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3일 중국 후난성 성도 창사의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전을 앞두고 양 팀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이 극명하게 갈렸다. 두 팀 대표팀 명단이 공개되자 한국 팬들은 불신의 눈빛을, 중국 팬들은 신뢰의 목소리를 보냈다.
왜 이런 온도차가 생긴 것일까.
명성의 차이가 아니다. 리피 감독의 화려한 이력을 향한 맹목적인 찬양이 아니란 의미다. 두 감독이 한국과 중국에서 일궈낸 성과에 대한 격차다.
슈틸리케 감독도 부임 초기 '갓틸리케'라 불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 뒤 보여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경기력이 떨어졌다. 고집의 벽에 막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소리아 발언' 등으로 갈등을 부추겼다. 특히 선수 선발 원칙을 수시로 깨는 모습에 팬들은 큰 실망감을 느꼈다.
리피 감독은 희망을 제시했다.
그는 성과로 증명했다. 광저우 에버그란데(중국)의 2013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이 대표적이다. 중국 축구 굴기의 진정한 출발점이었다. 이는 2002년 ACL로 재편된 뒤 최초의 중국 클럽 우승이었다. 리피 감독은 중국 클럽 축구를 아시아 변방에서 중심으로 끌고 온 전설적인 인물로 등극했다.
중국축구협회가 삼고초려 끝에 지난해 10월 중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이유다. 중국 팬들은 이런 능력을 대표팀에서도 발휘해 줄거라 믿으며 열광했다.
다른 온도를 가진 두 감독이 사상 첫 격돌을 펼친다.
물론 모든 면에서 한국이 앞선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40위)이 중국(86위)을 압도하는 것부터 월드컵 진출 횟수(한국 9회 ·중국 1회), 역대 전적(32전 18승12무1패) 등 상대가 되지 않는다. A조에서도 한국은 2위, 중국은 꼴찌다.
하지만 여론전에서는 지고 들어간다. 한 축구전문가는 "월드컵 최종예선이라는 중요한 대회에서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지지하는 팀이 큰 힘을 발휘하기 마련이다. 분위기만으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팬심이 하나가 됐고, 한국은 팬심이 분열됐다.
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리피 중국대표팀 감독이 '슈틸리케팀'에 새로운 암초로 떠올랐다.
리피 감독은 지난해 10월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가오 홍보(51) 감독을 대신해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갑작스럽게 구한 '대타성' 후임이 아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영입한 감독이었다.
리피 감독은 "과거(2012~2014년) 광저우 에버그란데를 맡고 있을 때도 중국 대표팀 감독 제안을 받았었다"며 그동안 중국으로부터 수차례 '러브콜'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앞서 슈퍼리그의 광저우가 리피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약 2000만 유로(약 246억 원)를 3년간 매 시즌 지급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던 만큼 이보다 더 좋은 대우를 보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리피 감독은 세계 축구사에 남을 명장으로 꼽힌다. 월드컵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컵을 한꺼번에 거머쥔 유일한 감독이어서다. 리피 감독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1982년 이후 24년 만에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5~1996시즌에는 이탈리아의 명가 유벤투스를 이끌며 UCL을 제패했고, 2013시즌에는 광저우 사령탑으로 ACL 우승을 일궜다. 현재 중국 대표팀의 절반 가량이 광저우에서 리피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그만큼 서로 잘 알고 신뢰 폭도 두텁다.
리피 감독은 중국의 '축구 굴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리피 감독이 "중국의 어린이들이 축구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하자, 중국축구협회가 나서 지난 1월 각 구단에 아시아쿼터 제도와 관계없이 경기당 외국인 선수 출전한도를 줄이는 규정을 신설하는 식이다. 자국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 비중을 줄이고 '토종' 선수를 키우려는 것이다. 중국축구협회는 리피 감독을 위해 올 시즌 들어 두 차례나 대표팀 소집 훈련을 허용했다.
서서히 리피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가오 감독이 우즈베키스탄과의 4차전에서 0-2로 완패하고 사임하면서 중국 대표팀 분위기는 바닥까지 추락해 있었다. 그러나 리피 감독은 부임 뒤 가진 카타르와의 A조 5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팀 수습에 성공했다. 리피 감독은 한 술 더 떠 "운이 부족했을 뿐"이라며 승점 1점 획득에 아쉬움을 표했다.
중국 국민은 리피 감독이 이끄는 6차전을 보기 위해 창사로 몰려들고 있다. 지난 1일 중국 현지에서 온라인 발매된 1차분 티켓은 15분 만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축구협회는 한꺼번에 티켓을 발매할 경우 암표가 급격하게 유통될 것으로 보고 판매 시기를 나눠 2차, 3차 발매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만큼 리피 감독을 향한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방증이다. '슈틸리케팀'은 리피 감독의 중국 내 엄청난 인기가 더해진 중국 국민의 응원과도 싸워야 할 처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3일 3월 A매치 명단을 발표하며 "(리피 감독은) 세계 최고의 명장이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감독"이라며 "과거와 달리 주전과 포메이션이 대거 변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중국전을 이란 원정만큼 부담되는 경기다. 외적인 분위기나 환경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