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전을 벌이고 연맹을 맺어 나는 숨기고 남은 속이는 일명 '정치게임쇼'가 잇따라 론칭된다. 지난 17일 파일럿으로 방송된 SBS '인생게임-상속자'는 현 시대 키워드인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등을 투영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서로 모르는 9명이 한 곳에 모여 3박 4일간 정치 싸움을 해 코인을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이 우승상금 1000만원을 거머쥐는 포맷이다.
시청자들은 호평을 보냈다. 프로그램에도 나오지만 비정규직의 설움과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 등을 적절히 풍자했다. 오는 9월에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나온다. tvN '더 지니어스' 시리즈를 성공시킨 정종연 PD의 신작인 '소사이어티 게임'이다. 22명이 정치 게임을 벌여 우승상금 1억원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현실을 반영한 정치게임쇼가 잇따라 론칭하는 이유와 일반인 예능의 한 장르로써 조심해야할 부분을 짚어봤다.
◇ 흙수저·비정규직의 애환…現 사회의 축소판
'상속자'는 모르는 9명의 사람들이 3박 4일간 한 곳에 모여 상속자·집사·정규직·비정규직으로 구분 지어 정치게임을 벌인다. 그 안에서 비정규직은 연맹을 맺고 정규직은 그들끼리 똘똘 뭉친다. 일을 하고도 정규직이 돈을 다 가져가면 비정규직에게 주어지는 건 없다. 정말 이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꿰뚫은 서바이벌이다. 도저히 상속자가 되기 힘들 것 같은 상황에서 비정규직은 다시 힘을 모으고 그럼에도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공감코드는 현실성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어쩜 이렇게 내 얘기일까'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상속자'를 만들고 기획한 김규형 PD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살아가는 우리들의 인생과 많이 닮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는 "요즘 사회적 이슈인 '헬조선' '금수저' '흙수저' 등의 키워드를 두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욕심을 부리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고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금수저는 말 그대로 부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말하고 흙수저는 그 반대. 헬조선은 지옥만큼 살기 힘든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뜻이다. '상속자'는 파일럿으로 한 회가 남았지만 예고편에서는 갈등을 빚는 9명을 조명했다. 실제 녹화 중 상금 때문에 다양한 욕망이 충돌했고 그 상황 속 인간의 본능이 튀어왔다. 이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다.
9월 론칭되는 '소사이어티 게임'은 통제된 원형 마을에서 22명의 출연자가 펼치는 14일간의 모의사회 게임쇼로 1억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인가, 그들은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실험을 펼친다. 전체적인 맥락과 기획 취지 면에서는 '상속자'와 한 노선이다.
◇제2의 '짝'이 되지 않으려면…
'빅 브라더'는 1984년 출간된 영국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유래됐다. 선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이자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통제의 수단을 말한다. 네덜란드에서 이를 모티브로 일반인이 참여하는 리얼리티 예능 '빅 브라더'를 제작했다. 3개월간 12명 남짓 참가자들이 한 집에 들어가 최종 상금을 획득하기까지 정기적인 축출 투표에서 살아남아야한다.
첫 시즌 첫 탈락자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 하고 자살했을 정도로 파급력이 상당하다. 서로를 감시해야하는 각박한 현실에서 시작된 이중적 프로그램이다. 문화평론가 이호규 교수는 "정치게임쇼는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까지 본능을 끌어내야하나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만큼 현실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하는 일반인 입장에선 더 힘들 수 있다. 방송과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수치심 등 대중들의 시선을 이겨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제작된 일반인 참가 예능 중에서도 대형 사고가 있었다. 2014년 3월 SBS '짝'은 여성 참가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 일로 인해 폐지됐다. 그 전부터 '짝'은 여러 잡음에 시달렸다. 일반인 출연자지만 쇼핑몰을 홍보하려는 목적과 과거 인성 문제 등 다양한 논란을 빚어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반인 참가자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매력적이다.
'나와 가장 닮은 사람' 혹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제작진 역시 일반인을 고집한다.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은 출연자 선발과정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한다. 김규형 PD는 "여러 검증을 거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질문까지 한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또한 성별·연령·직업·지역·성향 등 최대한 겹치지 않는 사람들을 뽑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