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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다행일 수 있기를

친구들과 캄보디아 앙코르 왓을 간 적이 있습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사원 앞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에게 한 말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을 것입니다.“크메르 제국은 802년에서 1431년까지 존재했던 왕국입니다. 처음에는 바라문교를 믿었고 나중에는 불교를 신봉했지요. 왕들은 수많은 사원을 지었습니다. 이 밀림에 1200개의 사원이 있습니다. 앙코르 왓은 그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앙코르 왓은 12세기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지은 것인데, 사원 중에 가장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누군가 가이드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저걸 누가 지었어요?”가이드가 웃으며 천천히 “수-리-야-바-르-만 2세입니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말을 바꾸었습니다. 질문의 내용을 알아차린 것이지요. 가이드가 한 말은 역시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은 대충 이러했습니다.“앙코르 왓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의 비슈누에게 헌정한 사원이구요, 누가 지었느냐는 질문은 사원을 지은 인부들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이는데, 맞습니다, 이거 중요합니다. 수리야바르만 2세가 통치할 때에 이 사원을 중심으로 한 도시에 100만명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인구가 겨우 20만명일 때입니다. 인력이 충분히 많았습니다. 여기에 또 전쟁 포로가 동원되었습니다. 크메르 왕국은 전쟁 국가였습니다. 이웃 나라를 점령하고 포로를 끌고와서 사원을 짓게 했습니다. 앙코르 왓의 돌은 여기에 없는 돌입니다. 무려 40㎞ 떨어진 곳에서 가져와 지은 것입니다. 이 사원을 짓는 데 3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저는 조용히 혼잣말을 하였습니다. “아아, 한번 끌려오면 사원 짓는 일로 인생이 끝났겠구나. 그들도 왕처럼 바라문교 신도이기는 했을까? 그때에 여기서 태어난 것이….”사람은 자신이 태어나고 싶은 곳에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앙코르 왓을 지었던 인부들은 그때에 크메르 왕국에서 태어나서 그 일을 한 것입니다. 한국인 여러분도 한국인으로 태어날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한국에서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귀화를 한 사람은 빼고) 한국인 여러분의 부모님이 한국인이어서 여러분은 한국인이 된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시기에 어느 땅에 툭 던져진 존재로 살아갈 뿐이다.저는 1962년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8년째 되던 해입니다. 이 시기를 ‘전후 절대 빈곤의 시기’라고 하는데, 세상에 처음 나온 제가 제게 닥친 상황이 빈곤인지 뭔지 알기나 했겠는지요. 밑도 가리지 않고 흙바닥을 기면서 놀아도 그게 원래 인간으로 태어나면 다 하는 일인 줄 여겼겠지요. 아주 어릴 때에는 이 지구에 저와 같은 한국인이 있고 또 여러 국가의 국민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여섯 살에 학교에 갔는데, 제가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입니다. 태극기에 경례를 하면서 가슴 한쪽이 뿌듯해짐을 느꼈습니다. 조회 시간에 애국가 제창을 할 때이면 눈가가 촉촉해지곤 했지요. 미술 시간에 태극기와 한반도 지도를 그리며 이 지구의 수많은 나라 중에 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게도 되었고요.모든 여행은 결국 자신의 내부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앙코르 왓을 보고 온 그날 밤에 친구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일에 대해 여러 말들을 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선택한 대한민국은 아니지만 이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이 과연 행복한지 대한민국에서의 삶에 대해 평가를 하였습니다. 웃다가 울다가, 결론은 이랬습니다.“우리 그래도 전쟁 없이 살았잖아. 다행인 거지 뭐. 그 정도에서 우리 만족하자고.”요즘 대한민국에 전쟁을 입에 올리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왕은 왕놀이를 하려고 들겠지만 그 왕놀이로 국민은 목숨을 내놓게 될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결론이 계속 유지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2024.07.04 06:59
스포츠일반

