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 불황에도 가격이 수억 원대에 이르는 수입 스포츠카나 고급 세단의 판매량은 많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서민을 상징하는 경차 판매는 줄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부유층이 재력 과시 수단으로 슈퍼카를 선택한 데에 따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슈퍼카
20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누적 판매량 13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 8대에 비해 1525.0% 증가했다.
람보르기니는 2017년 총 24대 팔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11대에 그쳤으나 올해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작년 전체 판매 대수의 2배를 넘는 24대가 팔렸다. 게다가 람보르기니의 국내 연간 판매량이 100대를 넘어선 것은 2015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람보르기니가 지난 5월 상대적으로 저렴한 우루스 모델을 출시하면서 판매가 급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 우루스는 국내 기본 출시 가격이 2억5000만원부터다.
전 세계 부호들이 주로 소유하는 초고가 세단인 롤스로이스도 같은 기간 판매 대수가 140대로 전년 동기 대비 44.3% 증가했다.
포르셰도 올해 들어 10월까지 3351대가 판매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늘었다. 신차 시장뿐 아니라 중고차 시장에서도 슈퍼카는 인기다.
SK엔카닷컴에 따르면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51대에서 106대, 마세라티는 1213대에서 1708대, 맥라렌은 53대에서 78대로 각각 등록 대수가 늘었다.
내리막길 걷는 경차 승승장구하는 슈퍼카와 달리 서민차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며 남부럽지 않은 존재감을 발휘했던 경차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여전히 준수한 판매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잘나가던 ‘영광의 시절’에 비하면 하락세가 뚜렷하다.
실제 모닝은 10월까지 4만1343대의 판매실적을 기록 중인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7% 감소한 수치다. 한국GM 스파크 역시 2만8420대를 판매하는 데 그치며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3%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수년간의 흐름을 살펴보면 하락세는 더욱 뚜렷하다.
모닝은 2014년 9만6,089대의 판매실적을 기록한 이후 줄곧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2015년 8만8455대, 2016년 7만5133대, 2017년 7만437대에 이어 지난해(5만9042대)에는 아예 6만대 고지마저 무너졌다. 이 기간 전년 대비 판매실적은 -7.9%, -15.1%, -6.3%, -16.2%를 기록했다.
스파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판매실적을 끌어올렸던 2016년 7만8035대 이후 판매실적이 급락했다. 2017년엔 전년 대비 39.5% 감소한 4만7244대, 2018년엔 다시 15.6% 감소한 3만9868대를 기록했다. 올해는 3만5000대를 넘기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초격차 한국사회 단면
업계는 슈퍼카의 고성장을 두고 초격차 한국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한다. 수입차 점유율이 20%를 넘는 등 대중화되는 가운데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희소한 브랜드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경기불황의 영향과 거리가 먼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등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활용, 부를 과시하는 풍조도 슈퍼카의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평이다.
이에 맞춰 럭셔리 브랜드들도 서울 강남 등지에 고급 부티크 매장을 열어 홍보를 강화하고 라인업을 전보다 다양하게 구축하는 등의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시장이 성숙 단계를 넘어가면서 접근하기 힘든 슈퍼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단순한 수입차를 넘어 '더 비싸고, 더 고급스러운' 가치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세법 개정으로 한때 주춤했던 '무늬만 회사차'가 다시 늘어난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판매된 람보르기니 차량 중 개인이 구매한 차량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법인 명의로 등록됐다.
업계는 수억 원의 슈퍼카를 '업무용'으로 구매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정부는 무늬만 회사 차를 막기 위해 2016년 1년에 최대 1000만원(구매비는 800만원)만 회사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세법을 개정했지만, 효과가 떨어지고 있다. 800만원이 넘는 구매비용은 다음 해로 넘길 수 있어서다. 또 운행일지를 작성하면 1000만원 이상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데 허위로 기록해도 확인이 어렵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값싼 경차가 안 팔린다고 하지만 람보르기니, 포르셰 등 슈퍼카 브랜드의 판매량은 크게 늘고 있다"며 "자동차 시장도 양극화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