어요. 정형화되지 않은 날 것의 웃음이 살아있어요. 웃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죠. 날 것의 웃음이 매력인 것 같아요. 마치 MBC '무한도전' 초창기 때 모습 같죠. 그런 류의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 이제 없지 않나요? 확실히 개성이나 색이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멤버들 역시 타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쟁쟁한 사람들이고요. 그걸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녹화 중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민) "제가 합류한 첫 촬영이 기억에 남아요. 망가지는 건 싫다고 하고 들어왔는데 첫회부터 한 미션이 감각의 발견이었어요. 먹물이 묻힌 기계가 돌고 있는데 안대를 하고 오로지 감각으로만 피하는 거였죠. 첫회부터 망가졌어요."(서) "녹화 첫날 설렘을 가득 안고 있었는데 그 전날 허리를 다쳐서 녹화 내내 허리가 아파서 고생했어요. 첫날부터 그러면 민폐인데 정말 안 괜찮은 하루였죠."-단체 SNS 방이 있나요.(민) "호동이 형은 SNS를 안 해요. 그리고 장훈이 형은 2G 휴대전화를 써서 못 들어와요. 그 외 멤버들은 단체 SNS 방에서 얘기를 나눠요."-2G 휴대전화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서) "삶을 얼마나 살지 모르겠는데 휴대전화에 너무 매몰돼 있는 게 별로예요. 남의 일에 크게 개입하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아요. 평소에 문자하고 중요한 일 있으면 전화하면 되지 않나요. 나머지 기능은 제게 필요가 없어요. 주머니에 쏙 들어가니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해요." -두 사람 모두 예능을 기피했던 분들이죠.(민) "싫어했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서 출연하게 됐어요. '히든싱어' 나가기 전에 정규앨범을 열심히 만들어서 컴백했는데 금방 끝났어요. 콘서트를 진행했는데 규모가 계속 작아졌어요. 그래서 그런지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데도 파이팅이 넘치는 분위기가 아니었죠. 그러던 중 '히든싱어'에 나갔고 이후 '아는 형님' 출연 제의가 들어왔어요. 이 분위기를 이어가려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서) "딱히 예능에 출연할 이유가 없었죠. 어쩌다가 예능 프로그램에 발을 들이게 됐는데 처음엔 전혀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 피곤함에 지쳐서 은퇴하고 무작정 놀자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무작정 노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농구를 했으니까 코치나 감독하면 된다고 하지만 그것도 생각보다 되게 복잡해요.농구 잘했다고 무조건 감독으로 쓰지 않거든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안 하는 문제도 아니에요. 언제 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죠. 제의가 들어왔다고 해도 사정이 안 맞으면 못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유명한 농구선수로 20년 이상을 대중 앞에 섰었는데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선수는 아니었어요. 굉장히 외롭게 선수생활을 했거든요. 안티가 많은 사람이었고 마치 무찔러야 하는 대상 같은 존재였어요.근데 참 아이러니하게 방송에 몇 번 게스트로 나갔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반응이 싫지 않았어요. 따뜻한 사랑 없이 악으로 깡으로 버티면서 선수생활을 했는데 방송 출연 이후 반응이 너무 좋아서 대중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소통한다는 생각으로 예능을 시작했고 지금도 그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민) "부담 가지지 않고 취미처럼 할 수 있는 게 부러워요. 그렇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서) "그렇다고 대충하는 건 아니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지 아니까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후회하지는 않나요.(서) "전혀요. 감사하게 생각해요. 이건 제 인생의 고맙고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죠. 평생 농구만 생각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은퇴하고 뭐하지?'란 걱정이 많았거든요. 감독이나 코치를 하고 싶어서 미친 사람은 아니니까요. 정말 본의 아니게 이렇게 돼서 대중들이 좋아해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해요."(민) "후회 같은 건 없어요. 