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준(44) 대구 FC 감독은 감독보다 더 유명한 '대표님'을 모시고 있다. 대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구단 행정의 중심을 맡고 있는 조광래(62) 대표다.
조 대표는 한국 축구계에서 굵직한 지도자로 꼽힌다. FC 서울 등 명문 프로팀을 이끈 그는 2010년 7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에 올랐다.
팬들은 '감독 조광래'의 재기 발랄한 지략과 전술에 열광했다. 선수를 보는 안목도 상당했다. '육성의 마법사'라는 별칭이 있을 만큼 될성부른 자원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데 능력이 있었다. 열악한 재정 여건 속에서도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선수를 두루 기용할 수 있었던 것도 조 대표 덕이었다.
대구는 2017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1부리그) 무대를 밟는다. 이 역시 조 대표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2016시즌 K리그 챌린지(2부리그) 2위(18승13무8패·승점70점)로 마친 대구는 1위 안산 무궁화 축구단이 연고지 이전 문제로 승격 자격이 박탈되면서 1부리그로 향하는 행운의 직행 열차를 탔다.
그러나 대구는 앞서 시즌 중반 성적 문제로 전임 감독이 중도 사퇴하는 등 곡절이 있었다. 위기의 순간 조 대표는 코치였던 손현준을 신뢰했다. 손 코치에 감독대행의 임무를 맡겼다. 그러자 그는 선수단을 이끌고 막판 스퍼트를 발휘하며 4년 만에 승격의 꿈을 이뤘다. 챌린지는 '올해의 감독상'을 손 감독대행에 안겼다. 구단 역시 지난 22일 그를 정식 감독으로 임명하고 그간 노고를 인정했다.
유명한 감독 출신 대표와 함께 있다 보니 오해를 사기도 한다. 조 대표는 손 감독 취임식에서 "나는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기술고문의 일도 해야 한다"고 밝혔다.
행정업무는 물론이고 지금껏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쌓아온 현장 경험을 살리는 '매니저'가 되겠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손 감독과 조 대표의 역할이 겹칠 수 있다. "더 유명한 조광래 감독이 손현준 감독을 뒷전으로 미루고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손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주변에서 조 대표님과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감독인 나와 대표님의 목표는 똑같다. 팀을 위해서 일한다. 서로 돕는 관계이지 간섭하는 관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는 우승을 향해 가는 조직이다. 프런트와 감독, 대표, 선수단이 서로 개별적이지 않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돕는 관계"라고 잘라말했다. 조 대표를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관계'로 생각하면 된다는 것이다.
손 감독은 또 "유비와 관우, 장비는 서로 약점을 잘 보완했다. 또 그들의 곁에는 지략가인 제갈공명이 있었지 않은가.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이라며 "조 대표팀은 내 은사다. 대구가 클래식의 강팀이 되고 내가 더 큰 감독이 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원해 주는 분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조 대표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그는 "손 감독과 함께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그러나 최종 판단은 감독의 몫으로 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