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8·오릭스)는 훈련이 끝난 뒤에도 공을 쥔 채 숙소로 퇴근할 때가 많다. 최대한 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가급적 손에서 놓지 않으려 한다. 17년간 미국에서 썼던 공과 일본에서 새로 써야 할 공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임창용(35·야쿠르트)도 마찬가지다. 일본야구기구(NPB)가 올해 공인구를 바꾼 탓에 적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본에서 8년째를 맞는 타자 이승엽(35·오릭스)에게도 새 공인구는 작지 않은 변화다. 박찬호 "적응하면 편할 것"박찬호가 가장 민감하게 느낀 건 공 표면의 감촉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롤링스 공을 썼던 박찬호는 "일본 공은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롤링스의 표면은 더 미끄러운 편인데, 미국에서는 러빙머드(rubbing mud)라는 특수 진흙을 묻힌 뒤 사용한다. 때문에 일본의 새 공인구는 진흙을 묻힌 메이저리그 공보다 마찰력이 큰 셈이다.
박찬호는 "아직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공 표면은 습도에 영향을 받는데, 이곳(미야코지마) 날씨가 습해서 손에 잘 잡히는 것일 수 있다"면서 "적응만 하면 (변화구 구사 등이)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많은 선수들이 공 적응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지금까지 박찬호는 이를 잘 풀어내고 있다.
임창용 "비거리 줄어 다행"임창용은 "잡아봐서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고 했다. 그가 비교한 대상은 지난해까지 일본에서 썼던 공이다.
지난해까지 일본 12개 구단 중 대부분은 미즈노 공을 썼는데, 그 외에도 7개 공인구가 더 있었다. 올해는 전 구단이 새 규격의 미즈노 공으로 통일했다. 이 공은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둘레 22.9~23.5㎝·무게 141.7g~148.8g)에서 최소크기·최소무게에 가깝게 제작됐다.
임창용은 "미세한 차이이지만 타구 비거리가 줄어든다니 투수로서는 다행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새 공인구가 투수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이다. 임창용은 새 무기로 커브를 장착했다. 아울러 다른 변화구 비중도 높아질 전망. 반발력이 작은 공이라면 직구를 맞았을 때보다 변화구를 던져 맞는 편이 낫다.
이승엽 "일단 맞히는데 주력"공인구 변화는 타자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승엽은 담담했다. 그는 "큰 차이가 아니라고 본다. 일단 정확히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승엽이 지난 3년간 부진한 이유는 파워가 아닌 기술적 문제 때문이었다. 힘은 충분하지만 타격 밸런스가 무너진 탓에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이승엽이 '정확한 타격'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현실적인 고민에서 나왔다. 공 표면 마찰력이 커지고 실밥이 커지면 투수에게 유리하다. 공 끝 변화가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이승엽은 비거리를 손해 보더라도 정확성 향상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Tip… 일본 프로야구는 올해부터 공인구를 미즈노로 통일했다. 8개사가 난립하던 상황에서 하나의 공으로 통일, 12개 구단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도록 만든 것이다. 아울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공인구인 롤링스와 거의 같은 제원을 선택했다. 일본이 2006년과 2009년 WBC에서 우승했지만 공인구 적응에 애를 먹으면서 1라운드에서는 늘 고전했다고 판단했다.
새 공인구는 이른바 '날지 않는 공'으로 불린다. 볼 중심의 코르크를 감싸는 고무를 저반발 소재로 바꿨다. 잘 맞은 외야 플라이의 경우, 예전 공을 때렸을 때보다 1m 정도 짧게 날아간다고 한다. 또한 공인구 실밥의 크기는 1mm 늘여 8mm로 확대했다. 실밥 높이는 0.2mm를 낮춰 0.8mm로 줄였다. 실밥이 커진 것은 투구의 무브먼트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투수들은 "공이 약간은 가볍고 작아진 것 같다"고 하는데, 이는 실밥 높이가 약간 낮아진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