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계에서 등번호 '7번'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팀의 에이스에게만 허락되는 등번호다. 데이비드 베컴(41), 라울 곤잘레스(39), 박지성(35·이상 은퇴)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7번을 달고 소속팀과 국가대표팀에서 주축으로 활약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 역시 7번이다.
하지만 올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가들의 상황은 정반대다. 7번을 달고 있는 선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모두 부진하다. 지난해 여름 나란히 유니폼을 갈아입은 3인방이 대표적이다.
손흥민(24·토트넘)과 멤피스 데파이(22·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라힘 스털링(22·맨체스터 시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고비용 저효율'이란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이들 모두 거액의 이적료와 함께 각 팀에 입단했다. 손흥민은 3000만 유로(약 400억원), 데파이와 스털링은 각각 3400만 유로(약 450억원)와 6250만 유로(약 850억원)의 이적료를 기록했다. 각 구단은 젊은 세 선수에게 7번을 부여하며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와는 딴판이다. 7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새다. 세 명 모두 주전 경쟁에서 밀려났다.
최근 토트넘 베스트 라인업에 손흥민 자리는 없다. 그는 지난 19일(한국시간) 스토크 시티 원정 경기에서도 후반 종료 직전 교체 투입됐다. 손흥민은 올 시즌 리그 24경기(14경기 교체 출전)에 출전해 2골1도움을 올리는 데 그치고 있다.
데파이는 벼랑 끝에 내몰렸다. 과거 맨유에서 베컴과 호날두 등이 7번을 달고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뒤 7번 계보가 끊겼다. 데파이는 입단 초 당당히 7번을 요구하며 선배들의 영광을 잇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욕심이었다.
그는 올 시즌 리그 25경기(10경기 교체 출전)에서 2골을 터뜨렸을 뿐이다.
스털링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는 리버풀 소속이던 지난해 여름 이적을 요구하며 훈련에 불참하는 등 논란 끝에 맨시티에 합류했다. 공격 포인트만 놓고 본다면 손흥민, 데파이보단 낫다. 리그 29경기(7경기 교체 출전)에 출전해 6골2도움을 기록했다.
하지만 팀원들과의 연계 플레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일 뉴캐슬 원정 경기에서도 후반 23분 투입됐으나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아스널과 첼시도 7번이 말썽이다. 아스널 7번 토마스 로시츠키(35)는 부상으로 올 시즌 리그 한 경기도 소화하지 못했다.
첼시의 7번은 현재 공석이다. 7번을 달고 뛰었던 하미레스(29)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장쑤 쑤닝(중국)으로 떠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