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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이승엽 56홈런·정민태 선발 21연승, 그리고 삿포로 참사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아시아 홈런왕' 이승엽 삼성 이승엽이 마침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56홈런 신기록을 달성했다. 정규시즌 최종전이었던 10월 2일 대구 롯데전 2회 말 이정민을 상대로 시즌 56번째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이로써 일본 프로야구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1964년 작성한 55홈런을 넘어섰다. 9월 27일 사직 경기에서 롯데가 대기록에 도전하던 이승엽을 고의4구로 거르면서 흥분한 팬들이 난동을 일으켜 1시간 34분 동안 경기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승엽의 정규시즌 MVP 수상은 당연했다. 개인 통산 5번째이자 최초의 3년 연속 수상이다. ② MLB 대신 일본으로 대기록을 작성한 이승엽은 정규시즌 종료 후 해외 진출을 타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MLB)로 가느냐,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하느냐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승엽의 거취와 관련된 소식이 거의 매일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MLB 구단의 계약 조건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승엽은 고심 끝에 일본 지바 롯데 말린스와 2년 최대 5억엔(현재 기준 약 49억원)의 조건에 계약했다. ③ 또 날아오른 유니콘스 모기업 재정난 탓에 박경완(자유계약선수)와 박재홍(트레이드)이 떠나면서 현대의 전력은 약화했다. 하지만 탄탄한 선발진을 구축했고 마무리 조용준이 뒷문을 지켰다. 타선은 심정수(53홈런)를 필두로 이숭용, 전준호, 박종호, 박진만 등이 상·하위 구분 없이 맹활약했다. 포수 김동수가 박경완이 떠난 자리를 메웠고, 교체 외국인 타자 브룸바도 펄펄 날았다. SK와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는 정민태의 완봉승에 힘입어 7-0으로 승리, 시리즈 전적 4승 3패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④ 삿포로 참사 국제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한국 야구대표팀이 망신을 당했다. 이승엽·이종범·박재홍·김동주(이상 타자) 정민태·임창용·이강철(이상 투수) 등 리그 최고 선수들이 총출동한 아시아선수권에서 1승 2패로 3위에 그쳤다. 대만에 연장 10회 말 끝내기 패배를 당했고, 일본에는 0-2로 무릎을 꿇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겸해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3위에 그친 한국은 올림픽 진출에 실패했다. ⑤ 선동열 후폭풍 일본 주니치에서 코치 연수를 마친 선동열 KBO 홍보위원이 돌아오자 여러 팀이 그의 영입을 추진했다. 두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 김인식 감독이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선동열과 두산은 코치진 구성 등을 놓고 이견을 보여 계약이 결렬됐다. 선동열은 2004년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삼성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김인식 감독이 떠난 두산은 김경문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했다. ⑥ 쏟아진 FA, 이적 시장 활발 2003시즌 종료 후 FA(자유계약선수) 대박이 쏟아졌다. 사상 최다인 13명이 FA를 신청했다. 정수근(두산→롯데·6년 40억6000만원) 이상목(한화→롯데·4년 22억원) 마해영(삼성→KIA·4년 28억원) 박종호(현대→삼성·4년 22억원) 진필중(KIA→LG·4년 30억원) 등 대형 FA들이 활발하게 이적했다. ⑦ 이종범 MVP 그랜드슬램 올스타전 최다(13회) 베스트 멤버에 선정된 KIA 이종범은 선수 시절 딱 한 차례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됐다. 2003년 웨스턴(서군) 리그 2번 타자로 나서 4타수 2안타 2타점 2도루를 기록, 9-4 승리를 이끌었다. 이종범은 한국시리즈(1993년, 97년)와 정규시즌(1994년)에 이어 올스타전 MVP까지 석권,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리그 최초 기록은 타이론 우즈(2001년)가 작성했다. 삼성은 올스타전 10개 포지션 중 2루수를 제외한 9개 포지션을 휩쓸었다.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다 올스타를 배출했다. ⑧ 롯데 사상 첫 3년 연속 꼴찌 구도 부산의 자존심이 확 구겨졌다. 롯데는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39승 91패 3무의 성적으로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꼴찌(승률 0.280-0.245-0.256)를 기록했다. 