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18년차 권오준은 1999년 삼성 2차 1라운드 6순위로 입단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정현욱(LG), 권혁(한화) 등과 삼성의 막강 불펜 일원으로 활약했다. 프로통산 성적은 427경기에서 30승 18패 23세이브 77홀드 평균자책점 3.18이다. 2006년에는 32홀드로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권오준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선수다.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토미존 서저리(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세 차례나 받고도 이를 견뎌냈다. 2013년 세 번째 수술을 받고 통째로 쉰 그는 이듬해 전지훈련 도중 불의의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권오준은 여전히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다. 연이은 부상에 따른 구위 하락으로 지난 몇 년간 역할이 많이 줄었으나 올 시즌 후반기 다시 든든한 필승조로 돌아왔다. 1군 투수 최고 베테랑인 그가 마운드의 한 축을 맡자 전반기 내내 흔들리던 삼성 불펜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권오준은 후반기 13경기에서 1승 1패 3홀드 평균자책점 1.53으로 최근 8경기, 11이닝 연속 무실점 투구 중이다.
-후반기 들어 정말 호투하고 있다.
"요즘 자주 출장하며 기분 좋은 상태에서 던진다. 시즌 초반보다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구속이나 컨디션은 이전과 별 차이 없는 것 같다. 시즌 초반엔 추격조로 나섰다.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 등판하면 투수나 동료들이나 집중이 어렵다. 지금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 공만 던진다는 생각으로 나선다."
-복잡함이라면?
"집중이 안 되고 산만한 분위기에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 마운드에서 집중력 탓으로 본다. 박빙 상황에서 나갈 때와 마음가짐이 틀릴 것이다."
-류중일 감독에게 요청한 게 있다고 들었다.
"감독님께서 후반기 원정 경기 때 베테랑 선수들과 식사자리를 마련하신 적 있다. 그때 '잘 던지겠습니다. 기회를 한 번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감독님께서 "알았다"고 하셨는데, 8월 9일 한화전에서 잘 던지고 나서부터 좋아졌다."(이후 8경기 연속 무실점)
-토미존 수술만 세 차례 했다. 이겨낸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특별한 건 없다. 세 번째 수술은 포기하기 싫어서 결정했다. 야구를 계속 하고 싶었다. 물론 예전처럼 잘 던지는 게 가장 좋다. 그렇지 않더라도 마운드에 다시 서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다. 나름 재활도 잘 준비됐는데 욕심내다 보니…."
권오준은 수술 이듬해인 2014년 초 괌에서 개인 훈련을 했다. 2월 초 자전거를 타고 훈련장까지 이동하다 넘어져 오른 팔뚝 뼈에 금이 갔다. 부상 탓에 그 해 단 1경기만 등판했다.
-의욕적으로 하다 다쳐 더 안타까웠겠다.
"굉장히 힘들었다. 1년 동안 정성 들여 훈련했다. 몸 상태도 참 좋았다. 겨울에 너무 쉬면 밸런스가 무너질까봐 개인훈련을 떠났다. 원래 쉬어야 할 때인데 괜히 불안했다. 결국 욕심이 과했다. 미련했던거다. 이제 훈련이나 경기 때나 크게 욕심을 안 낸다."
-150㎞ 강속구를 던지던 때가 그립진 않나.
"예전에는 그랬다. 그런데 욕심을 내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몸을 더 잘 만들어 스피드를 올리기 보다 지금 컨디션을 유지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경기에서도 더 도움이 된다. 내가 변한 걸 받아 들이고 새 방법을 찾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지금 공에 상대 타자들이 타이밍을 못 맞출 때, 타자들이 어려워한다고 느낄 때 기분 좋다. 무조건 열심히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벗었다."
-요즘 야구가 재미있을 것 같다.
"그렇다. 2군에 내려갔을 때도 코치님들이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 고생 참 많다. 구위도 변했으니 살 길을 잘 찾아봐라'고 하셨다. 그런 부분 집중하면서 던지고 있다."
-득점권 피안타율(0.185, 주자 없을 때 0.284)이 낮다.
"집중력의 차이다. 마운드에서 서면 긴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위기를 즐겼다. 더 재밌다. 정규시즌 보다 큰 경기가 더 재밌고. 오직 내 공만 던진다는 생각이다."
-사이드암 투수인데 우타자(피안타율 0.284) 보다 좌타자(0.100)에 더 강하다.
"우타자랑 더 많이 상대해서 그런 게 아닌가.(웃음) 예전부터 좌타자엔 많이 안 맞았다. 홈런 타자, 교타자, 발 빠른 타자 등 상대 스타일엔 전혀 신경 안 쓴다. 얼마나 자기 공을 믿고 던지느냐가 중요하다."
-삼성 불펜이 후반기 들어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불펜 최고참으로서 뿌듯할텐데.
"나이가 먹었다고 고참은 아니다. 마운드에서 역할을 하며 중심을 잡아줘야 후배들도 믿고 따를 수 있다. 나이 먹고 마운드에서 맨날 얻어 터지면 팀과 선수단에 너무 미안했다. 내가 공을 잘 던져 선수들이 조금 더 뭉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과거 삼성 불펜은 막강 자체였는데.
"같은 팀에서도 라이벌 의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삼성 불펜 투수들은 항상 대화했다. 쉽지 않은 거다. 구원 투수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면 좋은 점, 나쁜 점을 서로 대화하며 공유한다. 끈끈한 정이 있었다. 여기에 승부욕이 더해졌다. 그 중심에는 정현욱(현 LG) 형이 있었다. 마운드에서 잘 던졌을 뿐 아니라 선수들을 잘 이끌었다. 최고였다."
-최근 '삼성 불펜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으면 속상하진 않나.
"강할 때가 있으면 약해질 때도 있는 것 아닌가. 선수들이 많이 빠졌지만 위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불펜으로 가는 과정일 것이다. 초·중·고 동기인 NC 손시헌이 '강철은 두들기면 더 단단해진다'고 했다. 투수는 맞으면서 큰다고 하지 않나. 예전보다 강한 불펜이 될 수 있다."
-올 시즌 목표는.
"앞으로 30경기 정도 남았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좋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올해 너무 많이 다쳤다. 모두 안 아프면서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아직 누구도 올시즌을 포기하지 않았다. 충분하다. 남은 경기는 캠프 때부터 고생했던 걸 보상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전반기와 달리 (팀 전력이) 확연하게 좋아지고 있다. 중간 계투도 자신감을 찾아가고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이제 분위기를 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