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단독 인터뷰] '손흥민 스승' 핑크 감독 "쏘니는 월드 클래스, 챔스 우승할 것"
"쏘니(Sonny·손흥민 애칭)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뛰는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전율을 느낍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토르스텐 핑크(52·독일) 전 함부르크 감독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지난 29일 일간스포츠와 단독으로 전화 인터뷰에 응한 핑크 감독은 손흥민(27·토트넘)의 어린 시절을 가장 잘 아는 지도자다. 손흥민은 2010년 10월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독일 분데스리가에 데뷔했는데, 핑크 감독은 이듬해인 2011년 7월 함부르크 사령탑에 부임했다. 손흥민은 이때부터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한 2013년 6월까지 약 2년간 핑크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손흥민은 핑크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2012~2013시즌 정규 리그에서 12골을 터뜨리며 분데스리가 특급 골잡이 반열에 올랐다. 그로부터 6년이 흘러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골잡이가 됐다.다음 달 2일에는 생애 처음으로 '꿈의 무대'에 오른다. 손흥민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리버풀과 우승을 다툰다. 핑크 감독은 "손흥민은 여전히 젊은 선수다. 앞으로 충분히 더 성장할 수 있다"라며 "최정상으로 가는 데는 경험만 더 추가하면 되는데, 그 경험을 이번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우승으로 채웠으면 한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손흥민은 핑크 감독과 함께 보낸 함부르크 시절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고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다. 레버쿠젠로 옮긴 뒤 세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2012~2013시즌 함부르크 기록 포함)을 터뜨린 그는 2015~2016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해 세계적인 공격수로 성장했다. 손흥민은 2016~2017시즌 21골을 넣으며 차범근(19골)을 넘어 한국인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올 시즌도 20골을 기록 중이다. "손흥민을 처음 봤을 때 언젠가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밟을 선수라는 걸 직감했느냐"고 묻자 핑크 감독은 "손흥민은 19세에 분데스리가에서 12골을 넣었다. 빠른 데다 양발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했고, 날카로운 슛 능력까지 갖춘 몇 안 되는 선수였다. 무엇보다 '재능(Talent)'과 '잠재력(Potenz)'이 대단했다. 앞으로 더 큰 선수가 될 거라고 100% 확신했다"고 말했다. 핑크 감독은 애제자 손흥민이 레버쿠젠 이적을 결심했을 때는 내심 아쉬웠다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감독님, 저 다른 팀 안 가요'라고 말하던 손흥민이 어느 날 레버쿠젠으로 간다고 하니 처음엔 속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곧 좋은 선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변했다. 토트넘에 간 직후에 손흥민의 사인 유니폼도 선물받았다. 지금도 우리 아들 방 한쪽에 걸려 있다." 핑크 감독은 7~8년 만에 훌쩍 커 버린 제자가 대견하다. "2011년 처음 만난 손흥민은 소년처럼 앳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훈련이 시작되면 프로의 얼굴로 변했다. 팀 훈련이 끝난 뒤에는 개인적으로 추가 훈련을 빼먹지 않았다. 그는 슛 연습에 집중했는데, 페널티박스 대각선 좌우 16m 지점에서 양발로 수십 개의 슛을 때린 뒤, 페널티킥 연습까지 끝낸 뒤에야 샤워장으로 향했다. 재능이 있는 선수였지만 성실한 훈련이 오늘날의 손흥민을 만든 것이다."그는 손흥민이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도 높은 훈련만은 아니라고 했다. "손흥민은 모든 지도자들이 영입하고 싶은 선수 유형이다. 인간적으로 매력이 많다. 긍정적인 성격 덕분에 동료들과 잘 지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선수다. 무엇보다 독일어를 빨리 배웠다. 이 부분은 많은 선수들이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또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말을 빨리 배우면 구단의 철학과 팀 문화를 이해하고 녹아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탁월한 어학 습득 능력은 손흥민이 남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핑크 감독은 현역 시절 독일의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스타 미드필더 출신이다. 분데스리가 우승만 네 차례(1998~1999·1999~2000·2000~2001·2002~2003시즌) 경험한 그는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중원을 장악한다고 해서 '듀크(Duke·1981년작 미국 영화 '이스케이프 프롬 뉴욕'의 악당 두목 역)'로 불렸다. 뮌헨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험도 두 차례나 있다. 1998~1999시즌 결승에는 경기에 출전했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1-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고, 2000~2001시즌에는 팀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지만 핑크는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그는 제자가 자신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을 풀어 주길 바란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두 차례나 경험했지만, 경기를 뛰고 우승한 적이 없는 건 지금도 아쉬운 대목이다. 결승전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들도 긴장하게 만든다. 나도 그랬다. 손흥민도 결승은 처음이다 보니 떨릴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할 건 없다. 손흥민은 그동안 리그와 국제 대회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분데스리가 시절부터 위르겐 클롭(현 리버풀·당시 도르트문트 감독)을 상대로 강했다. 그때부터 쌓인 자신감이 이번 대결에서 큰 힘이 될 것 같다.(웃음)" 핑크 감독은 유럽에는 대단한 선수들이 많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뛰어 본 선수는 극소수라고 했다. 그는 스승이자 선배로 결승전에 나설 손흥민에게 진심이 담긴 조언도 남겼다. "결승전 같은 큰 경기는 '세밀함 싸움'이다. 작은 차이가 승부를 가른다.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한 번 온 기회를 정확하게 살리면 득점으로 이어진다. 기회가 많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좋은 공격수는 한 번의 찬스를 살린다. 이번 맨체스터 시티와 8강전에서 보인 집중력을 유지하면 좋겠다." 인터뷰 말미에 핑크 감독은 한 가지 바람을 덧붙였다. "손흥민은 이미 유럽 축구에서 성공한 선수다. 한국에서는 슈퍼스타가 됐다고 들었다. 어떤 전문가는 손흥민을 'Internationale Klasse(독일 키커지에서 분데스리가 정상급 선수를 가리키는 등급)'라고 평가하는데, 나는 그를 'Weltklasse(월드 클래스라는 뜻으로, 독일 축구에서 최정상에 도달한 선수를 가리키는 말)'라고 불러도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며칠 이후부터는 손흥민의 실력을 두고 이견이 없길 바란다." 그러면서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명언을 인용해 "스스로를 믿으라"고 했다. "네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생각하는 대로 될 것이다. 소니·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벨트클라세(Weltklasse)'가 돼라. 행운이 따르길 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2019.05.3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