개막 이후 1무 포함 12연패, 7월 이후 15연패를 당하기도 했다. 팀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외국인 선수는 극도로 부진했다. 백인천 감독이 8월 초 경질됐고, 시즌 종료 후 양상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⑨ 다승왕 정민태 선발 21연승 정민태는 일본 요미우리에서의 2년 도전을 접고 복귀하자마자 리그를 휩쓸었다. 정규시즌 다승왕(17승 2패) 승률왕(0.895) 등 2관왕에 올랐다. 한국시리즈에는 홀로 3승을 거둬 시리즈 MVP에 선정됐다. 1차전에 등판한 그는 사흘 휴식 후 4차전·7차전에 등판해 역투했다. 2003년 8월 31일 두산과의 더블헤더 2차전을 통해 한·미·일 프로야구 통틀어 최다인 선발 21연승 신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형석 기자 사진=IS포토·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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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0년 The moment] 마해영 KS 끝내기포...롯데는 2할 승률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로 출범 40주년을 맞이했다.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1982년 프로야구 태동을 현장에서 지켜본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전문지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한해도 빠짐없이 프로야구의 성장과 변화 과정을 기록했다. 이 기간 여러 구단의 희비가 엇갈렸고 수많은 별이 뜨고 졌다. 일간스포츠는 프로야구 원년부터 지난 시즌까지 KBO리그 역사를 사진으로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① 20년 저주 끝낸 이승엽·마해영 2002년 한국시리즈(KS)는 KBO리그 최고 명승부로 회자한다. 12년 만에 성사된 KS 리턴매치였다. 1990년에는 LG가 4승 무패로 퍼펙트 우승을 차지했다. 리턴매치 결과는 달랐다. 삼성이 4승 2패로 창단 첫 KS 우승 기쁨을 누렸다. 시리즈 6차전 6-9로 패색이 짙던 9회 말 이승엽이 동점 스리런 홈런을 때려낸 뒤 9-9에서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까지 터졌다. KS 역사상 첫 시리즈 끝내기포였다. ② 펠릭스 호세 이중계약 파문 2001시즌 뒤 롯데와 재계약한 호세는 2002시즌 개막 전 미국 메이저리그(MLB) 몬트리올 엑스포스 구단과도 계약해 물의를 빚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롯데 스프링캠프에 무단으로 불참, 제한 선수로 공시됐다. 2013년 12월 징계가 풀려 KBO리그가 복귀가 가능했고 2006년 롯데 유니폼을 다시 입어 2007년 5월까지 뛰었다. 호세의 통산(4년) KBO리그 성적은 타율 0.309 95홈런 314타점이다. ③ 2할 승률로 추락한 롯데 롯데로선 지우고 싶은 한 해였다. 정규시즌 133경기에서 35승(1무 97패)을 따내는 데 그쳐 리그 최하위에 머물렀다. 6월에는 16연패에 빠지는 등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규시즌 승률이 고작 0.265. 외국인 타자 호세와 내야수 김민재가 떠난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팬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그해 10월 19일 열린 사직 한화전에선 역대 최소 2위에 해당하는 69명의 관중만 야구장을 찾았다. ④ MLB에 초청된 이승엽 '라이언 킹' 이승엽은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초청 선수 자격으로 MLB 스프링캠프를 소화했다. MLB 대표 홈런 타자 새미 소사 등과 함께 훈련하며 시범경기 7경기에서 홈런 2개를 때려냈다. 하지만 미국행이 성사된 건 아니었다. 이승엽은 이듬해 심정수와 함께 플로리다 말린스에서도 MLB 캠프를 치렀다. 2003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가 된 그의 선택은 MLB가 아닌 일본 프로야구(NPB)였다. ⑤ 최다승 투수로 우뚝 선 송골매 한화 송진우는 4월 23일 청주 SK전 완투승으로 통산 147승째를 따냈다. '국보' 선동열이 보유한 개인 통산 최다승 기록(종전 146승)을 경신, KBO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이를 기념해 한화증권 주식 5000주를 받아 눈길을 끌었다. 송진우는 그해 5월 19일 리그 첫 150승, 9월 8일 160승 고지를 차례로 정복했다. 시즌 뒤에는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 최고의 1년을 보냈다. ⑥ '별 중의 별' 박재홍 2002년 올스타전에서 가장 빛난 건 현대 외야수 박재홍이었다. 그는 0-1로 뒤진 9회 초 2타점 결승타를 때려내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기자단 투표에서 총 66표 중 45표를 획득, 20표에 그친 신동주(KIA)를 제쳤다. 1996년 1군에 데뷔한 박재홍이 올스타전 MVP에 뽑힌 건 처음.