다만 예능을 통해서 음악을 어떻게 하면 더 알릴 수 있을까 생각하죠.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을 좀 더 오래 하기 위한 초석의 의미를 부여하고 예능에 출연하고 있어요. 결국엔 제가 하고 싶은 건 음악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버즈 멤버들이 잘 몰라주면 서운해요. 평소 잘 삐지는 성격이거든요. 누군가 알아주고 관심 가져주는 게 좋아요. 팀 내 막내다 보니까 그런 걸 받고 싶어 하는 게 있어요."(서) "저도 원래 잘 삐졌는데 나이가 드니까 그런 것도 별로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아요.(웃음)"-예능이 인생의 활력소가 되고 있나요.(서) "은퇴 후에 무기력해질 수 있는 삶을 규칙적으로 만들어줬어요. 에너지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서 고맙기도 하고요. 요즘 갑자기 일이 너무 많아져서 쉴 시간이 별로 없는 게 걱정이긴 한데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더 커요."-고정 예능 프로에 대한 욕심은 없나요.(민) "아직은 이거 하나도 벅차다는 느낌이 있어요. 섭외는 이것저것 오는데 쉽사리 선택하기가 쉽지 않아요. 어려워요."(서) "하면 잘할 것 같아요. 근데 좀 낯을 가리는 아이라 친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좀 더 좋을 것 같아요."-김구라·강호동·유재석 등 '국민 MC'들과 진행을 하고 있어요. 그중에 김구라 씨와 가장 각별한 것 같아요.(서) "사람들이 '김구라 라인'이라고 하는데 구라 형이 라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구라 형과 친한 건 맞아요. 이렇게까지 방송을 하게 된 건 구라 형의 도움이 컸어요. 부인할 수 없어요.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했고 지금도 두 개의 프로그램을 같이하고 있어요. 방송 일에 있어서 구라 형이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구라형의 라인이다? 그건 뭐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 형 자체가 라인을 따지고 그러지 않아요.">>3편에 계속황소영 기자 hwang.soyoung@joins.com사진=박세완 기자[취중토크①] ‘아는형님’ 서장훈 “민경훈, 개그 코드 나의 취향 저격”[취중토크②] ‘아는형님’ 민경훈 “10년째 별명 ‘쌈자’, 이젠 제발 그만~”[취중토크③] 민경훈에게 버즈란?…서장훈 “‘여자친구’란 표현 딱” 2016.04.15 13:30
스포츠일반

심판-지도자 향해 직언 쏟아낸 김영기 KBL 총재

김영기(78) KBL 고문이 10년 만에 프로농구 수장으로 돌아왔다. 농구인, 팬들의 기대감에 걸맞는 개혁을 이뤄낼 지 관심이 모아진다.김 신임 총재는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KBL센터 6층 회의실에서 열린 임시 총회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과 경선 끝에 제8대 총재가 됐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을 주도한 뒤, 2002년 1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제3대 총재로 활동했던 김 총재는 10년 1개월 만에 KBL 수장으로 다시 자리에 올랐다.김 총재는 농구인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다. 현역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대한체육회 부회장, 1984년 LA올림픽 한국 선수단 총감독,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등을 지낸 경기인 출신 행정가다. 특히 농구계의 최대 숙원 사업이었던 프로농구 출범을 이끌어냈고, 초기 흥행에도 큰 역할을 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그러나 10년 만에 KBL 총재가 된 김 총재가 해야 할 숙제는 많다. 무엇보다 초창기에 비해 크게 떨어진 흥행, 위상부터 올려야 한다. 김 총재도 프로농구의 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빠르고 재미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주말에는 공중파 3사가 모두 중계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언젠가부터 속공이 사라지고 재미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김 총재는 지도자와 심판을 향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몇년 사이에 자주 불거져왔던 심판 판정 논란에 대해 직언을 쏟았다. "심판들도 농구를 재미있게 이끌 의무가 있다. 