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6시30분 서울 강남구 메가박스 코엑스점(부티크 104호)에서는 '제53회 백상예술대상 후보작상영제(이하 '백상 후보작상영제')'가 열렸다.
'백상 후보작상영제'는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개최되는 이벤트로, 이번 상영제는 평론가·칼럼리스트와 함께 5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작품 상영 및 관객과의 대화(GV·Guest View)가 진행된다.
23일 '아가씨' '아수라'에 이어 26일에는 김태훈 칼럼리스트와 함께 '곡성' 상영제가, 27일에는 신기주 에스콰이어 편집장과 민용준 에스콰이어 에디터 진행으로 '밀정' 상영제가 개최된다.
'백상 후보작상영제'가 소개한 첫 번째 영화는 '아가씨(박찬욱 감독)'. 지난 2016년 6월 1일 개봉한 '아가씨'는 배우 김민희·김태리·하정우·조진웅이 열연, 박찬욱 감독이 탄생시킨 또 한 편의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최종 누적관객수 428만8318명을 기록했다.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를 모은 '아가씨'는 전세계 6개 대륙 175개국에 판매되며 한국영화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경신했다. 또 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을 시작으로 1년이 지난 현재까지 각종 해외영화제 초청 및 수상을 독식하며 글로벌 인기를 입증시키고 있다.
이 날 영화 상영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김태훈 칼럼리스트의 진행 아래 약 30여 명의 관객들이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태훈 칼럼리스트는 "이 작품에 대해서는 워낙 많이 알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봉 후 수 많은 평론가들이 자신들만의 해석을 내놨고, 박찬욱 감독도 여러 인터뷰를 통해 감독의 입장을 전했다"고 여전히 다양한 의미로 회자되고 있는 '아가씨'에 대해 논했다.
이를 증명하듯 관객들은 1년 후 다시 관람한 '아가씨'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궁금증을 쏟아냈다. 40분이라는 시간동안 십여 가지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김태훈 평론가는 관객들이 납득할 만한 답변을 통해 공감대를 자아냈다.
또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는 추첨을 통해 4명(1인2매)의 관객에게 53회 백상예술대상 참석 티켓을 증정했다.
※'53회 백상상영제·아가씨①'에서 이어집니다.
- 관객질문 1 : '아가씨' 배경은 일제시대다. 일제시대를 다룬 영화는 많다. 대부분 시대의 억압과 항거를 다룬다. '밀정' '암살' '눈길'을 비롯해 개봉 예정인 '군함도' '엄복동' 등 많은 영화들이 그렇다. 하지만 '아가씨'는 굳이 일제시대를 다뤄야 했나 싶을 정도로 시대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현대적인 배경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박찬욱 감독님의 취향 문제일 수도 있지만 현대를 배경으로 해서 만들었을 땐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봉건과 근대가 뒤섞여 있었던 일제강점기를 시대 배경으로 삼으면서 해방의 의미를 담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영화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만큼 시대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맞다. 다만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하정우 씨가 연기한 캐릭터 고판돌인데 그는 한국말과 일본어를 동시에 사용한다. 그리고 그 대사를 쓰는 방식이 흥미진진하다. 사실 한국어와 일본어 대사의 경계를 나누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국어로 이야기 할 때는 속마음을 그래도 드러내는데, 일본어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한 술수의 하나로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재도 이상한 방식으로 다뤄진다. 이모부(조진웅)는 끊임없이 일본인이 되고 싶어 한다. 책은 언어·문자·말이 있는 공간이다. 그 역시 시대의 혼란함을 보여주려고 한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했던 박 감독의 의도가 호기심 있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 관객질문 2 : 히데코가 처음 숙희가 왔을 때 '여기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집에 있을 땐 비가 자주 내리는 편이고, 비를 맞고 다니기도 하는데 집 밖으로 나가고 나서는 딱 한 번만 내린다. 고판돌이 돈가방을 갖고 왔을 때만 비가 내리더라. 비가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어떤 장치로 사용된 것인지 궁금하다.
