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활약하는 손흥민(30)이 오랜 골 침묵을 깨고 해트트릭에 성공했다.
손흥민은 18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레스터시티와 2022~23시즌 EPL 8라운드 홈 경기에서 3골을 몰아쳤다. 손흥민의 해트트릭에 힘입은 토트넘은 레스터시티를 6-2로 꺾었다. 토트넘은 리그 7경기 무패행진(승점 17·5승 2무)을 달리며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승점 17)에 골 득실(맨시티 +17, 토트넘 +11)에서 뒤진 2위에 자리했다.
손흥민은 이날 교체 투입됐다. 줄곧 선발 공격수로 출전했던 손흥민에게 낯선 상황이었지만, 보란 듯이 3골을 몰아쳤다. 그는 후반 14분 히샤를리송(브라질)을 대신해 경기에 투입돼 후반 28분, 후반 39분, 후반 41분 차례로 골망을 갈랐다. 영국 BBC에 따르면 손흥민은 교체로 경기에 들어서 해트트릭을 완성한 토트넘 최초의 선수다.
손흥민의 부활은 토트넘의 대승만큼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 시즌 페널티킥 없이 필드골로만 23골을 터뜨리며 이집트 출신의 모하메드 살라흐(리버풀)와 공동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은 올 시즌 들어 EPL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등 공식전 8경기(EPL 6경기·UCL 2경기)에서 도움 1개를 제외하고 무득점에 그치는 등 예상 밖으로 부진했다.
손흥민의 침묵이 길어지자 영국 언론들은 그를 선발 명단에서 제외해야 한다며 비판했다. 에버튼에서 이적한 공격수 히샤를리송이 시즌 초 좋은 성적(7경기 2골·2도움)을 거두며 손흥민의 경쟁자로 떠오른 것도 압박으로 작용했다. 팀 내 다른 공격수인 해리 케인(8경기 5골)과 데얀 쿨루셉스키(8경기 1골·2도움)도 맹활약을 펼쳤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도 “우리에게는 4명의 선수(손흥민, 케인, 쿨루셉스키, 히샤를리송)가 있다. 이들 중 하나를 벤치로 보내는 건 어렵지만, 나는 팀과 선수들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경쟁을 예고했다. 실제 레스터시티전 선발 명단에서 손흥민이 제외됐다. 올 시즌 처음이었다. 토트넘이 손흥민 없이 대승을 거둔다면 그의 입지는 더욱 흔들릴 수 있었다.
몰아치기에 강한 손흥민은 역경을 오히려 반전의 계기로 삼았다. 무엇보다 손흥민다운 경기력이 나왔다는 점이 호재다. 후반 28분 로드리고 벤탄쿠르의 패스를 받은 손흥민은 드리블로 상대 수비 2명을 교란하다가 ‘손흥민 존(zone)’으로 불리는 페널티 아크 오른쪽에서 오른발 중거리 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개막 이후 86일 만에 나온 득점.
손흥민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다. 후반 39분에는 케인이 건넨 패스를 받아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왼발 감아차기로 골네트를 갈랐다. 2분 후에는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와 연계 플레이를 통한 오른발 슛으로 해트트릭을 작성했다. 처음에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지만, 비디오판독 결과 득점으로 인정됐다. 피치를 밟은 지 27분 동안 3골을 넣는 데 13분이면 충분했다.
첫 번째 골을 터뜨린 손흥민은 담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질주한 후에 가만히 멈춰 관중석을 응시하는 ‘침묵 세리머니’를 보였다. 이후 특유의 '찰칵 세리머니'를 했다. 두 번째 골이 터진 후에도 기쁨을 표출하지 않고 오른손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는 ‘쉿 세리머니’를 펼쳤다. 자신을 비판한 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메시지였다. 세 번째 골을 넣은 후에는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이며 해트트릭을 자축했다.
손흥민은 “솔직히 골이 들어갔을 때 믿기지 않았다. 실망, 좌절 등 부정적인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냥 멍하니 서서 관중석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며 “공은 어떨 땐 골문 안으로 들어가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3번이나 골문으로 들어갔다. 나는 힘든 시기 속에서 많은 걸 배웠다. 기회를 얻기 위해선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이어 자신의 SNS(소셜미디어)에 "when life gives you lemons… score a hat-trick"이라고 적었다. '삶이 너에게 (쓴) 레몬을 준다면, (달콤한)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라'는 말을 인용해 '세상이 시련을 주면 해트트릭을 기록하라'고 표현한 것이다.
콘테 감독은 손흥민의 해트트릭이 공격진에 경쟁심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 쏘니(Sonny·손흥민의 애칭)의 활약 덕분에 행복했다. 손흥민 수준의 선수를 벤치에 두는 건 경기 흐름을 한순간에 바꿀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에게 ‘30분 안에 골을 넣으면 이런 실험(교체 출전)을 반복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손흥민은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한 수 위’라는 점을 무력으로 과시했다. 하지만 로테이션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콘테 감독은 “손흥민, 케인, 히샤를리송, 쿨루셉스키 등을 보유한 건 내게 로테이션의 가능성을 준다”며 “A매치 휴식 이후 12경기를 차례로 치른다. 반드시 로테이션을 가동하겠다. 내가 내리는 건 늘 정직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