박세리, 한미 관계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 받는다

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이 한미 관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받는다.한미 친선 비영리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매년 한미 관계에 공헌한 인물이나 단체에 주는 밴 플리트상의 올해 수상자로 박세리 이사장을 추가 선정했다고 19일(현지시간) 밝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박세리 이사장에 대해 '스포츠를 통해 미국과 한국의 유대 강화에 기여했다'고 전했다. 박세리 이사장은 앞서 수상자로 선정된 윤윤수 휠라홀딩스 회장과 함께 2024년 밴 플리트상을 공동으로 받는다.밴 플리트상은 한국전쟁에 참여한 뒤 1957년 코리아소사이어티를 창립한 미국 육군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제정됐다. 그동안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2004년) 김대중 대통령(2007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2009년) 등이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세리 이사장의 시상식은 9월 30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다.한편 골프 레전드 출신인 박세리 이사장은 최근 부친을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졌다. 지난 18일 관련 기자회견을 연 그는 "가족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최선을 다해왔지만, 아버지의 채무 문제는 하나를 해결하면 마치 줄이라도 서 있었던 것처럼 다음 채무 문제가 생기는 것의 반복이었다"며 "재단 차원에서 고소장을 냈지만 제가 이사장이고, 제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고소를 진행하게 됐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4.06.20 07:07
영화

벌써 20주년 ‘태극기 휘날리며’…선명하고 생생하게 되새기는 한국전쟁 [종합]

‘태극기 휘날리며’가 개봉 20주년을 맞아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다.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재개봉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강제규 감독과 배우 장동건이 참석했다.‘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 형제의 갈등과 우애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04년 개봉 당시 누적 관객 1175만 명을 동원했다.이날 강제규 감독은 “세월이 너무 빠르다. 당시 촬영 회차가 150회 정도였는데 사계절 내내 너무 고생해서 지금도 현장에 있는 듯한 그런 생생함이 마음속에 뜨겁게 남아있다”며 “20년 동안 못 만난 친한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다. 그 친구 같은 영화가 20년 지나고 어떻게 다시 다가올지 궁금하다. 여러분도 그런 관점에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재개봉 소감을 밝혔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국 영화사상 두 번째 천만 영화의 주인공이 된 강 감독은 “당시에는 감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다”면서도 “영화를 찍으며 주위 분들의 반응도, 스스로도 큰 반향이 오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래도 막상 천만이라는 결과가 나오니 ‘5천만 국민 중 어떻게 천만이나 볼 수 있지?’하는 감사함과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콘텐츠에 관심과 사랑이 큰 민족이구나 느꼈다”고 감사를 전했다. 장동건은 당시를 회상하며 “감독님의 전작 ‘쉬리’를 계기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처음 나오던 시기였다. 그 당시 제작비 백억은 거대한 규모였다”면서 “주연 배우로서도 내심 부담감이 있었지만, 스태프들과 촬영본을 같이 보며 다잡고 힘을 낸 기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도 후회가 없었고, 관객들에게도 전달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작품과 배역 진태에 대한 여전한 애정도 드러낸 장동건은 “‘태극기’는 여전히 제 대표작이기도 하지만, 사실 제 아버지와 할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다보니 명절 때 가족들과 모이면 한국전쟁 얘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듣고 자랐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 시절 경험담이나 피난의 모습 같은 것들이 제게는 친숙했다”며 “진태의 마음이 공감이 갔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과 진석(원빈)이라는 아기 같은 동생,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견뎌야 했던 청년의 모습이 당시 매력적이고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연기한 캐릭터 중 마음에 들고 좋아하는 캐릭터”라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또 다른 주연 배우 원빈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강 감독은 “이번에 연락을 드리긴 했는데 요새 활동을 잘 안 하시니 저도 4~5년 만의 연락이다. 전화번호도 바뀐 것 같더라”며 “올해 20주년이고 제천 영화제에서도 자리를 만들려고 준비하는 게 있어 그때는 원빈 씨와의 만남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20년이 흐른 지금 작품을 다시 보는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을까. 강 감독은 “작품도 하나의 인물상을 들여다보듯 시대와 상황에 따라 관점과 느낌이 달라진다. 그래서 평가가 달라지는 것 같다”며 “조금 더 폼나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다시 제작하고 편집할 수는 없기에 ‘그 시대였기에 그럴 수 있다’고 일종의 시대의 단면처럼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털어놨다.끝으로 장동건은 “20년이 지나도 기억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앞으로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의 바이블 같은 영화로서 관객들의 기억 속에 남아준다면 영광이다”라고 말했다.강 감독 또한 “‘태극기’가 한국전쟁의 과거와 미래, 우리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생각의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당부했다.‘태극기 휘날리며’는 오는 6월 6일 재개봉한다.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5.30 21:21
영화

‘태극기’ 장동건 “중학생 아들과 볼 수 있는 내 출연작 많지 않아”

