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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미래한국 리포트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비결은?’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한 목소리로 복지비 지출 확대를 공약으로 내건 가운데, 지출확대 자체 보다는 복지제도와 복지지출 제공 방식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복지비 지출도 무분별한 지출 보다는 가족복지와 고용복지 중심으로 늘려야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지속 가능한 복지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
SBS는 1일 오전 8시 열린 ‘제10차 미래한국리포트’ 발표회에서, 경제에 부담을 덜 주고 지속가능한 복지와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SBS는 발표회에서 우리나라의 복지비 지출을 늘리는 게 불가피하지만,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적게 하고 또, 경제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지출 전략을 짜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갈수록 잠재성장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성장 전략도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봤다. 이와 함께 양적 성장에서 혁신을 바탕으로 하는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할 것으로 분석했다.
SBS는 이런 성장전략 비전을 ‘착한성장사회’ 로 규정했다. 착한성장사회는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고 사회 발전과 개인 발전이 균형을 이루는 사회의 질(Social Quality)이 높은 사회’로 SBS는 설명했다.
SBS는 ‘착한성장사회’를 위한 비전 개발을 위해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1년 넘게 연구해왔으며, 이날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SBS는 특히 국내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와 독일, 터키 해외 4개국에 대해 광범위하게 국민의식조사와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우리나라와 비교 분석했다.
연구팀은 먼저 유럽 각국의 사회의 질(Social Quality)을 살펴본 결과, 유로존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사회의 질은 전체 사회의 발전이 개인의 역량개발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 지를 보여주는 정도를 나타낸다. 보통 제도역량과 시민역량이 균형적으로 발전할수록 사회의 질이 높게 나타난다.
연구팀은 13개 경제지표와 사회지표를 동시에 투입해, 각 국가들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하는 다차원분석(MDS)도 추가로 시도했다. 이 분석에서 서로 비슷한 특성을 가진 나라들은 가깝게 위치하고,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나라는 멀리 놓이게 된다. (그래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수준(세로축)과 거버넌스(가로축)을 기준으로 다차원분석 결과를 나타낸 결과 한국은 좌측 하단에 위치해, 전반적으로 복지비 지출이나 거버넌스 부문에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버넌스는 정치나 정책의 신뢰성 등 사회 전반적인 신뢰수준과 투명한 정도를 나타낸다. 가로축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거버넌스의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다.
연구팀은 거버넌스의 개선 없이 복지지출만 늘릴 경우에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와 같이 현재 경제위기에 취약한 국가들이 밀집해 있는 왼쪽 윗부분에 도달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 한국이 따라야 할 모델로 경제 불안에도 지속적 성장과 건전한 복지가 함께 이뤄지고 있는 우측 상단의 국가를 들었다.
연구팀은 이런 분석 결과를 토대로 향후 복지지출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거버넌스 개선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봤다. 복지지출을 한꺼번에 늘리기 보다는 국민이 신뢰하는 복지정책 모델을 만들면서, 이런 성공사례와 국민신뢰를 토대로 점차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따라해서는 안되는 거버넌스의 모델로는 그리스 사례를 들었다. 그리스는 과거 양대 정당인 사회당과 신민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경쟁적으로 부채를 늘려놨다. 특히 정치적 지지의 대가로 부패를 눈감아주고 혜택을 제공하는 정치적 후견주의가 나타났다.
연구를 수행한 장덕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소장은 “그리스는 많은 복지지출이 이뤄졌지만, 정치적 후견주의라는 수준 낮은 거버넌스의 틀 안에서 집행됐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그리스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많은 복지비 지출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75.8%가 “복지 예산집행이 투명하지 않다”고 답했고, 64.7%는 “현행복지 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답했다. 연구팀은 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설문 결과가 각각 55.5%와 49.5%로 나타났다며, 복지 거버넌스 부문의 후진성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연구팀은 복지지출을 늘리되, 복지지출의 구성을 지혜롭게 짤 필요성도 제기했다. 특히 복지지출 가운데 가족복지와 고용복지 비중을 늘릴 것을 제안했다. 이런 제안은 경제가 건전한 나라일수록 복지지출에서 가족복지 및 고용복지 지출의 비중이 높았다는 분석을 토대로 이뤄졌다.
좌측 상단의 이탈리아나 그리스의 경우 많은 복지지출에도 불구하고 좋은 복지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국가부채에 허덕이는 반면, 우측 상단의 스웨덴이나 덴마크는 복지국가이면서도 위기에 강한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우측 상단의 국가들은 가족복지와 고용복지 지출이 많은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여성의 경제활동을 돕는 보육 같은 사회서비스, 그리고 근로자의 소득보장과, 고용서비스 같은 재취업 지원에 많은 돈을 쓴다. 사회투자형 혹은 고용친화형 복지지출이 많은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연금과 의료 같은 전통적인 프로그램만 과대성장돼있다. 요약하면 스웨덴은 고용을 매개로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이러한 선순환 고리가 매우 약한 것이다.
연구팀은 복지바람을 탄 대한민국호가 가야할 방향은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추진한 방향(아래 그래프 A방향)이 아닌 스웨덴과 덴마크 방향(아래 그래프 B 그룹)이라고 주장했다. 스웨덴까지는 가기 힘들더라도 최소한 방향은 B쪽으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17년간 복지지출을 많이 늘렸지만 복지지출 구성에 개선이 없었다. 반면 유럽의 강국 독일은 고용친화형 복지의 비중을 늘려, 어렵게나마 B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 지금처럼 복지 시스템을 갖추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외에도 일자리를 늘리는 성장을 위해서 1)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을 높일 것, 2)일자리 창출에 노사가 협력하고, 정부가 이를 지원할 것, 3)규칙을 지키고 서로 양보하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도록 선진형 국가 거버넌스를 확립할 것, 4)창조적 기업가 정신을 새로운 성공방정식으로 삼을 것 등을 주문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주요 대선 후보들도 참석해, 착한 성장 사회를 위한 자신들의 비전을 소개했다.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600여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참석했다.
유아정 기자 porol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