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2월 북경에서 열린 모택동과 닉슨 미국대통령과의 역사적 회담은 주은래가 성사시킨 일이었다. 1971년 7월 미국의 특사 헨리 A. 키신저가 북경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모택동은 그를 만나러 가는 주은래에게 쪽지를 건넸다. 그 쪽지에는 ‘부드러운 목화솜 속에 날카로운 바늘이 숨어있네’라고 적혀있었다. 미국과 협상할 때는 태도는 부드럽게 뜻은 바늘처럼 분명하게 전달하라는 의미였다.
대한민국에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문제를 만들고 있다. 검사는 죄인을 다루고 정치인은 국민을 뜻을 모아 국정에 반영한다. 본질상 검사와 정치인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죄인을 다루던 검사가 정치인이 되면서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정치인이 검사의 눈으로 국민을 보는 것이다.
교도소를 자주 들락거리던 전과자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저는 검사를 만나는 순간 촉이 있습니다.” 그는 겁박하고 때리려는 검사는 무섭지 않은데 “오늘 밥은 먹었어?” “어디 아픈 데 없어?” “잠은 잘 잤어?”하면서 다정하게 담배를 건네는 검사를 만나면 ‘아이고, 나 죽었구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검사들 중에도 간혹 목화솜 안에 바늘을 숨긴 사람들이 있긴 하나 그런 사람은 아주 드물다. 모기 잡는 데 칼을 빼는 검사들이 대부분이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의 인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성공신화만 믿고 정치판에 달려 들다보니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실언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검사 출신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정치인은 교수 출신이라고 한다. 폴리페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그들은 상아탑을 지키지 않고 정치판을 기웃거리다가 단단해 보이는 동아줄을 잡고 관직으로, 또는 의원직으로 진출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엄연히 다르다. 명문대 경제학 박사가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시장에는 시장의 철리가 있다. 아무리 이론에 출중한 교수라도 시장의 철리를 이길 수 없다.
국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대학에서 정치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정치를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정치를 보면 정치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특히 법조인들의 정치판 이직은 다소 경계해야 할 현상이다.
그들은 법을 다루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은 법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법이란 갈 거자 옆에 물 수변이다. 물이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법이다. 안타깝게도 이번 정부에서 법조인 출신 정치인, 관리들은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이용했다. 죄는 넉 사 밑에 아닐 비를 쓴다. 자신의 생년월일을 부정하는 것이 진정한 죄라는 뜻이다. 이런 시국에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을 국민들이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안이 가결됐다. 그동안 전국에서 들여 올린 745만 개의 촛불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실로 부드러운 목화솜 속에 날카로운 바늘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일념이면 통천이라 했던가. 분노에 찬 민심이 촛불이 되고 횃불이 돼 전 국민이 하나가 됐다. 촛불 하나는 바람이 쉽게 꺼지지만 수백만 개의 촛불은 바람에 더 강하게 번진다. 청와대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하루 빨리 이 시국을 종결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