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운영된 현대 구단에서 올스타전이 나온 것도 2002년 박재홍이 유일하다. ⑦ KBO리그로 돌아온 이상훈 LG→주니치 드래건스→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친 이상훈은 2002년 4월 ‘친정팀’ LG로 복귀했다. 연봉 4억7000만원을 받아 이종범이 보유한 국내 최고 연봉(종전 4억3000만원)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유성민 당시 LG 단장은 "일본에서의 성적과 미국에서의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최고 선수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상훈은 2002년 7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1.68로 호투, 팀을 KS 무대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시리즈 6차전 이승엽에게 통한의 동점 스리런 홈런을 맞고 눈물을 삼켰다. ⑧ 최태원 연속경기 출전 기록 끝 1995년 4월 16일 광주 해태전부터 이어온 최태원(쌍방울→SK)의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이 2002년 9월 8일 인천 현대전에서 마무리됐다. 1014경기를 쉼 없이 뛰며 '철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최태원의 기록은 지난 3월 교차 검증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됐다. '대주자로 출전한 것만으로는 연속 기록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리그 규정에 따라 5경기 줄어든 1009경기로 조정됐다. ⑨ 박빙의 홈런왕 레이스 2002시즌 홈런왕 대결은 박빙이었다. 이승엽(삼성)과 심정수(현대) 호세 페르난데스(SK)가 3파전 양상으로 시즌 말미까지 엎치락뒤치락을 이어갔다. 최종 승자는 이승엽. 47개의 홈런을 때려내 심정수(46개) 페르난데스(45개)를 아슬아슬하게 앞섰다. 리그에 40홈런 타자가 3명 이상 배출된 건 1999년(이승엽·로마이어·스미스·샌더스) 이후 3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 이승엽은 시즌 뒤 6년 연속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도 받았다. ⑩ 아시안게임 2연패 야구 대표팀은 홈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군 미필 선수 주축으로 아시안게임 전 야구 월드컵에 출전했다가 부진하자 아시안게임에 프로 선수를 대거 내보냈다. 이상훈·송진우를 비롯한 정상급 투수진에 이종범·이승엽·김동주 등이 버틴 타선의 짜임새도 대단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이어 두 번째 '드림팀'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배중현 기자 사진=IS 포토, 한국프로야구 30년사 2022.12.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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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 없었다, 프로야구 4대 천왕

'국보 투수' 선동열(59), '무쇠팔' 故 최동원, '바람의 아들' 이종범(52) 그리고 '국민 타자' 이승엽(46). 야구인과 야구팬이 직접 선정한 프로야구 4대 천왕 결과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지난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올스타전에서 리그 출범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 중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네 명을 공개했다. 전문가(156명)와 야구팬(109만2432명)의 투표 결과를 각 80%와 20% 비율로 반영한 결과, 선동열이 총점 91.05점을 받아 프로야구 40년 역사 '최고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영원한 라이벌' 최동원은 89.99점으로 2위, 이종범이 87.31점으로 뒤를 이었다. 이승엽은 86.55점을 받아 4위에 올랐다. 야구계에는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이라는 말이 있다. 세 선수를 모두 지도한 김응용 감독이 남긴 평가로 알려졌다. 여기에 '전설은 최동원'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선동열은 그야말로 최고의 투수였다. 데뷔 2년 차였던 1986시즌, 24승(6패) 평균자책점 0.99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기며 페넌트레이스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다. 통산 8번이나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고, 정규시즌 MVP도 3번이나 차지했다. 이승엽은 2003시즌, 56홈런을 기록하며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최다 홈런왕(5회)과 개인 통산 최다 홈런(467개) 기록도 갖고 있다. 