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서정원(44) 감독은 생글생글 잘 웃는다. 성격도 부드럽다. 그가 2012년 12월 수원 지휘봉을 잡았을 때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유는 '수원병(病)'이었다. 수원은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데 모래알처럼 뭉치지 못한다는 데서 연유했다. 유약해보이는 서 감독이 수원 선수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가 있겠느냐는 걱정이었다. 서 감독은 두 번째 시즌인 올해 이런 평가를 깨끗하게 잠재웠다. 수원은 지난 16일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하며 정규리그 2위를 확정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본선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명가 재건의 발판을 다시 마련한 서 감독을 17일 화성 클럽하우스에 만났다.
◇ 유능제강(柔能制剛·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하하. 신경 안 쓴다. 겉치레보다 좋은 축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독이라는 꿈을 심어주신 분이 크라머(1992년 올림픽대표팀 사령탑) 감독님이다. 그는 '카리스마는 쓸 곳이 없다. 선수에게 맞는 옷을 찾아주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본인 스스로의 색깔은.
"딱딱한 것보다 부드러운 것이 좋다. 높은 다리도 흔들리고 고층 빌딩도 유연해야 안 무너진다. 지는 것을 너무 싫어하지만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즐거움 속에 진지함을 강조했다."
- 수원 선수들은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니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선수들이 너무 착하다. 특히 노장들에게 고맙다. 염기훈(31)·김두현(32)·홍순학(34)·오장은(29)·최재수(31)가 팀에서 훈련을 제일 열심히 했다."
- 출전기회가 적은 선수들의 불만은 어떻게 달랬나.
"여기에 수원이 강한 이유가 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의 벽을 허물었다.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고충을 들었다. 코치진에도 선수를 한 번 더 안아주라고 주문했다."
◇ 다난흥방(多難興邦·어려움이 많을 수록 단결해라)
서정원 감독은 부진한 로저와 산토스를 끝까지 기다려 살려냈다.
IS포토서정원 감독은 부진한 로저와 산토스를 끝까지 기다려 살려냈다.
IS포토
- 경기력은 어떻게 끌어올렸나.
"비주얼스포츠(축구 전문 분석 업체)를 통해 매 경기 통계를 받는다. 작년 수원은 스프린트(전력질주)가 12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빠르게 뛰어야 할 순간에 지켜보기만 했다는 뜻이다. 선수들에게 이 통계를 보여주며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되물었다. 선수들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는 함께 해결했다."
- 그렇게 되기까지 신뢰가 중요했을텐데.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현역시절 다양한 경험을 했다. 십자인대도 끊어졌고, 벤치에서 시즌도 보냈다. 과거 내가 거울처럼 비춰지더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니까 스스럼 없이 이야기했다."
- 정대세와 로저·산토스 등 부진한 공격수도 끝까지 기다렸다.
"나도 슬럼프를 겪어봤다. 딱딱하지 않게 '요즘 아주 죽겠지'라고 물으며, '그럴 때 골 욕심을 버리고 팀을 먼저 생각해. 경기가 풀릴 거야'라고 조언했다. 쌓인 경험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더라."
- 인동초를 보는 느낌이다.
"선수시절부터 아픔이 많았다. 레버쿠젠(독일)과 바르셀로나(스페인) 등 명문팀에서 제안이 왔지만 가지 못했다. 1997년 벤피카(포르투갈)에서는 겨울 훈련을 함께 했고 등번호도 9번까지 받아놨다가 대한축구협회에서 프랑스 월드컵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적동의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꿈이 꺾인 아픔은 경험하지 못하면 모른다. 힘든 시기를 겪으며 인내심을 길렀다. 상황은 이미 벌어진 것이다. 이겨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감독으로 꿈이 있다면.
"오랫 동안 수원을 이끌며 예전의 전성기를 되찾는 것이 목표다. 아직 새까맣게 멀었다. 힘들지만 해야 하고 만들어야 한다. 수원은 가장 팬이 많은 팀이다. 그에 걸맞는 즐거운 축구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