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트라이크 잡고 왜 그렇게 빨리 승부를 보려고 했지?"
"이 공은 들어갔어야 했는데, 빠졌어."
코치와 선수의 대화가 아니다. 12월 4일 결혼 날짜 받아둔, SK 정우람(25)과 연인 최은진(25)씨의 데이트 장면이다. 십리 밖에서도 깨 볶는 냄새를 풍겨야 할 커플이 집에 들어 앉아 동영상을 보며 경기를 복기 한다. 자못 진지하게 경기를 분석하는 최씨를 바라보며 정우람이 귀여워서 어쩔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사실 정우람은 야구 잘 아는 여자와 연애를 꿈꾸지 않았다. 그는 "내사마, 동종업계랑 연애하는 일 움따. 애인 만나 구종 따지게 생겼노"라며 다짐했다. 그런데 마음에 꽉 차는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하고 나니, 이게 웬걸. 야구광이었다. 그것도 야구선수 정우람을 온전히 파악한 "야구 잘 아는 여자"였다.
최씨는 프리랜서 방송 작가다. 2009년 3월 OBS 다큐멘터리 '불타는 그라운드' 촬영을 위해 SK를 찾았다가 인연이 시작됐다. 최씨는 "이호준 선수가 '누구 팬이냐'고 묻길래, 얼떨결에 정우람이라고 답했어요.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라고 설명했다.
연애와 불은 '부채질'에 따라 속도와 결론이 달라지기 마련. "주위에서 자꾸 저희 둘이 어울린다고 하면서 쿡쿡 찌르더라고요." 선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오랜시간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특성상 인천 문학구장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제 일이 선수에 대해 대본쓰는 일이잖아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갔죠." 최씨는 촬영 두달째 본격적으로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부산이 고향이고, 동갑내기다. 어린시절 롯데팬으로 사직구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서글서글한 생김새까지 빼닮았다. 사투리로 대화를 나눌때 보면 오누이같다. "털털한 성격도 비슷해요. 그런데 너무 닮은 사람 둘이 자주 붙어 있는 것도 때로 문제가 되더라고요." 8개월여를 함께 구장에서 지내다보니 연인 사이 필수인 밀고 당기기도 없어졌다. 긴장감이 없어지면서 티격태격 했다. 하지만 원정경기를 떠나면 금새 보고싶었다. 천상 배필 다웠다.
애인 자랑을 요청했더니 대뜸 "양파 같은 정우람"이라고 외쳤다. 퍼도퍼도 매력이 샘솟는 1급 청정 우물이란다. "처음에는 그저 착하고 순한 사람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경기할 때는 냉정한 프로 선수의 모습으로 돌아가요. 남자답게 여자를 리드하다가도 때로는 로맨틱 가이로 변신해요."
최씨는 만난지 1년 기념일이 있던 지난 5월의 저녁을 잊을 수 없다. 그는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더니 백화점에 데려가서 선물을 사주더라고요. 그게 끝인줄 알았는데, 풍선과 장미꽃으로 꾸며놓은 곳에 데려가서 직접 쓴 편지까지 읽어줬다"고 소개했다.
최씨는 정우람을 위해 "장어 요리를 보양식으로 준비해줄거에요. 친정어머니가 공수해 주신 신선한 장어에요. 이제 남편 체력은 제가 책임져야 하니까요"라고 내조 계획을 밝혔다.
서지영 기자 [saltdol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