"비 즉 날씨라는 것은 주인공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아주 일반적인 장치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울한 날이 지속될 때, 쨍하게 맑은 날이 나올 때 캐릭터의 심리 상태는 분명 다를 것이다. '아가씨'는 자연광이 잘 보여지지 않는다. 지하 속 음침한 분위기가 지속된다. 문소리 씨가 등장할 때 초를 들고 왔다갔다 하는데, 사람이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로 보일 뿐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날씨 역시 히데코의 상태와 상황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탈주가 시작되고 후반부로 가면 갈 수록 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만월의 이미지까지 등장시킨다. 애초부터 조명과 날씨를 염두해 뒀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 관객질문 3 : 고판돌은 사기꾼에 눈치가 빠르다. 하지만 히데코와 숙희가 손 잡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눈치 빠른 고판돌이 어떻게 그렇게 눈이 멀었던 것일까.
"머리 좋은 사람의 특징이 내가 제일 머리가 좋은줄 안다는 것이다.(웃음) 우둔한 남성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히데코와 숙희는 당연히 자신의 계획 하에 움직일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자만했을 수 있다. 두 사람이 연대를 통해 자신을 역으로 속일 것이라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고판돌이 죽는 장면을 봐도 그렇다. 스스로를 위로하듯이 '그래도 OO는 지킬 수 있다'며 좋아한다. 어리석음의 극치같은 것이다. 목숨을 잃는 상황에서 남성성 하나 지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긴다. 이는 조롱에 가깝다. 고판돌은 스스로 두 여성을 힘으로 제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지금도 많은 남성들이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일제시대 때 머리좋은 남성이, 여성 둘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렇게까지 치밀한 두뇌게임을 펼쳤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현대물에 가깝지 않았을까."
- 관객질문 4 :영화를 여러 번 보다 보면 해석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서재 장면은 보통 '남성들에 의한 여성들의 착취'로 평가된다. 대부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인 것이 등장하는 남성 상당수가 노후된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히데코는 젊음을 대변한다. 몸은 늙었지만 욕망은 사춘기 시절과 똑같은 남성들이 시간이 흘러 육체가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그래도 욕망을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그러진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 요즘 같으면 약이라도 먹을텐데. 굉장히 불쌍한 존재로 느껴졌다. 루저·찌질이라 표현 될 정도로.
"그 말이 다 이해된다. 해결되지 않은 욕망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해소 하려고 하는 것이 맞다. 역시 남성들에 의한 조롱에 가깝다. 또박또박 글을 읽어 나가는 히데코 입을 쳐다보면서 음험한 좌석 속에 몸을 숨긴다. 억압은 표면적으로 드러나 있고,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조롱이다. 계단식 의자에 앉아 있는 것도 계급화 돼 있는 남성사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장센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와 의미를 강하게 표현하는 박찬욱 감독이 여러 형태의 의자들 중 층계를 선택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골프라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100만가지 이유 중 하나가 늙은 남자가 젊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웃음) 연습량이 많을 수록 기량이 훌륭해 진다. 물론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골프는 복싱·축구처럼 육체적 다툼을 요하지 않는다. 단정지을 수 없지만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성들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운동이 아닐까. '그래도 난 아직'이라는 생각은 모르면 몰랐지 아마 누구나 할 것이다. 긍정적 해소는 좋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를 박찬욱 감독은 조롱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생각한다."
- 관객질문 5 : 숙희가 안고 있는 아기는 히데코와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나올 줄은 몰랐다. 영화에는 친절한 설명이 나오지는 않는다. 번외로 관객과의 대화 세 번째 영화는 '곡성'인데, '곡성'이 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영화로 평가받는 이유는 100만 명이 100만 가지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생각을 통해 영화가 더욱 풍부해졌고, 지속적으로 거론되면서 살아 숨쉬는 영화가 됐다. '아가씨' 첫 장면의 의미도 그런 것 같다. 여성들이 등장하는 방식 자체가 섬처럼 보인다. 독립성과 연관지어 복잡한 가족 관계 혹은 캐릭터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그린다. 문소리 씨가 이모로 등장해 초를 건네주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대물림의 형태로 해석하는 평론가도 있다. 이모가 했던 역할을 물려주는 것이다. 곳간의 열쇠를 며느리에게 주는 것처럼. 특히 넘겨준 것이 초라는 것도 눈길을 끄는데 초는 바람만 불어도 쉽게 꺼진다. 여성들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연결고리를 깨 나가는 것, 히데코 정체성을 변화 시키면서 전해지는 쾌감·탈피·통쾌함 등이 영화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