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쿼터가 시작된 뒤 4분이 흘렀을 때였다. KT의 박상오(30·1m96cm)가 SK 가드 변기훈(22·1m87cm)의 공을 가로챈 뒤 림을 향해 뛰어 올랐다. 그는 호쾌한 원핸드 덩크슛을 꽂고 내려왔다. 잠실학생체육관을 가득 메운 8248명의 관중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트렸다. 원정응원에 나선 KT 팬들은 승리를 직감했다. 전반 내내 박상오에게 큰 소리로 호통을 치며 움직임을 지적하던 전창진 KT 감독도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보냈다.
KT가 9일 잠실에서 열린 프로농구 경기에서 통신사 라이벌 SK를 86-65로 크게 눌렀다. KT는 21승(8패)째를 챙기며 단독 1위에 올랐다. SK는 신선우 감독이 모친상으로 자리를 비운 가운데 4연패에 빠졌다. 김민수(2점)와 방성윤(10점)이 부상에서 돌아와 최대 전력을 가동했지만 3쿼터에 벌어진 점수차를 극복하지 못했다.
경기 전부터 전 감독은 박상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올 시즌 MVP(최우수선수)감이다. 공격·수비·궂은 일 등 그만큼 잘하는 선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도 그는 승부처에서 빛났다. 전반이 끝났을 때 두 팀의 점수차는 3점. KT가 앞서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추격의 고삐를 당긴 SK가 더 좋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박상오는 기본에 충실했다. 3쿼터 시작과 동시에 수비리바운드를 연거푸 잡아내며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해냈다. 4분만에 점수는 47-34로 벌어졌다. 이때 터진 박상오의 덩크슛 한 방은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2일 동부전에서 프로 데뷔 후 첫 번째 덩크슛을 터뜨린 뒤 이날 다시 한 번 기쁨을 맛봤다.
경기 후 인터뷰실에 들어온 박상오의 눈 밑과 뺨에는 딱지가 앉아 있었다. 경기 시작 직후 방성윤과 리바운드 다툼을 벌이다 다친 때문이었다. 이 상처가 그에게는 오히려 약이 됐다. 그는 “얼굴을 다친 뒤 SK에 복수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승기를 잡기 시작한 3쿼터에서 레이업 슛 대신 덩크를 하면 분위기를 완전히 우리쪽으로 가져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15득점, 7리바운드, 도움 3개를 올리며 제 몫을 해냈다.
한편 창원에서는 안양 인삼공사가 홈팀 LG에 83-80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공동 6위 LG와 SK는 이날 나란히 져 제자리걸음을 했다. 인삼공사는 7연패를 끊었다. 원주에서는 동부가 오리온스에 81-64로 승리했다.
이정찬 기자 [jaycee@joongn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