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만난 한 택시 기사는 체전을 바라보는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택시 기사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올해 제 93회 전국체육대회는 시작부터 관심을 모았다.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올 여름 열대야를 날려버린 런던올림픽 스타들을 눈앞에서 볼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가는 지금, 런던 스타들의 표정은 제각각이다. ‘월드 넘버 원’답게 국내에서도 정상을 지킨 선수들이 있는 반면,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체면을 구긴 스타들도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엔 후자가 속출해 ‘이변’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 Up! 더욱 빛난 런던 스타
‘신궁 커플’ 오진혁-기보배는 이번에도 함께 정상에 올랐다. 런던올림픽 양궁 남녀 개인전에서 각각 금메달을 딴 뒤 서로 연인 사이임을 당당히 고백한 이들은 체전(남녀 일반부)에서도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보배는 경기가 끝난 뒤 “오빠가 먼저 이겨 힘이 났다”며 애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오진혁은 런던올림픽 스타 중 단연 돋보였다. 일반부 결승에 앞서 열린 거리별 경기30m, 50m, 70m에서도 금메달을 휩쓸며 4관왕에 올랐다. 현재 핀수영의 김보경과 함께 다관왕 1위에 오른 그는 유력한 체전 MVP(최우수선수) 후보다.
‘역도 여왕’ 장미란도 빛났다. 올림픽에서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체전에선 10년 연속 3관왕에 올랐다. 사실상 국내엔 적수가 없는 만큼 예상된 결과였다. 그래도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 동안 정상의 자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피나는 자기 관리와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올림픽 스타’ 손연재도 리듬체조 고등부 개인종합에서 월등한 실력으로 3연패를 차지했다. 리듬체조가 열린 경북대학교 체육관엔 계단까지 인파가 들어차 손연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 Down!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격 대표팀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진종오, 김장미, 최영래 등 메달리스트 들이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런던올림픽 2관왕 진종오는 50m 공기권총에서 7위에 그쳤고, 은메달리스트 최영래도 4위에 머물렀다. ‘신예’ 김장미는 부담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15일 열린 여자일반부 10m공기권총 본선에서 19위로, 8명이 출전하는 결선에도 오르지 못했다. 앞서 13일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25m 공기권총에서도 5위로 미끄러졌다. 그나마 진종오가 10m공기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며 사격대표팀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렸다.
‘멈춰버린 1초’로 런던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신아람은 펜싱 여자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얼짱’ 태권전사 이대훈도 63kg급 첫 판에서 패해, 한 경기 만에 대회를 끝냈다. 올림픽 2연패 황경선은 태권도 여자 67kg급 은메달로 체면 치레를 했다.
◇ “올림픽 뒤 체전은 잘해야 본전”
올림픽 스타들이 연이어 열린 국내 대회에서 부진한 건 올해 만의 일이 아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뒤 열린 체전에서도 고개 숙인 스타들이 많았다. 배드민턴 남자 복식에서 금메달을 땄던 이용대는 체전 남자복식 4강에서 탈락했고,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손태진도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박경모 등 남자 양궁 메달리스트들은 모두 개인전 초반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올림픽 스타들의 부진은 훈련 부족과 부담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나온 종목의 한 협회 관계자는 “올림픽 스타들은 체전에 나가서 잘해야 본전이다. 사람들이 금메달 따는 걸 당연하게 여기니 더욱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올림픽 뒤 밀려드는 행사를 소화하느라 훈련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진종오를 제치고 사격 50m공기권총 금메달을 딴 이대명은 “훈련을 거의 못했는데도 (진종오가) 그 정도를 쏘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 했을 정도다.
물론 그 와중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들은 있다. 장영술 양궁 국가대표 총 감독은 “양궁은 국내대회가 더 힘들다. 이번 체전에 참가한 선수 중 올림픽 메달리스트만 해도 여러명”이라며 “오진혁이 좋은 성적을 거둔 건 올림픽 이후에도 기량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정신력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