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김호 관전평] 예선 내내 한국의 적은 내부에 있었다
적은 내부에 있었다.
한국 대표팀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내가 대표팀을 이끌던 1994년 미국 월드컵 예선 이후 가장 힘든 아시아지역 예선이었다. 그러나 당시처럼 상대가 강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축구 스스로 내부의 적을 키웠고 위기를 자초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가 늘었다. 그동안 잠재돼 있던 갈등의 씨앗은 서서히 자랐다. 조광래 감독에서 문제가 생겨 최강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었다. '시한부' 감독을 데려온 것이 결과적으로 악수(惡手)였다.
최강희 감독이 스스로 본선까지 가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대표팀의 생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가벼운 행동이었다. 그는 선수단도 꾸준히 갈아치웠다. 8차례 최종예선에서 선발 명단이 모두 달랐던 것도 이런 이유다. 조직력을 다질 기회는 없었다. 선수들도 불안해 하고 감독은 책임감이 없어졌다. 이런 것이 자꾸 반복됐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사이의 신뢰가 깨졌다.
올 초 2~3경기에서 대표팀이 졸전을 이어갈 때 대표팀 사령탑에 뭔가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금 대표단은 평가할 가치가 없다. 경기력이 들쭉 날쭉하고, 전체적인 질이 너무 떨어졌다. 최종예선 5~7차전인 카타르(2-1승), 레바논(1-1무), 우즈베키스탄(1-0승)전은 형편 없었다. 패하진 않았지만 내부의 적이 한국 대표팀을 갉아먹은 뒤였다.
직접 비교하긴 힘들지만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대표팀이 떠오른다. 한국에는 함흥철과 김정남, 김삼락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러나 첫 경기에서 1-4로 패하며 흔들렸고, 마지막에는 아랍에미레이트(UAE) 같은 약팀에도 0-10으로 패했다. 선수들의 정신력에 문제가 생기면 아무리 단단한 팀도 쉽게 무너진다. 그만큼 내부의 적은 무섭다.
이는 인적 쇄신을 통해 이겨내야 한다. 당장 대표팀 감독을 다시 선임해야 하는데,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아무나 앉혀 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차기 감독은 ▶ 선수단을 관리할 카리스마가 있고 ▶세계축구 흐름을 전략적으로 적용시키며 ▶경험이 많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 감독을 선임한 이후에는 협회 차원에서 감독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감독은 짬이 나는대로 선수들을 차출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또 평가전을 하면서 새 감독이 팀을 조련하고 선수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일간스포츠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