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배두나(33)가 충무로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으로 국내 관객 앞에 섰다. 내년 1월 9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가 배두나의 할리우드 진출작. '매트릭스' 시리즈의 워쇼스키 남매와 '향수' '롤라 런' 등을 연출한 톰 티크베어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톰 행크스와 휴 그랜트·할리 베리·수잔 서랜든·짐 스터게스 등 출연진도 쟁쟁하다. 톱스타급 배우들이 시공간을 뛰어넘으면서 1인 다역을 소화하는 와중에도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인 손미 451을 연기한 배두나의 활약이 가장 돋보인다. 앞서 출연한 일본영화 '린다린다린다'(05)와 '공기인형'(09)에서도 실력파 감독들의 부름을 받아 화제에 올랐지만 이번에는 아시아 배우의 진출이 쉽지 않은 할리우드까지 개척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만하다.
-해외활동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 같다.
"무책임해 보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은 해외진출을 꿈꿔본 적이 없고 준비한 것도 없다. 내 쪽에서 먼저 접촉을 시도한 적도 없다. 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 전반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져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 개척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시선은 부담스럽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물론이고 앞서 출연한 두 편의 일본영화도 그 쪽 제작진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던데.
"맞다. '린다린다린다'때는 '고양이를 부탁해'의 일본개봉 준비 때문에 현지 호텔에 묵고 있을때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님이 직접 찾아와 미팅을 가지게 됐다. '공기인형'의 고로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올 때마다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한국배우로 나를 꼽았다. 세계적인 감독이 팬을 자처하는데 기분이 들뜨지 않을수 없다. 그러던 중에 히로카즈 감독님이 '공기인형'의 시나리오를 보내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아틀라스' 때도 '플란더스의 개' '공기인형' 등을 본 워쇼스키 남매 감독이 내게 캐스팅 제의를 해왔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는 동안 소속사 관계자도 없이 혼자 부딪쳤다.
"혼자서 해내고 싶었는데 덕분에 많이 외로웠다. 일본에서 영화작업을 했지만 거긴 그래도 비슷한 동양 문화라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더라. 막막할 뿐이었다. 밥도 혼자서 먹었다. 다행히 촬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괜찮아졌다. 현장에서 또래 배우들과 친해지면서 외로움을 극복했다."
-일본어에 영어 대사까지, 외국어 습득능력이 확실히 남다른것 같다.
"적응이 빠른 편이긴 하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배우들도 내게 첫 촬영 당시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했다면서 '인크레더블'이라 외치더라. 그동안 작품 때문에 양궁과 탁구를 6개월씩 배우는 등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뭐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무엇보다 앞서 일본영화에 출연하며 잘 해냈던 경험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비법이 있다면.
"소리를 내는 근육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고 흉내내려고 애썼다. 이를테면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사용한 영국식 영어는 미국식 영어에 비해 구강 안 쪽 혀의 움직임이 더 강해야한다. 일본영화에 출연할 때도 내 대사로 인해 현지 관객들이 관람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발음 하나까지 각별히 신경을 기울였다."
-해외를 오가면서 한국영화의 달라진 위상을 느끼나.
"유럽에서는 상당한 마니아층이 형성돼있다. 심지어 옷가게 점원까지 나를 알아볼 정도다. 옷을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한국의 여배우 아니냐'며 말을 걸더라. '괴물'을 봤다고 하더라. K-POP이 굉장한 일을 하고 있지만 영화도 무서운 속도로 세계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앞서나간다는 생각에 우쭐해지더라."
-해외 촬영현장에서는 한국배우들의 어떤 점을 높이 사던가.
"한국인들에겐 뭐든 맡으면 해내고야마는 근성이 있다. 그게 사실 우리들끼리는 익숙한데 외국인들이 봤을때는 놀라울만하다. 배우들의 경우에도 정말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지 않나. '한국의 촬영현장이 어떻길래 배우들이 그렇게 많은걸 해내냐'며 놀라더라."
-외국음식은 잘 먹는 편인가.
"아니다. 사실 토종 한국인 입맛이라 아무 음식이나 다 잘 먹진 못한다. 원래 스파게티나 빵을 잘 먹는데 막상 해외에 나가 피클 없이 먹으려니 잘 넘어가지 않더라. 고기도 좋아하는데 외국에서는 잘 안 먹는다. 한끼를 양식으로 먹으면 한번은 한식을 먹어줘야하는데 그게 안 되니 부담이 오는 것 같다. 이번에도 샐러드만 열심히 먹었다. 속이 느끼할때는 세 끼를 내리 샐러드만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도 마늘냄새 등 그 쪽에서 싫어하는 냄새가 날까봐 컵라면은 안 먹었다. 일할 때는 철저하게 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프로페셔널이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