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600만 시대가 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급속히 냉각됐던 프로야구시장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을 따면서부터 화려하게 부활했다. 불과 4년 전 일이다. 그해 나는 넥센 구단주 대행직을 시작했다.
그 무렵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야구단이 꾸려졌다. 넥센 히어로즈에서도 이택근 선수와 장원삼 선수가 출전했다. 감독은 K감독이었다. K감독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 나의 선친이 돌아가신 해에 태어난 K감독은 공주고교 출신으로 고교시절 대통령배에서 우승했다. 흥미롭게도 그가 어린 시절 야구 연습을 한 장소가 차일혁 경무관이 돌아가신 공주 금강 백사장이었다.
K감독은 베이징올림픽에서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편파 판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상대로 7:8의 대역전승을 기록했다. 강적 일본마저 박빙의 승부 끝에 승리, 마침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올림픽이 끝나자 국가대표 야구단은 금위 환향했다. 얼마 후 9월 1일 신라호텔에서 있었던 축하연에서 우연히 만난 K감독은 공주에 얽힌 나와의 인연을 신기해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올림픽에 가기 전 기가 막힌 꿈을 꿨습니다. 공주고교시절 대통령배 우승을 했을 때와 똑같은 꿈이었습니다.”
그가 꾼 꿈은 어떤 꿈이었을까. 공교롭게도 K감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나 역시 꿈을 꿨다. 놀랍게도 꿈속의 장소는 K감독이 야구 연습을 했다는 공주 금강 백사장이었다. 나는 우두커니 공주 금강 백사장에 서 있었다. 그때 금강이 거대한 해일로 변해 나를 덮쳤다. 백사장은 마치 쓰나미가 몰아닥친 듯 하늘 높이 솟구쳤다.
꿈이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그 꿈을 꾼 뒤 공주 출신 K감독이 올림픽 야구단 감독이 됐다는 소식에 큰 경사가 생기리라 직감했다.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서로 ‘좋은 꿈을 꿨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헤어진 뒤로는 다시 꿈 얘기는 하지 못했다.
문득 대학시절 친구들과 놀러간 인천 시도가 생각났다. 우리는 시도에서 훈련 중인 야구명문 S중학교 야구단과 만나게 됐다. 10대 중반의 앳된 얼굴. 하지만 내 눈에 장차 큰 대목이 될 선수 두 명이 눈에 띄었다. P선수와 K선수였다.
“저 두 명 보이지? 고교선수가 되면 틀림없이 스타가 된다.” 내 말을 친구들은 믿지 않았다. 너무 어린 선수들이었기 때문. 내 예언은 계속됐다. “문제는 고교졸업 후야. 사회인이 되면 별다른 성과 없이 선수생활을 접을 지도 몰라.”
몇 년 뒤 내 예언은 현실이 됐다. 유망선수였던 P선수와 K선수는 고교 때 큰 인기를 얻었지만 졸업 후 생각보다 일찍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P선수는 야구해설가의 길로 나갔고 K선수는 자취를 찾기 힘들었다.
2008년, 공주 금강 백사장이 용솟음치는 꿈을 꾼 뒤 맡게 된 넥센은 마침내 최하팀의 불명예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그때는 물어보지 못했던 K감독의 꿈도 나와 비슷한 꿈이 아니었을까. 런던올림픽에서는 안타깝게도 야구를 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또 다른 스포츠스타가 등장해 우리를 즐겁게 해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