배우 장동건이 20주년을 맞은 ‘태극기 휘날리며’ 를 자녀와 함께 감상 예정이다.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재개봉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강제규 감독과 배우 장동건이 참석했다.이날 장동건은 “아직도 당시 현장이 생생하게 기억이 많이 난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게 실감 안날정도로 빨리 지나갔다”며 “제가 찍었던 영화 중 제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이번에 재개봉해서 아들 데리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굉장히 기쁘다”고 재개봉 소감을 밝혔다.이어 그는 “그동안은 아이가 너무 어리기도 했고 제가 유독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찍어서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연풍연가’ 이외는 없더라”며 “(자녀가) 초등학생 때 함께 본적은 있는데 ‘너무 오글거린다고 못 보겠더라’ 이야기 나눴다”고 말했다. ‘연풍연가’는 아내 고소영과의 멜로를 그린 작품이다.그러면서 장동건은 “아빠가 유명한 배우라는데 본 작품이 없다보니, 이번에 중학생된 아들이 재개봉 한다니까 ‘극장가서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예매해서 관람 예정이다”고 말했다.한편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 형제의 갈등과 우애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개봉 20주년 기념 4K 리마스터링 버전은 오는 6월 6일 재개봉한다.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5.30 20:23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 “원빈, 전화번호 바뀐 것 같더라”

‘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이 배우 원빈에 대해 언급했다.30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재개봉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강제규 감독과 배우 장동건이 참석했다.이날 강제규 감독은 불참한 배우 원빈에 대해 권 감독은 ”원빈 씨도 참석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모두가 생각했다”며 “이번에 연락을 드리긴 했는데 요새 활동을 잘 안하시니 저도 4~5년만의 연락이다. 전화번호도 바뀐 것 같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되어 같이 자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며 “올해 20주년이고 제천 영화제에서도 자리를 만들려고 준비하는 게 있어 그때는 원빈 씨와의 만남 기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두 형제의 갈등과 우애 그리고 전쟁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개봉 20주년 기념 4K 리마스터링 버전은 오는 6월 6일 재개봉한다.이주인 인턴기자 juin27@edaily.co.kr 2024.05.30 20:08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진해 벚꽃난장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진해 군항제’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진해 벚꽃장’이라고 했습니다. ‘-장’은 시장이라는 뜻입니다. 벚꽃장은 ‘벚꽃이 피는 기간에 열리는 시장’입니다. 일정한 조건을 갖춘 상인이 일정한 구역에서 물건을 파는 상설 시장이나 오일장과는 달리, 벚꽃이 피는 진해 전역에서 온갖 것을 팔고사는 시장이 열렸습니다. 곡마단이 원형 천막을 쳤고, 냉차 파는 수레가 돌아다녔으며, 야바위꾼이 좌판을 깔았습니다. 이런 시장을 난장이라고 합니다.진해가 군항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벚꽃이 주제인 축제인데 그 이름을 군항제라고 붙이는 것은 어색한 일입니다. 