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손연재(19·세종고)를 비롯해 김윤희(22·세종대), 천송이(16·오륜중) 등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스트레칭에 한창이었는데 양 다리가 벌어지는 각도가 200도를 넘었다. 한쪽 다리는 매트에, 다른쪽은 의자 혹은 그보다 높은 봉에 올린 채 그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취재진은 이 기이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리듬체조 선수들은 스트레칭뿐 아니라 연기를 펼치는 1분30초 동안에도 몸이 엿가락처럼 휘는 동작을 여러 차례 소화한다. 인간 유연성의 한계는 어디일까.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신수지(23·세종대)는 "양 다리가 270도까지 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창 훈련할 땐 다리를 반대로 휘어 거의 직각을 만들었다. 270도 쯤 휜 거 같다”고 말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백일루전(Back Illusion·한쪽 다리를 고정하고 다른 한쪽 다리를 머리 쪽으로 들어올려 원을 그리는 기술)을 9번 성공시켜 화제가 된 신수지는 리듬체조 선수 중에서도 유연성이 특히 뛰어난 편이다. 신수지는 또 “안노 베소노바(우크라이나·은퇴)는 경기 중 점프를 할 때 다리가 270도까지 휘었다”고 증언했다. 실제 지난해 트위터엔 금발의 10대 소녀가 집안 가구에 다리를 걸치고 230도 이상 찢는 사진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연성의 한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거의 없다. 체육과학연구원(KISS)의 송주호 박사는 “과학적으로 얼마나 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시도는 없다”며 “유연성은 신체의 활동반경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뼈의 구조들이 얼마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잘 되는지 등 개인차가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기계체조에 관한 연구를 전담하는 송 박사는 “기계체조의 경우 다리가 180도 벌어지면 A급 선수다. 180도 이상은 측정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반적으론 리듬체조 선수들이 운동선수 중 가장 유연하다. 리듬체조와 피겨스케이팅 대표팀을 담당하는 KISS의 박세정 박사는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종목이 체조와 피겨·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정도인데, 이 중 가장 유연한 건 리듬체조 선수”라며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유연성을 요구하는 동작이 많아 훈련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듬체조의 경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 의자를 이용한 다리 늘리기 등 스트레칭에만 1시간 이상 쏟는다. 박 박사는 "리듬체조 선수 중에서도 270도까지 휠 수 있는 이들은 흔치 않다"며 "200도 이상을 가뿐히 소화하는 손연재 역시 유연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말했다.
유연하다고 해서 반드시 실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차상은 리듬체조 국제심판은 “의자를 받친 상태에서 유연성이 좋다고 해서 실제 점프를 하며 다리가 더 벌어지는 건 아니다. 근력이 뒷받침돼야 스스로 유연함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수지 역시 “난 힘이 좋아서 다리를 들어올린 채로 더 많이 당길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유연해 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