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 나는 후암가족 200여 명과 함께 파주 보광사를 찾았다. 백일구명시식 중 중간입재행사를 위해서였다. 낙엽이 모두 떨어져 쓸쓸해진 절간을 걷노라니 문득 보광사에 얽힌 추억들이 떠올랐다.
보광사는 신라시대 진성왕 8년에 창건된 절이다. 드라마 '동이'로 잘 알려진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효자인 영조는 어머니 위패가 모셔진 보광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 대웅보전의 현판을 직접 쓰고, 위패가 모셔진 어실각 옆 향나무도 직접 심었다고 한다.
숙빈 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어설까. 보광사가 있는 고령산은 외부인에게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고령산에 묘를 썼다가 삼족이 멸하고 비석마저 벼락을 맞은 가문이 있는가하면 몇 년 전에는 골프장을 건설하려던 사업가 2명이 비명횡사 했다.
하지만 내게 보광사는 고향처럼 푸근한 곳이다. 80년대 초 광주민주화운동 관련한 인사가 나를 찾은 뒤 만들었다는 숨은 사연이 있는 잘 생긴 석불이 갈 때마다 나를 반겨준다. 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보광사에서 올린 기도는 하늘의 응답을 내려줬다.
1982년 남산후암 시절, 거사와 보살 몇 분과 함께 보광사 기도에 정진하며 큰 서원을 세웠다. '정법(正法)이 영원히 전승되는데 내 한 몸을 바치게 하소서.' 그리고 무슨 예감이 들어선지 "만일 우리들의 기도가 이루어지면 기도를 회향하는 날 눈이 올 것입니다"라고 석불 전 앞에서 공언했다.
그날이 3월 6일. 사람들은 춘삼월에 어떻게 눈이 오겠냐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장장 14일간의 기도가 끝난 3월 20일, 보광사 경내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눈이다! 눈이 와요!" 문을 열고 나가보니 하늘에서 눈이 오고 있었다. 폭설에 가까운 함박눈이었다.
나는 눈 속에 파묻혔던 검은 돌을 꺼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지장을 찍듯 힘껏 눌렀다. 거짓말처럼 돌은 손가락에 눌려 선명한 손도장을 남겼다. '나의 기도에 하늘이 응답을 해주셨구나!'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어김없이 보광사를 찾았다. 1987년 잠실 후암을 세울 때도, 2008년 대학로 후암선원을 열 때도 어김없이 보광사에서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이번 방문 때는 보광사에서 특별한 보물을 공개하기도 했다. 바로 순원왕후 김씨의 한글친필 어필봉서와 명헌왕후 홍씨의 궁인 대필 봉서였다.
순원왕후는 순조의 비며 정조의 며느리 되는 분이며, 명헌왕후는 헌종의 두 번째 부인이나 자식 없이 쓸쓸히 사시다 73세에 돌아가셨다. 두 분의 봉서는 큰 의미를 가진다. 봉서란 왕이나 왕후가 가까운 이에게 사사로이 내리는 글월로 궁중특수어로 쓰여 있어 해독이 어려운 특별한 편지지만 당시 왕실 여성들의 삶이 녹아있는 소중한 보물이다.
백일간의 구명시식 중간입재를 무사히 회향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숙빈 최씨 위패가 모셔져 있는 보광사에서 왕실의 보물을 공개하게 되어 영광이다. 분명 숙빈 최씨 영가님도 손주며느리들의 봉서를 보고 많이 기뻐하셨으리라. 이 봉서를 통해 조선 왕실 여인들의 위엄과 기품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hooam.com/ 인터넷신문 whoi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