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의 커리어 중 최대 업적은 2012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12) 4강이다.
포르투갈 대표팀을 이끌고 독일·네덜란드·덴마크와 엮인 죽음의 B조를 2위로 통과했다. 8강에서 체코를 잡고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챔피언'에 오를 당시 세계 최강의 팀 스페인을 상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2-4로 패배했다.
벤투호의 중심에는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있었다. 그는 유로 2012에서 총 3골을 넣으며 공동 득점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터졌다.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침묵한 호날두는 8강행의 운명이 달렸던 조별리그 3차전 네덜란드전에서 멀티골을 넣으며 포르투갈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체코와 8강에서 1-0 결승골의 주인공 역시 호날두였다.
그 이후에도 호날두는 벤투호 상승세의 동력 역할을 해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유럽예선. 러시아·이스라엘·아제르바이잔·북아일랜드·룩셈부르크와 F조에 속한 포르투갈은 러시아의 상승세에 막혀 조 2위로 밀려났다. 호날두는 유럽예선에선 4골에 그쳤다. 1차전 룩셈부르크전에서 1골과 8차전 북아일랜드전에서 3골을 기록했다. 당시 벤투호와 호날두는 비판받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은 스웨덴과 플레이오프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1차전에서 호날두는 선제 결승골을 넣으며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2차전에서 호날두는 보란 듯이 해트트릭을 쏘아 올리며 스웨덴을 3-2로 무너뜨렸다. 포르투갈은 벤투 감독과 호날두에게 열광했다.
벤투 감독과 호날두의 마지막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014 브라질월드컵 본선에서 독일과 미국에 밀려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호날두는 가나전에서 1골에 그쳤다. 2010년부터 포르투갈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과 호날두의 4년 동행은 그렇게 끝났다. 조별리그 탈락에도 벤투 감독은 호날두를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에 성공했고, 포르투갈 축구의 미래를 선도할 새로운 뼈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한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 그는 또 한 명의 '슈퍼스타'와 동행을 시작한다. 한국 축구의 '상징' 손흥민(토트넘)이다.
세계 최고의 선수인 호날두와 직접적으로 비교하면 당연히 부족한 손흥민이다. 하지만 한국 내 존재감과 영향력을 본다면 포르투갈에서 호날두와 비슷한 상황이다. 포르투갈에서 호날두가 그랬듯이 한국 축구는 손흥민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손흥민의 활약 여부가 팀의 운명을 결정한다. 공교롭게도 손흥민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호날두고, 한국 축구팬들은 그를 '손날두'라고 부른다.
한국의 이전 감독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손흥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비판받았고, 결국 실패를 피할 수 없었다. 벤투 감독은 이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슈퍼스타 호날두를 지휘했고 호날두를 최적으로 활용했기에, 벤투 감독이 손흥민 활용법의 '정답'을 도출해 낼 것으로 믿고 있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대표팀 사령탑 당시 '호날두에게 너무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사실 세계 그 어떤 감독이라도 호날두라는 선수를 두고 있다면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호날두는 독보적인 선수다. 손흥민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는, 독보적인 선수다. 한국 감독이라면 손흥민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에 손흥민에게 의존하면서도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손흥민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전술과 손흥민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맞춤형 선수 구성이 필요하다.
손흥민을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 역시 벤투 감독의 핵심 임무다. 벤투 감독은 젊고 잠재력이 풍부한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뼈대를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출발이 오는 7일 열리는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휴식이 필요한 손흥민은 코스타리카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전망이다. 11일 칠레전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 두 경기는 벤투 감독의 데뷔전이고 벤투호의 손흥민 데뷔전이다. 한국 축구의 새로운 시작이다. 벤투 감독과 호날두가 그랬듯이 앞으로 4년 동안 벤투 감독과 손흥민은 '운명 공동체'다. 감독과 에이스의 필수적 관계다. 찬사도 함께 받고 비난도 함께 받을 수밖에 없다. 4년 뒤 최고의 결말을 위한 그들의 동행, 이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