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네'는 '나의 아저씨'에서 유일한 속풀이 공간이었다.그리고 그 속엔 '정희'가 있었다. 정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외로움을 치유했고, 그들의 아픔을 공감했다. 누구보다도 화려했지만 누구보다도 외로웠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공허함에 울부짖었다.
그렇다면 정희를 연기한 오나라는 어떤 사람이고 배우일까. 그리고 정희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를 하고 있을까. 지난 29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간스포츠에서 오나라와 만남을 가졌다. 1시간 남짓 만난 오나라는 '나의 아저씨'속 정희의 모습 그대로였다.
- 정희처럼 한 사람을 20년 동안 마음에 묻을 수 있나.
"가능하다고 본다. 나도 정희처럼 똑같이 한 남자를 19년을 만나고 있다. 19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정희도 그러지 않았을까. 정희 입장에서는 작년에 헤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 워낙 열정적인 친구라 슬픔이 튀어나왔던 것 같다."
- 오나라의 연애는 현재진행형이지만, 정희는 끝난 사이 아닌가.
"일본 유학하면서 뮤지컬을 했을 때 남자친구와 오래 떨어졌던 경험이 있다. 이 또한 순식간에 지나갔다. 특수한 케이스이긴 하지만, 정희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일반인은 공감하기 힘들었겠지만, 나는 이해됐다."
- 박해준을 한 번 보고 어떻게 겸덕과 사랑에 빠졌을까.
"감정이 안 나올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절에 찾아가 우는 신에서 남자친구를 떠올리며 만들려고 했더니 연기가 잘 되지 않았다. 그때 박해진 씨의 눈빛을 보고 에너지를 느꼈고, 그 눈빛이 '겸덕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 눈빛 하나 만으로 사랑에 빠진 것 같다."
- 즉흥적인 연기를 많이 했나.
"'후암동 어벤저스'가 술을 마시는 장면은 90% 이상 애드리브다. 나는 그저 리액션만 했을 뿐이다. 바라만 봐도 그들에겐 먹잇감이었다.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 정희는 모든 캐릭터와 연결 고리였다.
"고두심 선생님부터 아이유·삼형제·후계동 4인방·박해준까지 모두 연결돼 있었다. 그래서 가족 같았다. 연기를 하지 않아도 그분들이 주는 에너지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대사가 나왔다. 모든 배우들이 곧 그 캐릭터였다."
-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모든 신이 다 기억에 남는다. 술 취해서 빨래하면서 코피 흘렸던 장면, 겸덕과 문자 후 우는 장면, 지안이를 처음 만나 했던 말들. 사실 어느 신하나 정희 신은 버릴 게 없다. 애착이 강하다."
- 정희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만났나.
"운명이었던 것 같다. 감독님이 잠깐의 내 모습을 보고 언젠가 저 배우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더라. 그게 영화 '댄싱퀸'의 한 장면이었다. 그 한 장면 때문에 날 캐스팅했다고 하더라. 또 박해영 작가님은 '유나의 거리'에서 내 모습을 좋게 봤다고 하더라. 배우에겐 작품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고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신을 어떻게 볼지 모르지 않나. 정희는 나에게 인연이다."
- 극 중 많이 울더라. 원래 눈물이 많나.
"이렇게 속시원하게 운 작품은 처음이었다. 정희의 아픔을 느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카메라 불 들어오기 전부터 울음이 터졌다. 촬영감독님이 슛 들어가면 눈물이 안 날거라고 울지말라고 말릴 정도였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했던 것 같다. 사실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도 속시원하게 울고 나니까 굉장히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진 느낌이다. 그래서 치유를 받았던 것 같다."
- '립스틱 짙게 바르고' 부를 때 울컥함이 있었다. 선곡은 어떻게 했나.
"감독님이 정해준 노래다. 내 선곡은 원래 '애인있어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1차원적이었던 것 같다. 감독님의 엄청난 센스에 반했다. 어느 것하나 허투루 지나간 게 없었다. 배우들은 '정희네' 세트에 들어가면 나오질 못 했다. 거의 새벽 5시까지 못 나와서 '개미지옥'이라고 불렀다.(웃음)"
- 극 중 아이유와 정신적인 교류를 나눴다.
"촬영하면서 짤막하게 얘기를 많이 나눴다. 아이유 씨가 겸덕과 정희 커플을 좋아했다. 이 커플이 어떻게 전개될 지 굉장히 궁금해 했다. 어떤 마음으로 연기하는지, 어떻게 헤어질 건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머리를 할 건지 많은 질문을 했다. 그때 이 친구가 이 작품을 사랑하는 걸 느꼈다."
- 극에선 아이유에게 치유를 받았다.
"그동안 정희는 항상 혼자였다. 다들 정희 앞에서 징징대고 위로를 받으려고 했지 안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근데 지안이는 한결 같이 정희 옆에 서 있었던 친구다. 아이유에겐 둘도 없는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