이종범은 공격·수비·주루 모두 뛰어났다. 1994시즌엔 타율 0.393 84도루를 기록하며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시리즈(KS) MVP만 2회 거머쥐며 해태 왕조의 전성기 연장을 이끈 주역이다. 최동원은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1984년 롯데 자이언츠 에이스로 보여준 투혼은 아직도 회자된다. 정규시즌엔 51경기에 등판, 무려 284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하며 27승(13패) 6세이브 223탈삼진을 기록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KS에서는 5경기에 등판, 홀로 4승을 거두며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전무후무한 기록. 그는 2011년 대장암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됐다. 그를 가슴에 새긴 야구팬은 더 많아졌다. '라이벌' 선동열은 "최동원 선배는 나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특히 그 연투 능력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최동원은 전문가 투표에서 전원에게 득표, 155표를 얻은 선동열보다 1표 더 받았다. 개인 통산 기록이나 수상 이력, 우승 경험은 선동열이 앞선다. 그러나 전문가 중 딱 1명은 최동원이 남긴 기록 이상의 가치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이종범과 이승엽은 팬 투표 결과로 순위가 갈렸다. 전문가 점수에선 나란히 76.41점(149표)을 얻었지만, 팬 투표에서 59만 5149표(10점 90점)를 얻은 이종범이 55만 3741표(10.14점)를 얻은 이승엽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공·수 기여도가 높았던 이종범이 팬심(心)을 사로잡았다. 아들인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리그 최고 타자로 발돋움하며 이종범의 선수 시절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점도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선동열과 이승엽, 이종범은 레전드(LEGENDS)라는 문구와 현역 시절 등 번호가 가슴에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올스타전을 찾은 만원 관중 앞에 섰다. 최동원의 자리를 대신한 아들 기호씨는 "아버지를 기억해주고 추억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겨 박수를 받았다. 이들의 시구 퍼포먼스도 특별했다. 각 구단 대표 팬이 홈구장에서 시구하는 모습이 전광판을 통해 릴레이로 상영됐고, 그래픽으로 구현된 최동원의 투구 모습이 영상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후 잠실구장 마운드에 선 선동열이 마치 그 공을 받은 듯한 포즈를 취한 뒤 시구에 나섰다. 유격수 자리에 나선 이종범이 포수 김태군에게 공을 받은 뒤 1루를 지키던 이승엽에게 송구하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다. 이번 올스타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잇는 자리였다. 이대호(롯데), 박병호(KT 위즈) 등 현역 최고 스타들이 레전드 4인에게 직접 꽃다발을 전달했다. 올스타전 본 경기에선 황대인(KIA 타이거즈), 정은원(한화 이글스) 등 젊은 선수들이 스타성을 뽐냈다. 이정후는 미국 무대 진출 의지를 드러내며, 아버지 이종범을 넘어서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선동열은 KBO리그 양현종(KIA)부터 안우진(키움)까지 KBO리그 대표 에이스 계보를 잇고 있는 투수들을 칭찬하고 격려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덕분에 올해 올스타전이 더욱 품격을 갖출 수 있었다. 안희수 기자 2022.07.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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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씨 형제' 허웅·허훈, 2년 연속 올스타 팬투표 1-2위

프로농구 '허씨 형제' 허웅과 허훈이 다시 한 번 올스타전 팬투표 1, 2위에 올랐다. KBL은 17일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올스타 팬 투표에서 원주 DB 허웅이 1위의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냈다"며 "이어 수원 KT 허훈이 2위를 지키면서 2020-2021시즌에 이어 연속으로 형제가 올스타 팬 투표 1, 2위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허웅은 지난달 20일부터 12월 16일까지 총 27일간 진행된 올스타 팬 투표에서 총 264,376표 중 163,850표를 획득, 역대 올스타 팬 투표 최다 득표인 이상민 감독의 2002-2003시즌 120,354표를 갱신했다. 이어 개인 통산 세 번째로 올스타 팬 투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동생인 허훈 또한 130,002표로 이상민 감독의 득표수를 넘어서면서 2위에 올랐다. 