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내달 초 윤리 경영을 감시할 외부의 독립적인 준법감시위원회(이상 준법감시위)를 공식 출범한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 제도를 마련하라’고 한 데 따른 조치여서 시선이 곱지 않다.
지난 9일 삼성의 준법감시위 설치 운영 계획과 7명의 위원회 면면이 공개됐다. 준법감시위는 위원장 김지형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변호사를 포함해 법조, 시민사회, 학계, 회사 네 그룹에서 모두 7명으로 꾸려졌다.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변호사는 “‘위원회의 구성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만나서 이에 대한 확답을 들었다”며 위원장직 수락 배경을 밝혔다. 이어 김 변호사는 “6명의 내정자 전원을 독자적으로 판단해 참여를 권유했고,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고도 했다.
7명의 위원회 내정자 중 6명은 외부 위원이고, 1명(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총괄)이 회사 측 인사다. 이인용 위원은 이 부회장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다.
삼성은 위원회의 구성에 합리적인 균형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달 말 공식 출범할 예정인 준법감시위에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이 설치된다. 사무국 구성은 삼성 측 직원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 또 준법감시위를 비롯한 사무국 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비용을 삼성에서 지불하게 된다. 무보수가 아닌 위원들의 수당도 삼성의 주머니에서 나올 전망이다.
김 변호사는 “준법감시위 운영을 합의한 7개 계열사(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생명, 삼성화재)에서 경비를 부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영 자금뿐 아니라 준법감시위의 판단 근거가 되는 민감한 정보 등도 삼성 측에서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 측에 의해 선별된 폐쇄적인 정보만을 취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런 지적에 대해 “위원회에서 고민해야 할 사안이다. 위원회 운영 규정에 대한 초안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참여연대와 삼성노조, 시민사회단체 등은 ‘이재용 봐주기’라며 준법감시위 발족을 규탄했다.
참여연대는 논평을 통해 “준법감시위 설치가 국정농단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되어서는 안 된다. 감시위 대신 법적 기구인 이사회의 독립성·투명성 강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인권운동 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상임활동가는 “재판부가 이재용을 더 이상 구속하지 않게끔 명분을 주는 주문(감시위 설치)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 않나”며 개탄했다.
대기업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관행적으로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놓았다. 삼성도 X파일 사건(2006년), 비자금 사건(2008년), 국정농단 사건(2017년) 등이 터졌을 때 쇄신안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총수 일가의 전횡 방지 대책과 내부 통제 강화 등이 포함된 쇄신안은 비난 여론을 잠재우는 방패로 작용했다. 감시위는 부패 행위, 계열사 간 내부거래, 노동 탄압, 불법 자금, 대주주의 승계 과정의 불법성 등을 모두 들여다볼 예정이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과거의 사안이 아닌 감시위 출범 이후의 사안을 다룰 것”이라고 강조했다.