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스틸러스가 40주년을 맞이했다. K리그를 이끄는 축구단 답게 각종 최초 기록을 독식하고 있었다. 이 기록들은 40년 동안 한국 축구를 살 찌웠다. 포항이 26일 발표한 '포항스틸러스 40년사'를 바탕으로 '최초' 기록을 정리했다.
① 최초 유소년 시스템
포항제철을 세운 고 박태준 회장은 축구에 일찌감치 눈을 뜬 경영인이었다. 그는 60년대 "종가 잉글랜드 축구를 알기 위해서는 영어를 배워야 한다"며 선수들에게 영어로 된 축구잡지를 구해다 주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축구의 미래는 프로축구에 있다고 간파했다. 또 프로축구의 뿌리는 인재에 있다고 봤다. 박태준 전 회장은 1980년에 이미 유소년 육성을 시작했다. 포항은 당시 전국 15개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망라됐다. 이들에게 훈련비와 비품을 제공하며 장기적으로 우수선수를 발굴하게 도왔다.
1985년에는 포철중-포철공고 축구단을 창단해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갖췄다. 그러면서도 어린 유망주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유학을 돕기도 했다.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스트라이커 황선홍과 이동국, 박주영도 포항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선수들이다. 2003년에는 유스팀을 사단법인화해 가장 발빠르게 선진국형 유스시스템을 갖춘 팀이 됐다. 2013년 현재 32명의 포항 선수 중 15명이 유스팀 출신이다.
② 전용구장+클럽하우스
포항은 인프라 면에서도 빨랐다. 홈구장인 스틸야드는 한국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이다. 당시 돈 110억원을 들여 1990년 11월 완공했다. 육상용 트랙이 없어 관중석과 경기장의 거리는 불과 6m에 불과하다. 박태준 회장이 직접 유럽을 돌면서 축구전용구장을 답사해 만든 역작이다. 포항 관계자는 "당시 한국에는 축구 전용구장이란 용어도 없을 때였다. 23년 전 이미 포항은 축구전용구장을 만들었다"고 전했다.
2000년 전까지 프로축구 선수들은 아파트 등에서 합숙생활을 했다. 그리고 훈련장을 찾아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라데 보그다노비치(43)도 "클럽하우스가 없어 인내심을 키울 수 있었다"고 떠올릴 정도였다. 이에 포항은 한국 최초의 클럽하우스도 만들었다. 스틸야드를 만들고 꼭 10년 뒤인 2000년에는 송라에 클럽하우스를 준공했다. 80억원을 들여 2001년 완공된 송라클럽하우스는 숙소부터 천연잔디구장, 헬스장 등이 갖춰졌다.
③ 최초 외국인 선수+동유럽 특급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선수도 포항이 영입했다. 1983년 5월 브라질 출신의 호세와 세르지오가 한국 땅을 밟았다. 이들은 포스코가 브라질의 철광회사와 계약을 하며 데려온 선수들이다. 세르지오는 2경기, 호세는 5경기만 출전하고 포항을 떠났다. 그러나 이후 수많은 브라질 선수들이 한국 땅을 밟는 새 지평을 연 선수들이었다.
포항은 K리그 사상 첫 유럽 4대 리그 선수를 배출했다. 1992년 포항이 영입한 라데는 K리그에서 4시즌 동안 55득점, 35도움을 기록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6개월 정도 뛰다가 1997년 스페인의 애틀렌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1998년에는 독일 베르더 브레멘에 입단해 4년 동안 활약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라데의 성공을 발판으로 수많은 동유럽 선수가 들어왔다. 샤샤와 데얀이 그의 뒤를 잇는 동유럽 특급으로 이름을 날렸다.
④ 최초의 브라질 감독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다. 수많은 선수와 감독들을 수출한다. 그런데 한국은 2005년 전까지 선수만 수입했다. 포항은 2005년 한국 프로팀 중 처음으로 브라질 감독을 선임했다. 2004년 브라질 최우수지도자 4인에 선정된 파리아스를 데려온 것이다. 파리아스 감독은 1998년에는 브라질 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두바이 국제청소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던 감독이다.
그가 온 뒤 포항은 브라질의 기술축구를 받아들였다. 공격적이고 빠른 축구로 재미와 성적을 동시에 잡았다. 2007년에는 15년 만에 K리그 정상에 올랐고, 2008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에는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했다. 파리아스가 떠난 뒤에는 모아시르 감독이 대구에 부임해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⑤ 최초의 명예 전당
그동안 한국 프로축구는 레전드 대우에 인색했다. 2007년 한국축구 명예의 전당은 만들어지긴 했지만 프로팀은 역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부 구단은 10년 넘게 한 팀에서만 뛴 선수를 쫓아내기도 했다. 수도권 한 구단은 영구결번된 번호를 이후 다른 선수에게 주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그만큼 K리그가 역사를 관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데 소홀했단 의미다.
포항은 40주년을 맞이해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13명의 레전드를 선정했다. 고 박태준 회장부터 김기동까지 포항 축구단을 위해 힘쓴 모든 이를 망라했다. 또 박태준 회장의 호인 '청암'을 따 스틸야드 한 켠에 '청암존'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 레전드는 기념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이야기에 목이 말랐던 것이다. 포항은 프로축구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