군항제라는 이름이 있어도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진해와 마산 사람들은 벚꽃장이라고 했습니다. 벚꽃난장이라고 불렀으면 더 정감이 있었을 터인데, 그런 말을 쓰는 어른은 없었습니다. 난장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들린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본 진해 벚꽃장은 난장이 분명했습니다.진해 벚꽃난장에는 친인척이나 동네, 직장 단위로 그룹을 지어 놀러 갔습니다. 벚꽃 아래에 진을 치고 놀아야 하니까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 일찍 나섰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진해 벚꽃난장에는 드레스 코드가 있었습니다. 남자는 넥타이를 한 정장, 여자는 한복을 입었습니다. 여자는 양산이 필수였습니다. 미혼 청춘들은 벚꽃난장에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남자는 말끔하게 이발을 했고 여자는 앞머리에 힘을 주는 고데를 했습니다. 남녀 교제가 자유롭지 못한 시절에 벚꽃난장은 ‘연애 해방구’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벚꽃난장에서는 도시락을 먹습니다. 우리 가족은 5단 정도의 찬합을 두 개 이상 들고 갔습니다. 술도 가져갔습니다. 됫병이었던 것은 분명한데 소주인지 청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게에다 막걸리통을 지고 오는 어른도 보았습니다.또 하나 반드시 챙겨야 하는 게 있습니다. 장구입니다. 벚꽃 아래에 음식과 술을 펼쳐놓았으니 노래하고 춤추고 놀아야 하지 않겠는지요. 야전(야외 전축)이나 통기타 같은 것이 아직 없었던 때입니다. 장구가 최고의 반주 악기였습니다. 두당탕탕 두당탕탕 장구 소리에 얼큰하게 술기운이 오른 어른들이 ‘떼창’을 하며 춤을 추었습니다.아이들에게는 마땅한 놀 거리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장구 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어른들을 구경하며 앉았다가, 심심하면 벚나무 사이로 뛰어다녔다가, 어쩌다 냉차 한 모금 얻어 마셨다가 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핵가족 시대의 가족 나들이는 아이들 놀이 중심이지만,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1922년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이들은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아주 어린 저에게는 놀 거리가 없는, 어른들끼리 벚나무 아래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벚꽃난장이었지만, 봄에 벚꽃만 피면 진해 벚꽃난장의 추억이 떠올라 행복감에 가슴이 쩌르르합니다. 제 머리에 깊이 새겨져 있는 진해 벚꽃난장의 풍경은 “화사한 벛꽃 아래에서 오랜만에 활짝 웃는 어른들”입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을 치르고 절대 빈곤에서 허덕여야 했던 우리 어버이들이 그날만은 근심 걱정을 다 버리고 신나게 놀았습니다.지난주 아들 녀석이 진해에 놀러 간다며 뭘 먹으면 좋겠냐고 제게 물었습니다. 진해에 가본 지가 언제인데 제가 알 리가 있겠는지요.“예전에 시계탑 로터리에 화상이 하는 만둣집이 있었지. 유리를 끼운 미닫이문을 하고 있었고. 물만두 하나만 내었지, 아마. 보들보들 입 안에 넘기는 맛이….”이제는 사라졌을, 40년 전 즈음의 시계탑 로터리 만둣집을 추억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진해 맛집을 검색하던 아들 녀석이 이런 말로 분위기를 깨버렸습니다.“진해에서 먹지도 자지도 말래. 바가지라고.”벚꽃이 피면 진해 남산 계단을,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 했던 것처럼, 하나 둘 셋… 삼백육십오까지 세면서 오르고픈 마음이 굴뚝같으나 올해도 그때의 벚꽃난장을 추억하며 이렇게 자판이나 두들깁니다. 2024.04.04 07:00
연예일반

