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류현진(32·LA 다저스)이 자신의 메이저리그 시절을 회상할 때, 가장 지독한 악연으로 기억하게 될 이름들 가운데 하나가 될 듯하다.
류현진은 5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콜로라도와 홈 경기에서 또 다시 아레나도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레나도는 경기 전까지 류현진을 상대로 통산 타율 0.538(26타수 14안타)에 10타점을 기록하고 있던 최악의 '천적'이다. 안타 14개 가운데 홈런과 2루타가 각각 4개씩이라 류현진 상대 OPS(출루율+장타율)가 1.725에 달했을 정도다.
앞선 3경기에서 연이어 부진했던 류현진에게 이번 콜로라도전은 꼭 명예를 회복해야 할 일전었다. 이 때문에 KBO 리그 시절부터 지켜 온 루틴을 포기하고 등판 이틀 전 불펜 피칭으로 밸런스를 점검하는 과정까지 거쳤다. 하지만 또 다시 아레나도가 중요한 순간에 류현진의 발목을 잡았다.
1회 1사 1루 첫 대결에서는 아레나도의 3루수 쪽 강한 타구를 다저스 3루수 저스틴 터너가 잘 잡아내 땅볼 아웃으로 이어졌다. 첫 고비를 넘긴 류현진은 이후 3회까지 별다른 위기 없이 일사천리로 아웃카운트를 잡아 나갔다.
그러나 아레나도가 선두타자로 나온 4회부터 불운이 시작됐다. 류현진이 순식간에 투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아 무난하게 승리하는 듯했지만, 아레나도는 이후 유인구를 철저하게 골라내거나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오는 공을 파울로 걷어내며 끈질기게 버텼다. 결국 류현진에게 공 8개를 던지게 한 뒤 볼넷을 골라 1루로 걸어 나갔다. 뒤이어 라이언 맥마흔의 적시 2루타가 터지면서 류현진의 첫 실점이자 아레나도의 첫 득점이 나왔다.
5회도 마찬가지다. 1사 1루서 타석에 섰고, 이번엔 류현진에게 공 한 개를 더 던지게 했다. 9구까지 다시 치열한 풀카운트 승부가 펼쳐진 끝에 또 다시 아레나도가 이겼다. 우중간 안타. 1사 1·3루 위기가 이어졌다. 아레나도와의 대결에서 힘을 너무 뺀 류현진은 결국 다음 타자 이언 데스먼드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끝내 승리 투수 요건에 아웃카운트 두 개만을 남겨 둔 류현진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류현진으로선 여러 모로 아쉬운 결과다. 지난 1일 쿠어스필드 원정에서 아레나도를 3타수 무안타로 돌려 세우면서 천적 관계를 탈출하는 듯했기에 더 그렇다. 그러나 한 경기 만에 다시 둘의 먹이사슬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8월 이후 힘겨운 피칭을 이어가고 있는 류현진 입장에선 가장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인물이 아레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