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수상한 그녀'(황동혁 감독)가 누적관객수 600만명을 넘기며 빅히트작 대열에 합류했다. 손익분기점의 3배에 해당하는 관객수다. 내세울만한 스타도, 또 큰 기대를 받지도 못했던 작품의 예상치못한 선전에 관계자들도 놀라는 눈치다. 설 연휴를 겨냥해 개봉된만큼 '명절에 특수를 누리며 관객수 200~300명선에서 끝날 것'이란 예상이 나왔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흥행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겨울왕국'과 연일 박스오피스 1위 쟁탈전을 벌이며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수상한 그녀'의 인기비결과 주로 이 영화를 찾는 관객층을 알아봤다.
▶심은경 능청 연기 볼만해, 웃음+감동 잘 버무려낸 상업영화
'수상한 그녀'는 영화계 내에서도 주목도가 높지 않았던 작품이다. 노인이 20대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코미디라는 설정이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거기다 내세울만한 스타가 없어 사전 홍보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고편이 공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능청스럽게 70대 노인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내는 주연배우 심은경의 연기가 연신 웃음을 유도하며 호기심을 자아냈다. 온통 보글보글 말린 '할머니 파마'를 하고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는가하면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얼굴로 "남자는 그저 돈 잘 벌어오고 밤일 잘하는게 최고"라는 구수한 대사까지 소화해 보는 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앞서 '천만영화'가 된 '7번방의 선물'도 개봉 직전까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용구. 1961년 1월 18일 태어났어요. 제왕절개, 엄마 아팠어. 내 머리 커서"라는 대사와 바가지 머리의 류승룡을 보여준 예고편 하나로 상황을 반전시켰다. '수상한 그녀' 역시 '7번방의 선물'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홍보효과를 누리고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다.
예고편이 재미있게 나왔다고해도 본편이 기대에 못 미치면 오히려 부작용만 커지는 법. 다행히 '수상한 그녀'는 예고편에서 드러낸 재미를 본편에서도 충실히 보여준다. 심은경은 감정연기에 슬랩스틱, 거기다 노래와 춤까지 소화하며 매 신을 리드한다. 잘 생긴 방송사PD가 노래 부르는 심은경에 반해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등 '미녀는 괴로워'를 연상시키는 뻔한 전개와 유치한 설정이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음새가 어색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필요한만큼의 웃음과 감동코드를 잘 버무려 폭넓은 관객층에 어필하는, 전형적인 '충무로발 상업영화'다.
▶모성본능 자극, 30·40대 여성관객 마음 움직여
철저히 '가족관객'을 타깃으로 삼은 전략 역시 주효했다. 억척스럽게 살아온 노년의 여성이 20대의 몸으로 돌아가 잠시나마 청춘을 누린다는 스토리, 부담스러운 존재로 전락했던 70대 노인이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갈등을 봉합하게 된다는 내용이 30·40대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70대 노인이 20대 처녀의 몸으로 돌아가 예쁜 옷을 입고 잘생긴 남자와 연애 감정을 주고 받는 에피소드 역시 중년 여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화예매사이트 맥스무비 영화연구소의 '수상한 그녀' 연령대 예매율 분석에 따르면, 30대와 40대 여성의 예매율이 가장 높다. 12일 현재 30대 여성의 예매율이 19.92%, 40대 여성의 예매율은 19.22%까지 올라간 상태다. 특히 주목할만한 부분은 20대 관객의 예매율이다. 흔히 '데이트 무비'의 경우 20대·30대 남성의 예매율이 높은 편. 하지만, '수상한 그녀'는 20대에서도 여성관객의 예매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의 예매율이 8.05%인데 반해 20대 여성의 예매율은 무려 16.17%나 된다. '수상한 그녀'가 '데이트무비'가 아닌 '가족용 영화'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게 만드는 데이터다.
예매율 데이터를 살펴본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은 "20대 여성이 영화표를 예매하고 부모를 동반해 극장을 찾는 양상이 엿보인다. 30대와 40대 관객 예매율이 전체의 65%나 되고, 특히 40대 관객의 비율이 43%까지 올라갔다. 전형적인 가족영화의 예매율 추이"라며 "설 연휴기간 가족 관객을 상대로 획득한 인지도와 호감도를 기반으로 꾸준히 가족관객, 특히 모녀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어머니 생각나" 40대 남성 예매율도 만만치않아
여성관객들이 '수상한 그녀'의 흥행에 큰 힘이 되고 있는건 사실. 상대적으로 남성 관객의 예매율은 다른 작품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편이다. 20대 남성관객의 예매율은 8.05%로 일반적인 흥행영화의 기본 수치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30대 남성의 예매율 역시 13.47%에 그친다. 하지만, 유독 40대 남성관객의 예매율은 16.94%로 600만명 이상을 동원한 타 작품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수상한 그녀'가 보여주고 있는 '어머니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억척스럽게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노년의 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40대 남성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 아들에겐 애착을 보이면서도 며느리에게는 퉁명스럽고 불평만 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장의 에피소드도 40대 남성을 '수상한 그녀'에 빠져들게 만든 주요인이다.
극장 측 한 관계자는 "스무살 처녀의 몸으로 돌아간 어머니가 아들 성동일과 마주하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는 40대 남성 관객이 많다"고 말했다. '수상한 그녀'의 온라인 게시판과 관련 기사 댓글창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어머니가 떠올랐다'는 남성 관객들의 글이 자주 눈에 띈다.
▶재관람율도 높은편, 800만 돌파도 가능해
그렇다면, '수상한 그녀'의 상승세는 어디까지 이어질까. 일단, 600만명을 넘어선 시점에 재관람율이 무려 6.46%까지 치솟은 상태다. 소위 '천만영화'의 평균 재관람율이 7%대라는걸 감안한다면 '수상한 그녀'에 대한 관객 충성도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수 있다.
앞서 '과속스캔들'이 800만명 돌파 시점에서 기록한 재관람율이 6.08%다. '수상한 그녀'가 600만명 돌파 시점에서 6.46%의 재관람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 그리고 개봉 4주차에도 예매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때 800만명선까지 무난하게 상승세를 이어갈수도 있다는게 영화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나성에 가면' '하얀나비' 등 극중 심은경이 부르는 70년대 히트곡들도 음원사이트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OST의 인기가 영화 홍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관객을 불러들일수 있을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