이어 서울 삼성 김시래(112,529표), 전주 KCC 이정현(102,680표), 서울 SK 김선형(99,551표)이 뒤를 이었다. 한편, 울산 현대모비스 이우석(61,224표/20위)과 서명진(61,204표/21위)이 올스타 24인 명단에 처음으로 선정됐으며 신인선수들 중에서는 수원 KT 하윤기(62,286표/17위), 서울 삼성 이원석(61,395표/18위), 고양 오리온 이정현(61,072표/23위)가 올스타 24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20-2021시즌에는 코로나19로 개최되지 못했던 프로농구 올스타전은 다가오는 1월 16일 대구에서 개최된다. 김우중 기자 2021.12.17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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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전 특집②] 역대 올스타 팬 투표 1위로 돌아보는 올스타전

'부전자전'에 이어 '형전자전'이다. 3년 전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던 허웅(27·DB)의 바통을 동생 허훈(25·kt)이 이어받았다. 허훈은 오는 19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열리는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지난달 25일까지 치러진 팬 투표에서 총 투표수 11만 4187표 중 5만 104표를 받아 4만 5952표를 받은 김시래(31·LG)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농구 대통령' 허재(55) 전 국가대표 감독의 두 아들이 모두 올스타 팬 투표 1위에 오르게 됐다. 정작 아버지인 허재 전 감독은 올스타 팬 투표에서 1위를 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다. 다른 요소의 개입 없이, 순수하게 팬들의 투표로 1위에 선정됐다는 건 그만큼 리그에서 가장 인기있는 선수라는 증명과도 같다. 역대 올스타전에서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던 선수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 기록이 왜 성적을 반영한 '인기투표 1위'와 같은 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올스타전에서도 증명된 '최고의 남자' 이상민 서울 삼성의 이상민(48) 감독은 올스타전에서도 '영원한 오빠'였다. 이 감독은 1997년 처음 시작한 올스타전이 팬 투표 방식으로 바뀐 2002년, 2001~2002시즌부터 2009~2010시즌까지 무려 9시즌 동안 올스타 팬 투표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2009~2010시즌이 이 감독의 은퇴 시즌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수 생활을 마치는 그 순간까지도 팬들 사이에서 부동의 인기 1위를 자랑한 셈이다. 이 감독이 가진 놀라운 기록은 또 있다. 2002~2003시즌 올스타전이 열린 2003년에는 총 25만 1942표 중 12만 354표를 휩쓸어 역대 올스타전 최다 득표 기록도 세웠다. 또한 1999년부터 2010년까지 12년 연속 올스타 베스트 5에 선정되는 등, 그 누구도 깨기 힘든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양동근 3회, 오세근·허웅 2회…같은 팀 다른 선수 수상은 kt 뿐 압도적 인기를 자랑했던 이상민의 은퇴 이후 팬 투표 1위에 오른 선수는 '성실의 아이콘' 양동근(39·현대모비스)이다. 2006~2007시즌 현대모비스(당시 모비스)의 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양동근은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10~2011시즌과 2011~2012시즌 연달아 팬 투표 1위에 오르며 이상민 이후 한국 프로농구 최고 스타로 자리매김한 양동근은 2012~2013시즌 김선형(32·SK)에 잠시 1위를 내줬으나 다음 시즌인 2013~2014시즌 탈환에 성공, 이상민 이후 가장 많이 팬 투표 1위에 오른 선수(3회)가 됐다. 양동근의 뒤를 잇는 선수는 각각 2차례 1위에 오른 오세근(33·KGC인삼공사)과 허웅이다. 오세근은 2014~2015시즌 센터 포지션에서 처음으로 팬 투표 1위를 차지하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2017~2018시즌 3년 만에 다시 1위 자리를 되찾았다. 허웅은 2015~2016시즌과 2016~2017시즌 2년 연속으로 '아버지도 못해본' 팬 투표 1위를 차지했다. kt는 2018~2019시즌 양홍석(23)에 이어 올 시즌 허훈이 팬 투표 1위를 차지하면서 2년 연속으로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배출한 첫 구단이 됐다. 이전까지는 같은 선수(이상민)가 다른 팀(전주 KCC·서울 삼성)에서 연속으로 올스타에 선정된 경우를 제외하면, 같은 팀에서 연속으로 다른 선수가 올스타 팬 투표 1위를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김희선 기자 kim.heeseon@joongang.co.kr 2020.01.16 06:00
스포츠일반

'블록의 신’ 김주성 은퇴 선언…전설의 마지막 시즌

