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부로부터 '회수 및 판매 금지' 조치된 국내 1위 액체 세탁 세제 '퍼실'로 인한 소비자들의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 헨켈사의 대표 합성세제 브랜드 퍼실은 맞지만 '수입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소비자 보호는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퍼실은 공격적 마케팅으로 한국 진출 5년 만에 분야 선두에 오른 제품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제대로 사후 관리에 대한 고지도 받지 못한 채 발만 구르고 있다.
다 같은 헨켈의 '퍼실'인데… 혼란스러운 소비자
퍼실은 지난 11일 환경부가 발표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기준 위반 50여 개 제품에 포함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뉴스토아가 병행 수입한 일부 '퍼실 겔 컬러' 제품이 자가 검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퍼실은 합성세제 중 유일하게 회수 조치됐다.
이에 소비자들은 퍼실의 주 수입·판매처인 헨켈홈케어코리아로 반품과 환불 등에 관한 문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헨켈의 퍼실'을 보고 구매했을 뿐 병행 수입 업체와 헨켈홈케어코리아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일에는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퍼실이 오를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이에 헨켈홈케어코리아 측은 급히 '선 긋기'에 나섰다. 발표 직후 공식 발표가 없었던 회사 측은 "자가 조사 미이행 건으로 환경부로부터 회수 조치를 받은 제품은 뉴스토아에서 병행 수입한 일부 제품으로 헨켈홈케어코리아가 공식 판매하는 정품과 전혀 다른 제품"이라며 "헨켈홈케어코리아 정품을 사용하고 계신 분들은 안심하고 제품을 계속 사용해도 된다"고 공지했다.
병행 수입처인 뉴스토아는 홈페이지나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등에 공지문을 띄우지 않은 채 자가 검사 미이행 상태로 판매된 100여 개 제품 구매자들에게 개별 연락해 환불과 회수 조치를 알렸다.
뉴스토아 관계자는 "영세한 규모로 홈페이지에 팝업창 등을 띄울 여력이 없었다"면서 "우리 제품은 멕시코에서 생산된 퍼실로 과거 다른 병행 수입 업체가 자가 검사를 한 제품"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사정을 알 수 없는 소비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공격적 마케팅에 1위 오른 퍼실… 시민단체 "시스템 필요"
2009년 한국에 상륙한 헨켈코리아의 퍼실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을 빠른 속도로 늘려 왔다. 톱 모델 김남주를 기용해 7년 연속 대대적인 TV 광고를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퍼실은 대형 마트 매대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대표적 상품이었다. 흔히 말하는 '매대 장려금'과 판촉 사원인 '여사님' 기용 역시 공격적으로 펼쳤다"고 말했다.
퍼실은 세제 분야 전통의 강자인 애경과 LG생활건강 등을 제치고 선두 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시장 조사 기관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퍼실은 2014년 12월부터 2016년 1월까지 국내 액체 세탁 세제 시장에서 27.2% 점유율을 기록, 1위에 올랐다.
퍼실 마케팅 담당자는 당시 "2년 연속 액체 세제 시장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퍼실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일부에서 "헨켈이 한국에 퍼실을 공격적으로 팔 때의 모습과 사고가 터진 뒤에 책임 소재를 가르는 태도가 상반된다" "수입처는 달라도 다 같은 헨켈의 퍼실 아닌가"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환경부는 개선명령을 받은 업체들이 포장 교체 등의 개선 조치를 이행토록 하고 있다. 또 추후 관할 수사기관 고발 및 벌금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13일 "뉴스토아는 회수 명령과 함께 향후 행정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혼선은 이미 빚어진 상태다. 시민사회와 연구 단체는 기업의 자발적 성분 공개와 정부 모니터링의 강화, 처벌 및 기업군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관계자는 "'열악해서 자가 검사와 공지를 못 했다' '우리 수입처가 아니다'는 말은 사실 현장에서 자주 나오는 해명들"이라면서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소비자 보호다. 환경부가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관련 법규를 강화하고 기업도 자발적으로 전 성분 공개를 의무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