그러나 심판들이 생존하려고 우유부단하고 복지부동하다"고 지적한 김 총재는 "반칙으로 지적할 걸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심판도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고쳐야 할 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도자를 향해선 "감독·코치들이 명작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 졸작을 내놓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농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짜증을 낸다. 감독들이 명품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과거 져주기 논란 같은 문제들을 겨냥한 발언이었다.김 총재는 한선교(55) 현 KBL 총재의 임기가 끝난 뒤, 오는 7월 1일부터 3년동안 KBL 새 총재직을 맡게 된다. 김 총재가 밝힌 프로농구 부활의 방향은 '초심'이었다. 그는 ""(프로농구가 출범한) 18년 전 초심의 자세로 돌아가겠다. 농구가 개혁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면 언제든 물러나겠다"며 "농구의 질을 높이면 저절로 모든 게 쫓아온다. 비껴나간 궤도를 본 궤도로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2014.05.23 08:37
스포츠일반

‘우유부단한 심판’…대대적 개혁 예고한 김영기 총재

프로농구 출범을 주도했던 김영기(78) KBL 고문이 제8대 KBL 총재에 선출됐다.KBL은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KBL센터 6층 회의실에서 임시 총회를 열어 경선 끝에 김 고문을 새 총재로 선출했다. 이로써 김 고문은 지난 2002년 11월부터 2004년 4월까지 제3대 총재로 활동한 지 10년만에 KBL 총재직을 맡게 됐다.이번 KBL 총재는 김 고문과 김인규 전 KBS 사장이 복수 후보로 나서 경선을 통해 선출했다. 김 고문은 1차 투표에서 6-3으로 김 전 사장에 앞섰지만 무효 표가 1표 나와 재적회원 3분의 2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KBL 정관 규정으로 2차 투표를 한차례 더 치러야 했다. 2차 투표에서 김 고문은 1차보다 두 표를 더 얻어 8-2로 김 전 사장을 제치고 새 총재직에 취임하게 됐다.경기인 출신인 김 고문은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대한체육회 부회장, 1984년 LA올림픽 한국 선수단 총감독,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을 이끈 주역이다. 총회가 끝난 뒤 KBL 센터 내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김 고문은 "10년 전에 내가 이 건물을 마련해주고 떠났다. 그러다 오늘 다시 들어오니까 감회가 새롭다"면서 총재에 오른 소감의 운을 뗐다. 김 고문은 과거 프로농구 출범 직후를 떠올리며 현재의 프로농구 위상 추락에 대한 아쉬움을 밝혔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빠르고 재미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주말에는 공중파 3사가 모두 중계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커졌지만 언젠가부터 속공이 사라지고 재미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김 고문이 밝힌 프로농구의 부활 키워드는 '재미'였다. 김 고문은 "(프로농구 개혁의) 본질은 재미있게 농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농구엔 다른 스포츠에 없는 모든 요소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면서 "농구의 상품 가치를 올리면 저절로 관심이 많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미있는 농구를 위해 지도자들의 노력과 심판 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김 고문은 "심판들도 농구를 재미있게 이끌 의무가 있다. 그러나 심판들이 생존하려고 우유부단하고 복지부동한다. 이러면 안 된다. 반칙으로 지적할 걸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심판도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고쳐야 할 건 고쳐야 한다"고 지적해 최근 자주 불거져 왔던 심판진 판정 문제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KBL 출범 초기의 사례들을 거론한 김 고문은 "농구의 질을 높이면 저절로 모든 게 쫓아온다. 비껴나간 궤도를 본 궤도로 올리도록 노력하겠다"며 총재로서 소임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농구가 출범한) 18년 전 초심의 자세로 돌아가겠다. 농구가 개혁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하면 언제든 물러나겠다"며 굳은 다짐을 드러냈다.김 고문은 한선교(55) 현 KBL 총재의 임기가 끝난 뒤, 오는 7월 1일부터 3년동안 KBL 새 총재직을 맡게 된다.김지한 기자 hanskim@joongang.co.kr 2014.05.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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