'블록의 신' 김주성(38·원주 DB)이 은퇴를 선언했다.김주성은 2017~2018시즌 종료 이후 현역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그는 18일 은퇴를 선언하면서 "선수 생활에 대한 많은 미련과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한 팀에서 많은 것을 이루면서 즐거운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이어 김주성은 "마지막 1년 동안 행복한 농구를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구단과 감독님께 감사하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며 "마지막 시즌까지 후배들의 성장을 도우며 즐거운 시즌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팀 동료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고맙고 대견스럽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주성은 한국 프로농구의 '전설'이다. 2002년 원주 TG 삼보에 입단해 16시즌 동안 '원 클럽 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데뷔 시즌이던 2002~2003시즌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비상한 김주성은 다음 2003~2004시즌에 DB를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거머쥐었다. 2007~2008시즌에도 우승과 함께 MVP를 수상하는 등 김주성은 총 4번의 우승을 경험했다. 2007~2008시즌에는 정규 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 그리고 올스타전 MVP까지 석권하며 역대 최초로 'MVP 3관왕'을 달성하는 위용을 과시했다. 개인 기록도 전설답다. 그는 통산 1만124득점으로 역대 2위에 올라 있다. 1위는 서장훈(43·은퇴)의 1만3231득점이다. 통산 리바운드 역시 서장훈(5235개)에 이은 2위(4366개)다.김주성만의 독보적인 기록도 있다. 그가 '블록의 신'으로 불리는 이유다. 프로농구에서 통산 1000개 블록을 돌파한 것은 김주성이 유일하다. 통산 1028개로 역대 1위에 이름을 당당히 올리고 있다. 또 김주성은 지난 2004년 3월 전자랜드를 상대로 11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한 경기 최다 리바운드 신기록도 품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레전드'였다. 2002 부산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6 도하, 2010 광저우, 2014 인천까지 아시안게임 4개 대회 연속으로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결실도 눈부셨다. 한국 농구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부산 대회 금메달, 광저우 대회 은메달 그리고 인천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DB는 이런 전설에 대한 예우를 준비하고 있다. DB는 내년 1월 1일 원주 홈경기부터 김주성의 '은퇴 시즌 행사'를 실시한다. '은퇴 투어'다. 팀 유니폼 왼쪽 상의에 김주성 배번을 비롯한 선수명 등의 문구를 표기하고 경기장 코트에는 3점 라인 안쪽에 숫자 '32'를 새겨 놓고 시즌 동안 경기를 진행한다. 또한 선수생활 동안 금메달 연금 기부를 비롯해 드림플러스 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실천해 온 김주성은 나눔의 은퇴 투어를 진행할 예정이다. 한정판(32개)으로 제작된 기념 유니폼을 원정 팀별 최종전에서 상대팀에 전달한다. 유니폼 추첨 팬 응모 행사를 진행하고 마련된 수익금은 KBL, 10개 구단, 김주성이 공동으로 대한장애인농구협회에 기부할 계획이다. 최용재 기자 2017.12.19 06:00
야구

NBA 출신 투수 맥그레디, 데뷔 첫 삼진 잡고 돌연 은퇴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18일(한국시간) 미국프로농구(NBA) 슈퍼스타 출신 야구선수 트레이시 맥그레디(35)가 데뷔 첫 탈삼진을 기록한 뒤 은퇴했다고 보도했다.미국의 독립리그 슈거랜드의 투수 맥그레이디는 미국 텍사스주 콘스텔레이션 필드에서 열린 애틀랜틱리그 올스타전에서 슈거랜드의 선발등판했다. 그는 2회초 선두타자 브라이언 파운즈를 공 네 개 만에 삼진으로 잡아 데뷔 후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맥그레디는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나는 은퇴 전에 반드시 삼진을 잡겠다고 말했다"며 "오늘 드디어 해냈다. 하늘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맥그레디는 슈거랜드에서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 중이었다. 그는 야구보다 농구에 재능이 많았다. 맥그레디는 NBA시절 '티맥'으로 불리며 올스타에 7차례 선정됐고 2002-2003시즌과 2003-2004시즌 연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했다.J스포츠팀 2014.07.18 11:19
야구

프로야구, 각팀이 바라는 이상적인 외국인타자는?

