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타자여서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보니 더 감격에 젖었어요. 누가 건드렸으면 눈물이라도 쏟았을 거에요."
kt 김동명(28)에게 6일 수원 LG전 프로 첫 홈런은 그만큼 아주 특별했다. 1차지명 입단으로 입단 후 긴 무명 생활을 보낸데다 이후 이적과 안면 골절상을 극복하고 입단 10년 만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추도 출신의 김동명은 김동명은 경복중-대구고를 졸업하고 2007년 삼성 1차지명으로 입단했다. 그의 포지션은 포수였다. 그런데 진갑용과 이지영 등에 높은 벽에 가로 막혀 삼성에 몸 담은 7년(2007~13)간 고작 6경기 출장에 그쳤다.
2013년 11월 2차 드래프트, 10구단 kt는 특별 지명에서 김동명의 이름을 지목했다. 조범현(56) kt 감독이 삼성 포수 인스트럭터를 역임하던 당시 그를 직접 지켜봐왔다. kt에선 1루수와 외야수를 오가며 포지션을 전향했다. 퓨처스리그에서 4번타자로 활약하는 등 타격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4년 퓨처스리그에서 타율 0.356, 17홈런, 57타점, 장타율 0.628, 출루율 0.498을 기록했다.
김동명은 2015년 21경기에 나왔다. 특히 3월 28일 롯데와의 개막전 리드오프(지명타자)로 출전했다. kt의 1군 첫 경기, 첫 번째 타자였다.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지난 7년 보다 훨씬 더 많이 1군 그라운드를 밟았다. 타율은 0.196(51타수 10안타)를 기록했다.
하지만 더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다름 아닌 부상을 당했다. 지난해 6월, 퓨처스 팀 자체 청백전에서 투구에 얼굴을 맞았다. 안면 골절상. 결국 수술했다. 공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김동명은 "공에 얼굴을 맞았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고 한다. 시즌 아웃.
이후 김동명은 일명 검투사 헬멧을 쓰고 있다. 얼굴에 공을 맞아 다친 타자들이 복귀할 때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특수 헬멧이다. 귀덮개 부분에 보호대를 부착해 뺨과 턱 부위를 감싸게 돼 있어서 공으로 부터 얼굴을 보호한다. 심정수(은퇴)가 가장 처음 국내무대에서 사용했고 이후 이종범(은퇴), 조성환(은퇴), 김상현(kt)이 착용한 적 있다.
퓨처스 타율 0.345를 기록 중이던 김동명은 주전 김상현, 이진영 등의 부상으로 지난 4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6일 LG전 6번·지명타자로 출장한 그는 2-0으로 앞선 1회 2사 3루에서 LG 선발 이준형의 142㎞ 직구를 받아쳐 비거리 120m의 쐐기 2점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첫 안타, 그것도 입단 10년차 1군 무대 75타석만에 나온 첫 홈런이었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기대하는 홈런의 손맛. 김동명도 생각했다. 다만 감격은 그 이상이었다. 그는 "'홈런 치면 어떤 기분일까?'라고 생각하고 꼭 치고 싶었는데 홈 팬들 앞에서 때려내 더 감격적이다. 상상 그 이상의 희열이다"고 말했다.
더그아웃에 들어와서도 감격은 쉽사리 누그러들지 않았다. 헬멧을 내려놓고 잠시 고개를 숙이며 감격에 젖어있는 동안, 곁에 있던 이숭융 타격코치가 빙긋이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동명은 "(그라운드를 돌며) 너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준형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전했다. 다섯살 어린 이준형과는 2012~13년 삼성 2군에서 배터리를 이룬 적도 있다.
조범현 감독은 김동명의 잠재력을 내다본다. 조 감독은 "퓨처스 경기를 직접 보러 갔는데 이전과 달리 스윙이 많이 짧아졌더라"며 1군 엔트리 등록과 지명타자 기용 배경을 설명했다. "홈런도 쳤으니 좀 더 좋은 모습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10년 간의 무명 생활. 그는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부모님을 손꼽았다. "그 동안 오래 기다리셨을 것이다. 늦둥이다 보니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셨다. 10년 동안 늘 같은 이야기만 듣다 보니 잔소리로 생각하고 짜증만 냈는데 오늘밤은 약주도 한잔 하고, 기분 좋은 밤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김동명은 공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더 밝은 미래를 꿈꾼다. 6일 경기 4회 LG 정현욱의 116㎞ 커브가 얼굴로 날아 들었고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그는 "이제 (안면 보호) 장비가 있어 든든하다. 오늘도 머리에 공을 맞았지만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시합 때는 크게 두려움이 없다. 다만 연습 때는 착용하지 않는데 머리 주변으로 공이 날라오면 아직도 뜨금뜨금한다. 너무 아팠기에…"라며 "앞으로 경기에서 좌투수를 상대할 때는 착용하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다.
홈런을 쏘아올린 김동명은 "이제 부담감이 더 큰 것 같다. 수비 안정감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이제 됐어'가 아니라 더 열심히 해야할 것 같다"는 각오를 얘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