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로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WTC)에서만 2759명이 희생됐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6만 2000명이 넘는 희생자와 4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또 반군과 이라크 군인들까지 포함하면 총 18만명이 테러와의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베트남전쟁 이후 자연 재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사상자를 불러온 9.11테러 5주년을 맞아 테러 주모자로 지목된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이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7일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 방송이 보도한 9·11테러 직전의 오사마 빈 라덴(오른쪽서 두 번째) 모습. AFP=연합뉴스
또 이와 관련해 온갖 음모론적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9.11테러 음모론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동영상 '루스 체인지'(본지 8월 14일자 23면 참조)가 지난달부터 인터넷에 확산되고 있는 점도 이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일엔 아랍계 위성방송 알 자지라 방송이 9·11테러를 준비하는 빈 라덴의 모습이 담긴 영상물을 처음으로 공개해 그때의 악몽을 되살리기도 했다. 과연 미국은 그를 못 잡는 건가, 안 잡는 건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국경 지대에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빈 라덴은 익숙한 지형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활동하는 탓에 좀처럼 꼬리가 잡히지 않고 있다. 알 카에다가 도청이 가능한 전자 제품을 쓰지 않고 복잡한 인편으로 소식을 서로 전하는 방식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미국이 그를 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 지대 주민들은 올 1월 알 카에다 2인자인 아이만 알 자와히리를 겨냥한 미사일 폭격 시 빈 라덴이 폭격 현장에서 불과 수 ㎞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에 앞서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 탈레반 정권 정복에 나선 2001년 11월에도 전쟁을 피해 달아난 빈 라덴을 토라 보라산에서 거의 붙잡을 뻔했다고 서방 국가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관리들은 말한다.
▲2001년 9월 11일 UA 175기가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남쪽 건물과 충돌하면서 불꽃과 검은 연기가 건물을 뒤덮고 있다. AFP=연합뉴스
그를 찾기 위해 미국·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은 군 10만 명을 비롯해 최첨단 도청 장치·위성 사진·무인 정찰기를 동원했고, 2500만달러(239억원)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아직 이 엄청난 현상금을 타간 사람은 없다.
빈 라덴은 9.11테러 당시에 비해 조직에 대해 직접적 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고립된 상태지만 지난달 런던 공항 테러 모의 사건과 같은 국제적 테러의 배후로 알 카에다가 꼽힐 만큼 그의 조직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비해 빈 라덴을 반드시 잡겠다는 미국의 희망은 점점 식어 가는 모습이다.
미국 당국이 가장 최근 그의 행방에 대해 언급한 것은 벌써 2년 전이다.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은 10일자에서 미국 및 파키스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빈 라덴의 체포나 살해를 임무를 부여받은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2년 이상 신뢰할 만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중앙정보국(CIA)도 빈 라덴 체포를 전담하는 조직을 이미 해체했고, 그를 잡는데만 집중했던 미군도 아프가니스탄 재건과 탈레반 잔당 소탕 등 다른 임무에 힘을 쏟고 있다.
과연 그를 잡을 수 없는 걸까? 파키스탄 국경에 배치된 한 미군 하사관의 말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 부대원들은 산속에서 마치 유령을 쫓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