오마이걸 승희 ‘정년이’ 출연.. 김태리와 연기 호흡 [공식]

걸그룹 오마이걸 승희가 tvN 새 드라마 ‘정년이’ 출연을 확정했다.19일 소속사 WM엔터테인먼트는 “승희가 드라마 ‘정년이’에서 초록 역을 맡아 두번째 정극에 도전한다”며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동명의 네이버웹툰을 원작으로 한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소리 하나만큼은 타고난 소녀 정년(김태리)의 여성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다. 극 중 승희는 정년과 같이 오디션을 통해 매란국극단에 들어온 연구생 동기 초록 역을 맡았다. 초록은 정년을 미워하고 괴롭히지만, 알고 보면 은근히 단순하고 남들에게 속을 읽히기 쉬운 귀여운 성격의 인물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며 극의 재미를 더할 예정이다.특히 승희는 이번 작품을 위해 촬영 수개월 전부터 소리를 배우며 준비에 몰두하는 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는 후문이다.지난해 ‘오아시스’를 통해 처음 정극 연기에 도전, 연기자로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승희가 이번 드라마에서는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한편 ‘정년이’는 올해 하반기 방송 예정이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02.19 08:54
연예일반

정은채 맞아? 드라마 ‘정년이’ 위해 파격 변신

배우 정은채가 드라마 ‘정년이’ 출연을 위해 파격 변신했다.29일 소속사 프로젝트 호수는 정은채가 tvN 드라마 ‘정년이’에 출연한다고 밝혔다. 극 중 정은채는 여성국극단 단원 문옥경을 연기한다.이와 함께 공개된 정은채 쇼트 커트 머리가 눈길을 끈다. 정은채는 귀밑까지 오는 짧은 머리에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한 단발머리인 만큼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커진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소리 하나 만큼은 타고난 소녀 ‘정년’(김태리)의 여성국극단 입성과 성장기를 그린다. 동명 네이버웹툰이 원작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2021) 정지인 PD와 ‘너의 시간 속으로’(2023) 최효비 작가가 만든다. 하반기 방송.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4.01.29 19:19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감성돔식해 정도는 먹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가자미식해는 함경도 음식인데 한국전쟁으로 강원도로 피난을 온 함경도 사람들에 의해….”가자미식해를 다루는 방송에서 늘 듣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음식 스토리가 우리 사회와 국가에 영향을 줄 일은 없고, 따라서 내용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먹고 즐기듯, 음식 스토리는 듣고 즐기면 그만입니다. 가자미식해를 먹는 자리에서 누군가 제게 가자미식해 이동설을 말하면 저는 가자미식해 이동설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할 뿐입니다.음식은 사람에 묻어 움직이는 것이 맞습니다. 짜장면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짜장면을 먹는 중국인이 우리 땅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인간은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재료가 있으면 비슷한 음식을 해서 먹기도 합니다.식해란 어떤 음식인가부터 생각해봅시다. 생선을 맛있게 먹기 위해 식해 조리법이 탄생했을까요? 식해는 발효를 이용한 조리법인데, 발효는 음식 보관의 한 방법으로 인간 문명에 편입된 미생물 활동이라는 자연 현상입니다. 계절에 따라 한꺼번에 많이 잡히는 생선을 오래도록 보관하여 먹으려고 식해를 담갔습니다.식해류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아시아 전역에 두루 존재합니다. 중국 문헌에 보이는 식해류가 이르기는 하나, 문헌에 처음 나타났다고 중국에서 비롯한 음식이 아시아 전역으로 번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시아 각지에서 생선 보관법의 하나로 식해류가 제각각 선택되었을 수도 있습니다.식해 담그는 법을 보면 (요즘은 양념 때문에 복잡해 보이지만) ‘조리의 골격’은 단순합니다. 생선+소금+곡물입니다. 이 정도의 로우테크는 ‘선진지의 전파’ 없이 스스로 얻어낼 수 있을 만한 지능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무리하지는 않습니다. 아래는 1700년대 초의 간행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조리서 ‘주방문’에 적혀 있는 식해 조리법입니다. 고춧가루와 생강, 마늘 등의 양념이 없습니다.“고기를 비늘 긁어내고 배를 타서 깨끗이 씻어 간을 맞게 한다. 간이 들거든 널(=나무판) 위에 짚을 깔고 고기를 펴고 또 짚 깔고 널로 눌러 내리눌러 두었다가 백미로 밥을 무르게 지어 소금을 알맞게 섞어 넣는다. 대나무 껍데기를 깔아 돌로 내리눌러서 물을 부어 그늘에 두고 물을 자주 갈아 스무하루 후에 써라. 끓여서 식은 물을 넣으면 더욱 좋다. 빨리 쓰려거든 밀가루를 넣어라. 추운 때는 물을 붓지 말고 따뜻한 데 두어라.” (‘주방문·정일당잡지 주해’, 백두현)그냥 ‘고기’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여러 생선으로 식해를 담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현재에도 식해로 쓰이는 생선은 실로 다양합니다. 명태, 도루묵, 멸치, 성대, 갈치 등등 온갖 생선을 식해로 담급니다. 1803년 김려가 쓴 ‘우해이어보’에는 감성돔식해가 등장합니다. ‘우해이어보’는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2년 앞서는 어보입니다. 우해는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동 앞바다입니다. 김려가 진동으로 귀양을 가서 그곳의 어민 생활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조리법을 줄여서 옮깁니다.“가을이 지난 뒤 이곳 사람들은 감성돔을 잡아… 감성돔 200쪽을… 멥쌀 한 되로 고두밥을 찐 뒤 잘 식혀서 소금 두 국자를 넣는다. 잘 뜬 누룩과 엿기름을 가늘게 갈아서 즉각 한 국자씩 넣고 골고루 섞어 둔다. …푹 삭기를 기다려 먹는다. 그 감미로운 맛은 물고기 식해 중에 제일이다.”(‘최초의 물고기 이야기: 신우해이어보’, 최헌섭)감성돔을 ‘5대 돔’이라 하지요. 그 귀한 생선으로 식해를 담글 정도이면 조선시대에 진동 사람들이 잘 살았겠거니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진동이 조선시대 귀양지라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진동에서 감성돔으로 식해를 담그게 되었느냐 하면, 많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진동 바다가 제 고향 바다입니다. 겨울 진동 바다는 ‘물 반 감생이 반’이었다는 말을 어린 시절에 어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 흔했던 감성돔을, 이제는 용왕님이 허락해주어야 겨우 얼굴이나 볼 수 있습니다. 2024.01.18 07:0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메밀국수와 그 사촌들의 계통도