알찬 전력을 갖춘 강팀은 ‘변수’가 두렵다. 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제도가 ‘2명 보유?2명 출전에서, '3명 보유?2명 출전?동 포지션에 3명 보유 금지' (NC는 4명 보유?3명 출전)로 개정됐다. 바뀐 외국인 선수 제도로 인해 외국인 타자들이 각 팀 타선에 포함되면서 이들의 활약이 각 팀 성적의 주요 변수가 됐다. 기대감은 ‘수성’하려는 기존의 강팀보다 ‘반등’을 꾀하는 약팀 쪽이 더 크다. 5명이 뛰는 농구에서는 ‘2명 보유, 2명 출전’이라는 외국인선수 제도를 시행하던 시절, 전 시즌에서 바닥을 멤돌던 팀도 ‘외국인 농사’만 잘 지으면 다음 시즌에 상위권을 노릴 수 있었다. 농구만큼은 아니지만 야구에서도 9명으로 꾸려진 타선에 강타자 한명이 포함되는 효과는 매우 크다.NC는 지난해 팀타율 0.244를 기록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1위인 두산과는 무려 4푼5리의 차이이다. 한화는 47개의 홈런을 기록, 팀홈런 1위를 기록한 넥센(125개)의 박병호(37개)와 강정호(22개), 두 명의 기록을 합친 것보다 10개나 적었다. 정규시즌 2위를 기록한 LG는 팀타율 0.282로 전체 3위를 기록했지만, 팀홈런이 59개에 불과해 시즌 내내 '한 방'에 대한 갈증을 겪었다. 프로야구는 98년에 처음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됐다. 역대 외국인 타자 중 각 부문 최고의 성적을 올린 사례를 통해 2013시즌 빈공에 허덕였던 팀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외국인 타자’를 살펴보았다.◇ 2004시즌 현대 클리프 브룸바의 타율 0.343클리프 브룸바(40·은퇴)는 2003시즌 후반기 마이크 프랭클린(42·은퇴)의 대체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다. 첫해 70경기를 뛰며 타율 0.303, 홈런 14개를 기록한 브룸바는 재계약 후 맞이한 2004시즌에서 공격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다. 타율 1위(0.343), 홈런 2위(33개), 타점 3위(105)를 기록하며 소속팀 현대가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는데 1등공신이 됐다. 브룸바는 처음이자 마지막 외국인 타격왕이며, 타율 0.343은 역대 외국인 선수 중 최고 기록이다. 외국인 타자들이 타율에 신경쓰기보다 ‘홈런 스윙’을 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기도 하다.◇ 1998시즌 OB 타이론 우즈의 홈런 42개외국인제도 도입 원년 (1998년)에 OB에 입단한 타이론 우즈(45·은퇴)는 데뷔 첫해부터 42개의 홈런을 쳐내며 홈런왕에 올랐다. 이는 빙그레 장종훈(46·현 한화 코치)의 한국 프로야구 단일 시즌 최다홈런 기록 (41개, 1992년)을 6년 만에 넘어선 기록이었다. 당시 우즈, 심정수(39·은퇴)와 함께 OB의 ‘우동수 트리오’를 형성했던 김동주(38·두산)는 “잠실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선수가 42개의 홈런을 친 것은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이다”라고 말했다. 98년부터 200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에서 활약한 우즈는 단일 한국시리즈 최다홈런(4개 2001년), 한국시리즈 개인통산 최다홈런(7개), 포스트시즌통산 최다홈런(13개)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1998년 정규시즌 MVP와 2001년 한국시리즈 MVP, 같은 해 올스타전 MVP에 오르며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MVP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1999시즌 롯데 펠릭스 호세의 122타점1999년 롯데에 입단한 펠릭스 호세(49·은퇴)는 데뷔 첫해 132경기에 나서 타율 0.327, 홈런 36개, 122타점을 기록하며 외국인선수 최초로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를 수상했다. 같은 해 삼성 이승엽(38·삼성)이 123타점을 올려 타점왕 부문에는 2위에 그쳤지만, 122타점의 기록은 역대 외국인 선수 최다 타점이며, 롯데 역사상 최다이다. ◇ 2001시즌 롯데 펠릭스 호세의 장타율 0.695·출루율 0.5031999년 최고의 활약을 펼친 호세는 이듬해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에 도전했다가 2001년 다시 롯데로 복귀했다. 돌아온 호세는 1999년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렸다. 117경기에 나서 타율 0.335, 36개의 홈런을 치며 장타율 0.695, 출루율 0.503을 기록했다. 장타율 0.695는 2001시즌 전체 1위 기록이며 출루율 0.503은 프로야구 원년에 백인천(당시 MBC)이 기록한 0.502를 넘어서는 프로야구 역대 1위 기록이다. 당시 투수들은 호세와의 정면승부를 피하며 역대 한 시즌 최다 볼넷인 127개를 헌납했다. 박현택 기자 ssalek@joongang.co.kr 2014.03.04 17:01