국수에 대한 책을 썼다며 저를 찾아온 음식 전문 기자가 있었습니다. 목차를 보니까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하나로 묶고 막국수는 따로 떼어놓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질문을 했습니다.“평양냉면은 면 재료가 뭐지요?”“메밀이오.”“함흥냉면은 면 재료가 뭐지요?”“감자 아니면 고구마 전분입니다.”“막국수는 면 재료가 뭐지요?”“메밀이오.”“평양냉면과 막국수는 메밀국수이고, 함흥냉면은 감자 또는 고구마 전분 국수이지요. 음식은 음식 명칭이 아니라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서 분류를 해야 바른 계통도를 그릴 수가 있습니다. 평양냉면과 막국수는 하나로 묶여야 하고, 함흥냉면은 따로 떼어놓는 게 맞습니다.”선배한테 칭찬을 들으려고 왔을 것인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지적질’밖에 없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이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을 한 묶음으로 말하고 막국수는 평양냉면과 무관한 듯이 따로 분류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오랜 습관입니다. 일반인이 그리 말하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인데, 음식 전문 기자의 책이니까 따져야 합니다. 음식 전문 글쟁이이면 적어도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음식의 계통도를 그려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막국수가 평양냉면과 한 묶음이고 이 묶음에서 함흥냉면을 빼내는 게 뭔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음식을 재료와 조리법에 따라 분류를 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인문학적 상상력’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메밀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재배가 됩니다. 거친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무엇보다도 재배 기간이 짧습니다. 봄에 심은 벼가 장마와 태풍으로 다 죽었을 때에 그 논에다 다시 메밀을 심어서 거둘 수가 있습니다. 통일벼로 쌀 자급률 100%를 이루기 이전에 메밀은 우리 민족의 주된 ‘구황작물’이었습니다.메밀은 글루텐이 없어 반죽을 양쪽에서 잡아 늘리는 방식의 국수는 어렵지만, 반죽을 넓게 펴서 말아 칼로 썰거나, 반죽을 국수틀에 넣어 누르는 국수는 가능합니다. 메밀국수는 따뜻한 물에 넣으면 금방 풀어집니다. 그래서 메밀국수는 차게 먹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메밀국수에 냉면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것입니다.메밀은 전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메밀국수로 내는 냉면도 전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냉면에 평양이라는 지명이 붙게 된 것은, 전국의 여러 냉면 중에 평양 식당에서 파는 냉면이 맛있었기 때문입니다. 1994년 북한이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에는 “냉면은 평양과 진주가 맛있기로 소문이 났다”고 쓰여 있습니다. 막국수라는 이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전국의 여러 냉면 중에 강원도의 냉면에 유독 막국수라는 별칭을 붙여 부르게 된 시기는 1960년대일 것으로 추측을 합니다. 1980년대 향토음식 붐과 강원도 여행 붐이 겹치면서 강원도 막국수가 번창하였으며 그 무렵에 냉면과 막국수는 서로 계통이 다른 음식인 양 자리를 잡게 됩니다.함흥냉면은 원래 농마국수였습니다. 농마는 녹말, 즉 전분입니다. 일제강점기 개마고원에서 재배된 감자가 전분으로 가공되어 함흥 지역으로 집산이 되었고, 누군가 국수틀에 감자 전분 반죽을 넣어 누르면서 농마국수가 탄생했습니다.농마국수가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서울에서의 일입니다. 전쟁 이후 사람들이 평양에 갈 수 없게 되자 서울의 냉면옥들이 평양 마케팅을 하게 됩니다. 너도나도 ‘평양냉면’이라고 간판을 내건 것이지요. 평양냉면 간판으로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본 농마국수 식당들은 함흥냉면이라는 간판을 걸게 됩니다. 이어서 부산 밀면 이야기도 나와야 하겠는데, 지면 관계상 다음에.메밀국수와 그 사촌들의 계통을 그려나가는 일은 한민족이 겪었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 과정의 고통을 그려나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음식 이름만 쫓아가다 보면 음식의 본질과 우리의 삶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2024.01.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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