야구

[MLB인사이드] A로드의 몸값과 리버풀의 매각 가격

미국이 전 세계의 프로 스포츠를 모두 장악해 아예 팍스 아메리카 깃발 아래 ‘식민지화’ 해버리려고 작정한 것 아닌지 모르겠다. LA 타임즈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레인저스와 NHL(북미 아이스 하키 리그) 텍사스 스타스의 구단주인 톰 힉스가 NHL 몬트리올 캐내디언스 구단주인 조지 질레트 주니어와 돈을 합쳐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리버풀을 인수한 것에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6년 아스톤 빌라. 그리고 이번에 리버풀까지 3년 연속 미국인들이 영국 프리미어 구단을 사들이고 있다.1892년 창단된 리버풀은 프리미어 리그 최다인 18회 우승. 5차례 유럽 챔피언. 7회 FA 컵 패권 등을 달성한 명문으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그런데 구단의 매각 가는 ‘헐값(?)’이다. LA 타임즈는 3억4000만달러(약 3196억 원). AP 통신은 4억3080만달러(약 4050억 원)로 보도했다. 8900만달러(837억 원)의 부채 탕감 등 여러 변수가 있어 계산 방법의 차이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리버풀을 공동 인수한 부자 가운데 힉스 구단주는 우리 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LA 다저스에서 2001년 시즌 후 처음으로 자유 계약 선수(FA)가 된 박찬호에게 5년간 6500만 달러(약 611억원)의 빅딜을 안겨준 주인공이다. 이제 왜 리버풀 구단의 매각에 ‘헐값’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설명하겠다. 힉스 구단주는 3억4000만 달러이든. 4억3080만 달러든 그 정도에 프리미어 리그 명문 구단을 인수할 수 있다는 얘기를 1월24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NHL 올스타전 도중 조지 질레트 주니어 구단주로부터 듣고 놀랐을 것이다. 그의 기준으로 볼 때 정말 싸게 느껴졌을 것이 분명하다. 더욱이 프리미어리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높고 196개국에 중계되고 있으며 TV 중계권이 12억 2500만달러(약 1조1515억 원)에 달한다는 부연 설명에‘그런데 이렇게 싸 ’라고 감탄한 것이 확실하다. 즉석에서 “같이 사자”고 의기투합한 이들이 물리 친 경쟁 상대는 세계 5번째 부자인 두바이의 셰이크 모하메드이다. 힉스 구단주가 헐값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간단하다. 리버풀과의 협상에서 구단 가치가 4억 달러(약 3760억원)로 나왔다고 가정하면 자신이 부담할 몫은 절반인 2억 달러(1880억 원)가 된다. 그런데 2억 달러는 자신이 사인해준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몸값도 안 되는 액수이다. 2003시즌 후 트레이드해 뉴욕 양키스 선수가 됐지만 로드리게스는 2001년 텍사스와 10년간 총액 2억520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텍사스는 지금도 계속 로드리게스의 연봉 일부분을 부담하고 있는데 그 액수만도 올해 710만 달러. 2008년 810만 달러. 2009년 710만 달러. 그리고 10년 계약 마지막 해인 2010년 610만 달러에 이른다. 실력은 제쳐 놓고 일단 메이저리그에서 최고 몸값의 선수 한 명에 1억달러을 얹어주면 영국의 명문 구단 리버풀의 가치와 비슷해지는 것이다.박찬호와 비교해도 쉽다. 힉스 구단주가 이번 리버풀 인수에 부담한 비용은 5년간 6500만달러에 계약한 박찬호 급 선수 3명의 몸값밖에 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 장윤호 기자 2007.02.0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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